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자연에 대한 성경의 ‘두 말’(feat. 엘런 F. 데이비스)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3-09-04 (월) 20:21 5개월전 224  

1.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살기 위해서 자연보호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자연보호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창조세계(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에 대한,

성경의 언급들을 종합하면

성경의 입장을 잘 정리할 수 있습니다.

2.

(1) 숭물론이 있습니다.

자연을 숭배하는 태도입니다. 대구의 어떤 산에 바위가 있는데 대학 입시에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님들이 서로 싸워서 입시철인데도 그곳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불평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히말라야 고산을 오를 때 제사를 지내지요.

물론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런 태도가 많이 사라졌지만

성경의 첫 독자가 살던 시대에는 만연하였습니다.

이 태도에 대한 언급이 창세기 1장 28b절입니다.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고,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어떤 것도 숭배하면 우상 섬기는 것입니다.

숭물론에 맞서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정복하라”와 “다스리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2) 정복론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둘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를 악용합니다.

석사 과정 때 감리교의 이현주목사님 댁에 심부름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요즘 형식논리학을 배우고 있다고 하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A이다'만 이야기해주면 안 됩니다. 'A가 아니다'도 이야기해줘야 하지요. 그러니 ‘한 입 가지고 두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1장 28b절이 악용된 결과가 정복론입니다.

이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며

인간을 위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입니다.

이 태도가 성경의 입장은 아니지만

서양의 기독교와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1:28b의 단어만 보면 정복론같지만

1장의 맥락을 감안하면 정복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창조 세계는 인간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청지기(관리인)에게 ‘정복’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복론에 대한 언급이

오늘 본문인 창세기 2장 15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구약학자 엘런 F. 데이비스에 의하면

‘경작하다’에 해당되는 원어는 ‘아바드’인데

이 번역은 이 단어의 기본 의미를 축소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바드’는 주된 의미는 “섬기다”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사용되면 ‘예배 드리다’가 되지요.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아바드)이니라”

(출 8:1, 20 ; 9: 1, 13)

땅이기 때문에 경작이라고 번역한다고 하더라도

정복하듯이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듯이 하는 것이지요.

이런 태도는 유목민들에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가축들을 사랑합니다. 그래도 먹어야 하니 도축을 하는데 도축 과정은 일종의 ‘의식’입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최대한 고통 안 느끼게 가축을 잡지요.

‘지키다’에 해당되는 원어는 ‘샤마르’인데

이 단어의 주된 목적어는 “토라”입니다.

토라를 지키다!

토라의 내용을 잘 살피고 따르듯이 자연을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또 다른 주된 의미는 “보호”입니다.

시편 말씀들에 나오지만

대표적으로 민수기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에도 나옵니다. 지키는 것은 소중한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정복론에 대한 경종입니다.

의역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자연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보호해야 한다.”

3.

자연에 대해 ‘두 말’을 한 성경의 입장을 종합하면 무엇일까요?

주지하시다시피 “동반론”입니다.

註1. 9월 3일 창조절 첫째주일에 전한 말씀나눔 중 “성경 해석” 부분을 요약했습니다. 본문은 창세기 2장 15절이었으며 제목은 ‘창조세계의 보전’이었습니다.

註2. 엘런 F. 데이비스의 성경 해석/ 송인규의 분류(숭물론, 정복론, 동반론)를 색다르게 정리해보았습니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