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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8) - " 거류민에게 요청되는 분별력 "

최부옥 (서울동노회,양무리교회,목사) 2022-07-31 (일) 22:27 2개월전 75  

본문) 벧전 2:11~17, 8:1-21, 6:19-24


강림 후 여덟째 주일이다. 여름 무더위도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코로나의 세력도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주변에 감염 환자들이 급증한 느낌이다. 지금 상황은 정부의 통제가 아닌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때라는 느낌이 들기에, 더욱 자력에 의한 방역에 힘써서 자기 건강 지키기에 힘써야 할 때이다. 특히 자기 지킴은 단순히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이웃의 감염(感染)까지도 막아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더욱 자중자애하는 태도가 요청된다.

 

우리는 성령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는 여러모로 구별과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가치관이 달라졌고, 가는 길이 달라졌으며, 만나서 가까이 하는 사람도 달라졌고, 하는 일도 달라졌다. 어디 그것들뿐인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 순간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것,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 탐욕적이 아닌 공유할 것, 육체적인 것이 아닌 신령한 것, 미움이나 배척이 아닌 용서와 포용의 것 등등을 더 중요시하며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오신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이었다. 그러면 오늘 주시는 내용은 어떤 것인가? 앞에서 말한 우리의 변화된 삶의 내용을 기본으로 하면서, 그런 일들을 보다 다지기 위해 필요한 요인인 분별(分別)력을 말한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관한 판단력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분별력이 탁월한 사람은 인생을 승리한다. 분별력이 허약한 사람은 인생이 슬퍼진다.

 

분별력의 기준점은 지혜요 지식이며 총명이다. 분별력의 기준점이 분명하면 실수가 없으나, 흐리면 계속 방황하고 실패만 반복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확실히 분별력이 좋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분별력이 없다. 그래서 늘 후회하며 삶을 아프게 산다. 그것도 개인적인 경우엔 파급력이 미미하지만, 지도자의 위치에 선 자가 그렇게 되면, 그 파급은 엄청나다.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에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 역량은 바로 지혜와 분별력에서 나온다.

 

우리나라의 현 정부가 그런 점에서 정말 큰 골칫덩이다. 분별력과 지혜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미래와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들을 독려하기 보다는, 이전 정부의 정책과 행위에 대한 사법적 처리에만 골몰하는 행태만을 집중한다. 정말 큰일이다. 한마디로 온 나라를 유대교의 율법주의 정신으로 자기중심적(?)인 법과 원칙론만 앞세우면서, 나라를 온통 검찰중심국가로 만들고 있다. 다양성이 배제된 독재국가가 출현했다는 느낌이다.

예수님도 제자들 선택 후, 교육을 통하여 가장 먼저 강조하신 내용들 중의 하나가 분별력 갖춘 제자 되는 일이었다. 633절 전후를 보면,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강조하셨다.

 

이는 주님이 의식주 문제를 무시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나라가 바로 되고 세상이 정의롭게 되면, 백성의 의식주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터이기에, 당신의 제자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이는 의식주 문제부터 구하는 것에 대한 획일적 의식구조가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니라, 그런 세계를 안겨다 줄 정의로운 세상 만들기에 대한 의식구조 설정이 우선되어야함을 지혜와 통찰로 일깨워주신 것이었다.

 

솔로몬 왕이 왜 여호와로부터 그토록 전무후무한 축복을 받았던가? 그가 주께 구한 지혜가 그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내포한 의와 세계를 모두 포함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솔로몬은 왕으로서 무엇이 진정 필요한 것인지를 정확히 분별하는 안목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왕이었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어도, 괜찮다고 판단하신 것이었다(왕상3:4-14)

 

분별력은 진정 중요한 것이다. 이는 앞뒤가 분명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고, 우선순위에도 올바른 선택을 통하여 혼란을 예방하고 정당한 질서를 세우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잘못 구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 있다. 제대로 구하면 모든 것을 다 얻어낼 수 있다. 그 차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다. 모두를 다 얻기도 하고, 모두를 다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 사회, 민주 국가에서의 삶에는 더욱 필요한 덕목이 바로 지혜이다.

 

오늘의 세 본문들 모두가 분별력을 행사할 지혜로운 삶과 선택에 대한 안내서들이다. 서신서는 시민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지혜로운 선택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구약 잠언서는 지혜와 명철의 특성에 대한 제시와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촘촘하게 밝혀준다. 마치 제2의 솔로몬의 교훈을 받는 듯하다. 복음서에서는 재물의 힘에 매료되어 세상에 쌓아두려는 신자들을 경고한다. 두 주인(하나님과 재물)을 못 섬길 것이니, 과감하게 그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한다.

 

서신서 / 벧전 2:11-17 / “ 너희는 자유가 있으니 ---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사도 베드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거류민(居留民)과 나그네 같은 자들이라고 규정해서 부른다(11). 거류민은 누군가? 본 자기 나라를 두고 남의 나라에서 체류하면서 살아가는 무리들이다. 그들에게는 가야할 곳 본국이 따로 있는 무리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 땅에서는 나그네들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지적을 듣다보면, 우리는 지금 땅에서 살지만 그러나 본향인 천국을 두고, 잠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순례자(pilgrims)들이다(14:2-3참조).

 

그러기에 거류민의 처신이나 윤리, 그리고 가치관은 그곳 현지 토박이들과는 같을 수가 없다. 마치 해외교포들이 현지 국민들과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음과 같다. 그러면 현지인과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현지인들을 대할 때의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나? 이런 측면에서 오늘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은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거류민들이 잠시 체류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필요한 삶의 윤리가 무엇인지를 제시한 내용이다. 주요 내용들을 살핀다.

 

1)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制御)하며 살아야 한다(11).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은 언제나 육체의 욕심만을 추구하며 사는 곳이다. 바울은 그 육체의 일에 대하여 상세히 소개한 바 있었다(5:19-21). 곧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 함들이라면서, 이런 것들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하게 한다는 설파하였다. 사도 베드로도 지금 바로 그 점을 동일하게 상기시키면서, 자신을 육체의 정욕에 빠져 살게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2) 행실을 선()하게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 대하여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그런 선행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게 하라고 권하였다(12). 본문에 의하면, 그 선행의 내용(內容)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그 현장에 세워진 인간의 모든 제도(制度)에 순종하되, 왕이나 총독에게까지도 순종하는 것이다(13-14절 참조). 이 때의 사도 베드로의 세상 법률(法律)들이나 왕을 비롯한 총독과 지도자들에 대한 시각은, 그 법이나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대리하여 세상 속에서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집행하는 자들로 본 것이다. 어느 특정 시대, 어느 특정 지역에서 준동하는 악행을 저지른 독재자와 박해자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래야만 모든 선교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자유(自由)는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16). 자유로운 삶은 자기의 치부나 악행을 덮은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 모습은 혹 사람이나 세상에는 통할 수 있을지 모르나,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에게는 분노하게 하시는 일일 뿐이다. 그 대신 더욱 섬기는 종의 모습을 견지(堅持)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늘 겸손하게 살고 언제나 떳떳하게 사는 모습이 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게 될 것이다.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대하라(17).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삶을 추구하며 사는 삶을 말한다. 이게 아브라함의 자손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과 이웃에게는 언제나 공경과 애정을 드러내고, 하나님은 두려움으로 섬기며, 세상 질서도 존중하는 모습이어야말로, 세상을 향해서 거류민이 보여 줄 품격(品格)을 드러낼 참 모습이다.

 

2. 구약 / 잠언8:1-21 / “은 대신 나의 훈계(訓戒)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知識)을 얻으라

 

거류민을 향한 사도 베드로의 권면은 보다 일찍이 구약 잠언의 현자(賢者)들에게서도 집중적으로 제기된 내용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지혜와 명철과 지식들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힘과 거기에 따른 열매들을 힘써서 강론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질 우선주의에 빠져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위험을 잘 알았다. 그것은 물질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어두운 그림자들이 너무 커서, 그것을 앞세우면 그 뒤의 모든 것까지도 다 잃을 수 있음을 본 것이다.

 

1) 이 현자는 지혜와 명철 자체가 가진 자부심과 당당한 가치와 힘에 대하여 소개한다(1-4, 12). 그것은 언제나 모든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문을 열고 초대하고 있으며, 모두가 자신을 소유하여 복된 삶을 누리도록 자신을 제공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런 모습 때문에, 지혜는 저 음탕한 짓을 하는 음녀(淫女)들의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사람을 유혹하는 행위와는 아주 다른 차원이 다르다(7:8-9참조).

 

2) 그러면 이 지혜는 초대에 응한 이들에게 어떤 내용의 선물을 안겨 주는가? 어리석은 자들을 명철하게 한다. 미련한 자들의 마음을 밝게 해준다(5). 선한 것을 말하게 한다. 정직하게 한다(6). 진리를 말하게 하고 악을 미워한다(7), 여기서 악을 미워한다는 것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함 때문이다. 그래서 교만과 거만과 악행과 패역한 입도 미워한다(13절 참조). 다 의로운 말을 하며 그 속에는 굽은 것이나 패역한 것이 없게 된다(8). 총명과 지식 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한다. 탁월한 분별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된다는 말이다(9).

 

따라서 현자는 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권한다. ‘()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精金)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다’(10-11)

 

3) 현자는 지혜가 가진 실질적 가치들에 관하여 구체적인 증언도 한다(14-21절 참조). 이는 마치 지혜를 얻은 솔로몬 왕에게 세상의 모든 필요한 것들도 공급된 내용과 흡사하다 :

 

-그 안에는 계략(計略-counsel)과 참 지식이 있다. 총명(이해력)과 힘이 있다(14).

-그러기에 왕들과 고관들이 이 지혜를 활용하여 백성을 치리하고 세상의 공의를 세워간다.

재상과 고위층들과 정의로운 재판관들도 이 지혜를 활용하여 다스려간다(15-16).

-누가 이 지혜를 갖게 되며,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게 되는가?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며 간 절히 사모하는 자들이 그 수혜자가 된다(17, 왕상3:9참조)

 

4) 그밖에도 이 지혜 속에는 부귀(富貴)도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있다. 여기에서의 재물은 세상이 소유한 금이나 정금과는 다르며, 소득도 세상의 것과도 다르다(낫다)-왜 그런가? 지혜로 얻게 된 재물에는 정의와 공의로 얻게 된 것이기에, 세상이 준 불의와 탐욕과 거짓으로 얻어낸 것과는 본질상 다르기 때문이다(18-20절 참조). 이런 부유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21). 재물소유가 문제가 아니다. 지혜와 정의로운 부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3. 복음서 / 6:19-24 / “ 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안전한 하늘에 쌓아 두라

 

이제 마지막 과제는 부()의 처리(處理) 문제이다. 사람은 별 수 없다. 주님의 지적대로, 내 재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21). 이 점에서도 우리는 거류민의 윤리와 그 지침을 좇아야 한다. 바로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는 방식이다. 주님은 왜 그래야 되는 지도 분명히 말씀하신다. 땅엔 좀과 도둑들이 내 것을 해칠 것이지만, 하늘엔 그 어떤 짓도 발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물을 둔 곳에는 내 마음도 항상 거기에 있음이 문제이다. 땅에다 두면, 땅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걱정, 근심, 의심, 경계심, 방어심, 우려 등과 함께 하지만 하늘에다 두면,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살면 된다. 어쨌든 하나님과 재물 두 신들을 함께 섬길 수 없는 우리이기에, 재물도 하늘에 쌓아두고 살면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다! 갈라진 마음이 아닌 일치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설 수 있어서 편안할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 내 보물을 쌓아둘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 대답은 다음 주일의 말씀에서 찾게 될 것이다)

 

o 본문은 우리 자신을 거류민과 나그네로 보는 영적 시각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 땅과 세상 사람들과 확실히 차별화하면서도,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소중한 모습을 보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혜와 총명과 지식은 그런 거류민의 삶을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데에서 필요한 중요한 요인들이다.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은 적극 제어하며 살자. 그에 필요한 영적 무기는 지혜와 명철과 지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필히 이것들로 중무장(重武裝)하고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육체적 필요도 그 안에서 공급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물질적 소유물 관리가 믿는 자다워야 한다. 땅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둔 자답게, 우리 보물도 하늘에 쌓아두고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명실공이 재물이 아닌 하나님만 주인으로 섬기는 자가 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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