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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주일 설교문] 하나님의 세뱃돈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3-01-22 (일) 07:56 1개월전 117  
1.



오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의 세뱃돈”입니다.

설날 아침에 이렇게 주일예배 드리는 해는

담임 목회자의 길을 걸은 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설날 아침 드리는 예배당 예배가 마치 하나님께 세배를 드리는 것 같아서

오늘 본문의 “제사장 축복”[주1]이 하나님 세뱃돈으로 느껴졌습니다.



27절을 보면 이러한 제 느낌이 별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수표처럼 발행하시고 계시지요.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2.



축복문은 24절, 25절, 26절 3행이며

각 행은 상반절과 하반절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3행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평행대구구조라는 것입니다.



A1 B1

A2 B2

A3 B3





A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있고

B는 복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주2]

그렇다면 이 축복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시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시고 계실까요?





첫째,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의 경호원이십니다.



경호원의 관심은 온통 경호대상자에게 있습니다.

1행 상반절을 추상적인 단어 ‘복’으로 번역하지 않고

행동을 묘사하는 단어로 번역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성도 여러분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믿음직한 경호원이 경호대상자에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오래전에 보았던 “보디가드”라는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기도 순서 때 모든 참석자들은 눈을 감고있지만

경호원은 구석에서 눈을 뜨고 긴장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총격을 감지하고 자신의 몸을 날려 총알을 받아내는 모습입니다.

팔까지 펴서 자신의 몸이 큰 방패가 되도록 하지요.







이 사진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장면입니다. 혼수상태였던 광해군을 한 광대가 대역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일이 끝나자 진짜 왕은 대역했던 광대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왕의 경호실장은 왕명에 따르지 않습니다. 광대를 도망치게 한 후 다른 호위무사가 쫓아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묻자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지요. “그대들에게는 가짜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진짜다!”. 그 후 끝까지 추격자들을 막아내고 무릎을 꿇은 채 최후를 맞이합니다. (역사적 상상력이 가미된 내용이지만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영화입니다).



주님께서 때로는 몸을 날리고, 때로는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성도 여러분을 지켜주기를 비는 것이 첫 번째 축복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의 후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비추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빛”이 어떤 대상자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추운 겨울 새벽에 떠오르는 햇볕이 어떤 느낌인지 지금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햇살로 인해 지구의 생태계는 소생하고 성장하고 보람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인생의 햇살은 바로 하나님의 얼굴빛입니다.






말라기 4:2에서도 이러한 은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나님께서 이같은 은혜를 베푸시는 후원자되어 달라는 것이 두 번째 축복입니다.



<키다리 아저씨> 책을 아시는지요.







한 고아 소녀가 공부하고 꿈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독지가가 있는데 소녀와 이분은 피차 얼굴도 모릅니다. 독지가에게 소녀가 가끔 감사의 편지를 쓸 뿐이지요. 답장은 없지만 소녀는 가끔 편지에 무심코 적은 소망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고아원 원장실 창문에 비친 이 독지가의 그림자가 길어서 소녀는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렀지요. 이 고아 소녀에게 이러한 키다리 아저씨가 어떤 의미인지 느껴지실 것입니다. 고아에게 “비빌 언덕”이 생긴 것입니다. [주3]



주님께서 우리 삶에 얼굴을 비추시고 빛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소생시키고 성장시키고 보람 주시길, 이러한 은혜를 누리길 빌어주는 것이 두 번째 축복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의 변호인이십니다.



사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변호인’이라는 말은 붙인 것입니다

어떤 말이 적당할까요?



1행에서 하나님이 무릎을 꿇으신 것에서 경호원을 보았습니다.

2행에서 하나님이 얼굴(빛)을 비추어주신 것에서 후원인을 보았습니다.

3행에서는 하나님이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십니다.



2행에서 하나님이 빛을 우리 삶에 보내주시는 것이라면

3행은 하나님이 돌리셨던 얼굴을 다시 우리에게로 향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돌리셨을까요? [주4]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여러 가지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만사 오케이인가요?

우리 삶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허물 투성입니다.

하나님이 고개를 돌리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면목이 없고요.





영화 <덩케르크>에서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아 영국으로 돌아가는 병사들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패잔병인 나를 환영해줄까? 열차가 역에 정차할 때 병사는 애써 얼굴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허물이 많은 병사를 외면하지 않고 영국 국민들은 환한 얼굴로 맞아줍니다. 추스르고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허물이 있지만 고개를 돌리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맞아주시고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샬롬)되기를 빌어주는 것이 세 번째 축복입니다. [주5]





3.



27절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이 시간 하나님 이름으로 성도 여러분을 위해 축복합니다.



충실한 경호인이신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시고

든든한 후원인이신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주시고

따뜻한 변호인이신 하나님이 새롭게 하여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주1]

이 본문은 제가 약 5년 전에 색다르게 묵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상상력이 많이 작동한 해석이어서 조심스럽게 전했었는데요. 최근 한 신학자가 이 말씀을 풀이하신 것을 읽고는 제 해석이 좀 더 과감해졌습니다. 그래도 오차 범위 내의 해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약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십시오. 설날 앞두고 복 비는 마음으로 설교 원고를 올립니다.



제 글(위 링크)

신학자 글(일점일획: 송민원교수님 “제사장의 축복”)



[주2]

전통적으로 A1을 다른 A와 달리 추상적으로 해석하는데 “하나님이 무릎을 꿇다”는 것을 피하다가 생긴 결과인 듯합니다. 창세기 18:22-23에서 나타난 현상과 비슷합니다. 저는 평행대구구조를 위해 구상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창 18:22-23에 관한 글(위 링크)





[주3]

이 소설의 반전은 키다리 아저씨의 나이입니다. 소녀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청년이었습니다. 물론 청년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닙니다. 이 둘의 관계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읽은 지 오래되어서 생각나지 않습니다.



[주4]

2행 상반절과 3행 상반절에 다른 그림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3행에서 이 점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행 하반절에 있는 ‘샬롬’의 1차적 의미는 “안심시키다”입니다. 사사기 6장에서 기드온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두려움을 가기게 됩니다.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안심하여라”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여호와 샬롬!”의 1차적 의미입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해 얼굴을 돌리셨으나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우리를 품어주시고 새출발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저는 3행 상반절에서 읽었습니다.





[주5]

몸을 날려 우리를 지키시는 경호원, 우리의 삶에 은혜를 주시는 후원자,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신 변호인이 되어주신 분이 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6]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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