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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세례 요한처럼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새벽말씀묵상 0216]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21-02-16 (화) 09:06 3년전 846  
2월 16일(화) 마태복음 14:1-12 

세례요한의 순교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세례요한이 참수를 당한 비극 이야기입니다. 
안일을 거부하고오직 진리에 목숨을 걸었던 위대한 선지자 세례 요한의 진실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마 14: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마 14: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마 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마 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마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마 14: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마 14: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마 14: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마 14: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마 14: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마 14: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마 14: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세례요한은 구약 말라기에서 예언되었고 그리고 신약을 열었던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 구약의 마지막 예언은 신약 누가복음 세례요한의 탄생기사와 연결됩니다. 
[눅1: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눅1: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눅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예수님과의 외가쪽으로 친척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례 요한은 레위 지파이고 예수님은 유다 지파이지만 그 어머니들- 마리아와 엘리자벳은 서로 친족 간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레위 가문으로서 제사장이 될 수 있었으나 아마 평생 서약을 하고 금욕과 독신으로 하나님의 말씀만 묵상하기 위해 스스로 광야로 나아가 구도생활을 하는 쿰란, 에쎄네의 영성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구차한 안일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기 원했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마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3:4]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분명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준열한 심판의 경고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무서운 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씀에 진리가 있음을 알 수 있었기에 그에게 나아갔습니다! 요한은 특별한  표적을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요10: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가 전한 것은 오직 '회개하라!'는 한가지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물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심령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의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정도의 영성의 거룩한 욕구와 분별력은 있었던 것입니다. 
[마11: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그 세례 요한이 당시 헤롯왕- 헤롯 안디바스의 죄악상을 고발하다가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 헤롯 안티바스는 세례요한을 죽이고, 훗날 예수님을 빌라도와 함께 심문하던 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헤롯의 간교함과 교활함을 아시고 '저 여우'-(눅 13:32)라고 부르시기도 했습니다. 헤롯이 자기 생일을 맞아 잔치를 벌이던 바로 그 날, 세례요한은 죽음을 당합니다. 조금 복잡한 내용이지만 요점은 헤롯 안디바스가 이복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마음을 뺏겨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은 일이었습니다. 당시 헤로디아의 남편 빌립은 세력을 잃었던 상황이었고 헤로디아는 헤롯 안디바스와 간통을 하게 되고 빌립은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이복형에게 뺏겼던 것 같습니다. 헤롯의 본 아내는 이 사건을 알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요한이 꾸짖자 헤롯은 그를 감옥에 넣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는 앙심을 품고 복수심에 불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헤롯의 생일날 잔치를 벌이고 술에 취하여 있던 중,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흔히 살로메라고 말하는데 사실 성경에 헤로디아의 딸이 살로메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의 살로메는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습니다 [막15:40], [막16:1]. 다만 후세 역사가- 요세푸스 등이 헤로디아의 딸을 살로메라고 불렀기에 그 후로 역사적으로 헤로디아의 딸을 살로메라고 불렀습니다. 살로메라는 이름은 평화라는 뜻이지만 그는 욕심과 분노로 사람을 죽인 여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일 잔치에 술에 취해 들뜬 헤롯왕은 그 딸의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딸은 어머니 헤로디아의 지시를 받아 세례요한의 처형을 요구하고 그 목을 달라고 합니다. 우쭐거리던 헤롯은 자기 과시를 하느라, 우쭐거리느라 그것을 허락합니다. 그 정도의 인간이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술에 취했고 아무리 헤롯에 무서웠어도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 하나 없었나 싶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어리석은 헤롯의 맹세의 증인이 되었고 사악한 헤로디아의 살인에 동조자(同調者)가 되었습니다. 헤로디아에게 끌려 모든 사람이 함께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역사가 이렇게 왜곡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생각과 달리 실제로는 모든 사건과 사고를 결국 여인들이 남자들을 조종하여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미에서 여자들의 현명함과 거룩함과 역사관과 판단력과 기도와 인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남자를 조종하고 이용하고 현혹시켜서 자기의 자존심을 세우거나 자기의 분노감정이나 복수감정을 푸는 정도의 술수에 가득한 여인들이 많다면 역사는 왜곡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 예수님께서 여인이 낳은 사람들 중에 가장 큰 사람[마11:11]이라고 했던 세례 요한은 이렇게 순교했습니다. 
 요세푸스라는 역사가에 따르면 훗날 헤롯은 얼마 후 그의 전처의 본국이었던 페트라(Petre)의 아레타스 왕과의 전투에서 참패하여 도주하였고, 또 로마 황제의 진노를 사 로마 원로원에 의해 프랑스 리용으로 추방되어 거기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Flavius ​​Josephus)의 유대 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18권 4장과 5장) 또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겨울에 얼음 위를 걷다가 얼음이 꺼져 그만 날카로운 얼음에 목이 찔려 죽었다고 합니다. 헤로디아의 딸도 그 목을 찔려 결국 죽었습니다!

 세례요한을 생각합니다. 백성들에게 그토록 큰 인기가 있었으나 그는 그 이름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이름 따위에 명예 따위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오직 진리 만을 붙잡기 원했습니다. 모든 인간이 으뜸되기를 좋아하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에 집착하고 과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런 심성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될 수가 없습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세례요한이 아니라 헤롯이 되고 디오드레베가 됩니다. 
[요삼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세례요한은 철저히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신들메(신발끈- 유대인들이 신었던 샌들-신발의 끈인데 흔히 손님이 오면 종들이 무릎을 꿇어 그 신발의 끈을 풀어주었습니다.)를 풀 자격도 없다고 자신을 낮추었던 깊은 겸손이 있었습니다.
[눅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그는 거룩한 2인자였습니다. 아니 2인자라는 말 자체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식의 세상적 평가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던, 오직 진리만을 추구했던 거룩한 무명이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에게도 이 구도의 거룩한 소원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왜 광야로 나아갔습니까? 그들도 알고는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화려한 옷과 높은 사람들과 알려진 사람들과 경쟁과 사치와 향략이 아닌, 바로 이 광야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영적 본능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광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거룩한 구도의 심령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의 청빈(淸貧)을 본받고 싶습니다. 비록 세상을 살면서 가정을 유지하고 부모와 자녀와 이웃들을 돌보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며 또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만 구차한 탐욕에 찌들리지 않고 내 것 챙기는데 마음 뺏기지 않는 거룩한 청빈(淸貧)의 수도적 삶을 살고 싶습니다.
비록 우리는 목숨을 내어주어 죽은 붉은 피의 순교자(Red Martyr)는 못되더라도 생활 속에서 내 자아와 욕심과 혈기와 분노와 감정을 죽이며, 평화를 만들어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흰색 순교자(White Martyr) 생활 순교자로는 최소한 살고 싶습니다.  

 청빈(淸貧)과 절대 겸손과 진실,
그리고 오직 주님-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원했던 그 섬김!
목숨까지 바쳤던 그의 진리를 향한 열망!  
주님, 세례 요한의 그 거룩한 영성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아멘!


2021년 02월 16일(화)/ 새벽말씀묵상/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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