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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 못 생긴 것, 느린 것

운영자 2007-03-14 (수) 21:44 15년전 5146  

 

 

작은 것, 못 생긴 것, 느린 것

(로마서7:22-24)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아멘.


이제 2003년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남겨놓았습니다. 늘 이맘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의 속도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도 덩달아 분주해 집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 '조금 느리게 가자!'하며 자신을 강제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 해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마무리'한다는 것과 '시작한다는 것'의 경계는 모호합니다만 그런 경계를 스스로 지음으로서 어떤 삶의 활력소를 얻게 됩니다.

오늘 저는 올 한 해 저를 붙잡았던 것,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붙잡을 것, 그래서 목회자이기 이전에 한 구도자로서 평생 붙잡고 살아가야 할 것만 같은 저 개인의 화두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작은 것입니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을 읽은 후부터 줄곧 나의 삶 한 방향을 이끌어 오던 이슈입니다. 그것을 패러디해서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서 맞닥뜨리는 현상들에 대해서 수 없는 반전의 질문들을 했습니다.
현실은 거대담론과 물신주의가 팽배합니다. 큰 것이 아니면 발붙일 자리가 없는 것 같고, 모두가 큰 것만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작은 것' 타령이라뇨?
그런데 저는 이것을 붙잡기로 했습니다. 작은 것이 주는 삶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면 그게 바로 귀머거리요, 장님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귀머거리의 귀가 뚤리고, 장님의 눈이 떠지는 기적이 저에게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올해 3월 20일. 그날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던 날입니다.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날이었습니다. 답답해서 산으로 나갔다 한라산의 '복수초'를 만난 날입니다. 그 이후 저는 작은 꽃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저 좋다고만 바라보던 꽃, 하나님이 지으신 그 작은 것들과 나름대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두 번째는 못 생긴 것입니다.

지난 1월에 농약을 치지 않은 귤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몇몇 지인들에게 보내니 못생겼어도 너무 맛있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너무'까지는 아닌데 아마도 농약을 치지 않았다는 것이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외모, 외형,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강조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명품을 입으려고 하고, 성형수술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사람은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가벼움과 경박함의 문화들이 바보상자 TV를 장식해 갑니다. 그리고 전염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내면에는 '못 생긴 것'에 대한 갈망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깊이 들어가 보면 우리가 '못 생겼다'고 하던 것들이 결코 못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못 생김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움, 바꾸어 이야기하면 연약함 속에 들어있는 강인함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변으로 밀려나있던 '못 생긴 것'을 통해서 '희망'을 보는 사람들, 신앙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면 '소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잘 생겼다' 혹은 '못 생겼다'는 것은 사회적인 편견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난한 자들, 떠돌이들, 병자들, 여성들, 어린이들 그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못 생긴 것'들 이었지만 오직 예수님의 관심은 그 '못 생긴 것'들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못 생긴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체가 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느린 것', 즉 '느릿느릿'에 관한 것입니다.

스피드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느릿느릿'살겠다는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이야기처럼 들려질지 모르겠습니다. '빨리빨리!'가 슬로건이 되어버린 현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빨리 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천천히 가는 것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산을 오를 때에도 천천히 가면 빠른 걸음으로 갈 때에 보지 못하던 수많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숨도 가쁘지 않습니다. 산행의 목적이 정상탈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을 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가는 길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에 눈길을 주는 일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작은 것, 못 생긴 것, 느린 것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씨름을 하면서도 늘 내 마음속에서는 로마서 7장 24절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말씀이 한탄처럼 울려나옵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이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지적인 희열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입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 악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큰 것, 예쁜 것, 빠른 것이 신앙보다 위에 있음으로 악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 그것을 누구부터 깨뜨려야하겠습니까?
자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갈등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갈등을 붙잡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긴장감이 없다면 삶도 신앙도 맹숭맹숭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율배반적인 말 같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것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못생긴 것이 결코 못 생긴 것이 아닙니다. 느린 것이 결코 느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 (총회본부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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