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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요나의 표적- 수난의 표적 [새벽말씀묵상 0211]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21-02-16 (화) 09:04 3년전 1209  
2월 11일 (목) 마태복음 12:38-50- 요나의 표적 


[마 12:38] 그 때에 書記官과 바리새人 中 몇 사람이 말하되 先生님이여 우리에게 表蹟 보여주시기를 願하나이다 [마 12:39] 예수께서 對答하여 이르시되 惡하고 淫亂한 世代가 表蹟을 求하나 先知者 요나의 表蹟 밖에는 보일 表蹟이 없느니라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人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1] 審判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世代 사람을 定罪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傳道를 듣고 悔改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 12:42] 審判 때에 南方 女王이 일어나 이 世代 사람을 定罪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智慧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찾아와 또다시 표적(表迹)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놀라운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와 구원의 법칙, 복음(福音)이 선포되었고 하늘나라의 비밀이 선포되었고 많은 기적(奇蹟)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마음 문을 닫고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수많은 기적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기적으로 인해 꼭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믿음 없는 이들에게는 기적 사건도 인격적 변화, 생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건에 불과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심성을 악하고 음란(淫亂)한 세대라고 꾸짖으십니다. 
진실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없이 이런 저런 기적을 구경하러 다니는 속물적 호기심에 불과한 관심을 죄로 지적하신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진지함과 겸허함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잘믿는다는 생각만 남은 그들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였습니다. 신앙에는 분명히 자연법칙을 초월한 놀라운 표적들이 따라옵니다. 그것이 감동적인 간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신앙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별하는 깨달음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 표적에 유난히 집착하면 깨달음과 영적성숙의 차원이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감탄은 있으나 내면의 감동과 영혼의 진통을 통한 거듭남의 차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장 놀라운 기적을 예고하십니다. 바로 요나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표적은 바로 예수님의 수난(受難)과 죽음과 부활(復活)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표적이라기보다는 은혜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값싼 호기심에 가득 찬 인간들에게 인간의 죄인됨과 구원의 은혜를 알게 하실 ‘하나님의 죽으심’을 역설적으로 충격적으로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큰 물고기의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죽으시고 무덤에 있으셨다가 사흘 후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죽음! 그것이 표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은혜였습니다! 아직,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의 꾸중을 듣고 회개할 줄 알았던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을 선고받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자칭 ‘ 자신이 잘 믿는 것으로 착각하는’ 신앙인들을 오히려 정죄할 것도 예고하십니다. 
남방(南方)여왕 시바도 (에디오피아, 구스의 여왕; 왕상 10:1-13)도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올 줄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구원의 진리를 아는데 마음문을 닫아버린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잘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거듭남은 없었고 그것이 내면에 숨겨진 두려움 때문이든지, 불신 때문이든지, 세상의 이해타산과 실리 때문이든지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니느웨나 시바여왕보다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내 믿음의 진실성을 생각합니다. 
기적이나 표적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마음에 새겨 인격적 변화, 영혼의 구원을 먼저 사모하는 깨달음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잘 비워내고 충만하게 채워내고! 
[마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마12: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마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물없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여기에서 귀신이 다녔다는 [물없는 곳]은 사막이라는 뜻입니다만 영적인 비유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물]을 [말씀][세례-신앙고백]으로 비유하기 때문에 더러운 귀신은 이 말씀이나 신앙고백이 없는 곳에 다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요3:5] [히10:22][벧전3:21] [엡5:26]  [딛3:5]
인간의 삶을 무너뜨리는 귀신의 세력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군대 귀신]이라는 이름처럼 신앙인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어두운 세력도 이름을 붙여 [탐욕귀신], [혈기귀신], [음란귀신], [중독귀신], [우울귀신], [거짓말귀신], [미움귀신]이 들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을 파괴하는 어두운 세력에 대한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귀신의 세력이 우리의 영적인 생활의 도전이요 또 건강한 삶을 파괴하는 세력임을 인정하셨습니다. 그 귀신들이 극성스럽게 달라붙어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지와 지성이라는 선물을 사용하는 자기와의 싸움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마음 속에 가득한 분노, 욕심, 미움을 버리면 대단히 시원해집니다. 영적으로 해방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것은 더 새로운 소망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귀신은 결코 멀리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늘 곁에서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았다고 간증한 다음에 무너지는 분들이 많고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다고 자랑하던 분들이 영적 공허를 이겨내지 못하고 더 크게 무너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성관리는 소극적으로 내 마음의 분노와 중독을 내어 보내려는 수동적 고민이 아니라 차라리 성령 충만함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 그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기불을 끄면 순간적으로 어둠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을 늘 빛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랑과 감사를 기도로 가득 채워서 욕심과 분노와 우울과 좌절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우리의 영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심령에 주님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설날을 맞으며 가족전도를 위하여 기도함 
 [마  12: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同生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마 12: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當身의 어머니와 同生들이 當身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마 12:48] 말하던 사람에게 對答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同生들이냐 하시고 [마 12:49] 손을 내밀어 弟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同生들을 보라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者가 내 兄弟요 姉妹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얼핏 예수님은 냉정하게 취급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들, 특히 형제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거부했었습니다. 
[막6: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요7:5]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그러나 훗날 그 형제 중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 되었고 야고보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유다서도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썼다는 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중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최고의 효도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설날을 맞이합니다.
가족 전도를 다시 생각합니다.
효도하는 가문, 우애하는 가문, 부부화목이 있는 가정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가기 원합니다.
그런가하면 사실 교인들을 친척보다 더 자주 만납니다. 우리 교인들이 곧 가족들입니다. 하늘 가족입니다. 서로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우애있고 행복하게 지내기 원합니다.
설날을 맞으며 가정마다 주님의 풍성한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02월 11일(목)/ 새벽말씀묵상/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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