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이준원

좁은 문, 좁은 길! 누구와 걷는가? [새벽말씀묵상 0128]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21-02-01 (월) 19:09 3년전 709  
1월 28일(목) 좁은 문( 마태 7:13-29)

 

[마 7:13] 좁은 門으로 들어가라 滅亡으로 引導하는 門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者가 많고 [마 7:14] 生命으로 引導하는 門은 좁고 길이 협착狹窄하여 찾는 者가 적음이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 너무도 유명하지만 또 부담되는 말씀이기도하고 겁먹기 쉬운 말씀이기도합니다! 길이 협착하고 좁은 문이라고 하면 고난의 길이 생각납니다. 인생을 사는 것도 피곤하고 고단한데 신앙생활까지ㅠ 그러나 오늘 본문은 고행주의나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함부로 범죄하는 생활에 비해서는 신앙생활에는 분명히 제한이 있고 절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한은 세상에도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고행도 있고 버려야할 욕망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려운 시대상황 속에서 무서운 수많은 핍박의 역사를 거쳐낸 신앙의 선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길은 고난보다는 기쁨이 더욱 큰 길입니다. 새벽기도가 좁은 길입니까? 물론 힘듭니다. 그러나 억지로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행자이다! 목표이다!
 넓은 길도, 좁은 모든 길도 어차피 내가 걸어가야하는 길이지 남이 걸어주는 길이 아닙니다. 이왕이면 평탄한 길이면 좋겠지만 문제는 길의 목표이고 그리고 동행자입니다. 주님께서 동행하시면 모든 길은 곧 은혜의 길이요, 그 길이 구원의 길이요, 행복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 주님께서 문이 되셔서 생명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복음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길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도착해야할 그 거룩한 곳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 목표를 바라보며 또 오늘도 우리와 동행해주시는 주님과 함께 갑니다. 아무리 넓어도 목표없는 길은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방황할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좁아도 축복의 길이요, 은혜의 길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지라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모든 것이 그 은혜입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께서 가라고 명해주신 길입니다. 내가 택한 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이끄신 길입니다. 주님께서 택한 자만 이끌어주시는 길입니다. 때로는 눈물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지만 그 마음을 시온의 대로로 삼아주시고 기쁨의 샘이 터져나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시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84: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1.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후렴]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2.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볼 때에 모든 괴롬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3. 마른 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물 흐를 때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4.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겠네 평안함과 즐거움으로 거룩한 길 다니리 
5.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 자 뿐이라 주님 주신 면류관 쓰고 거룩한 길 다니리
사도바울처럼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키는 생애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거짓 先知者들을 삼가라 羊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擄掠질하는 이리라[마 7:16]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葡萄를, 또는 엉겅퀴에서 無花果를 따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실천의 영성에 대한 철저한 교훈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문제는 믿음을 과시하지만 실천은 없는 것이었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는데 있었습니다.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도 있습니다. 형제 자매 중에서도 유난히 욕심이 많고 인색하고 이기적인 성품도 있습니다. 타고난 성격을 어떻게 하느냐구요? 로마서 11장은 [롬11:17] 우리가 원래 돌감람나무였는데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거룩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참 감람나무는 필요한 열매를 맺을 줄 아는 나무입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개혁! 근본적인 개혁! 생각개혁!의 진통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를 맺기 원합니다. 그런데 이 열매는 결코 쉽지 않은 인격화의 노력, 언어화의 노력, 영적습관화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입니다! 진액을 짜내고 비바람 풍상을 끝까지 견뎌야 맺는 열매입니다! 표정복음화가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생각을 고치지 않으면 평생 입으로 남을 정죄하고 죄를 짓습니다. 교회를 다닌지 오래 되었는데도 몇 년째, 몇십년째 달라짐이 없다면 슬픈 일입니다!   내 속에 거룩한 보혈의 공로가 있어 열매맺는 생애가 되기를 원합니다. 

신앙을 이용하여 자기과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
[마 7:21] 나더러 主여 主여 하는 者마다 다 天國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行하는 者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主여 主여 우리가 主의 이름으로 先知者 노릇 하며 主의 이름으로 鬼神을 쫓아 내며 主의 이름으로 많은 權能을 行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不法을 行하는 者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무서운 부분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선지자 노릇을 하고 싶었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주님의 뜻보다 자기의 이름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인격화되지 않은 은사는 자기 과시일 뿐입니다. 이 시대에도 성령받았다는 성격이상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성령의 은사-귀신 쫓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령운동하는 이들 중 의외로 열매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리치유가 더 필요하고 말씀공부가 더 필요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 열매맺고 열매맺기 위해 은사를 받는 거룩한 조화와 내면의 기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세우라!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行하는 者는 그 집을 磐石 위에 지은 智慧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漲水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柱추를 磐石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行하지 아니하는 者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漲水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甚하니라 [마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權威 있는 者와 같고 그들의 書記官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사람같습니다. 그리고 무너집니다. 행함! 즉 사랑~~하라! 용서~~하라! 충성~~하라! 헌신~~하라! 감사~~하라! 전도~~하라~!
그런데 그것이 안됩니다. 대충 세우다보니 무너집니다. 시험에 듭니다. 변질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은 끝까지 땅을 파는 사람입니다.
내면 속의 모래를 다 퍼내는 영적 싸움을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분명히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는데도 왜 나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힘들까? 내면을 살펴보는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머릿 속에 든 것으로 신앙의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집을 든든히 세우려면 땅을 끝까지 파야합니다. 내면에 숨겨진 의심의 흙을 파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심령의 흙도 파내고 자갈도 또 파내어서 반석이 나올 때까지! 내면을 점검하고 약한 부분을 파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내 속에 숨겨진 마음들, 흙덩어리처럼 숨겨진 모든 어두운 기억들, 욕심의 모래, 이기주의, 숨겨진 기억과 상처와 분노와 의심 등~~을 퍼내는 영적 투쟁이 없이는 내 믿음의 집, 인생의 집이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퉁이 돌이 되셔서 우리의 인생의 집을 세워주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바로 만나기 위해 내면의 모든 것들을 퍼내는 내 마음의 축복의 단지 조성작업을 계속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야합니다!
오늘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01월 28일(목)/ 새벽말씀묵상/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