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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긴 세월의 마음의 혈루증! [새벽말씀묵상 0202]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21-02-07 (일) 16:15 3년전 695  
2021년 2월 2일(화) 마태복음 9:14-26
금식에 대한 교훈, 치유!



[마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님께서 아마도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 요한의 제자들이 나아와 힐난합니다. 
자기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는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태도는 온당치 않은 태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는지 안하는지 늘 그것만 엿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라면 바리새인들과는 달라야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기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한다고 과시하고 자랑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 당시 요한은 헤롯의 일로 투옥된 상태였는데(마 4:12) 예수님과 제자들은 먹고 있는 것에 대해 조금 섭섭했을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수시로 금식과 기도에 힘썼던 신앙적 강점은 있었습니다. (눅 18:12).
금식이 영성훈련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금식을 통해 욕심을 버리게 되고 미움도 버리게 되고 영이 맑아지는 것은 금식의 아름다운 덕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40일을 금식하셨고 마가복음 9장에서는 병든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의 물음에 금식과 기도가 능력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막9:29]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런 종류의 일은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으로도 내보낼 수 없느니라."고 하시더라.
초대교회에서도 금식은 중요한 영성훈련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도 금식했고 사울과 바나나를 파송할 때에도 금식했습니다. 
[행13:2-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런데 문제는 금식이 영성훈련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자기과시와 자랑으로 사용되었다는데 있었습니다. 금식을 하기만 하면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입니까? 아니요,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어야합니다. 
정말 금식해야할 때, 정말 목숨을 던져야할 때가 있습니다. 금식을 해야할 때가 있는가 하면 잘 먹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마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금식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도취에 빠진 금식, 남들에게 내가 이만큼 금식한다는 자기과시의 금식은 절대 금지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58장의 금식 교훈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은 하나님께서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고 그것보다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사58:5]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사58: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그것이 어렵습니다. 신앙의 형식을 통해 자기 과시를 하고 싶어하고 자랑하는 것을 참으로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자랑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잠20:6]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온전히 생각과 사고방식 자체가 거듭나야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라면 뭔가 달랐어야하는데 다르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의 위선을 그대로 본받고 있었습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기워 붙인 것처럼,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은 것처럼 생각이 정리 정돈되지 못했고 모순과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온전히 생각 자체가 바뀌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마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세례요한은 지금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지적하다가 감옥에 가있는데 제자들은 도로 바리새인의 사상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낡은 옷과 낡은 포도주 부대를 말씀하시며 믿음의 자기 모순을 벗어나라고 가르치십니다. 
신앙이 생활태도로 드러날 때 자기의 생각 안에 일치를 이룰 것을 명하십니다. 금식해야만 훌륭하고 믿음이 좋다는 옛 생각과 사고방식이 서로 지금 모순을 일으켜 남을 정죄하는 위선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죄와 사랑이 서로 조화되지 못했고 정돈되지 못했습니다. 모순된 신앙관념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져야했습니다. 
한국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예수님을 말하지만 머릿 속에는 유교적 권위주의가 여전히 있고 가슴에는 불교적 마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막상 현실을 살아가는 인생관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억지로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는 자기 모순과 긴장을 살아갑니다. 입으로 믿는 예수님이 아니라 생각과 관념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도전! 우리의 믿음이 사고방식화 되는 것! 자기도 모르게 이중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며 위선자가 되어가는 것! 우리의 고민입니다. 그 신앙과 신학이 서로 일치되기를 원합니다. 로마서 14:22절의 경지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롬14: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치유받기 원합니다!

이 성경기사는 마가복음 5:21-43, 그리고 누가복음 8:40-56에도 함께 나와있는 기사입니다.
[마9: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마가와 누가는 이 관리가 회당장 ‘야이로’이며 그 딸은 무남독녀로 나이가 12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절하며 이르되(‘무릎을 꿇고)’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마가, 누가는 죽어가고 있고 말합니다. 그리고 곧 죽었던 것 같습니다.) 
[마9:19] 예수께서 일어나 (ἐγείρω 에게이로 got up 식사하시다가 일어서십니다. 한 영혼의 구원 문제가 달려 있다면 어떠한 위험과 고통도 무릅쓰고 즉각적으로 행동하시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 회당장을 따라 그 집으로 가셨습니다.  -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그 도중에 또 다른 치유사건이 일어납니다.
[마9: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하혈증)으로 앓는 여자가(마가복음을 보면 한 때 재산이 있었던 여인은 병 치료를 위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이제 가난하고 초라한 구박덩어리 여자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레 15:25에는 이런 혈루증에 걸린 여인은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받아 공동체 모임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용기를 내었습니다.)  [마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 그 마음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마가복음 5:30-33에는 예수님께서 능력이 나감을 아시고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물으셨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가 ‘두려워하여 떨며’ 예수님 앞에 나와 모든 일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θαρσέω 다르세오 take heart! 용기를 내라!) 치유받았으니 더 이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담대하게 이제 네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며 나아가라는 위로와 격려, 평안과 안식의 선언이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병치료만 아니라 마음을 치료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신분과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시켜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기 원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안심하라!라는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긴 세월의 마음의 혈루증, 혹 내 마음에 흐르는 피가 있다면 치유받아 멈추기 원합니다. 
주님, 내가 여인의 심정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오니 나를 치유하소서! 아멘! 아멘!

어린 소녀를 고치신 주님! 달리다굼!

[마9: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당신의 유대풍속-대하 35:25-에는 사람이 죽었을 경우 가난한 집이라도 2명의 피리부는 자들과 1명의 애곡하는 자를 고용했다고도 합니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돈을 받고 울고 있는 그들을 다 물리치십니다. 
[마9:24] 이르시되 물러가라 (ἀναχωρέω 아나코레오 Go away!)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이 소란한 죽음 전문가들은 이미 소녀가 죽었음을 확신했기에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의 능력이 강하게 드러나십니다! 
[마9: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마가복음 5:41은 이 때 예수님께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라고 외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8:54은 ‘아이야 일어나라’!로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우리를 만져주시기 원합니다.
어린 소녀를 다정하게 불러주신 그 음성으로 우리를 불러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기 원합니다!
주님, 혹 영과 마음이 죽어가고 있는 저를 불러주시고 손붙잡아 일으켜주소서!
아멘!
아멘!


2021년 02월 02일(화)/ 새벽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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