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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솔문

[책 소개] 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1-06-03 (목) 08:14 2년전 915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목사인 아들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는 분한테 선물하려고 했는데 아직 우송하지 못했습니다. 첫째, 제가 먼저 읽어야 했고 둘째, 읽고 나니 자칫 이 책이 성공한 목회자로 나아가는 열심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어서요. 하지만 오늘 보내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것보다는 알고 있는 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포스트잇을 붙인 페이지가 많지만 세 개만 맛보기로 올립니다.



+ 2000223일 편지 중에서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목사가 되는 일의 독특성을 숙고하게 되었단다. 목사가 되는 일에는 독특함이 있다. 더 낫다거나 특권을 받았다거나 특별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볼 때 독특하고, (그만큼은 아니겠지만) 하나님 백성 가운데서도 독특하다는 것이다. 다른 직업에서 갖게 되는 정체성과 일하는 방식을 목사의 일과 정체성에 적용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목사의 독특성 중 하나는 소위 다른 전문가들보다 업무에서 훨씬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이지. 만약 의사나 기술자나 변호사나 장교들이 목사만큼 자기 일에서 실수를 저지른다면, 당장 쫓겨나고 말 것이다. 지금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지 모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놀라곤 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떤 일에 유능해지고 어떤 대상 또는 누군가에 정통해야 한다는 유혹을 받기 쉽지. 불행히도, 교회에는 행정, 리더십, 학술, 프로그램 운영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발전시킬 기회나 도피 방법이 많단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은 어느 정도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예수님을 따를 때의 느낌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많이(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하게 되었다. 교회가 우리에게 안수하여 맡긴 목사직이라는 위치에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증언해야 하고 구원과 섭리의 신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 2000730일 편지 중에서

 

이제 나는 상시 목회의 현장에 있지 않지만, 내가 볼 때 목회와 교회생활을 너무나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두루 퍼져 우리 삶을 지배하는 소비지상주의인 것 같다. 우리가 소개받고 받아들인 복음은 삼위일체로 규정된다. 공동체로 계시는 하나님, 인격적 관계 안에 계시는 하나님, 성부-성자-성령께서는 신격 안에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와도 그렇게 관계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요람에서부터 소비자로 키워졌지. 소비자는 수동성과 물성의 전형이다. 이 소비자성이 교회생활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의 분위기를 조성한단다.

 

그에 따른 결과는 복음이 소비자가 구입할 만한 방식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사람들이 선택을 내리고 세상에서 삶을 꾸려 나가는 유일한 방식이 되지. 그래서 우리 목사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복음을 이미지, 단어, 목표, 비전, 이름 등으로 포장한다. 복음의 메시지 자체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원할 만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단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이고 속속들이 인격적이거든. 복음에는 관계, 마음의 반응과 의지의 동의와 같은 개인적인 세부 내용들이 수반되지. 다시 말해, 비인격적으로 제시되거나 받을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어. 삼위일체가 이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한단다. 그러나 복음을 여러 가지 형태로 포장하면, 본질상 인격적 요소를 약화시키서 관계적이지 않은 수단을 제시하고, 삼위일체의 위격들을 물화시키며, 복음을 전하고 초대하는 사람까지 물화시키게 되지.

 

그 결과, 우리는 사람들을 이끌어 교회에 참여시키고 때로는 매우 열정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인격적인 측면보다 비인격적인 측면에 훨씬 많이 몰두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게 된단다.

 

이것이 프로그램의 문제점이다. 물론 프로그램은 필요하지. 모든 사람을 각각 특별한 사례로 대하기란 불가능하니 말이다. 우리가 공동체로서 어떠한 일을 하려면 모종의 프로그램적인 지침과 절차와 목표가 있어야 하지. 그러나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이야. 우리는 사람들을 프로그램에 따라 상대하며 그들이 독특한 인격적 존재라는 사실을 회피하거나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일은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쉽단다. 프로그램은 사람에 투자하는 것보다 시간과 품이 훨씬 적게 들고 효율적이지. 반면 사람에게는 끝없는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적어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프로그램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지. 사람보다는 프로그램이 비용 대비 효과가 훨씬 크다.

 

그다음 순서는 포장하기와 프로그램 운영을 결합하는 것이지. 이렇게 되면 예배, 증언, 선교, 공동체 자체의 인격 중심성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결국 군중만 남는다.

 

게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거나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포장된 상품을 사는 일과 프로그램에 동원되는 일을 잘 안다.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지. 그것이 관계에 충실한 인간이 되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상품으로 제공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프로그램으로 제시하는 교회로 향하며 그런 교회를 좋아한다. 믿음에 따르는 온갖 불안과 의심과 싸움은 전혀 모른 채 복음이 제시하는 모든 약속과 복을 가질 수 있느니 말이다. 어찌 보면 상품 교회, 프로그램 교회가 번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소비문화에 맞게 재편된 복음이라 할 수 있지.

 

 

+++ 20001019일 편지 중에서

 

그러나 목회를 시작하면서 혼란에 빠져들었지. 정말 그랬어. 평생 처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단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정체성의 조각들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달까. 오순절파의 조각, 장로교의 조각, 교수의 조각, 작가의 조각, 잘못된 정의가 달라붙은 반()성직자적 편견들, 더 이상 서로 들어맞지 않는 수많은 다른 조각들. 그 모든 조각이 사실은 나였기 때문에 나는 그중 어느 것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조각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네 엄마는 그 시절을 우울한몇 해라고 부른단다.

 

그 몇 해 동안 있었던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을 포기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 나는 늘 어떤 분야에서든 정상에 오를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러나 장로교회 목사가 된 이상 늘 원했던 성공의 자리에 이르지 못할 것임은 분명했지. 나는 장로교 목사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능하지 않았고 개의치도 않았단다.

 

포기와 동시에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나는 그 점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벨 에어에 있고 장로교 목사라는 것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일임을 깊이 확신했지. 그래서 무언가를 바꾼다거나 그것을 떠난다거나 그만둔다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훨씬 더 소박한 조건으로 미래를 다시 상상해야 했지. 결국 나는 실패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이 말이 지금은 괜한 호들갑으로 들리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느꼈다. 신실한 실패자가 될 수 있기를, 소규모 회중을 한 공동체로 이끄는 가운데 나를 이루는 모든 조각이 한데 모여 목사의 정체성으로 빚어지기를 바랐다.

 

그 일은 서서히 이루어졌단다. 그동안 나는 계속 설교를 배우고, 죄인들을 영혼으로 대하는 법을 배우고, 제도의 본질을 배우고, 글쓰기를 배웠다. 내가 생각하기에 목사의 정체성이 분명히 형성되었던 주된 이유는, 내가 장로교 목사로서나 새로운 교회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성공하는법을 알아내려고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실패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프로그램 운영과 홍보와 주목받고 싶은 욕구 같은 것들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워졌단다.


목사안수식 특송에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

https://youtu.be/gmYKtSv6JWQ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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