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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림절3주/ 그 날을 기다리는 마음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21-12-08 (수) 17:57 2년전 771  
대림절 셋째주일(20211212)
그 날을 기다리는 마음
빌립보서 4:4~7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흉흉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붙잡아주셔서 마음의 평화를 주시고, 세상풍조에 휩쓸려 지켜야할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촛불을 밝혔습니다. 대림절 촛불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 초는 희망(hope), 두 번째 초는 평화(peace), 세 번째 초는 기쁨(joy), 네 번째 초는 사랑(love)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서일과는 ‘기쁨’과 관련된 내용이 있고, 그 모든 것이 희망과 평화와 사랑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있을 것입니다.


■ 오미크론의 확산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연말세밑을 뒤숭숭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증상이 경미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다는 낙관론도 내놓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인류가 회개하고 그간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전염병 확산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팬데믹 상황이 지나가길 바란다면, 설령 지나간들 더 큰 재앙이 우리 인류를 위협할 것입니다. 개인의 마음부터 사회전반을 지배하는 정신과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종교에 이르기까지 치유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며 살자’하면서도 자꾸만 흔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미크론뿐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환경재앙과 민주화 열망을 짓밟는 폭력적인 사태들, 비상식적인 가짜뉴스들이 판을 치는 국내의 상황들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립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빌립보서의 말씀이 이런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간직해야할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 메타 사피엔스가 온다

연말이면 새해를 전망하는 도서들이 많이 나옵니다.
저는 올해 ‘세계미래보고서 2022 – 메타 사피엔스가 온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메타 사피엔스가 알아야할 20가지 미래코드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데, 제 눈길을 끈 코드는 ‘메타 사물인터넷’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메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방대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모든 정보를 얻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물 인터넷시대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아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질문하는 것’이 될 것이다.”라는 전망이었습니다. 이런 시대가 되면 ‘내 마음 나도 모르게’라는 말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이미 인공지능과 사물 인터넷이 인지하고, 내가 원하는 최적의 것을 제시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선한 것인지의 문제와 경제력을 가진 이들과 가지지 못한 이들 사이에 엄청난 빈부의 격차가 사회적인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환경문제와 기후온난화 문제 등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 놓지만, 다른 미래보고서에는 환경파괴와 기후온난화로 인한 지구멸망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어떤 학자의 말이 옳은 것인지는 지나봐야 알겠지만, 질문할 줄 아는 능력에 대한 중요성과 인공지능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다 알 수 있다는 ‘메타 사물인터넷’ 에 관한 전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 ‘마음지킴’이 중요한 이유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려면 알아야 할 것이고, 인공지능이 내 마음을 다 알고 자기 마음대로 충동질해서 “이것이 너의 마음이야!”라고 하며, 어떤 행동을 요구할 때, “NO!”라고 할 수도 있는 마음훈련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경험과 메타 사피엔스화 되어가는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마음 지킴’은 더욱 더 중요한 것입니다. 

지난 주 주보 칼럼란에 ‘마음지킴’이라는 주제로 간단하게 말씀을  나눈바 있습니다.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세상소식에 마음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는, 꾸준한 독서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묵상을 하는 중에 대림절 세 번째 주일 성서일과를 읽어보니 ‘마음’에 관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좀 더 구체화적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성서일과

스바냐 3장 14~20절의 말씀과 이사야서 12장 2~6절의 말씀은 바벨론 포로지에서 살아가던 이들에게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희망(hope)의 예언입니다. 스바냐와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대로 바벨론제국이 팔레스틴의 고레스 왕에게 패권을 넘겨주었고, 고레스 칙령(peace)에 의해 기원전 537년부터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고레스’ 왕이라고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구약의 성서일과는 포로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joy)을 선포하면서, 구원이 속히 올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독려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반해 복음서 누가복음 3장 7~18절의 말씀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복음을 기록한 장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살아가고, 자신이 땀 흘려 일해서 얻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예언자 이후 400년 만에 나타난 세례 요한을 본 사람들은 그가 메시야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세례 요한은 분명하게 “나는 그의 길을 예비하러 온 사람일 뿐”이라고 밝힙니다.


■ 빌립보서 4:4~7

빌립보서는 ‘기쁨의 복음’이라고 할 만큼 기쁨의 분위기로 가득 찬 서신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처한 상황은 옥에 갇혀있는 상황입니다. 바울 서신 중에서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빌립보서는 옥에 갇혀있는 자신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교인들을 위로하며, 그리스도인이 체험하는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체험하는 기쁨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바도 바울뿐 아니라 초대교회 교인들을 핍박하고, 초대교회 교인들은 부당하게 억울한 일들을 당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맞서 싸우고 싶기도 하고, 그런 핍박 가운데서 무력한 자신들의 모습에 스스로 화가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당부합니다. 이 당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사고 바울은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품고 살아가야할 마음씨에 대해서 크게 보면 세 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첫째, ■ 기쁨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4).”

‘주 안에서(in)’는 ‘주님 안에 사는 이들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가 기쁨의 근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in’이라는 단어는 지난 10월에 본 회퍼 목사님에 저작들을 다루면서 강조해서 전한 바 있습니다. 간단하게 다시 설명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게 되고, 세상으로 퍼지는 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향기에서 사망의 냄새를 맡고 어떤 사람은 생명의 향기를 맡는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 살았으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망의 냄새로 여긴 이들에 의해 빌립보 감옥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도 없이 힘이 없어 핍박을 당하는 것은 얼마나 속상한 일입니까? 누를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럴 힘이 없으면 ‘화’가 납니다. 분노심이 마음에서 부글부글 끓겠지요.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고난의 상황은 주님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당하는 고난이므로 오히려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억울하게 옥에 갇혀 있지만,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힘으로 맞서 싸우려고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대림절 세 번째 초가 상징하는 것이 기쁨(joy)라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둘째, ■ 관용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5).”

‘관용’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gentle attitude’ 또는 ‘moderation’으로 신사적인 행동, 절제로 해석되어 있고, 국어사전에서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용서함’이요, 불어로는 ‘톨레랑스(Tolérance)’로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원문은 ‘에피에이케스(έπιεικής)’ 친절한, 너그러움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관용을 ‘인내하는 마음’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 듯합니다.

바울이 옥에 갇혀있고, 초대교회가 박해 당하는 상황에서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친절하게 대하며 끝까지 참고 견디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주님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교인들은 “마라나타!”라는 인사를 나눴는데, ‘주님, 어서 오소서!’라고도 해석될 수 있지만, ‘주님이 가까이 계십니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날이 곧 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이길 싸움이라는 것을 알면, 싸움을 걸어오는 이들이 오히려 안쓰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셋째, ■ 감사 –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6)”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염려나 걱정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염려나 걱정이 찾아오면 가장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염려나 걱정이 찾아오면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됩니다. 그래서 염려와 걱정에 빠져 살면 시야가 좁아지고, 마음이 좁아지고, 관계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릴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일로 염려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28절의 말씀입니다. 축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나를 보지 말고,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염려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피워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염려와 걱정이 없습니다. 제가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염려의 반대말은 ‘감사’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다보면, 염려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 그 날을 기다리는 마음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그 날을 기다리는 마음, 그것은 항상 기뻐하는 마음, 인내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되겠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온갖 악한 일들로 인해 마음이 불같이 타오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인내하고, 기뻐하며, 그런 일들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이 세 마음, ‘기쁨과 관용과 감사’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기에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마시고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기쁨, 관용, 감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기도]
대림절 셋째 주일, 저희를 불러주셔서 예배하게 하신 하나님, 예배하는 우리가 혼란스러운 세상, 마음을 지키기 힘든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주신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며, 관용과 감사함으로 이 세상의 모든 염려를 떨쳐버리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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