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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봉평제일교회 공동체에 다녀와서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23-03-16 (목) 08:10 1년전 623  

울진 봉평제일교회 공동체에 다녀와서


23. 3. 13-14일 영성모임에서 울진 죽변 골장(골이 긴)에 다녀왔다. 황성욱 목사와 박진수 장로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오후 골장해변 걷기와 유노이아(행복한 순례길, 온양리 182) 카페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가성비 좋은 차담화를 하면서 바다를 즐겼다.


그리고 죽변항 끝에서 출발하는 스카이레일을 타고 바다를 만끽했다. 전동이고 지붕과 유리벽으로 쌓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즐길 수 있겠다. 탑승료가 4인 35,000원, 65세 이상은 할인된다. 2.4km 왕복인데 한 번쯤 탈만하겠다. 옛날 이현주 목사가 첫 목회지로 시무했던 죽변교회에도 잠시 들렀다.


저녁에는 본격적인 대게파티가 벌어졌다. 박장로가 배와 모텔과 기도원, 농장을 갖고 있으며 직접 고기와 대게를 잡아 대접하는 은사를 갖고 있다. 정말 평생 처음 원 없이 대게를 먹었다. 회도 자연산이라 부드럽고 맛있다.


이제 박진수 장로(76)의 본격적인 간증이 시작됐다. 울진 죽변에서 술 먹고 깨나 노는 놈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강원도 고성, 서울, 대구, 포항 등 약 5년 동안 도시에 나가 머슴살이, 뱃일, 막일 등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9대째 300년 이어온 고향에 내려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증오와 술에 절어 걸핏하면 주정에 싸움질이니 동네에서 내 놓은 자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에게 23세 된 1974년 폐종양으로 망가져 동산병원에서 사망선고 후 자기발로 죽변침례교회에 가서 은혜받고 피고름 나온 후 기적같이 고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덤으로 사는 삶,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기로 다짐하였다. 81년 10월에는 독실한 김영희 자매를 만나 결혼도 하였다.


교회도 침례교회, 장로교회를 거쳐 죽변감리교회를 다녔고 88년에는 과수원 자리에 천국기도원도 건립, 97년에는 은퇴 목사와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불우한 이웃들을 위한 200평짜리 골장타운 2동을 세웠다. 그리고 99년에는 바다풍경이 좋은 객실 24실,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과 식당을 갖춘 골장모텔을 세웠다.


2002년에는 삼남연회 울진지방의 명령을 받고 박장로가 운영하는 공동체에서 은혜받아 신학을 한 황성욱 목사(당시 전도사)와 봉평제일교회를 세웠다. 박장로 보짱대로 크고(200명 수용) 1층에는 은퇴목회자나 필요한 독거노인 등을 모실 수 있는 게스트룸으로 꾸몄다.


우리가 먹고 쉬는 곳은 골장모텔이다. 이제 벌써 24년이나 됐으니 낡았지만 정통 모텔이라기보다는 사역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상한? 사람들이 자고 가는 모텔이 아니라 공동체가 사용하는 공간으로 우리 같은 방문객들을 모시는 곳이었다.


오직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고 계시며,‘예수 믿고 신나고 즐겁게 살자’는 글씨가 새겨진 전도복을 입고 복음을 전파하며 열정적으로 사시는 박진수 장로의 간증은 끝이 없었다. 물론 부부싸움도 있었지만 말없이 내조하는 김영희 권사, 그리고 헌신적인 삶으로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황성욱 목사와 사경미 사모, 오랜 세월 주방에서 일하는 자매님 등 공동체 식구들에게 감사하며 많이 배웠다.


이쯤에 황목사와 사경미 사모에 대해서 한 마디 해야겠다. 황목사는 일반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청년으로 법조계 아니면 교육대학원을 나와 역사 선생을 하려고 했는데 이곳에 와서 박장로를 만나 사명을 깨닫게 되어 협성대에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연합회나 지방회 서기 등 공동체에서 귀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특히 사경미 사모는 이곳 출신으로 장화신고 쇠똥도 치우고, 배를 타고 고기도 잡으며 주방에서 밝은 목소리로 섬기면서 사명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들은 때가 없이 밥을 먹는데 항상 애창하는 찬송을 부르고 식사를 했다. 어제 밤도 우리를 섬기고 박장로 간증이 끝난 밤 9:30에 식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으며 박장로는 새벽부터 하루 16시간을 사역한다고 한다. 좋은 고기를 잡으면 팔아서 돈을 벌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누구에게 선물할할까? 공동체 식구들에게도 잘 먹자고 한단다. 복어 고니, 대구 곤지, 가자미, 도다리, 4월 대게 등 제대로 먹는 법도 알려준다.


그는 오직 ‘성경은 진리다.’고 외치며 전도와 노동으로 마을 노인들의 땅 농사도 대신 지으며 섬기는 일을 쉬지 않는다. 그러다가 22. 6. 3 뇌경색이 와서 동해병원을 거쳐 삼성병원 조박사 만나 7일간 입원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회복되어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부활신앙을 확신하며 매장한다고 한다. 초교파 30여 명의 공동체를 꾸리며 가정사역을 하고 있었다. 목장이 만평이고 농사. 뱃일, 지역사회, 교계 일까지 하루 해가 짧게 살고 있었다. 하루 저녁 간증으로 그의 삶을 다 이해하고 기록할 수 없음이 아쉽다. 공동체의 이름도 없고 규칙도 없다. 공동체 일원이 되고 싶으면 와서 먹고 쉬며 일이 보이면 하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면 된다고 한다.


14일 새벽엔 홀로 일찍 일어나 망양정 일출을 보고 성류굴, 왕피천공원, 은어다리 등을 둘러보고 모임으로 함께 게맛살 비빕밥으로 아침을 먹고 죽변등대거리, 국립해양과학관 등을 둘러보고 왔다. 감동의 1박2일 영성모임이었다.




봉평제일교회


좌로부터 박진수 장로, 사경미 사모, 황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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