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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6) - " 기도권,축복권,결속권을 행사하라" / 승천일, 도시농어촌선교주일

최부옥 (서울동노회,양무리교회,목사) 2022-05-21 (토) 21:09 6개월전 181  

본문)  14:1~14, 왕하 2:1-15, 4:1-16

 

부활절 여섯째 주일이다. 총회는 이때를 도시농어촌 선교주일로 지키지만, 세계교회는 이 주간에 있었던 주님의 놀라운 사건인 승천을 기억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김하는 때로 맞이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도시가 꼭 좋아서 모이는 것은 아니다. 삶에 필요해서 모인다. 농촌이 싫어서 떠나는 것도 아니다. 살기에 필요한 것이 적어서 떠난다. 하지만 떠나고도 그리워하는 곳이 또한 시골이다. 사실 요즈음은 생각 밖에 귀농자(歸農者)들도 많아졌다. 단순하게 살기에는 농어촌만큼 좋은 곳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니, 경쟁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이 준 풍부한 자원과 생산성에 눈을 돌린 이들이 농촌과 섬에 찾아들어와 행복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해남의 신기교회 박승규 목사는 매우 놀라운 역발상적 선교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에도 관심이 크더니, 최근에는 서울 등의 도시 어린이들을 유학생으로 받아서, 아이들로 하여금 성장기에 농어촌과 자연 문화유산이 풍부한 그곳 시골 문화와 생태를 함께 배우고 익히면서, 내일의 건강한 국가의 동량(棟梁)들을 키워내고 싶어 한다. 가슴이 뭉클하다. 도시와 시골은 선택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품고 공존해야할 대상임을 알고 있음이다.

 

승천(昇天)이란 영적 주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부활에 이어진 승천이란 영역이 우리에게 안겨준 삶의 영향은 무엇이었나? 바로 땅의 인간들을 하늘을 품은 인간들로 승화시킨 일이다. 육적 인간을 영적 인간으로 올려 세우신 일이다. 땅과 육체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며, 하늘과 영적 영역에도 깨어 살아야만 비로소 구원 받은 존재가 된다는 점을 일깨우신 사건이었다. 바로 거듭난 존재가 되게 한 놀라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라.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를 만나면서 두 번의 결정적인 거듭남의 기회가 주어진다. 첫 번째는 예수를 만나서 그로 하여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는 부름을 받을 때였다(5:13-14). 이 일로 인하여 그들은 갈릴리 어부들로서, 오직 의식주에 매달려 단순무식(單純無識)하게만 살아온 삶에 대변화를 맞게 된다. 세상에 얹혀서 사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구원하고 책임져야할 주체적 세상살이가 그들에게 열려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추가되었다. 바로 스승 예수께서 자기들 앞에서 하늘에 올려져 가시면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라는 승천의 모습과 재림에 관한 약속을 받은 때였다(24:51, 1:9-11). 이 일은 제자들에게 어떤 영향과 삶의 변화를 안겨 주었나? 스승과의 단순 이별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다. 보이는 세상의 현실이 전부라고 알고 살아온 삶에 대한 단절을 안겨 준 사건이었다. (도시만이 아니라 농어촌도 함께 보게 하신 일과 같다)

 

아니, 보이는 것과 일시적인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과 영원한 곳에 대한 눈을 열어주는 놀라운 변화를 안겨 준 일이었다. 땅만 가지면 안 되고, 하늘에만 매달려도 안 되며, 땅과 하늘 모두를 품어야만 얻어낼 수 있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백성의 삶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 큰 사건이었다. 실로 구원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주어지는 지를 종합적으로 정립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인간 사랑과 하나님 사랑을 함께 제시한 일이었다.

 

성경은 승천자들 몇 분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그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갖게 한다. 그들이 누군가? 에녹(5:24), 모세(34:6), 그리고 엘리야(왕하2:11)등이 구약에서의 주인공들이라면, 본문의 예수님은 그 일을 보다 주도적으로 구체화시키고 신학화시킨 주역이셨다. 그것은 승천이란 기이한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도, 그 승천이 안겨주려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시야(視野)를 넓혀 주시고 거기에 대한 대비(對備)를 하게 하려는 일이었다.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은 물론 예수의 부활과 승천신앙으로 죽음을 넘어선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들에 대한 승리의 무기(武器)들에 대하여서도 언급하고 있다. 여러모로 이 내용들은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메시지이다.

복음서 / 14:1-14 /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본문은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둔 예수님의 고별사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단순한 이별의 내용이 아니라, 그 후로부터 제자들과의 새로운 차원의 관계의 발전과 지속을 위한 놀라운 정보와 비법을 전수하는 내용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이별은 슬픔이나 절망일 수가 없다. 그보다는 떠나 있어도 늘 함께 하면서 하나가 되어, 복낙원의 세상을 향한 출정식의 현장이 되었다. 그 점에서 예수의 승천은 제자 공동체의 해체가 아니라 새 출발을 위한 결집(結集)이었다.

 

1) 십자가로 인하여 잠시 발생할 스승과의 이별에 충격과 절망에 빠져들 제자들을 우려하면서, 그 사전 예방을 위하여 예수께서 강조하며 던지신 첫 마디는 마음의 근심 걱정 금지와 당신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었다(1).

 

2) 그러면서 제자들의 관심사를 일시에 새로운 곳으로 집중시킬만한 몇 가지 주요 소식들을 전하셨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가실 곳이 이 땅의 집이 아닌 하늘 아버지의 집이며, 그곳은 숫자도 많아서(many mansions) 결국 제자들을 위한 곳이 될 곳이라는 말씀이었다. 또한 주님은 그 처소들을 마련한 후에는 그들에게 다시 오셔서 그들을 영접하고, 최후에는 당신의 그 하늘 처소에서 기리 함께 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2-3). 얼마나 기쁜 뉴스인가-!

 

3) 그런데 제자 두 명이 자신의 궁금증들을 떨어놓으며, 주님께 다음의 질문들을 드렸다 :

 

- 첫 질문은 도마가, ‘자기들은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 길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5)였다. 이에 주님은 당신만이 하늘 아버지께 이르게 할 유일한 길(way)이요 진리(truth)요 생명(life)임을 선언하셨다. 달리 길이 없음을 못 박으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를 제대로 알면 곧 하늘 아버지도 아는 것이며,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도 알게 되었음도 선포하셨다(6-7). 이 예수의 자기 계시로 우리는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확인하게 되었다.

둘째 질문은 빌립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그러면 족하겠습니다라는 요청이었다

(8). 이는 앞에서 도마를 향한 예수의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 질문이기도 했다. 인간 예수가 어찌 하늘 아버지와 동일할 수 있느냐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못한 추가 질문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주님이지만, 그래도 제자들 이해시키는 데 진정성을 다해서 더욱 소상히 해명하며 답하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며 되물으신 후, 결국 당

신과 당신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강한 믿음을 강조하셨다. 그것은 제자들이 오랜 시간 당신과 함께 살아오면서 모든 것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인물들이었음을 전제로 하신 말씀이었다. 다만 그들이 스승에게서 여지껏 본 것은 인간 예수의 놀라운 능력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보았어야할 일, 곧 그와 함께 계셔서 일해오신 하늘 아버지는 전혀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제자들도 알아야만 했다. 예수께서 바로 그 점을 일깨우고 계신 것이었다(9-11).

 

4)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북돋우고 용기를 주시기 위한 두 가지 차원의 새로운 약속들을 제시하셨다. 첫째는 당신을 믿는 자는 당신이 그동안 행하신 일들을 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하리라는 것이다(12). 둘째는 그런 일들을 온전히 가능하게 하도록,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당신이 친히 행동하실 것임을 약속하셨다(13-14). 이는 마치 예수에게서 아버지가 함께 계셔서 모든 일을 행하셨던 것같이(10절 참조),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당신이 함께 하셔서, 그들이 당신의 일을 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조건은 그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는 일이었다. 즉 기도권(祈禱權)

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것이다. 기도가 있으면, 마치 요즈음의 미디어를 통한 비대면 원격조정이 가능한 것처럼, 제자들이 마치 주님과 함께 계신 것처럼 행동하게 될 것임을 밝히셨다. 이런 약속은 제자들과 승천하신 주님을 하나로 결속하게 하는 약속의 끈과 기반이 되었으며, 보혜사의 강림을 경험하게 되면서, 교회 시대를 견인하는 일에 당당한 주역들이 되게 하였다.

 

2. 구약 / 왕하 2:1-15 / “ 당신의 성령의 역사가 내게 갑절이나 있게 하소서

 

제자의 스승과의 이별에 대한 긴장과 그로 인한 문제 해결의 이야기는 구약의 불의 선지자 엘리야와 그의 제자인 엘리사 사이에서도 있던 일이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평생을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신앙 전선을 지켜낸 당신의 종 엘리야를 당신의 나라로 데려가려고 하신다. 그런데 그에게 찰거머리 같이 달라붙은 인물이 있었다. 바로 엘리사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제자 엘리사를 떨쳐내고, 하늘로 가려고 이런저런 곳들을 찾아 다녔다. 산지인 벧엘로, 낮은 곳인 여리고로, 나중엔 평지인 요단으로 다니면서 작별하려고 했으나 엘리사가 목숨 걸고 끝까지 붙좇는 바람에(2,4,6),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그가 원하는 것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엘리사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9,).

 

1) 제자 엘리사가 구한 것은 놀랍게도 스승이 보유한 능력보다도 갑절로 강한 능력이었다!(9.). 일종의 장자권(長子權)을 요구하신 셈이다(21:17 참조). 그는 스승의 부재로 인한 시대의 고난과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데에는, 스승 정도의 능력이 아닌 그 갑절의 능력과 은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앞에서 예수께서 믿는 자들이, 당신의 행한 일은 물론 더 큰 일도 하리라고 하신 바로 그 말씀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내용이었다(14:12참조).

 

2) 엘리야는 그 일이 쉽지만은 아님을 지적하시면서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데려가시는 일인 승천을 보게 되면 그 소망을 이루리라는 약속을 주었다(10). 그것은 그가 승천의 증인이 되어야 비로소 그가 정말 원하는 성령 보혜사의 능력에 힘입어, 하늘과 땅의 역사를 주도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엘리사는 하늘에서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내려와 회오리바람 속에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시는 모습을 목격한다(11). 그러자 엘리야를 보며 소리 지른다.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에는 당신이 그의 상속자이며, 자신은 그의 아들의 길을 걷겠다는 확실한 고백이 담겨 있었다.

 

3) 엘리야의 떨어낸 옷자락이 엘리사의 손에 쥐어졌다. 그것은 요단강을 육지처럼 만들어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던 지도력의 권위였다. 엘리사가 그 옷을 가지고 요단 물을 치자, 육지가 되면서 그곳을 지났다. 지도력의 완전한 교체가 이루어진 순간이었고, 하늘로부터 능력권이 엘리사에게 부여된 순간이었다(12-14). 새 시대의 개막이었고, 하늘역사가 숱하게 잇따랐다.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보유한 권세는 기도권이요 능력권이다. 이런 권세가 예수 안에서 온전히 행사되는 곳에는 하늘 문이 열리고, 땅의 문제도 해결하는 축복이 임한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묻자. 나와 교회에는 과연 기도가 살아있는가,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가? 이런 부여된 권세를 활용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금 부름 받음과 소명의 자리를 점검해야 하겠다.

 

3. 서신서 / 4:1-16 / “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 만물을 충만하게 하라

 

성령의 능력 아래 있는 교회 공동체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 주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우리 각 사람에게 부여하신 은혜의 선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꾸준히 성장시켜 나아가는 데에 있다.

 

1) 성령으로 부활하신 이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간직한 마음 자세는 겸손과 온유, 인내와 사랑, 상호 용납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일이다. 아는 우리가 믿고 섬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오, 그를 향한 믿음도 하나이며, 그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기에 더욱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1-6절 참조).

 

2)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분량에 맞는 은혜를 주신 일을 그의 승천하시면서 남은 제자들과 교회들에게 사명과 역할들을 부여하신 때에서 찾는다(7-9, 1:9-11 참조). 곧 그의 떠나심이 모든 것의 마감이 아니라, 전혀 광대하고 새로운 차원의 삶의 시작으로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땅에서 하늘로, 육에서 영에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로, 순간에서 영원에로까지의 새로운 순례 인생을 열어주신 큰 변화의 시작으로 보았던 까닭이다.

 

3) 주님의 분부와 위임(委任)의 목적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는 일이었다. 그는 이를 위해 적재적소에 인물들과 능력들을 배치하셨다.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파자로, 목사와 교사로 삼아서, 그들로 하여금 성도를 온전하게, 봉사하게, 주의 몸을 세우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충만하고 성숙하도록 보혜사로 밀어주셨다(11-13).

 

4) 그러기에 이제 우리 성도들이 감당할 일은 서로 사랑으로 협력하여 하나 될 결속권(結束權)을 뜨겁게 행사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질그릇들이다. 다만 서로 아끼고 용납하면서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결속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 이 지난한 세상살이에서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영광의 주의 나라도 상속하게 될 것이다.

o 우리 모두 부활 승천의 진정한 신앙인들 되어, 우리에게 부여된 기도권, 축복권, 사랑의 결속권을 무시하지 말고, 오히려 과감하게 행사하면 살아가자. 그러면서 그런 소중한 은사와 권리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키워 나아가자. 그러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을 중단 없이 드러내는 하늘 백성들이 될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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