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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2) - " 거듭남으로서 의의 도구로 사는 사람들 "

최부옥 (서울동노회,양무리교회,목사) 2022-04-27 (수) 12:17 7개월전 162  

본문 3:1~15, 11:14-20, 6:3-14

주제) “ Self-Checking Lists as a life of Resurrection to me ”

 

부활절 둘째 주일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루신 초유(初有)의 기념비적 사건이었지만, 그가 안겨준 부활의 혜택(惠澤)은 인류와 지구촌 전 생태계 모두에게 큰 은혜와 축복을 안겨준 대 사건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부활은 복음 중의 복음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나의 삶에 미친 부활의 은혜는 어떠한가? 오늘은 그런 차원에서 예수 부활이 왜 나의 구원이 되었고, 은혜가 되었으며, 온 세상에 복음이 되었는 지를 확인해 보자.

 

내 삶에서 부활의 실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 더 내 삶의 여정에 나타난 부활의 흔적들을 찾아보려면, 발견할 수 있다. 그를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경험부터 찾아야 한다. 부활은 필히 죽음 후에 얻어진 소중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언제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가? 물론 육체의 죽음, 곧 몸의 죽음은 없었다. 하지만 영적 죽음은 있었다. 그게 언젠가? 바로 내가 물세례를 받으면서 죄에 대하여서의 내가 죽었음을 경험한 때였다.

 

죽음에서 부활의 내 모습을 찾으려 하는 이런 시도의 근거(根據), 바로 예수께서 당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유대교 바리새인 그룹의 서기관)에게 제시하신 말씀들 때문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3)라는 말씀과 함께,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면서 예수께서 영생의 조건으로서의 물(세례)를 지목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물은 물세례를 말한다. 온 몸을 물속에 밀쳐 넣으면서 세례를 받는 침례(浸禮)를 말한다. 이때의 물은 두 가지를 겨냥한다. 씻음(회개)과 죽임(단절)이다. 그 대상은 세상의 노예가 되어 여태껏 죄()의 사람으로 살아온 내 자아(自我)이다. 이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의 혈육의 상속자이기에, 구원 받을 수 없다. 대신 위로부터의 부여된 새 자아가 절대 필요하다(11:19-20 참조). 여기에는 단절과 거듭남이 필요한데-, 물세례가 바로 그 작업을 이끈다.

그러기에 물세례에 온전히 참여한 자에게는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참여하는 놀라운 경험자가 된다. 물속으로 들어갈 때의 나는 죽음을, 잠시 후에 물 밖으로 다시 일으킴을 받게 된 나는 부활(거듭남)을 체험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은 그런 자에게 찾아오셔서, 그가 주와 함께 죽었고 주와 함께 다시 살게 됨을 확인해 주신다. 이런 신령한 절차를 밟은 자라야 비로소 거듭난 존재요, 영으로 난 자가 된 것이다. 더 큰 선물도 있다. 바로 활짝 열린 하늘 문이다-!

 

이런 물세례를 통한 죽음과 부활의 경험자는 그 때부터 새로운 삶과 가치를 향하여 나아간다. 땅의 일을 말하지 아니하고, 하늘의 일들을 말하며 살아가게 된다(12절 참조). 이것은 이전의 삶의 모든 낡은 가치관을 버리고, 부활의 영인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신령한 세상과 그의 나라를 위한 선한 일을 향한 관심과 열정이 그의 가슴 속에서 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성령이 주신 부드러운 마음에 따라서,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되면서, 하늘 백성 됨을 증거하며 살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11:19-20참조).

 

그는 또한 자신이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줄을 아는 자라는 자각과 함께, 자신은 죄에 대하여서는 이미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기에, 삶의 또 다른 어두운 과제들과도 맞서 싸우며 산다(6:7-8,11절 참조). 죄가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몸의 사욕을 거부하며, 지체들을 오직 하나님께만 드린 의의 무기로 산다(13절 참조). 이제 내 부활 신앙의 현주소를 확인해 보자.

 

1) 나는 진정 거듭난 사람인가, 내 옛 사람은 과연 죽은 것이 확실한가?

2) 나는 분명히 자기의 것보다 하나님의 것을 우선하며 사는가?

3) 나는 하늘의 일을 꿈꾸고 말하며 대비하고 살고 있는가?

4) 나는 죄의 종이 아닌 의의 종으로 사는가, 말씀 순복하는 일에 집중하는가?

5) 내 몸의 지체들은 의()의 무기와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가?

 

복음서 / 3:1-15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은 밤중에 유대인 지도자요 바리새인인 니고데모의 방문을 받으셨다. 그는 율법을 가르치는 유대 선생으로서(10),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계속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를 통하여 그 길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신분과 방문의 의도를 꿰뚫으신 예수님은 그가 알지 못하는 거듭남의 원리로 그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주님의 거듭남의 원리는 체험상의 깨달음이 현저히 부족한 니고데모에게는 큰 가르침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거듭남이란 위로부터의 새로 남이란 표현이었다. 율법을 땅과 인간 삶의 윤리 차원에서만 소화해온 그로서는, 하늘의 일과 영적 일까지 말씀하시는 예수의 가르침으로, 천상의 영광의 길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에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시신(屍身)을 위하여, 값비싼 몰약과 침향까지도 드릴 수 있었다(19:39참조).

 

1) 예수를 향한 니고데모의 접근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비록 그가 방문 목적을 숨긴 체,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2:23)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준 일이었음을 먼저 시인하고 나왔기 때문이다(2). 그러자 그의 이면의 영적 고민을 헤아리신 예수님은 그의 브라인드(커틴)를 직접 거두시고,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길을 말씀하셨다(3-5절 참조).

 

2) 예 수 -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 -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가면 됩니까

예 수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 예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은 자는 이미 예수 안에서 죽은 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의 은혜를 입게 되면서 그 분과 함께 죽는 경험을 하였기에, 자기 권리나 뜻도 내려놓고 사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 바람에 그 빈 마음과 영혼 속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바람인 성령을 보내셨다. 그래서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드러낼 인물로 변화를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위로부터 난 자, 곧 영()으로 난 자가 된 것이다(6-8). 놀라운 기적이다!

 

4) 주님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이 인간에게 안겨 줄 보다 더 섬세한 변화의 부분에 대하여서도 언급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고 하시면서(11), 거듭난 사람들의 언어()가 땅의 영역을 뛰어넘어서 하늘의 영역에로 확산(擴散)되어 나타나게 됨을 말씀하셨다(12). 이는 무슨 말인가?

 

사실 예수께서는 평시에도 종종 제자들이 세상살이에 관련된 땅의 일에 관한 말씀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전혀 알아듣지도 못할 하늘과 그 세계에 관련된 말씀들, 곧 천상(天上) 세계의 영광에 이르는 길에 관련된 말씀까지도 숱하게 하셨다(13,13:1,16:28 참조). 그것도 제자들이 아직 성령의 임재를 접하지 못했고, 보혜사의 도우심을 힘입지 못한 처지였음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그것은 물론 제자들 무시용이나 당신 과시용은 아니였다.

 

그 보다는 미급한 제자들이라도 당신의 부활과 승천, 그 이후의 세계를 계속 보고 듣고 접하면서 믿게 되어야, 당신과 영원히 함께할 존재들이 되리라고 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모세 시대에 우상 숭배행위로 인하여 전 백성들이 불뱀의 재앙으로 다 죽게 될 순간에 이르자, 여호와의 지시로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놓은 후, ‘누구든지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보면 살리라며 바라봄을 통한 구원 법칙에 따른 것이었다(13-15, 21:8-9참조).

 

5) 우리 일상 언어들도 점검하자. 온통 땅의 말들만 사용하고 살면 그는 아직 부활의 영이 없고, 부활 신앙이 부재한 증거가 아닐까! 하지만 하늘 언어, 곧 주의 은혜와 구원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원한 생명과 미래의 소망과 믿음에 관련된 언어들을 계속 사용하고 있으면, 그는 부활신앙 안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불의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그의 피조 세계의 참 평화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며 살고 있음도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을 의의 도구로 드렸기 때문이다(6:13참조).

 

2. 구약 / 11:14-20 / “ 그의 죽으심과 연합한 자는 그의 부활과도 연합한 자이다

 

바벨론에 망한 유대 사회는 본토에 남은 자와 이방 바벨론에 끌려간 자로 분리되었다. 문제는 그 때의 하나님은 어디에 누구와 함께 계신가였다. 본문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본토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로(捕虜)가 되어 외국으로 끌려가서 오랜 세월 낯선 타지에서 고생하며 살게 된 백성들에게 있었음을 보여 준다(16).

 

그때의 세상은 온통 남은 자들의 것만 같았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한 듯했고, 자신들이 끌려간 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에게서 무죄(無罪)한 존재로 인정받았기에, 그토록 본토를 기업으로 받아 살게 되었다고 간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큰 착각(錯覺)이었고 오류(誤謬)였다. 그때의 하나님의 마음은 오히려 끌려간 자들에게 있으셨기 때문이었다(15-16). 이는 마치 탕자 둘째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비유를 연상하게 한다(15:11-32 참조).

1) 아버지의 마음, 곧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멀리 이방인에게 끌려가 흩어져서 삶의 혹독한 고초와 시련을 겪게 될 포로된 백성들에게 함께 가 계셨다.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聖所)가 되리라’(16)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便)이 되어 주시겠음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런 고통 받는 이들에게 편 들어 주시기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 그것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시면서, 그들이 당신에게 보다 더 필요한 인물들이 되도록 연단하셨다. 사실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본토에 남은 자들보다는 훨씬 더 유능하고 탁월한 인물들이었다! 그러기에 바벨론은 그런 자들을 남겨두지 않고 포로로 데려갔던 것이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만 떠나보내지 않고, 그들과 함께 가셨다(16). 그러면서 하나님의 독특한 방식으로 보다 성숙한 백성으로 키우셨다.

 

그러면서 그들을 시련과 외로움과 차별 당함 속에서 국제적인 큰 인물과 이전보다 더 깊은 여호와의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하셨다. 그래서 미래의 이스라엘의 진정한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17-18). 무엇보다도 이국에서 숱한 우상종교와 신들까지 접하면서, 자신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되게 살아계시고 유일(唯一)한 신이심을 확인받게 하셨다. 유일신 사상도 그때에 정립된 것이다. 소위 민족적 차원의 죽음과 거듭남(부활)의 훈련을 통해서 말이다.

 

3)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취하신 일도 있었다.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하셨다(36:26-28참조). 탕자인 둘째 아들의 변화된 마음을 품도록 이끄셨다. 오순절 디아수포라들이 성령을 접하듯 하게 하셨다. 그래서 회개와 겸손으로, 당신의 율례를 따르며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셔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여호와의 백성이 되고 자신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셨다(19-20).

 

3. 서신서 / 6:3-14 / “네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합한 인생을 살기 위하여 물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이것은 우리의 세례가 그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합하여 받았음을 말한다(3). 따라서 우리의 옛 사람은 세례를 통하여 그와 함께 장사(葬事)되었고, 그의 살리심과 같이 우리 또한 새 생명 가운데에서 부활 신앙인으로 거듭났다(4).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된 무리들이 되었고,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기도 하였다(6-7).

 

이에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와 함께 살 것이다(8). 주께서 다시 살아나신 후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들 주장하지 못하였으니, 그의 부활을 통한 은혜와 능력 또한 우리들의 것이 되리라 믿는다(9-10).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들이기에,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살아 있는 자가 분명하다(11). 이런 부활신앙에 대한 고백을 발판으로, 우리를 향한 사도 바울의 다음의 권면들을 듣는다.

1) 죄가 우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몸의 어떠한 사욕(私慾)에도 순종하지 말자(12).

2) 우리 지체를 불의(不義)의 무기(武器)로 죄에게 내주지 말자. 오직 죽은 자로서 다시 살아 난 자인 예수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린다(13).

3) 우리가 법 아래가 아니라 은혜 아래 있기에, 죄가 우리를 결코 주장하지 못하리라(14).

 

o 우리는 모두 예수의 이름을 걸고 물세례를 받았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겠다고 굳세게 다짐하였다. 그런 다짐과 의지를 품고 살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신다. 이점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자. 동시에 잊지 말 것은 그런 나의 상태를 계속 시험하려는 악령이 내 주변을 맴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틈만 있으면, 우리를 시험하고 무너뜨리려 한다.

 

정말 옛 사람이 죽어서 진정한 예수의 사람이 된 건지, 자기 것보다 하나님의 것을 우선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지, 세상의 것보다 영원한 것을 더 사모하며 사는지, 말씀에 순복하면서 그의 의를 위하여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복음의 도구로 드리고 사는지를 계속 시험한다. 그때마다 번번이 패하고 넘어져있는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여전히 깨어 사는 부활의 전사(戰士)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이번 절기에는 더욱 뜨거운 성령의 도움 안에 살자.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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