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2006년 여름수련회 중고부 교재 설교문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3-02-24 (금) 10:11 1년전 404  

[설교문 1: 개회예배]

본문: 열왕기상 19:3-9

제목: 내 안의, 우리 안의, 세상 안의 하나님 나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죠? (학생들이 그 뜻을 말하도록 합니다). 다들 알고 있군요. 이 말은 옛날 중국의 『대학 大學』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심신(心身)을 닦고 집안을 정제(整齊)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한다는 뜻이지요.


개인적인 허물이 드러난 정치지도자들에게 ‘수신’이 안된 상태에서 ‘치국’을 하려고 한다느니 혹은 큰일 꿈꾸기 전에 먼저 수신부터 하라는 등등의 비판을 할 때 이 말이 사용되곤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수신이 꼭 선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신제가’를 하지 못했지만 단기적으로 ‘치국’을 잘 해내는 경우가 있고 이 과정에서 ‘수신’을 거꾸로 이루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수신제가’했다고 해서 ‘치국’을 저절로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대학』에 나오는 이 말이 이런 경우들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을 수양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큰일을 감당하는 것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축에서 기초공사가 중요하듯이 좋은 개인적인 자질이 바탕 되지 않고서는 큰일을 지속적이고 온전하게 해내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앞에서 봉독한 말씀에서 엘리야라는 예언자가 나옵니다. 우리한테 ‘엘리야’는 꽤 익숙한 이름입니다. ‘엘리야’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학생들의 말을 들어봅니다.) 엘리야가 행한 가장 두드러진 행적은 갈멜산 대첩입니다. 북이스라엘 나라의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우상 숭배 정책에 맞서 바알을 섬기는 예언자와 아세라를 섬기는 예언자 총 850명과의 대결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둔 사건입니다. 850 대 1로 이긴 것입니다. 이런 업적 때문에 우리들은 은연중에 엘리야를 비범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지요.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야고보서 5:17)는 지적은 엘리야에 대한 이러한 선입관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왕과 왕비에 맞서 북이스라엘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치국(治國)의 예언자> 엘리야의 새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바로 <수신(修身)을 받는 예언자> 모습입니다.


갈멜산에서 그토록 큰 일을 수행한 엘리야였지만 이세벨 왕비의 독을 품은 협박을 뜻밖에 두려워합니다. 늘 강철같은 사람은 없는가 봅니다. 엘리야는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광야로 도망했다가 그곳에서도 더 외진 곳을 찾아 피신합니다. 그리고는 그곳의 로뎀나무 아래에서 풀이 죽어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겁에 질려서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태도까지 보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북이스라엘 나라의 우상숭배를 막기 위한 큰 사명은 잘 감당했지만, 정작 자신의 심령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서 멀어져있는 엘리야의 딱한 상황을 본문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통치)”를 이루는 일에는 성공했지만 “내 안에 하나님 나라(통치)”를 이루는 일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엘리야와 함께 하셔서 심신을 닦아주십니다. 내 안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애틋하게 하는 하나님의 자상한 돌보심이 본문에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갓 구워낸 과자와 물을 제공하고 다시 충분한 수면을 취하게 하십니다. 육체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심령을 돌보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엘리야를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누구를 만나러 갈 때 우리 마음이 그 사람으로 채워지듯이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으로 향하는 이 40일 시간을 통해 엘리야의 심령은 하나님으로 채워집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기도였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신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엘리야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다시금 <세상 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명을 주십니다. 우상 숭배를 타파하기 위한 구체적인 임무를 주십니다. 이 사명을 위해 엘리야와 함께 할 칠천 명의 협력자도 붙여주십니다. <내 안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킨 후 함께 사명을 감당할 협력자들과 <우리 안의 하나님 나라>을 누리게 하신 후 <세상 안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다시금 헌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광야의 엘리야 예언자 이야기를 통해 엘리야의 심신을 돌보시는 하나님, 엘리야에게 동료와 공동체를 붙여주시는 하나님, 이들을 통해 세상 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여름수련회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통치가 큰일 속에서만 이룩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만 경험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활동하시고 통치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 하나님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우리 학생들이 하나님 나라를 더욱 이해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신실한 신자로, 하나님의 귀한 파트너로 변화되길 바랍니다.





[설교문 2: 폐회예배]

본문: 누가복음 8:4-8

제목: 말씀의 씨앗을 풍성한 열매로 


로버트 폴검이 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매년 새해에 한 해의 계획과 결심을 정리해왔던 폴검은 어느 해 문득 그런 계획과 결심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임을 새삼 느꼈던 거죠.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이 유치원 때 배운 단순한 가르침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별개의 문제라는 오래된 경구가 말하고 있듯이, 유치원 때 우리들은 웰빙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하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도 후회와 결심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행함으로 열매 맺어야 합니다. 행하기 위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야고보서 1:21-25).


어떤 사람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자는 요청을 합니다. 이에 한 아들은 ‘가겠습니다’라고 답했지만 실행하지 않습니다. 다른 아들은 처음에는 ‘싫습니다’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라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실천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한 아들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마태복음 21:28-30). 모래 위의 지은 집과 반석 위의 지은 집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았느냐 행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마태복음 7:24-27) 



이번 여름수련회를 통해 우리들의 삶의 밭에 하나님 말씀이라는 씨앗은 뿌려졌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씨앗이 아직은 미완성 상태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말씀의 씨앗은 우리의 삶이라는 땅의 유형에 따라 판이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땅의 유형을 몇 가지로 나누고 있는지 한번 정리해볼까요? (학생들이 길가-돌짝밭-가시덤불-좋은 땅으로 정리하도록 유도해주십시오.) 


첫 번째 유형은 “길가”입니다. 씨앗이 발에 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가 쪼아 먹기 때문에 뿌리도 못 내리게 하는 땅입니다. 씨앗이 싹트지 못한 채 사라져버립니다. 수련회 기간에 하나님 말씀을 열의 없이 접했거나 건성으로 들었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기에 이런 학생들이 없겠지만 혹시 그랬다 하더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말씀의 씨앗을 내 생활 속에 싹 틔우겠다고 결심하시고 이 예배에 정성을 다하십시오.


씨앗이 뿌리를 내린 후에는 돌짝밭과 가시덤불과 좋은 땅으로 그 유형이 분류됩니다. 두 번째 유형은 싹은 돋았으나 곧 말라버리고 마는 돌짝밭입니다. 그 유명한 작심삼일(作心三日)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수련회의 결심을 이어가지 못하고 이내 흐지부지되는 학생들입니다. 이 유형에 속하지 않기 위해서는 수련회 이후에도 지속적인 학생회 활동을 통해 결심을 살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작심삼일도 삼일 간격으로 갱신하면 지속적인 실천이 됩니다. 세 번째 유형은 싹이 돋아 한동안 자라났으나 애석하게 열매까지 이르지 못하는 가시덤불입니다. 외양상으로는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자라났으나 열매 맺는데는 이르지 못하게 하는 밭을 말합니다. 무늬만 말씀대로 사는 삶이지 사실상 마음은 다른 것에 매여있어 결과적으로는 내실 있는 말씀의 열매를 누리지 못하는 삶입니다. 거창한 많은 것을 결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것이라도 주님 앞에서 정성껏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을 본문은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자신과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을 뿌리내리기 위해 일상생활로 돌아가서 어떤 것을 실행해야 할 것인가 이 시간 마음 속으로 다시 한번 결심(확인)을 해봅시다. 주님과 더욱 친해지기 위해 어떤 경건 훈련을 할 계획이십니까?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된 교회 친구들을 위해 어떤 배려를 할 계획이십니까? 우리 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교회와 학생회를 통해 혹은 개인적으로 어떤 섬김의 실천을 할 계획이십니까?


이제 주님께 우리의 계획과 결심을 내어놓고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기도를 다함께 드립시다(함께 통성으로 혹은 침묵으로 합심기도 드린 후 설교자의 기도로 말씀 증거를 마치십시오. 이 설교문은 수련회 캠프화이어의 메시지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설교문 3]

본문: 요한복음 6:5-13

제목: 나눔의 기쁨과 보람


(설교자 구연 대신 학생들이 나레이터, 소년, 할머니, 주인, 주인 아내 역을 맡아 라디오 방송처럼 들려 줄 수도 있습니다.)


점심 한 때 북적대던 국밥 집에 손님이 뜸해진 시간, 주인이 한숨을 돌리며 신문을 뒤적이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한 할머니와 땟국 줄줄 흘리는 아이가 들어섰습니다.

[할머니] “저 쇠머리국밥 한 그릇에 얼마나 하는지…”

할머니는 엉거주춤 앉은 채로 허리춤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헤아린 뒤 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한 그릇… 할머니는 뚝배기를 손자가 앉은 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소년은 침을 꼴깍 삼키며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소년] “할머니, 정말 점심 먹었어?”

[할머니] “그럼!”

할머니가 깍두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하는 동안, 소년은 국밥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이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주인] “할머니, 오늘 참 운이 좋으셨습니다. 할머니가 오늘 우리 집의 백 번째 손님이십니다.”

주인은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한달 남짓 지난 어느 날, 소년이 국밥 집 길 건너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창 밖을 보던 주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소년은 국밥 집에 손님이 들어갈 때마다 돌멩이 하나씩을 동그라미 안에 넣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돌멩이는 쉰 개를 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주인은 단골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인] “어…바쁜가? 일은 무슨…국밥 한 그릇 먹고 가라고…오늘은 공짜야 공짜!”

그렇게 동네방네 전화를 돌린 뒤,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여든 하나, 여든 둘, 여든 셋”

소년의 셈이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흔 아홉 개 돌멩이가 동그라미 속에 들어갔을 때, 소년은 황급히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국밥 집에 들어섰습니다.

[소년]“할머니, 이번엔 내가 사드리는 거야!”

진짜로 백 번째 손님이 된 할머니는 따뜻한 쇠머리국밥 한 그릇을 대접받고, 소년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깍두기만 오물오물 거렸습니다.

[주인 아내]“저 아이도 한 그릇 줄까요?”

[주인]“저 아이는 지금 먹지 않고도 배 부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지 않소.”

후룩후룩 국밥을 맛있게 먹던 할머니가 좀 남겨주랴 했지만, 소년은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말았습니다.

[소년]“아니! 나 배불러, 이것 봐 할머니…”


-“백 번째 손님” (TV동화 행복한 세상)- 


이야기 속에 ‘먹지 않고도 배 부르는 법’이라는 말이 있는데 진짜 그런 방법이 있나요? (이러 저러한 재미있는 생각이 학생들에게서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욕 먹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먹지 않고도 진짜 배 부르는 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나눔의 기쁨과 보람이 육신의 배고픔이 주는 고통도 극복하게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이지요. 이런 방식의 ‘먹지 않고도 배 부르는 법’을 진작 터득한 사람이 음식점 주인입니다. 가난한 할머니와 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국밥을 대접하고, 그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백 번째 손님을 억지로 급조하는 주인은 이미 나눔의 기쁨과 보람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입니다(‘오병이어’라는 말 설명해주십시오- 떡병餠, 고기어 魚).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은 주님께 드려진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담긴 도시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도시락의 주인은 한 아이였습니다.


배가 고픈 상황에서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안드레의 말처럼(9절) 그 도시락은 많은 사람에게 별 소용이 없는 작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독점의 유혹을 이기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진 것은 비록 그것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풍성한 열매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본문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병이어 도시락을 나눈 갈릴리의 그 아이는 도시락 효용 가치와 비교가 안 되는 나눔의 큰 기쁨과 보람을 체험한 축복의 아이가 되었습니다.



나눔의 삶이 주는 보람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삶을 추구할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 백성들은 무엇보다도 나눔의 삶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요구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자들에게 행한 관심과 배려가 곧 주님께 행한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고 것입니다.


몇 해전 미국의 한 명문 의대에 한국 학생이 지원하여 높은 점수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입학이 허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유는 단 하나, 그 학생에게는 나눔과 봉사의 생활이 없었습니다. 이제 나눔의 삶은 사회적인 인정을 가져다주는 지표가 될 정도로 우리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우리들에게 기쁨과 보람도 선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자녀들은 이 수준을 넘어서 나눔의 삶이 또 다른 방식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신앙에 입각하여 나눔의 삶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의 삶을 모색하시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주님께는 기쁨을 드리고 여러분들은 나눔의 보람을 향유하시길 바랍니다.



[註] 

(1) 2006년 여름수련회 중고부 교재에 실린 설교문 원고입니다(검토와 수정을 거쳐 출판되었을 겁니다). 제가 여름성경학교 교재에 참여한 계기는 드라마틱합니다. 소속 노회 교육부장님이 여름성경학교 전달 강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 없는 저에게 대천 콘도에서 하는 강습회 잘 듣고 그대로 ‘전달’하면 되니 염려하지 말라더군요. 시키시는 대로 강의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끝나는 날이 다 되어가는데도 ‘전달’해야 할 내용이 도무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임무 실패가 두려워 중고부 강사 수업 시간에 제 상황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정리하는 것을 도와 달라고 읍소까지 했습니다. 외면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군분투하면서 노회 강습회 전달 강의를 준비하고 수행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그해 가을인가 총회교육원 교재 담당 목사님께서 저에게 교재 집필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먼저 당시 교회학교 교재 전체를 (오탈자나 큰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정/삭제를 하는 소폭 개정)하는 작업을 맡기셨고요. 전통 있는 기장 교육 교재를 아주 꼼꼼하게 읽고 검토하는 일을 통해 다음 해 여름성경학교 교재 집필 준비도 하게 하신 것이지요. 제가 집필진에 참여하고 나서 한동안 이런 소문이 돌았습니다. “교재에 불평하는 사람을 집필진에 합류시킨다. 니가 한번 해보라고!” 분명한 것은 제가 강사 수업 시간에 도와달라고 한 것은 불평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동료들에게 노회 강습회 강의안을 확보해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당시 교재 담당 목사님께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2) 아동센터 아이들을 위해 '고라니망'으로 만든 미니축구장입니다. 옆에 석축이 위험해서 만들어주었습니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