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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 구원의 서정(序程) ① 소명(召命 calling) [새벽말씀묵상 0104]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21-01-05 (화) 11:19 3년전 2195  
2021년 우암교회 전교인 새벽기도회 (1월 4일, 월) 

 

구원의 서정(序程 순서와 과정; Ordo Salutis; Order of Salvation)

일 자

본문

제목

 1월 04()

 로마서 8:29-30

 ① 소명(召命 calling)

 1월 05()

 디도서 3:5

 ② 중생(重生 regeneration) 

 ③ 회심(回心 conversion)

 1월 06()

 로마서 5:1

 ④ 신앙(信仰 faith) 

 ⑤ 칭의(稱義 justification)

 1월 07()

 로마서 8:14-17

 ⑥ 입양(入養 adoption, 양자養子)

 1월 08()

 에베소서 4:22-23

 ⑦ 성화(聖化 sanctification)

 1월 09()

 데살로니가후서 3:2-3

 ⑧ 견인(堅忍 perseverance) 

 ⑨ 영화(榮華 glorification)


새해 첫 주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이 새해 첫주간에는 구원(救援 Salvation)의 서정(序程-> 구원의 순서順序와 과정過程)을 함께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조율하고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구원(救援 Salvation)의 서정(序程)은 칼빈주의 Calvinist 신학자들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등에서 중요하게 강조되어 있는 구원의 단계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런 단계를 시간적으로 모두 꼭 밟아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는 이들이 이런 과정을 1교시, 2교시 시험보듯이 다 체계적으로 거쳐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한 강도의 경우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병자들도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의 서정(序程->순서順序와 과정過程)은 구원 받은 후의 깨달음과 만남의 감격을 종합하여 정리한 총체적 고백적 은혜의 과정입니다. 즉 지나고 보니 모든 구원받은 이들의 내면과 영적 현상에는 구원의 단계에서 흔히 말하는 9가지의 구원의 과정-단계가 있었음을 깨달아 정히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다시 구원의 서정- 순서와 과정을 생각하는 것은 오늘 내 신앙이 과연 이런 진지한 과정들을 인지하며 겪으며 왔는지에 대한 질문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혹시 건너 뛴 것은 아닌지 경험하지도 못해본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구원의 서정은 완료형이면서도 지금, 현재 경험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 과정일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의 서정序程은 시간적 순서가 아닌 체험적, 종합적, 영적 논리적 순서이며 나아가 현재진행적 과정입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이 영적 과정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진지한가를 묻습니다! 
이 구원의 단계를 5단계, 7단계, 10단계 등으로 구분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구분하는 9단계로 함께 나누며 또 평생묵상의 주제로 삼기 원합니다. 일생의 신앙생활에서 한번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중요한 신앙의 단계입니다.  

먼저 구원의 순서와 과정, 서정에 핵심적인 성경구절은 로마서 8:29-30절입니다. 이곳에 중요한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形像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定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定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義롭다 하시고 의義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榮華롭게 하셨느니라

오늘 우리가 집중하고자하는 소명은 예정과 선택이 같이 포함된 은혜입니다.
① 소명(召命 Calling) = 예정(豫定 Predestination) = 선택(選擇 Election)
에베소서의 말씀입니다. 택하시고 예정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데살로니가 후서도 처음부터 우리가 택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살후 2:13]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인물들을 예정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이사야를 부르시고 예레미야를 부르시고 베드로를 부르시고 바울을 부르시고 그리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부르심- 소명과 예정과 택하심은 하나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도 만세 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이 소명의식이 분명해야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예정되고 택함을 받았고 그리고 부름받았다는 확신이 분명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소명의식에 대한 고민과 갈등과 의심과 질문이 있습니다. 평생 있습니다!
부름받은 예레미야도 평생 몸부림쳤습니다. 그는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망설였습니다!
[렘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렘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그리고 예레미야 20장에서는 내가 부르심을 받고 고생만 하고 힘든 일만 가득하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나님께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즉시 그는 다시 그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예레미야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을까요? 혹시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면 정말 지금보다 더 좋았을까요? 더 자유롭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친구 목사님 중에서 이 문제를 평생 고민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우리! 이 소명의식의 단계를 정말 진지하게 거쳤던가 돌이켜봅니다! 이 과정에서 몸부림치고 고민하고 이 부르심을 바로 인식하려고 노력했던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있었던가를 다시 묻고 싶습니다.
때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나를 정말 예정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시려고 부르셨습니까? 순응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신학대학 입학생 중 중도에 수없이 탈락해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 때문에, 아내 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억지로 교회에 나간 것 뿐예요! 나는 아직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쩌다 교회갔더니 사람 없다고 인물감이라고 갑자기 직분을 주어서 여기까지 억지로 왔어요!~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명의식은 정말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기초입니다. 고백해봅시다!
나는 부름받은 사람이다! 나는 택함받은 사람이다! 나는 숙명적으로 구원이 예정된 사람이다! 
사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흔히 착각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로 작심하고 내가 교회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깊어질수록 깊은 깨달음이 옵니다! 아! 내가 예정되고 택함받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었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런데 주님! 실수하신 것 아닌가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하필 나처럼 문제많고 약점많고 단점많은 사람을 택하셨나요? 왜 나같은 사람을 부르셨나요? 질문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이런 고민이 생기실 때 로마서 11장 29절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택함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구원이 예정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평생의 감격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들어가십니다! 
베드로도 만들어가셨고 바울도 만들어 가셨습니다!
베드로는 두 번의 소명을 받습니다. 첫 번째 소명 때는 행복했습니다! 
[막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Come, follow me,”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그러나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한 얼룩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택하시고 예정하신 주님은 다시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요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그리고 베드로는 다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순교하기까지 사명의 길을 걸었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Just as I am! 약점이 있으면 있는 대로! 고민이 있으면 있는대로!
주님께서 만들어가실 것을 믿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의 소명, 예정, 어쩌면 택함까지 지금 진행 중일 수 있습니다. 
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셔서 필요하셔서 택하신 것이니 우리도 믿음으로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며 고백합니다! 오늘 이 고백이 새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다시 고백합니다! 
나를 선택하심을 받아들입니다! 예정하심을 믿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사명 감당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예정하심과 택하심과 부르심의 사랑과 은혜가 감사해서 우리의 생애에 주신 모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원합니다. 내 모습 이대로! 내 모습 이대로! 만들어가심을 믿으며! 
오 주님! 나를 부르셨음을 믿고 내 모든 정성 주님 위해 바치겠습니다!

<결단 복음성가>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1.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내 모든 정성 내 모든 정성 주만 위해 바칩니다
   주님 주님 나의 기도를 들으사 영원토록 주님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2. 주님 나를 사랑했으니 주님 나를 사랑했으니 이 몸 바쳐서 이 몸 바쳐서 주만 따라 가렵니다
   주님 주님 나의 기도를 들으사 언제까지 주님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3. 주님 나를 구원했으니 주님 나를 구원했으니 소리 높여서 소리 높여서 주만 찬양 하렵니다
   주님 주님 나의 기도를 들으사 할렐루야 주님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부름받은 자로서 새해의 거룩한 결심을 주님께 드리는 이 새벽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구원의 9단계 Order of Salvation
①소명(召命 calling) ②중생(重生 regeneration) ③회심(回心 conversion)
④신앙(信仰 faith, 믿음) ⑤칭의(稱義 justification) ⑥입양(入養 adoption, 양자養子됨)
⑦성화(聖化 sanctification) ⑧견인(堅忍 perseverance) ⑨영화(榮華 glorification)



2021년 01월 04일(월)/ 새벽말씀묵상/
 

신솔문 2021-01-11 (월) 08:35 3년전
구원의 서정을 "한번에" 다룬 것은 성경공부에서인데 목사님 글을 보니 특별새벽기도회 주제로도 아주 좋겠습니다. 봄에 계획하고 있는 특별새벽기도회 주제를 이것으로 해야겠습니다. 첫 글에서 언급하신, 구원의 서정에 대한 전체적 조망을 보고 '역시!'했습니다. 아직 마지막 부분은 안 올리셨군요. 전에 있던 교회에서 "견인"의 한자를 정확히 설명한 후, "견인차"의 '견인'의 의미도 이 과정에 들어있다고 말한 기억이 나는군요. '주님께 견인되어서라도 신앙의 길을 가야한다'라는 의미였죠.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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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2021-01-12 (화) 09:32 3년전
신목사님, 감사드립니다^^
저도 사실 여러모로 흩어진 용어들을 다듬어가면서, 설교하는 주간에도 변경시켜가면서
진행했습니다.
여러가지 용어들로 구분되어 있어서 적확하고 보편적인 용어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교정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용어 불일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양해바라옵니다.
그리고 그 자동차 견인^^ 견인(牽引), 저도 교우님께 질문을 받아
맞다고, 같은 의미로 봐도 좋다고 아니 더 적절한 비유가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의 견해와 아주 일치했네요^^ 기쁜 일입니다. 카스토리에 이미 그렇게 썼습니다.
이렇게 글을 읽어주심이 황송합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인내로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의 혜안이 빛나는 글들에 늘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기 올리는 글들은 제가 부교역자님께 아이디와 비번을 주고
부탁을 해서 올리는 것이라서, 사실, 저도 못 볼 때가 많습니다. ㅋ ㅠ
그런데 교역자님이 댓글이 달렸다해서 또 감사한 마음으로 로그인을 했습니다.

귀하신 신목사님,
어려운 시대,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은혜가
목회여정과 가정, 모든 기도제목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드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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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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