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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기도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4-01-31 (수) 07:24 2개월전 205  

1.


나를 위한 원초적 기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막 10:46~52)

2.

생활성서 2024년 2월호(”요한 신부를 위한 기도“)

구정모(예수회 일본관구 사제, 일본 조치(上智)대학교 신학부 교수)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으니까 대여섯 살 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서울에서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를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는 서울역사驛舍에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눈이 얼마나 많이 오던지 흩날리는 눈 때문에 앞이 흐려져서 손을 흔드시는 아버지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진 뒤 장항선을 탔습니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 속에서 바라다본 눈 내리는 서울의 풍경이 멎져 보였습니다. (중략)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기차가 우리를 신례원新禮院역까지는 데려다주었는데 거기서 집까지 이어주는 버스가 눈 때문에 운행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리저리 궁리하시던 어머니는 고모가 사시는 예산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약 십오 리가 넘는 눈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걸었는데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주위의 들판도 멀리 보이는 차령산맥의 산들도 온통 흰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이 나서 몇 시간을 걸었는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분명 미끄러운 눈길에서 몇 번인가 넘어졌을 텐데, 혹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꼭 잡았던 손 기운의 따뜻함과 약간은 슬퍼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 표정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우연히 바라본 어머니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으실 것 같았습니다. 눈물을 이미 흘리신 것인지, 아니면 눈이 녹은 물이 남은 것인지, 먼 곳을 바라보시는 듯한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이 적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아마도 무엇인가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장사가 잘 안 되던 아버지의 일일 수도 있었겠고 당시 어머니가 앓고 계셨던 병 때문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어머니 모습은 저에게 ’인간의 슬픔‘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것 같습니다. 눈부시게 하얗고 아름다은 신례원의 평원을 걸으며 저는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렸습니다.

’하느님, 엄마를 지켜주세요. 제가 앞으로 절대로 말썽부리지 않을게요.’

(중략)

그리고 오늘,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저는 같은 기도를 병석에 있는 한 사제를 위해 바칩니다. 예수회 수련원에 입회하던 날, 그 흰 눈을 보며 함께 입회했던 동기입니다.

‘하느님, 요한 신부를 잘 지켜주세요. 제가 앞으로는 절대 말썽부리지 않을게요.’

3.

너를 위한 원초적 기도

<슬며시 훔치다, 눈물을>


살아가면서 우리도 이럴 때가 종종 있습니다.

2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어머니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문득 삶의 무게를 크게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이 슬픔의 순간을 포착했고요.



”하나님, 우리 엄마를 지켜주세요. 제가 앞으로는 절대 말썽부리지 않을게요.“

소소한 말썽을 부리기 마련인 아이 때 드린 이 기도는 어른이 되어서도 ‘당신’을 위한 절박한 기도에서 재현됩니다. 표현만 어른스러워졌을 뿐이지요. 당신을 위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보니 저절로 나의 무엇을 하나님께 걸게 되는 것이며, 제삼자의 기도가 아닌 당사자의 기도에 가까운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나를 위한 원초적 기도라면, 너를 위한 원초적 기도는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 그분을 도와주세요. 제가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도 이 기도를 하셨겠지요.

[註] 오늘(31일) 새벽기도회 말씀새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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