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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유다에게 예수님은 끝까지 랍비였다! [새벽말씀묵상 0325]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21-03-26 (금) 15:24 3년전 1009  

325() 최후의 만찬 마태복음 26:17-35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여기에서 복음서의 날짜들이 조금 달라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의 날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유월절-금요일의 하루 전날 목요일에 하루 먼저 최후의 만찬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26:18] 이르시되 성안 아무( δεναa-> certain man 여기에는 이름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마가-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나바의 누이였던 마가의 어머니는 초대교회에서 많은 지원을 했던 분이고 최후의 성만찬을 한 바로 그곳에서 또한 성령강림사건이 일어났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 카이로스- καιρός -My time - Ὁ καιρός μου- 성경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로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와 결정적이고 의미깊은 시간인 크로노스를 구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카이로스적 시간- 당신이 인간구원을 위해 죽으셔야할 바로 그 때가 온 것을 아셨습니다!) 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26: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6: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 Μήτι γώ εμι, κύριε; -> "Lord, is it I?") [26: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Μήτι γώ εμι, ῥαββί)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Σεπας "You have said it.") 하시니라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6: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무교절의 첫 날"14일 곧 목요일에 해당합니다. 이 날짜에 대해서는 복음서에 조금 혼동이 되는 부분이 있는데 원래적으로 하자면 금요일 저녁식사가 유월절 식사인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루 앞당겨 목요일 밤에 유월절 식사를 미리 하신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합니다. 당시에도 그런 풍습이 이미 있었던 것을 여러 자료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날 생겨난 사건입니다. 아마 성경에서 가장 거룩한 사건! 바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입니다.

마지막 만찬!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 마태복음의 이 부분부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그야말로 숨가쁘게 진행됩니다. 최후의 만찬과 그 밤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는 여정과 그곳의 기도와 그리고 가야바의 법정과 빌라도의 법정, 사형선고, 사형집행, 골고다 언덕으로 가시는 길, 십자가상의 7마디 말씀, 그리고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예수님의 수난장면은 언제 읽어도 제대로 읽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가슴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가 작동오류를 일으키듯이, 먹먹해져서 뭐라고,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두려운 부분입니다. 두렵고 떨립니다.

이 엄숙한 날에 예수님을 도와 성찬식을 할 장소를 마련해 준 그 '아무'를 생각합니다. 그의 도움이 있었기에 성만찬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이 아니라 많은 이름없는 이들이 예수님을 도왔습니다.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할 예수님께 나귀를 제공해 준 사람, 그리고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 그리고 성만찬 장소를 제공해 준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매고 간 구레네 시몬,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예비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사실은 제자들이 했어야할 일을 도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정말 필요하실 때 사용되는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언제든지 예수님께서 필요하실 때 내가 가진 것들을 내어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가룟 유다 Judas Iscariot가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가룟이라는 이름은 남부지방 그리욧 출신이라서 구별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15:25]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몬 곧 하솔과

[48:24]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읍에로다

[2:2]내가 모압에 불을 보내리니 그리욧 궁궐들을 사르리라 모압이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 중에서 죽을 것이라

어떤 이들은 이스캐리엇= Iscariot = 가룟이라는 명칭이 당시 로마에 빌붙어 동족을 괴롭히던 매국노들을 처형하는 자객단-시카리 파에서 온 호칭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카리(The Sicarii)-시카리라고 불렸던 집단(이 명칭은 단검을 지닌 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시카리우스 Sicarius에서 유래된 명칭으로서 자객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가룟유다도- 바로 이 혁명 자객단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참으로 아픈 장면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3년간 함께 있었고 그리고 재정을 맡을만큼 신임도 받았고 그리고 나름대로 비중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가까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로마에 대한 보복과 복수심에 가득 차 예수님의 말씀이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혹은 가룟 유다의 배신이 있었기에 결국은 예수님의 수난이 이루어지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으니 가롯 유다는 역할론, 즉 악역을 맡은 역할론의 역설적 희생자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아니라도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었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습니다. 그는 최후의 만찬 때에 밖으로 나갔습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밤이라고 표현합니다.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유다가 배신하기 전, 예수님께서 그 발도 씻어주심을 기록합니다. 끝까지 배신자의 발도 씻어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기억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이 최후의 사형선고를 받음을 보고 목매어 죽었습니다!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1: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오늘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누군가 나를 배신한다고 말할 때 다른 제자들은 저는 아니지요? 라고 반문하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데 "주여, 나는 아니지요"- 유다는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작은 차이같지만 여기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가룟유다에게 예수님은 주님이 아니라 선생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아보이는 결정적인 차이가 배신의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숨겨진 2%의 배신의 마음이 숨어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이 드러나 결국 사람들 배신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속에 숨겨진 2%의 배신의 근성과 생각은 없는지 점검합니다. 유다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의 곁에 있었고 재정을 담당할만큼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던 그가 결국은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몸만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늘 예배와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가장 가까이 있지만 영혼이! 내면이 변화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가룟유다입니다. 죄를 멈추지 못하고 주님과 영원한 연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있는 가룟유다는 늘 어두운 밤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 밤으로...

예수님은 성만찬 의식을 거행하십니다. 마지막 사랑의 언약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몸과 그 피! 몸은 인간의 모든 생애입니다! 몸은 인간의 모든 사연입니다. 몸은 생명과 존재이며 내 자신입니다.그리고 뜨거운 피는 모든 몸의 생을 이끌어 간 힘입니다. 그 몸을 깨뜨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십니다. 아낌없이 내어주십니다.

부끄럽습니다!

그 사랑 앞에서

두렵고 숙연하고 차마 외면하고 싶습니다

빛나는 태양을 맨 눈으로 바라볼 수 없듯이 그렇게,주님의 최후의 성만찬은 거룩하고 또 두렵습니다.

나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과 죽음!

이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값없이 구원받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랑!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랑!

오늘 주신 예수님의 말씀에 내 이름을 새겨 넣어야합니다.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너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사랑을 감히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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