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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2) - " 재물을 주님께 굴복시킬 때 얻게 되는 영생 " / 청년주일

최부옥 (서울동노회,양무리교회,목사) 2022-03-17 (목) 20:19 2년전 530  

본문)  막 10:17~31, 전 5:10-20, 약 1:2-11


사순절 둘째 주일이다. 우리 교단에서는 오늘을 청년주일로 지키기도 한다. 청년들은 젊은 신도들의 일원으로서, 그만큼 우리 교회의 미래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세대들임을 감안하여 선정한 주일이다. 부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더욱 충만히 임하셔서, 우리 청년들이 진정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성장해가기를 축원한다.  


마침 오늘은 대통령선거를 치룬 직후였기에, 유권자인 우리 청년들은 이때를 어떤 기회로 보냈는지 궁금하다. 청년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가장 뜨거운 시선을 끈 주제였다. 일자리 문제, 결혼과 주택 문제, 출산과 사회적 지위 문제들도 중요한 관심사였으나, 남녀의 성차별 문제로 인한 젠더 갈등과 그 해소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가 미래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논의 거리였다. 부디 남녀차별의 해소가 구조적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는 건강한 공동체와 교회와 나라를 원한다. 하지만 이를 위하여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제도적 변화와 인물들의 교체를 통한 접근 이전에, 우리 자신부터의 내적인 변화와 성숙이 먼저 선행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제도와 법이 훌륭해도 그를 다룰 인물이 거기에 걸맞지 못하면, 주어진 것을 진짜 떡이 아닌 그림의 떡이 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회적인 현안들에 관련된 직접적인 주제 보다는, 핵심적 일원인 우리 젊은이들이 어떤 가치를 품고 하나님과 이 세상을 상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지 그 방향을 제시하여 주신다. 그 주요 내용은 보이는 물질과 소유에의 집착을 벋고, 하나님께서 폭넓게 주신 재능과 환경도 즐기고 살 되, 특히 보이지 않는 영적 자산들까지도 풍성히 누리며 살 줄 아는 존재가 되도록 깨우쳐 주셨다.  


이 교훈의 발단(發端)은 예수께서 길에 나가셨을 때, 한 사람이 예수께 달여와 꿇어 엎드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에서 부터다(17절). 이 사람은 누구였는가? 세 복음서가 전한 증언을 보면, 이 사람의 신분을 다채롭게 전한다. 


그는 재물이 많았던 부자(富者) 청년이었고(마19:22), 관리(官吏)이기도 했다(눅18:18절). 사회의 지도층의 일원이었음을 말한다. 그런 환경에다가 그는 모세의 십계명을 어려서부터 준수해 온 경건한 인물이기도 했다(20절). 게다가 이 젊은이는 영생(永生)에 대한 열망도 있었다(17절). 따라서 그의 겉모습만 보면, 그는 시대에 거의 완벽에 가깝게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그런 그를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시며, 그를 데리고 함께 일하시고 싶어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다(21절 참조). 어찌 보면, 오늘날에도 우리 그리스도인 모든 젊은이들의 꿈의 표상이 될 만한 존재로도 보인다. 젊음, 지위, 소유, 모태신앙, 그리고 영생을 사모하는 깊은 영성까지도 모두 가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예수님의 평가를 받을 정도의 수준을 갖추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최종 단계인 천국 문 출입이 저지당하고 말았다. 무엇 때문인가? 

      

한마디로 그 젊은이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재물에 대한 욕심(所有慾)에서의 자유와 해방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不足)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절).   


그 말씀 앞에서 이 젊은이는 그의 많은 재물 때문에,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났다(22절). 주님은 일체 그런 젊은이를 비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유가 인간에게 주는 무서운 힘과 그 걸림돌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에도 끝내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에 대한 대처를 제자들에게 요구하셨다(23-25절). 그러면 주님이 일깨우시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부와 소유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는 어떤 것일까? 


우선 가장 피해야할 자세는 소유만능 주의에 빠져 사는 일이다. ‘돈이 있어야만 한다, 돈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돈이 제일이다’라는 등의 사고에 젖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과 경제를 중심해서 사는 경직(硬直)된 모습이다. 이런 올무에 빠져들면, 우리는 평생 돈의 노예로 살 뿐이다. 물론 돈은 삶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나의 이성과 상식과 정상적인 삶에 필요한 도구여야만 한다. 절대 돈이 날 지배하는 도구가 되면 안 된다.    


예수께서는 무슨 이유로 그에게 소유 중심이 아닌 존재 중심의 삶의 선택을 요구하신 걸까? 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25절)고 하시면서, 세상의 모든 부자들을 긴장시키셨을까? 몇 가지 분명한 이유들이 예상된다. 


사람이 재물과 부로 인한 탐욕에 빠지면, 그는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새로운 삶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한다. 흔히 말하는 보수주의자(保守主義者)가 된다. 그 바람에 그는 앞을 못 보는 맹인이 된다. 낡은 인물로 주저앉은 것이다. 현재의 소유보다 더 나은 것을 위한 노력이나 모험에도 몸과 마음이 둔해진다. 그로 인해 재물과 소유의 종이 되어 산다. 이런 삶이 지속될 때, 그는 탐욕이 안겨주는 근심, 질병, 분노, 경계 등에 빠진 불행한 존재가 된다.  


그뿐 아니다. 모든 인격적 교류들도 힘들어진다. 인간 교류들도 처지가 비슷한 자들 뿐이다.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마음이 옹색해진다.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좋은 자원이 될 수 있는 모든 재물들이 그의 삶을 옥죄는 올무가 되어, 보다 차원 높은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긴 체 산다. 그 바람에 가진 재물이 자신의 구원에 도움이 못되고, 멸망을 견인하는 저주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려한 엄중한 대가를 치룬다. 

     

1. 복음서 / 막 10:17-31 /  “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 ”   


본문에 나타난 부자 청년의 경우를 접할 때면, 우리 신도들 대부분은 상당히 긴장을 하게 된다. 이유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는 요구가 나에게도 긴장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영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감내해야 할 숙명적 위치에 있는 자신임을 잘 알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그 조건이 전 재산 처분이라면 왠지 커다란 부담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궁금증을 갖는다.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우리의 가난해진 생활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등의 의혹을 갖게도 된다. 따라서 이 점에서는 적어도 다음의 몇 가지 차원의 생각들은 고려해야한다.   

큰 틀에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말씀으로 받아야한다. 우리가 예수를 섬기고 그의 사람으로 평생을 좇아서 살아간다면, 근본적으로 우리의 생애나 소유들 전부도 내 것이 아닌 그 분의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주인 있는 자에게서 몸과 소유가 따로 도는 것은 불가하다. 그래서 그 분이 혹 나에게 요구하는 몫이 있다면, 당연히 드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젊은이는 주의 구체적인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점에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된 것은 아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리가 그와 우리는 다르기 때문이다. 곧 우리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아닌, 사회생활 현장에서의 제자요 백성된 자들이다. 그럼에도 소유물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 그나 동일하다. 곧 ‘나의 모든 것은 그 분의 것이다’. 그러기에 내 재물들은 그 분을 섬기고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하고, 자신의 생활에도 청지기의 자세로 사용하면서 살면 된다.  


여기에서 부자의 결정적인 실패의 요인은 무엇이었나? 경건의 외형적인 부분들은 훌륭했으나, 그의 내면의 영혼까지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곧 예수께서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16:13)라는 가이드라인에 이르지 못한 수준의 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도 그 점이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이었음을 통감하였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영생이 어느 정도까지의 신앙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인지를 잘 맛보았을 것이다.


내 눈에는 자신의 재물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간 그가, 얼마 후에는 그 고민을 극복해 내면서 예수께로 돌아 온 인물로 보인다. 그것은 그 자신의 영생에의 뜨거운 관심과 예수로부터의 그에 대한 족집게식의 지적이 그의 영혼 속에 새로운 삶의 향한 빛을 밝혔으리라고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주님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라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31절)는 마지막 말씀은 떠나간 그를 향해 주님께서 열어놓으신 따뜻한 마음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 우리 주변엔 자신의 재물욕 때문에 예수와 구원에 등을 돌린 이들이 적지 않다. 그 점에서 믿으려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전(一戰)을 피할 수는 없다. 재물을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지 못하면 그에게 영생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재물의 종된 자들은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잖은가!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다만 이 질서만 제대로 잡히면, 그는 비로소 재물이 자신의 삶에 큰 축복이 됨을 제대로 누리리라. 신앙의 눈으로 재물을 봐야 된다. 

  

2. 구약/ 전5:10-20/ “재물 말고도 하나님이 깔아주신 선물들도 즐거워할 수 있어야”   


이스라엘 지혜자인 전도서 기자는 돈이 주는 부정적(否定的)인 면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이것은 돈과 물질의 효과를 무시하게 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그것에 매달리게 될 때에 오는 허전함을 잘 알려서, 물질 중심의 삶의 위험성을 예방하고자 함에 있다(10-16절). 

 

그러면서 지혜자는 하나님이 주신 삶의 즐거움이 돈이나 물질에만 모두 담겨있지 아니함을 일깨우면서, 돈 이외에도 우리의 삶을 훨씬 더 즐겁고 풍성하게 하는 또 다른 하나님의 선물들에 대하여 신앙인들의 눈이 활짝 열리기를 권고한다(17-20절 참조).  


1) 지혜자는 물질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그것은 물질(돈,은)은 적정하게 사용하되, 어떤 경우에도 범죄나 탐욕의 도구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하신다. 


2) 돈의 특성들도 소개한다. 돈은 풍요를 원하는 인간을 결코 만족케 하지 못한다(10절).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몫은 극히 일부이고(11절), 가난한 노동자와는 달리 그 가진 부요함이 잠도 설치게 한다(12절).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을 자기에게 해(害)가 되게 소유한다(13절). 사업 한번 잘못하면, 한순간에 가난과 재난을 안겨주는 것이 돈이다(14절). 특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인생과는 상관없는 것이고(16절), 일평생에 소리없이 근심과 질병과 분노도 안겨주는 일종의 필요악(必要惡)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17절). 이런 재물을 믿고 살면 되겠는가! 


3) 남은 것은 재물에 대한 탐심과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안겨주신 재물과 부요(은사/재능)를 자기 몫으로 알고, 그것에 만족하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즐거이 섬기고 수고하며 살면 된다. 인간은 절대 자기 전 생애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따라서 삶의 부여자인 창조주의 선물들에 감사하며 자유롭고도 만족해하는 마음을 견지하고 살면 된다(18-20절).   


3. 서선서 / 약1 : 2-11 /  “믿음, 인내, 지혜를 자신의 삶의 자산과 부로 무장하라” 


성령의 사람인 야고보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재물이나 돈에 의한 만족과 기쁨 대신에 더 소중하게 보유해야만 할 영적 정신적 자산들을 몇 가지 제시한다. 그것은 죽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까지도 영원할 자산들이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것들인가?    


1) 부요(富饒)한 믿음이다(2-3,6절). 이런 넉넉한 믿음을 보유하면, 삶이 탄탄해진다. 세상의 환란이나 재물의 시험들에서도 삶이 요동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의 부자가 되면, 특히 어떠한 시련(시험, 유혹)등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디어낸다. 물질 부자의 시련과는 찬양지차 다르다. 여기에서 가장 경계할 점은 의심이다. 두 마음을 안겨줄 의심에 빠지면, 삶은 무너지고 만다.  

     

2) 강한 인내(忍耐)이다(2-3절). 믿음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인내의 힘은 간절한 기다림과 함께 삶을 탄탄하게 한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금언도 있다. 순간순간의 난관이나 시련도 인내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못 당한다. 기도와 함께 하는 인내의 힘을 즐겨야 한다.      


3) 깊은 지혜(智慧)이다(5,9-10절). 지혜의 힘을 가진 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부자나 강자들은 쓰러져도 지혜자는 생존한다. 솔로몬처럼 하나님이 주실 지혜를 얻어 주변과 공동체들을 건강하게 지키도록 해야 한다. 재물 구함보다 지혜 구함을 우선하라. 초대교회에서도 가장 필요한 인물은 지혜 부자였다(행6:3). 이런 사람은 모든 공동체의 핵심이 되게 된다.   


o 재물은 삶에 매우 필요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재물과 소유는 본질상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사용권을 위탁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재물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섬기는 입장이 되면 안 된다. 


물질과 소유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팎에 다양한 은사와 즐길 거리들도 주셨다. 그것들도 즐거이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소유에도 눈이 밝아야한다. 현실에도 큰 힘을 안겨 줄 소유들이다. 바로 믿음과 인내와 지혜이다. 이것들은 영적이고도 영원한 성격의 자산들이다. 우리의 현실적인 부족과 빈곤도 씻어줄 실질적인 영적 자산이다. 주님은 이런 물질 영적 자산들을 함께 보유한 청년과 성도가 되기를 바라신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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