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에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전신)에 입학했다. 1학기 개학을 하면서 기숙사 배정을 받았다. 방은 심지 뽑기로 정하는 게 원칙이었다. 심지 뽑아 정해진 방으로 갔다. 비가 스며들었는지 외벽에 습기가 있고 약간의 곰팡이도 서려 있었다. 약간의 퀴퀴한 냄새도 났다.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언짢은 기분으로 잠시 방에 머물러 있는데 룸메이트가 들어온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평택에서 왔으며 이름은 윤옥균이라 했다.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룸메이트에게 제안을 했다. 기숙사 사감에게 찾아가서 방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 하자고... 룸메이트도 선뜻 동의했다. 우리 둘은 사감에게 가서 방이 맘에 안 드니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다. 사감은 방 배정은 심지 뽑기가 원칙이며 본인이 뽑은 방이니 그대로 사용하라며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방을 바꾸어 달라고 졸라댔다. 그러나 사감은 완강했다.
그때 룸메이트인 옥균이가 나서서 “알았습니다. 원칙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요.” 하면서 내 손목을 붙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끌려 나온 나는 룸메이트에게 화를 냈다.
“야, 그냥 물러나면 어떡하냐? 곰팡이 피고 냄새나는 방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옥균이가 말했다.
“물러난 것 아냐. 내게 생각이 있으니 좀 기다려 봐!”
서너 시간이 지난 후 옥균이는 나더러 다시 사감에게 가자고 했다. 나는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뭐하러 가냐? 가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은데 ...”
그러한 나를 옥균이는 다시 내 손목을 잡아끌며 사감에게 찾아갔다. 사감 앞에서 옥균이는 정중히 말했다.
“사감님, 저희들이 원칙을 따라 심지 뽑힌 방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희들도 원칙을 따르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호흡기가 약해서 환경이 좋지 못하면 기침을 하고 건강에 문제가 생깁니다. 저의 사정을 감안하셔서 방을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감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만 이내 방을 바꾸어 주었다.
기숙사 방에 돌아온 나는 옥균이에게 “너 실력 좋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네. 어떻게 방을 바꾸게 했어?”
옥균이가 말했다.
“원칙을 지키려 한다는 태도는 보여 줘야 되잖아. 그리고 사감의 입장도 존중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고... 세상 일은 생떼만으로 안 되는거야. 요령이 있어야지!”
나는 그 일을 통하여 삶의 지혜를 얻었다. 이보 전진을 위해서 일보 후퇴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그리고 상황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타당성 내지 정당한 사유를 제시할 줄 알아야 하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처세술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목회하면서 실력은 뛰어난데 처세술이 부족해서 목회에 어려움을 겪는 목회자들을 종종 보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례롭고 비둘기 같이 순경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