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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냐 사람이냐

김거성 (경기북노회,구민교회,목사) 2024-02-13 (화) 06:50 2개월전 169  

"제도냐 사람이냐"

 

기독교의 초창기에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가 메시아다이러한 복음이 유대교 회당을 중심으로 해서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로마에도 전해집니다. 그 전파의 통로가 어디였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유대인 또는 유대교 회당을 통해서 시작된 운동이기 때문에 이 로마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대교 회당 시나고그를 중심으로 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클라우디오 황제(재위 주후 41-54) 때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유대인 중심의 소요사태가 발생합니다. 요즘 촛불 시위와도 같은 그러한 운동이 벌어집니다. 그 때문에 주후 41년 처음에 집회금지령을 내렸다가 이로 해결되지 않자 다음 단계 조처로 주후 49년 강력한 글라우디오 칙령이 나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18:1-2에 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5년 후인 주후 54년 네로 황제가 집권하면서 이 칙령을 해제하고 유대인들의 귀환이 허락됩니다. 그런데 클라우디오 칙령으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추방되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추방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네 이방인들끼리, 로마에 남아서 경건한 자들 중심으로 기독교 신자로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이방인들, 로마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합니다. 이제 그 사람들도 와서 함께 기독교 공동체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방인 신자들의 특징이 무엇이었을까요? 유대교의 선민사상(particularism)이나 개종자들에게 율법준수의 의무를 지우는 것, 할례를 강요하는 것 등은 유대교의 선교활동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반면 헬라화된 그리스도교인들은 율법 준수와 할례 등에 대하여 유대교처럼 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쉽게 이방인 동조자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교 율법, 예를 들어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문제와 관련해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이에 대해서 매우 강한 어조로 꾸짖었던 그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대노하여 그 표피만 잘라낼 것이 아니라 그 지체’(!)를 아예 잘라버리지 그러냐고 합니다.(5:12) 그 정도로 초대교회에서 경건한 자들로부터 시작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교의 율법 준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4:8-9에 보면, 과거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하였지만, 이제는 그 무력하고 천하고 유치한 교훈“, 즉 유대교 율법 준수라는 제도에 종노릇하려고 하는가 질타합니다. 이어 갈 4:10에서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됩니다.“라고 합니다. 즉 제도주의에 대한 사도바울의 강력한 반대입니다. 사도 바울이 속에서 막 부글부글 끓는 겁니다. 요즘 우리 흔히 하는 말로 뚜껑이 열렸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5:12)라는 아주 강한 표현으로 그 할례라는 제도, 나아가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는 생각을 반대한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속되거나 정결하지 않은 고기는 먹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행 11장을 보면 베드로가 유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버리게 된 과정을 예루살렘 교회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할례도 상관없다. 무엇을 먹고 먹을 수 없고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쓰지 말아라. 사도행전에 다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당신들한테 지금까지 선교하고 교회 이렇게 이룩하도록 이렇게 소위 창립자 역할을 했는데 내 수고가 다 헛되게 되었구나 무로 돌아갔구나라며 정말 한심스러워 한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4-15장에서는 뭐라고 말하는가요?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14:5-6)

사실 사도 바울 자신이 그런 입장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비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로마서에서는 전혀 그 톤이 다릅니다. 서로 용납해줘라, 서로를 받아들여라 하는 것이 이 본문의 요점입니다. 여기에서 유대교 율법 준수, 선민사상 이런 것들로 아이덴티티를 삼았을 그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더 이상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약한 믿음을 가진, 믿음이 약한 사람들조차도 서로 포용해 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아마 고린도에 있었을 텐데, 고린도에서 로마를 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도 바울의 생각은 로마 교회를 가서 로마 교회에서 선교 자금을 마련해가지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 스페인으로 가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서로 논쟁을 해서 로마 교회가 깨질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도 바울은 그것은 교회가 깨질 문제가 아니다, 이제 서로 용납해줘라고 말합니다. ? 이미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즉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가 드디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면서도 아직 유대교적인 바탕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자로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수자들을 용납해 주는 것이 신앙인의 본질적인 과제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생각입니다.

앞에 갈라디아 교회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안 했는가? 그때는 유대교 율법 준수가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였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느냐라고 할 때의 결정적인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는 사도 바울이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예수를 믿는 믿음에 더해 유대교 율법의 규정들을, 그 제도를 따르는 것 그런 문제는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교회에 분란이 되고 선교에 지장이 초래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14:1-12의 결론이 맨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업신여깁니까?“(10)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또는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누구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서로 비판하고 업신여기고 하지 말고 용납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12). 한 마디로, 해결책은 판단하지 말아라이것입니다. 바울은 롬 14장 본문에서만도 "판단하다"(κρίνω)라는 단어를 5, 그 뒤에도 3회나 사용하였습니다.

자기 아이덴티티를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거나 판단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지식사회학이 밝혀낸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본성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서로를 판단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해야 형제에게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을 것인지를 판단하라는 14:13의 권면은 이를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제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유대교 율법처럼 제도를 준수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구약성서 율법에 이렇게 되어 있는데 왜 이걸 안 하냐라며 비난하는데, 그 사람들이 대부분 할례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안 합니다. 율법 조항들 중에서 이거는 꼭 해야 된다, 안식일 이것은 준수해야 된다, 또는 뭐 하면 안 된다... 그런 몇 가지 율법 준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새 역사를 선포할 때 선언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호헌총회 선언서(1953.6.10.)인데, 여기서는 신앙의 본질을 주변적인 것들과 구분합니다. “1. 우리는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의 자유를 확보한다. 2. 우리는 전세계 장로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건전한 교리를 수립함과 동시에 신앙 양심의 자유를 확보한다.” 오직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의 자유, 이것은 분명한데, 그 이외에 주변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신앙 양심의 자유를 선포한 까닭일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도를 넘어서서 본질, 즉 사람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어떻게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냐?” 어떻게 제도가 사람의 주인입니까? 사람이 주인이고 제도는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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