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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외식(外飾)의 그 뿌리 깊은 자기 모순을 이기게 하소서! [새벽말씀묵상 0316]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21-03-17 (수) 14:23 3년전 890  

예수님의 안타까움! 아픔! 고민과 슬픔!!

<성경말씀> 마태복음 23:25-39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3: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3:28]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3: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23: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23: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7가지 화 있을진저!

마태복음 23장에는 7가지 "화 있을진저!"가 나타납니다.

1)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2)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3) [23: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4)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5)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6)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7) [23: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그리고 외식(外飾)이라는 말이 6번이나 나타납니다. 화를 당하는 원인이 바로 외식(外飾) ὑποκριτής 휘포크리테스, 영어 hypocrisy 히퍼크리시, hypocrites 히퍼크리츠-위선자(僞善者)-가 바로 이 단어에서 왔습니다. 겉으로만 꾸미는 외식과 위선은 망하는 길, 화를 당하는 가장 무서운 인격의 병이었습니다. 또한 이 7가지 화 있을진저 중에 세 번째 "눈 먼 인도자여"를 빼면 모두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당시 믿음이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고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러기에 그들의 위선은 더욱 깊었습니다. 구약에는 없는데 신약에 나타나는 바리새인들은 구약과 신약 사이에 나타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처음 출발은 헬라문화-세상 문화에 오염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따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아보자는 선한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사람들이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존경을 하게되자 그것을 즐기는 것으로 변질됩니다. 즉 경건이 이익의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딤전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들은 점점 믿음이 좋다는 것을 팔아 존경과 명예와 사람들의 인정을 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들의 내적 성결에 대한 깊은 고민과 영적 수련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면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 당시에 살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름대로 판단력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그 때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가 그때 살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지금 바리새인들이나 아무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위선이란 그토록 뿌리가 깊습니다. 외식(外飾)이란 무엇입니까? 위선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합니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겉모양만 집착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척으로 사람들에게 명예를 얻으려는 집착입니다. 사람들의 평판에 집착하고 인정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눈에 바로 보여야 한다는 점인데 그것을 놓치고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위선자요 외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Coram Deo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가장 중요한 하나님 앞에서!를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사람 앞에서만 그럴듯하게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그때 살았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도 똑같았습니다. 조상들이 이사야를 죽이고 예레미야를 고난에 빠뜨리고 엘리야와 엘리사를 핍박했던 것처럼 이들도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독설을 인용하여 그들을 꾸짖습니다.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세례 요한의 말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분노 앞에 숙연해집니다. 우리는 어떠한지?

우리를 선지자와 서기관 삼아 보내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제 직접 우리들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3: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기존의 바리새인이나 선지자나 서기관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바리새인과 선지자와 서기관을 보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보내신다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사도라는 말과 같은 아포스톨로스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로 우리를 부르시고 사도로 우리를 보내십니다. 제자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요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그리고 서기관들처럼 성경을 잘 알고 가르칠 수 있는 우리를 보내십니다.

우리의 가정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일터로 보내시고, 세상으로 보내시고 교회로 보내시고, 삶의 모든 현장으로 보내십니다. 물론 핍박도 어려움도 갈등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그들의 십자가를 지고 순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들처럼 순교하지는 못해도 생활순교를 할 각오로 삶의 현장, 가정부터 시작하는 모든 우리의 위치에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전달하는 제자요 사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보내심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12제자처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2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여기에서 나타난 사가랴는 아마도 역대기하 24:20-22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일 것이라고 봅니다. 역대기 하 24장을 보면 요아스왕이 7살에 왕이 되어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적 지도 아래 믿음대로 정치하다가 여호야다가 죽은 후 믿음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데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이것을 지적하다가 순교당합니다.

[대하24: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대하24: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그런데 사가랴의 아버지 바라갸는 나타나지 않는데, 랍비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가랴가 130세나 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이라기 보다는 (구약성경은 종종 아들이나 손자나 그 후손이나 동일하게 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마도 사가랴의 아버지 바라갸가 일찍 죽어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패악을 저지른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예고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A.D. 70년 로마에 의해 완전 멸망이 되고 그 후 2천년 가까이 전 세계를 헤매며 방황하다가 히틀러에 의해 무참한 살륙을 당하기도 하면서 1948514일 옛 이스라엘 땅을 사서 건국을 선언하기 전까지 무서운 방랑의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을 이미 아셨을 주님은 예루살렘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르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23: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성, 그 세월과 시행착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살지 못한 도성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탄식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루살렘은 내 이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의미하기도 하고 내 인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000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 우리의 인생을 다시 부르십니다.

나의 모든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기 원합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음같이 우리를 품어주실 그 사랑을 기대합니다.

그 사랑으로 치유받으시고 위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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