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대를 함께 견디고 함께 이기고 함께 버텨나가시는 우리 우암가족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축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우리 함께 인사하십니다.
당신을 또 만나서 행복합니다! 함께 계셔주셔서 위로가 됩니다^^
이 시대에 내 신앙의 정체성을 점검합니다. 이젠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결석하면 큰일 나고 교회 안 나오면 큰일이라고, 제발 나와달라고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이젠 안 나와도 누가 신경 쓰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나오기 싫으면 안 나와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알아서 하세요~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내 신앙이 내게 달려있습니다. 새삼 내 신앙의 기본을 생각합니다.
나는 어떻게, 무엇을 믿어왔고, 무엇을 기도해왔으며, 교회는 내게 어떤 곳이며 나는 뭘 하고 싶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명의 본질인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가 많아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사역들은 내가 안 해도 할 사람 많습니다. 누군가 결국 다 합니다. 그런데 영혼구원만은 내가 반드시 해내야 할 나의 사명이요 의무입니다.
얼마 전 믿지 않는 오랜 인생 동기가 해외에서 전화해서 교회를 다니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말합니다. 냉철하고 비판적인 지식을 가진 그에게 생각을 끊고 마음을 열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웃으며 말합니다. 하나님 보여주면 믿을게요! ^^ ㅠ
평생 들었던 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말입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을게!
시편의 시인도 탄식합니다!
[시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하나님! 좀 나타나셔서 벼락을 내리시든지 꾸짖든지 다스리시면 안 되나요?
이사야가 고민하면서 말합니다.
[사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이사야는 영적 갈등과 고민 끝에 하나님께서 숨어계신다고 표현합니다. 이사야의 영적 고민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숨어계시는 하나님'은 신학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 Deus absconditus (데우스 압스콘디투스)"
이것을 신학에서는 신(神) 존재(存在) 변증론(辨證論)으로 대단히 복잡하게 설명합니다.
저는 좀 간단히 비유적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공시마전꽃!(공기,시간,마음,전파,꽃)
공기도 시간도 마음도 전파도 눈에 보이지 않고 저 무심천변의 개나리, 그 노란 물감도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때가 되면 보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이미 보이는 것보다 영원한 것을 우리는 영혼의 본능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원도 양양의 남대천에서 쏟아져 나온 연어 salmon 들이 동해에서 태평양으로 긴 세월을 다니다가 어느 때가 되면! 그곳으로 돌아와 남대천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내비게이션도 없는데 누가 가르쳐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유전자 지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영혼의 유전자 지도가 있어 결국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강조합니다! 우리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천지창조 역사 이래로 하나님을 육신의 맨눈으로 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요일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하는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세 가지를 말합니다.
먼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요일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백 번 이론적인 말을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되면 큰 확신이 생기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체험이 중요합니다. 불같은 성령이 아니라도 차가운 이성의 깨달음, 지성과 감성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내적 감동의 성령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의 시간과 공간 속에 스스로 갇혀 오신 예수님,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요일4: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요일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눈으로 보고 싶다는 제자 빌립에게 내가 인간의 몸으로 너희와 함께 있음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의 사랑에 하나님의 본질이 있었고 그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보았고 따뜻한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았겠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또한 로마서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지금에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 예수님, 그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 번째의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뜻밖에 또 한 가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있으니, 바로 그것은 사람! 에게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신비입니다.
[요일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내 옆의 사람? 아무리 보아도 문제 많은 인간인데 그를 보고 그를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이 신비의 말씀은 평생 숙제입니다.
하나님 보고 싶은 자, 내 곁의 형제자매를 바라보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자, 그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고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는 곧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다!
하나님 어디 계시느냐고 묻지 말라!! 하나님 안 보이신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이 사랑으로 한 사람의 영혼을 바라볼 때 바로 그곳에 하나님은 계신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 부분, 평생 마음의 질문으로 새기기 원합니다.
때제 공동체에서 많이 부르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까리따스- 자비와 아모르- 사랑이 있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Ubi caritas et amor, ubi caritas Deus ibi est“
우비 까리따스 엣 아~~모르, 우비 까리따스 데우스 이~비 에스뜨
Ubi(where) caritas(charity) et(and) amor(love),
ubi(where) caritas(charity) Deus(God) ibi(Himself) est(is)"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느낀다는 이 신비는 참 이해하기 어렵고 어쩌면 평생 품고 풀어야 할 영적 숙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 신비를 분명히 말합니다. 너와 나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디 계시느냐고 묻지 말라! 형제의 영혼 속에 있다! 그 영혼의 진실을 그대가 볼 수 있을 때 당신의 영혼에 이미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고 싶은 자! 사, 랑, 하, 라! 진심으로! 내 곁에 있는 이들의 일생이 담긴 그 눈을 마주 보며 위로하고 용서하라!
복음 성가를 조금 개사했습니다.
♫ 그대의 눈빛(영혼, 마음, 눈물, 사연)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와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그런데! 막상! 막상! 그 사랑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사랑에 지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려고 애썼던 이들의 수많은 상담사례을 기억합니다.
# 노숙자 구제사업 담당- 처음에 그렇게 뜨거운 가슴으로 내 재산을 팔아서라도 섬기겠다고 하더니 어느 날, 그만두겠다 합니다. 그들의 거짓말, 욕심, 왜 차별하냐고 따져 들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고맙다고 말하기는커녕 이까짓 돈으로 돕는다. 잘난 척하지 말아~ 너 같은 인간들이 가장 싫다고 덤벼드는 데 지쳐, 너희들은 어쩔 수가 없구나! 미워하게 되니, 내가 변질되었습니다. 내 평생! 아무도 미워하지 않음이 내 마지막 신앙의 자존심이었고 그것을 위해 평생 기도했는데. 그런데! 억지 사랑보다 차라리 미워하면서 사는 게 편안할 것 같습니다. ㅠ
# 첫 직장에서 상사가 너무 잘해주어서, 성경 공부까지 하며 친했는데 얼마나 집착이 심한지 계속 다른 동료를 욕하면서 너는 내 편이 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밤늦게까지 전화하고 따지고 묻는 바람에 결국 정신과 영혼이 병들어가는 것 같아서 직장 그만두었어요, 다시는 그 사람 보고 싶지 않아요. ㅠ -> 평생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면 좋았을 텐데요! ㅠ
# 먹고 싶은 귀한 녹용액 안 먹고 주었더니 유통기간 지났다고-정말 몰랐는데-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느냐고 와서 던졌어요,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어요!
# 식당마다 싸우는 남편-성장기의 내 편 트라우마- 이해는 하지만 너무 힘들어요~
사랑이 힘듭니다! 사랑이 아픕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병들면, 관계가 병들면 하나님이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힘든 일입니다. 때로는 냉정한 사랑, 지혜로운 사랑, 조건 없는 사랑,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의 자세 훈련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알아주지 않는 고독하고 쓸쓸한 사랑을 배우기도 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고독한 사랑의 훈련도 필요합니다.
어떤 분이 말합니다.
”저는 결코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차라리 제 등뼈에 기대요.” 등뼈가 녹았겠다 싶습니다.^^ ㅠ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은 우리들!
사람을 사랑해보려다가 시험 들었다고 내 마음 문을 닫지 말고, 얼굴 찡그리지 말고, 내 믿음과 인격과 품격의 기본을 지키고 생의 거룩한 원칙을 지켜내고 싶습니다. 평생! 아무도 미워하지 않음이 내 마지막 신앙의 자존심이 되기 원하기에 다시 얼어나 기도합니다.
유명한 말을 기억합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감사하라, 다시는 불평하지 않기 원하여! 기뻐하라, 한 번도 우울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다시 사랑하는 생의 힘이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 내 안에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정말 사람을 사랑해본 적이 있었을까? 정말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스스로 고민되고 외롭고 괴로울 때,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나 자신에게 포기하지 말고 가기 원합니다. 사람을 다시 믿어보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내 인생을 이해하고 싶고 또 내 인생을 이해받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불안하게 살아가고 모두 걱정과 염려가 많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알고 보면 모두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사랑에 지치지 말고 우리 서로 위로해주는 공동체가 되기 원합니다.
“당신의 영혼의 아픔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사랑해보겠습니다!”
그런 진지한 감동 스토리들이 많은 우암교회의 수준과 향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고백이 있는 곳에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이 시간 사랑의 마음으로 찬양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