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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22-01-11 (화) 10:23 2년전 924  
1월 9일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사건을 묵상합니다.
예루살렘 성의 양문(羊門 Sheep Gate) 곁에 있는 베데스다(Βηθεσδά 자비의 장소) 연못에는 천사가 물을 움직일 때 들어가면 낫는다는 전설이 있어 수많은 병자들이 물의 움직임을 기다렸습니다. 이곳을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Do you want to be made whole?"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 같은데 물으십니다. 그러나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실 38년쯤 되면 포기하고 있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냅둬유, 이대로 살다가 죽을래요, 나름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구제해주는 사람도 있고 살만해요~ 뭐 이제 고쳐진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노력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들어갈 뿐, 지금도 아니 38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낫고자 함은, 원래 창조된 그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상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럼 네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가거라! 
[요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Rise, take up your bed and walk." 하시니 
아니, 먼저 무슨 치료를 해주시고 걸으라고 하셔야지요, 그런데 그냥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동안 병자가 얼마나 많이 시도해보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시도해보라고 하십니다.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다시 시도해보라! 다시 시작이다!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다시 용기를 가지고 시도해보거라! 병자가 순종했습니다. 다시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병자가 일어났습니다. 긴 세월의 절망이 담긴 자리를 움켜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미래를 향하여 걷게 되었습니다!
[요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올해 절망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내가 비틀거리면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내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자, 38년이 지나도 꿈을 꾸는 자! 외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시작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문제는 해결못하지만 안되게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올해 그런 분들을 만나거든 그러려니 하시고 그 일로 낙담하지 마시고 내가 가야할 길을 의연하고 담대하게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대단히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My Father is always at his work to this very day, and I too am working!”
to this very day! to this very time! 지금 이 순간까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바로 이 시간 This very time에 만져주고 계십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창세기 1장에 7번이나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중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라는 말이 단 한번 추가되었습니다.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God saw that it was very good!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아름다웠다는 뜻입니다. וְהִנֵּה־טֹוב מְאֹד 아름다웠다! טוֹב 토브! 우리 인간은 원래 아름답고 선하고 즐겁고 유쾌한 존재였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들이 웃음을 잃고 얼굴이 일그러지고 병들고 어두워졌습니다! 죄가 그들을 무너뜨렸고 욕심과 협소한 마음이 스스로를 병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왜 그렇게 일그러졌느냐? 얼마나 충격이 큰 인생이었길래, 도대체 인생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그렇게 무너졌느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그런 일을 겪었고 겪고 있고, 그리고 이겨냈고 극복하고 살았단다. 일어나거라!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일하고 계십니다. 다시 재창조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다시 시작이다! 힘내거라!
하여, 예수님께서도 지금 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이 일이 다시 나타납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시고 고치기 원하셨습니다.
[요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아직 살아있는 날 동안, 아직 태양이 비추는 시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충만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데 이번에는 독특한 치유방법을 쓰십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상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지금 열심! 열심!으로 진흙을 이기시고 잘 부드럽게 만드시고 맹인의 눈에 발라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실 때도 그렇게 열심으로 만드셨을 것 같습니다. 만져주시는 사랑, 작품으로 만들어가시는 사랑, 회복시켜주시는 정성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맹인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오게 됩니다. 치유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요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일하시는 주님, 열심히 일하시는 주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시고자, 원래의 모습을 회복시키시고자, 아직 낮일 때, 아직 일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시는 주님! 그 거룩한 재 창조의 열심, 치유와 회복을 위한 열심을 우리도 본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일을 위해 살았습니다. 남보다 더 돈을 많이 벌자고 살았습니다. 남보다 더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특별히 올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 모두 새로운 사역을 맡았습니다. 코로나 시대, 휴면 사역들이 많습니다. 활성화시키기 원합니다. 약해진 기관들, 특히 목장을 다시 부흥시키기 원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발전시키기 원합니다.
전도대상자의 이름을 쓰는데 모범이 됩시다. 국내외 선교지원과 방문에도 최선을 다해보기 원합니다. 색소폰을 가르치고 탁구를 가르치고 기타도 가르치고 드럼도 가르치고 춤도 가르치고 우쿨렐레를 가르치고 미디어도 서로 가르치고 배우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겸손과 섬김의 인격적 준비!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꼭! 가슴에 새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겸손과 섬김의 인격적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결국은 사람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쉽습니다. 지혜가 있어야합니다. 의욕만 가지고 하다가 부딪혀 처음 의욕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드로 전서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벧전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自願)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벧전5:3] 맡은 자들에게 주장(主張)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本)이 되라
억지로 하지 말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하고 자원해야하고 기꺼이 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가르치십니다 특히 금기사항이 있습니다. 주장(主張)하는 자세입니다.
 ☛ 주장(主張)하는 자세(κατακυριεύω-권위적 명령, 일방적 지시
이것이 잘 안바뀝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잘사는 것만 평생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격이 되고 본능적 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3서는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합니다. 한 사람은 디오드레베이고 한 사람은 데메드리오입니다. 디오드레베의 특징은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삼 1:9]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Diotrephes)
왜 그렇게 으뜸되기를 좋아할까요? 세상에서 받지 못한 인정을 교회에서 받고 권세를 누리고 싶은 열등감의 한 모습입니다. 열등감이요, 보상심리에서 나온 성격이요 습관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오드레베(헬라의 신 제우스 Zeus= 디오스Dios) 
즉 디오드레베는 세상의 신 제우스=디오스에게 배운 사람이고 세상의 신神에게 배운 것을 못벗어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제우스에게 배운대로 지금 교회 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과시하고 지시하고 큰 소리치던 기질을 못벗어나는 사람이 디오드레베였습니다. 
그런데 칭찬받은 사람이 12절에 나타납니다. 데메드리오입니다. 
[요삼1:12] 데메드리오(Demetrius)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그런데 사실 데메드리오라는 이름도 이방적 이름이었습니다.
☛ 데메드리오(Demerter)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자라는 뜻
이 이름, 데메드리오라는 동명이인이 사도행전에 나타나는데 (행 19:24 =세공업자) 그는 바울의 선교를 무척 방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 3서의 데메드리오는 극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디오드레베(Diotrephes)와 데메드리오(Demetrius)! 둘 다 이방신의 영향을 받았지만 변화된 사람과 변화되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봅니다.
나는 아직도 혹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를 못벗어나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 나, 내 성격을 돌아보며 고민하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한다면 먼저 겸손의 노력이 필요하고 사람을 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명령으로 안되고 정성과 감동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영적 라포Rapport 형성 훈련이 필요합니다. 
☛ 영적 라포 형성(Spiritual Rapport building)-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친밀감, 신뢰감, 존경감, 따뜻한 공감, 감정교류, 대화소통을 의미합니다.  
평생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간을 봅니다. 어떤 사람인지 살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적어도 나를 무시하거나 나를 속으로는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으면 마음이 열립니다. 이것을 영적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이 형성되면 감동으로 서로 힘을 모을 수가 있고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됩니다. 
올 한해도 열심히 일하기 원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기꺼이 자원하여 일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무슨 일을 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기 원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감동의 힘이 있기 원합니다. 겸손과 사랑의 적극성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그 거룩한 마음이 있다면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말씀 정리- 기도제목 
☛ 올 한해 주님과 함께 시간과 감정을 창조적으로 사용하여 주님의 일 하게 하소서! 
☛ 38년 되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나부터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 보시기에 좋았던 내 모습을 나부터 회복하고 남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주며 살게 하소서!
☛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진실한 겸손의 자세로 섬기게 하소서!
☛ 세상 태도를 못버린 디오드레베가 아니라 변화된 데메드리오로 살게 하소서!
☛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을 전하는 한해가 되게 하소서! 

※결단 찬송 (323장)  – "부름받아 나선 이 몸“ 특히 가사를 새기며 부르기 원합니다. 
1.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2.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 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 없이 드리리다
3.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 가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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