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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초보(11): 이율배반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3-08-10 (목) 18:25 6개월전 205  

1.


교회 차를 ‘뽑았습니다’. 신기한 기능들이 많은데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엉뚱한 버튼을 누르고 나서 저는, 차에 탄 교인들에게 이렇게 둘러댑니다.

”신기한 버튼이 많아요. 아마 잘 찾아보면 이 차를 비행기나 잠수함으로 바꾸는 버튼이 있을 지도 몰라요!“

007 제임스 본드 차가 그랬지요.

2.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y)이라는 용어에도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신기한 버튼 두 개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율배반이라는 말을 두 진술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동시에 참일 수 없다)나 모순 관계(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거짓, 하나가 거짓이면 다른 하나는 참)인 경우에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점은 이 용어가 지닌 풍부한 의미의 일부, ‘배반’의 의미일 뿐이지요.

(1)

추가해야 하는 첫 번째 의미는 ‘이율’(二律)에 들어있습니다. 여기 ‘율’은 ‘규율’(規律)의 약어입니다. 어떤 개인의 주장이나 믿음과 관련된 단어가 아닙니다. 상당한 정당성이 확보된 법률이나 신념을 뜻합니다. 둘 다 상당한 정당성이 확보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 동시에 참일 수 없다는 지성적 난감함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진지함이 느껴지시는지요. 언어 쓰레기에 불과한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런 자에게는 ‘자기모순/자가당착’이라는 용어를 써야 할 것이고 사실 이것도 과분합니다.

옥스퍼드 영영사전은 이 내용을 제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 ”그 자체로 합당한, 두 믿음이나 두 결론 사이의 모순“(a contradiction between two beliefs or conclusions that are in themselves reasonable).

(2)

추가해야 하는 두 번째 의미는 칸트(Kant)가 장착한 것입니다. 진지함을 넘어 심오합니다. 놀라운 것은 칸트가 몇 가지 이율배반의 사례를 가지고 인간 이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는 것입니다.

이율배반의 사례 중 천문학과 관련이 있고 우리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a) ”우주는 끝이 있다“와 (b) ”우주는 끝이 없다“는 두 명제입니다. 두 명제가 모순 관계인 것은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두 명제가 각각 합당하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습니다. 우주에 끝이 없을까요? 그래도 그렇지 끝은 있을 것 아닙니까? (a)가 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의문이 이어집니다. 우주의 끝 다음은 무엇일까요? 아이고, 끝 다음이 있으니 끝이 아니었던 것이고 이런 식으로 우주는 끝이 없구나! (b)도 참이네요. 둘 다 참인 것 같은데 둘 다 참일 수는 없다니!

3.

”우주의 끝이 있다/없다“에서 나타나는 난감함의 원인을 칸트는 인간 이성(지성)의 한계 때문으로 봅니다. 한계 너머를 사유하다 보니 지성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지요.

천문학에서 이렇게 저렇게 이 난감함을 해결(혹은 해소)하려는 시도를 합니다만 여전히 저는 칸트 편입니다. Encyclopaedia Britannica과 관련된 사전에서도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 ”the force of Kant’s case against pure reason is yet to be assessed“(순수 이성을 비판한 칸트 논증의 설득력에 대해서 여전히 논의중이다).

이성(지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이론)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당연히 신학적 사유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율배반, 지적인 바벨탑을 허무는 개념입니다.

[註] 버튼 하나 누르면 비행기가 되는 차를 상상해보니 이 노래가 떠오르는군요.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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