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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 " 부활신앙은 구원의 문이다 " / 장애인,4.19혁명기념주일

최부옥 (서울동노회,양무리교회,목사) 2022-04-21 (목) 11:47 7개월전 166  

본문)  15:42~16:8, 19:23-27, 고전 15:1-11

 

오늘은 우리 기독교 최대 명절인 부활주일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무덤의 문을 열고 살아 나셔서, 우리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地平)을 활짝 열어 주시고 영

원한 삶을 향한 희망(希望)까지 안겨 주신 날이다. 예수 부활로 육체의 이성과 상식과 감각이

라는 굴레 속에서 매여 지내온 인간 영혼(靈魂)이 비로소 새 빛을 보게 된 날이기도 하다.

이 예수 부활의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 기독교는 단순한 윤리 종교의 차원을 넘고, 사변 중심

의 제()철학의 범주로부터도 벗어났으며,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차원까지도 넘어서,

나님의 궁극적인 영역인 영생(永生)과 영원(永遠)한 나라에까지 이르는 무한 세계를 품고 살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에서 죽음 이후의 세상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 종교로서

의 자리를 확고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부활은 예수란 구체적인 인물을 통하여 온 인류가 경험하게 된 영적 세계라서, 그 어떤 공상

적이거나 몽상적인 이야기꺼리일 수가 없다. 신화나 만화나 공상이나 꿈들은 아니면 말고

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예수를 통하여 증언되는 부활은 진실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뿐더러, 생명과 운명까지도 바꾸거나 변화를 안겨주는

생명력을 제공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곧 부활은 인간 구원의 열쇠가 된 상태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구원론을 말할 때에는 이 부활의 주 예수와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야만 한

. 이 예수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증언 속에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활의 예수를 전하는 일은 그것에 대해 무관심한 이들에게는 헛튼 일이거나 황당

한 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 무관하게 부활의 복음은 선포되고 있다. 위로 부

터의 거듭남이 없는 육신의 탄생만으로는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3:3 참조)

 

부활주일인 오늘은 마침 장애인주일과 4.19혁명기념주일도 겸한다. 신체상의 장애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국한되어 있으나, 정신적 영적 장애로는 전체 국민들도 다 해당될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육체적 영적 장애인들 모두에게 치유를 펼치셨다. 예수 부활의 능력은 인간들이 겪는

모든 장애 치유와 극복의 손길을 펼치신다! 4.19혁명도 불구(不具)의 한국민주주의를 살려내고

자 일으켰던 민()의 혁명이었다. 부활 신앙은 참 민주주의를 지켜내게 할 동력도 될 것이다!

예수의 부활이 열어준 삶의 지평은 무한하다. 죽음 넘어 열릴 새로운 영적 지평들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영역들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부활은 그 자체가 완성이 아니

, 새로운 영적 삶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부활 신앙인이 되면서, 변화 받고 구원받은 자로

서의 삶, 하늘 시민권자로서의 종말론적인 삶,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사는 자

로서의 삶, 그리고 영원한 본향(本鄕)을 찾아가는 삶에로 비로소 입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주신 세 본문 말씀들은 어떤가? 모두가 부활 체험자(體驗者)들의 이야기 모음이다. 누가

부활의 주를 뵙게 되었는지를 소개하면서, 왜 그 일이 그들과 모두에게 그렇게 중요하며,

일이 그들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도 함께 알린다. 사도 바울이 그의 부활장의

글 속에서 부활 신앙이 왜 중요한 지를 증언한 바 있는데, 여기 그 내용을 옮겨 소개한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救援)을 받으리라”(15:2)

 

복음서 / 15:42-16:8 / “ 놀라지 말라. 그가 살아나셨고, 너희 앞서 갈릴리로 가셨다

 

복음서는 두 대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의 죽음과 다시 사심(부활)이 모두 현장의 목격자들

이 지켜 본 생생한 사건이었고, 허구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반부인 15:42-47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의 시신(屍身)이 어떻게 처리되

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 현장의 목격자들까지 상세히 소개한다. 이런 마가의

세미한 보도는 예수의 사망과 매장이 너무도 확실했던 일이었음을 밝히고자 함이었다.

후반부인 16:1-8에서는 매장 후 사흘이 지난 이른 새벽에, 매장되셨던 그 예수께서 이전에 주

셨던 그의 예고대로(14:28참조) 다시 살아나셔서, 무덤에서 일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셔서 당신

의 제자들을 만나고자 갈릴리로 먼저 떠나셨으니-, 이 사실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알

리라는 분부를 받게 된 장면을 전한다. 이 놀라웠던 일은 그곳 무덤에 찾아갔던 세 명의 여인

들이 빈 무덤 안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천사)를 만날 때 있었다.

 

1) 예수께서는 오후 3시경에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셨다(33). 문제는 시신(屍身)처리였다.

때는 마침 금요일이고 일몰과 함께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점이라서, 그때까지는 예수의 시체가

처리되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엔 주님의 시신은 매우 치욕적인 방식으로 처리될 수 있었

기 때문이었다(42, 19:31참조). 통상 로마인들은 그런 시체를 묻지 않고 방치해두었다.

 

2) 그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용기를 내어 총독에게 예수 시신 처리를 넘겨 달라고 나섰다.

그는 존경받는 공회원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경건한 자였다(43). 그는 익명의 예

수의 제자이기도 했다(19:38참조). 그가 주님의 마지막 길의 상주(喪主)를 자임한 것이다.

 

3) 빌라도는 예수의 사망 여부를 확인하게 한 후, 그의 시신 이양을 허락했다(44-45).

바람에 예수께서는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던 새 무덤에 안장될 수 있었다(19:41참조).

아마도 요셉 자신을 위해 준비해 논 무덤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님에게는 큰 헌물이었다.

무덤은 바위 속에 판 것으로서, 돌로 문까지 해두어서 안장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46).

4) 예수 모신 곳을 지켜 본 여인들이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모친 마리아였다(47).

 

5) 안식 후 첫날(3일째 날), 해 돋을 무렵에, 세 여인들이 그 무덤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예수의 시신에다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서였다(16:1-2). 가면서도 그들은 큰 걱정을 했다.

바로 그 무덤의 돌문을 열어서 무덤 속에 무난히 들어가는 일이 큰 과제였기 때문이었다(3).

 

6) 하지만 그녀들은 일생일대에 잊을 수 없는 놀라움충격경이(驚異)로움을 그곳 예

수의 무덤에서 몇 차례 경험하게 된다.

무덤의 큰 돌 문이 이미 젖혀져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4). 자기들 세 명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돌문이었는데-, 이미 열려져서 누군가 출입을 한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 누군가 장정들이 들어가 예수의 시신을 훔쳐간 것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무덤 안에 들어가 흰 옷 입은 청년(천사)이 우편에 앉아 있는 모습에 놀랐다(5).

 

천사를 통하여 죽었던 예수께서 이미 부활하셨음이 확인되고 통보된 것과 함께(6), 가서

이 사실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전하여 그들을 만나시려고 이미 갈릴리로 가신 예수를

거기에 뵙게 하라는 말씀을 듣고 놀랐다. 그들은 큰 두려움 속에서 무덤 밖으로 빠져 나왔으

, 그 충격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지냈다(7-8).

(마태&누가는 이 여인들이 돌아가 제자들과 모든 이에게 전했다고 증언했다/28,24)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의 전갈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그 빈 무덤을 확인한다/20:8)

 

부활하신 예수의 등장과 그를 만난 제자들의 삶은 비로소 새로운 차원의 출발로 이어진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승리와 세상의 불의한 세력에 대한 승리를 확인하게 된 제자들은 더 이상

나약하지 않았다. 세상에 담대해지면서 결속하기 시작했고, 주님이 주신 분부를 믿음으로 좇

으면서, 제대로 된 제자의 삶 속으로 돌입(突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구약 / 19:23-27 /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고난의 대명사로 알려진 욥에게서 부활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

만 그가 찾아낸 부활의 빛은 뜻밖에는 그가 가장 절망감에 빠져들면서 최후의 희망을 끈을 붙

들려하는 때에 터져 나왔다.

 

그에게 찾아온 시련과 고난들에 대한 원인 찾기란 정말 난해(難解)한 일중의 일이었다. 그것은

당시 유대교의 율법종교 아래에서는,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들은 한결같이 인과응보

(因果應報)에 따른 것으로서 판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질병이나 재난 같은 것으로 발생

한 시련들도 결국은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되곤 했기 때문이다. 욥이 바로 그

정죄의 그물망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 일에는 가족도, 친구도, 종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방적인 죄의 자백만 강요하

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한 죄목을 찾을 수 없음에도 죄 때문이니,

개하라고 강요받는 일은 진정 고문(拷問)중의 고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기에 욥은 끌어오르

는 타는 목마름으로, 이 땅이 아닌 저 하늘의 세계로부터 공급될 또 다른 도우미를 찾기 시작

한 것이다. 그에게는 최후의 수단이요 겟세마네의 기도와 같은 애타는 간구였다.

 

그렇게 답을 땅이나 하늘에서 찾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불꽃같

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분이시다는 믿음과 함께, ‘자기처럼 억울한 인생들을 위한 피난처로서

의 대속자(redeemer)와 변호인을 마련해 두신 분이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믿음은 시

편 기자의 고백에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140:12참조), 그런 분이 있으면, 그가 지금의

자기의 억울함과 결백을 변호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23:11참조).

 

1) 사실 처음에는 세상과 사람들에게서의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길이 없다고 판단되자, 욥은

책에 기록에라도 남기는 방안도 생각했다. 아니 철필과 납(구리) 가지고 돌에라도 새겨두어서

영원히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23-24).

 

2) 하지만 보다 더 깊은 묵상에 들어가자, 욥의 시선은 더 이상 땅이 아니라 하늘과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다. ‘내가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

’-17:15참조). 그러면서 하늘 문을 두드리게 되면서, 그에게는 자신을 변호해 주실 대속자

(代贖者)가 계심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욥이 기대한 대속자는 땅에서가 아니라, 세상을

떠난 후에 서게 될 하나님 앞에서의 대속자였다(25-26). 그래도 그의 기대감은 컸다(27).

욥의 이런 대속자와의 영적 접촉은 욥의 나머지 고난의 여정에 획기적인 위로와 견딜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났다. 그 후에는 친구들의 비판과 정죄의 말들이 계속 이어졌으나, 욥은

잘 견디어냈다. 결국 욥은 하나님의 신뢰를 재획득하였고 이전보다 더한 복까지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후의 욥은 모든 의인들의 고난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이 된 것이다.

 

3. 서신서 / 고전15:1-11 / “ 내가 전한 그 말을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본문은 성경에서 부활의 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죽

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음을 직시하면서(12), 자신의 변화의 근거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힘과 함께(9장 참조), 이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고 믿음을

갖게 될 때 사람들이 비로소 확실히 구원을 받게 됨을 전하였다.

 

1) 바울의 부활신앙 강조의 포인트는 확고한 부활신앙이 사람에게 구원을 안겨 준다는 점이

(2). 이 부분의 강조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과도 끊을 수 없는 연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13-19절 참조). 부활은 하나님의 종말적 개입 사건으로서, 예수로

부터 시작된 부활은 그를 믿은 자들의 부활에서 완성을 이룰 것으로 본 것이다.

 

2) 바울은 예수의 부활이 창조질서 속에 있는 죽은 자의 부활에 따른 첫 열매였음(13,16)

구속사적 측면에서의 예언의 성취였음도 전한다(3-4). 곧 예수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성경대로 장사된 후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24:45-46)

 

3)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당신의 제자들을 찾아와 보이신 일도 소개하였다(5-8). 게바인 베

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500여 형제들, 당신의 아우 되신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 그리고 교회

의 박해자였던 바울 당신에게도 친히 찾아주신 일을 전했다(9:1,9:3-5, 1:15-16참조)

 

4) 바울은 부활의 주님이 자신을 찾으신 일로 인하여, 어떤 새 인생이 펼쳐졌는지를 뜨겁게

증언한다. 자신은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로서 출발하게 되었고, 결국 주님의 감당할 수 없

는 은혜를 입은 자가 되었기에, 자신은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도록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는 자가 되었음을 고백하였다(9-10, 1:13-16,3:8,딤전1:12-16 참조). 바울의

이런 증언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되는 자마다 한결같이 복

음의 증인으로서 변화되어 종신하는 자가 됨을 말하려한 것이다.

 

o 복음서의 예수 부활증언들은 복음의 하이라이트이다. 예수의 부활은 절대 관상용(觀賞用)

나 과시용(誇示用)이 아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그의 부활은 반드시 우리가 경험되어

야하고 우리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주님은 당신의 부활로 인하여 믿는 자 모두에게 당신의

부활과 그 세계를 안겨 주셔서, 부활이 열어주는 구원의 세계와 영광과 영원의 세계까지도 공

유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

 

예수 부활을 접하면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되는 흐름을 타게 된다. 은혜의 세계를 맛보며 살

게 된다. 하지만 접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 여정은 힘겹고 빡빡한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디 이번 절기에 우리는 모두 부활신앙에 깊이 잠겨보자. 모든 선한 것의 시작이 될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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