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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5) - " 양육,돌봄,사랑속에 담긴 부활생명 " /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

최부옥 (서울동노회,양무리교회,목사) 2022-05-20 (금) 22:40 6개월전 166  

본문)  10:22~29, 34: 25-31, 20:28-35

 

부활절 다섯째 주일이다. 우리 총회는 이번 주일을 5.18광주민주화(民主化)운동기념주일로 재정하면서 42년 전에 있었던 그 광주의 아픔과 상흔(傷痕)을 기억하면서, 그 때의 저항의 뜻을 되살려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확고한 의지를 제고(提高)하고자 한다.

 

특히 금주는 제20대 대통령으로 검찰총장 출신이었던 윤석열씨가 취임한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0.73%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고, 그것도 광주를 비롯한 전체 호남에서는 15%도 지지를 얻지 못한 대통령으로, 첫 번째 5.18일 기념일을 맞이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대통령된 이로서, 어떤 민주주의와 국민 통합을 향한 의지와 가치를 추구할 지의 여부이다.

 

우리는 그가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게 그와 모든 우리 국민들에게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선 후에 그가 보여주는 여러 모습은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멀쩡한 청와대를 기피하고 외무부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는 일에서부터, 함께 일할 각료들의 선정에는 걱정되는 인사들이 너무 많으며, 특히 검찰출신 인사들로 자신을 포진시키고 있는 모습 등은-,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의 모습과는 너무 먼 행보를 취하는 것이어서 걱정된다.

 

우리는 국민을 하늘처럼 위하는 위정자를 원한다. 국민위에 군림하거나 국민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면 절대 안 된다. 그가 속한 정당인 국민의 힘 출신 전직 대통령들이 거의 임기전후로 탄핵당하고 투옥당했던 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번 새 대통령은 법과 원칙과 공정을 내세우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인데, 그 구호가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대통령은 전제국가의 왕이 아니다. 최고의 5년 임기제 국가 공무원이며, 국민과 국가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을 청지기이다. 이 일을 잘하면, 그는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서, 세계 최상위급의 민주주의 국가 대열에 올랐고, 유엔이 공인한 일류 국가가 되었으며, 온 세계가 바라보는 K-방역, 문화, 경제, 국방, 외교, 통신, 무역 분야 등에서 탁월한 국가가 되었다.

 

오늘은 부활절 다섯째 주일인데, 오늘의 말씀은 부활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주시려는 것일까? 그렇다. 생명과 구원을 우리에게 안겨 준 부활은 반드시 그 보전(保全)을 위한 돌봄과 양육과 수고를 통하여 그 생명을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는 점을 전하려 한다. 이는 마치 부모에게 자녀의 탄생이 그 완성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생명의 시작임과 유사하다. 태어난 생명은 부모의 끝없는 사랑과 돌봄과 양육과 희생을 먹으면서, 비로소 자주적 인간이 됨과 같다.

 

오늘 말씀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선보이신 당신의 부활 생명의 보전과 승리를 위하여, 당신 스스로가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를 보여주신다. 그가 열어준 부활은 결코 일회적 사건이 아니었고, 궁극적인 승리와 영원을 향한 문()이었다. 따라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에 만날 또 다른 세계 역시 너무 놀랍고 광대하여서, 그 최종 지점인 영생(永生)에 이르기까지 부활신앙을 품은 자들이 지속적으로 감당해야할 멍에들도 많이 있음도 함께 일깨워준다.

 

복음서는 성자 예수께서 당신의 구원의 영생의 세계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안겨 주시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소개한다. 구약 예언서에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그 험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과 양들을 위하여, 어떤 은혜의 선물들을 준비하셨는지를 예고하셨다. 서신서에서는 성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그의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지켜내시기 위하여, 당신의 종들을 내세워 어떤 특별한 돌봄 조치를 행하셨는지도 소개한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배려, 돌봄, 사랑의 헌신으로 얻어지고 건져낸 것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책임 있게 응답하며 살아야 됨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이러하신데, 우리가 어찌 그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응답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실로 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을 다시 음미(吟味)하게 된다(6:5-6,12:28-30 참조).

 

복음서/ 10:22-29/ “나는 내 양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 없다

 

예수님의 선교활동에는 의외로 적대자(敵對者)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놓고, 예수님과 깊은 갈등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율법을 심판의 규정으로 대하였나, 예수님을 사랑과 온전함을 이루게 할 지침서로 보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심판관처럼 처신했으나, 예수는 그들에게 치료자와 상담자처럼 다가 가셨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떠났으나 예수님에게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본문에서 그들 유대인 대적자들이 성전의 울안에 들어온 예수를 에워싸고,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마음을 의혹하려 하시오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해보시오’(24)라며 시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양(=백성)과 당신의 양이 아닌 자들로 양분(兩分)되어 있음을 지적하시면서, 어떤 점에서 그런 지도 언급하셨다(25-27). 동시에 당신은 당신의 양된 자들을 어떻게 대우(待遇)하실 것인지에 관하여서도 소상하게 밝혀 주셨다(27-29).

 

1) 그 때는 언제인가? 유대인의 수전절(修殿節)인 겨울이었다(22). 수전절은 기원전 165년에 유다 마키베오가 헬라의 침공으로부터 무너진 성전을 다시 수리하여 봉헌한 일을 기념하면서, 해마다 8일간 지켜오던 절기였다(1마카4:59참조).

 

2) 그 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 거니셨는데, 유대인들의 갑작스러운 접근으로 문제의 공세적인 질문을 받으신 것이다(24). 그들 질문 속에는 예수가 과연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야(그리스도)인지에 대한 관심사가 핵심 의제였다(24).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직설적이진 않았다. 비록 개인적 차원의 자기 계시는 있었으나(4:26참조), 이렇게 물어오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말씀과 행위로 이미 메시야이심 증거하셨다는 말씀으로 답하셨다.

 

3) 주님은 여기에서 당신의 양들이 아닌 자들에 관하여 언급하셨다. 당신의 양이 아닌 자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셨다. 내가 이미 세상 모두에게 말하였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내가 누군지를 (충분히) 증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다고 지적 하셨다(25-26). 소속의 차이가 결국은 믿음이 아닌 의혹하는 쪽으로 드러났다고 보신 것이다.

 

4) 반면에 당신의 양들은 전혀 다름도 밝혀주셨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도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永生)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27-29, 6:36-40,44,65 참조).

 

주님의 양된 자들의 특성이 드러났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주님을 알며 따른다. 이런 대목은 말씀을 대하는 현재의 내 모습이 어떤 지를 감찰하기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말씀을 듣는 태도와 열의, 그 말씀에 대한 신뢰와 복종의 모습을 점검하는 것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에 긍정적으로 부응하고 사는 자들에게는 목자 되신 예수와 그의 하늘 아버지의 각별하신 붙드심과 지키심이 따르기에,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기에 충분할 것이다.

 

2. 구약 / 34:25-31 / “그들이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이 내 백성인줄 알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의 관계를 화평(和平=평화)의 언약 위에다 수립하셨다(25). 그것이 힘이 없는 약한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했던 까닭은 그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악한 짐승(세력)들이 득실거리면서 언제든지 나타나 연약한 자의 생명과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곳인 빈 들수풀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양인 백성들과 평화의 언약을 맺은 일은 큰 복음이 되었다(25:12,26:6,23:6,2:18참조).

 

평화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힘이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그러기에 그런 위협 세력들인 짐승들을 제압하면서 참된 평화 속에 살기 위해서는, 그런 짐승들까지도 복종할 수 있는 진정한 능력자와 강자와의 협정과 언약을 맺으면 된다. 그러기에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면서 그들의 모든 적대자들은 물론 그들을 애워 싼 자연 환경에까지도 평화를 안겨 줄 언약 체결을 여호와께서 주도적으로 앞장서신 일은 힘없는 그의 백성에게는 너무도 큰 기쁜 소식이었다.

 

특히 이런 평화의 언약은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온전히 성취된다는 점에서 메시야 중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실 진정한 평화는 의를 괴롭히는 악의 말살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악과 불의한 세력까지도 수긍하고 복종하게 되는 그 지고의 진리와 능력자를 통하여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사에 상대적 우위의 자리만을 목표하지 말고, 우리의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려는 일을 목표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1) 그의 백성(양들)의 구원을 향한 주도권 행사는 역시 하나님이 하신다. 그들에게 복을 내리는 일, 산 사방에 복을 내리되 때를 따라 복된 소낙비를 내리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신다. 그 바람에 밭의 나무들이 열매를 맺으며 땅은 소산을 내고 그의 백성들은 평안해진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의 백성들이 굶주리지도 않게 하시고, 바벨론이란 외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치욕도 겪지 않게 하시며, 자기 땅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26-29절 참조).

 

2)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다시 보게 되며, 여호와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 것도 깨닫게 되고(임마누엘 신앙), 자신들은 바로 여호와의 백성인 줄도 알게 된다(30-31). 곧 여호와는 자신들을 지으신 이시요 자신들은 그의 소유된 무리들이며, 그의 백성이고, 그의 기르는 양임을 알고 고백하게 된다(100:3 참조).

 

이런 확고한 언약이 여호와와 그의 백성들 사이에 맺게 된 결정적인 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십자가 대속의 사건과 부활로 인하여 실현되었다. 성령은 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언약관계를 구체화시키고 강화하고자 오셨다. 그의 구체적인 작업은 교회를 세우시고, 일꾼들을 통하여 주의 양무리들을 택하고 양육하며 파송하면서 심화(深化)되었다.

 

3. 서신서 / 20:28-35 / “약한 자들을 돕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 있음을 기억하라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그의 최종 과정인 제3차 선교여행을 앞두고,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회동(會同)하면서 그들에게 교회와 주의 백성들을 돌보는 목회를 부탁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3년이나 최장기로 체류하며 개척하고 쉬지 않고 눈물과 기도로 훈계하면서 설립해 놓았던 신앙공동체로서(31), 그는 이번 장로들과의 회동을 생의 마지막 만남으로 보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그들에게 유훈(遺訓)을 전하고자 부른 것이다.

 

1) 바울은 그들을 성령께서 주의 피로 사신 교회의 온 양 떼를 돌보게 하시려고 택하신 감독자(監督者=overseer)로 규정하였다(28,13:2,딤전4:14,딤후1:6-7참조). 감독자는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사람으로서, 양 떼의 목자인 메시야 예수의 목자 직에 동참하게 된 자들이다(6:34,10:11-12,벧전2:25,21:15-15-17,4:11참조). 감독의 의무와도 불가분 관계에 있다(34:11,11:16참조). 그러기에 그들은 매우 엄중한 자기 소명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2)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한다(take heed).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자신 돌봄을 잘해야 한다. 자신이 무너지면 아무 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의 양들을 내외부에서 가해오는 공격자들(사나운 이리들)의 공세에서 철저히 지켜내야 한다(29-30,34:25). 이단과 거짓 선지자들의 외부의 공세는 물론, 교만으로 무너진 내부의 거짓 교사들도 경계해야 한다(요일2:19-20 참조). 처방은 있다. 사도인 자기가 쉼 없이 전했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면 된다(31).

 

3) 바울은 그들 감독자들을 든든히 세우고자,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들에게 직접 모범으로 보여 준 바 있었던 성숙한 물질(物質)관리를 통한 목회의 내용들을 전수(傳授)하였다(33-35).

 

첫째는 전혀 물질에 탐()하지 않았다(33). 이것은 교우들과의 물질적 거래행위도 없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둘째는 철저히 텐트 메이커의 삶으로 자급자족(自給自足)의 삶의 취했다(34). 셋째는 약자(弱者)들을 돕고, 나누고 주는 삶을 지속하며 살았다(35). 이는 물질적 시험에서 벗어나야 복음을 전하고 성도 돌봄의 목회를 감당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일이어서, 오늘의 우리 교회 모든 일꾼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지침이 된다.

 

o 부활에서 시작된 영생을 향한 여정은, 마치 새 생명의 탄생이 그의 삶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와 교사와 사회의 돌봄과 양육과 교육과 훈련이 뒤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문인 감독자인 목사와 교사와 리더들의 목양사역을 필요로 한다. 그런 영적 돌봄과 양육으로 부활신앙인들은 숱하게 가로놓인 장애물을 뛰어넘으면서, 구원과 영생의 세계로 항해(航海)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당신의 양들의 보호와 승리를 위하여 모든 필요한 조치를 다 준비해 놓으셨다. 이 과정에 부르심과 일꾼으로 선택받은 이들은 이 일이 잘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물질의 탐욕을 경계하고, 약자 돌봄에 힘쓰며, 받기보다는 주고 베푸는 목회와 선교에 힘써야 한다. 즉 온전한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이 등장하도록 헌신과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할 수도 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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