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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육과 고난 그리고 희망

김민수 (,,) 2007-11-26 (월) 11:51 15년전 4649  
  
▲ 들줄장미(용가시나무) 찔레꽃이 지면 피어나는 꽃입니다.
ⓒ 김민수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꽃의 세계는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그 꽃이 그 꽃 같은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꽃들이 있는데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들줄장미(용가시나무)’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름 없는 들꽃’이라는 흔히 쓰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몇 년간 꽃 사진을 찍으면서 단 한 번도 이름 없는 꽃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꽃, 처음 만난 것을 카메라에 담아오는 날에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합니다. 혹시라도 미기록종이면 이름을 뭐라고 질까 하는 그런 상상이죠. 그러나 도감을 펼치면 여지없이 제 상상은 깨지고 맙니다.

 

  
▲ 들줄장미 그들이 피어나는 땅은 척박합니다.
ⓒ 김민수
 

봄이 오는 길목에 찔레꽃이 진한 향기를 머금고 피었다 지었습니다. 물론 조금 게으르게 피어난 것들은 지금도 여전히 피고 있지만 거의 끝물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들줄장미를 처음 만난 것은 오름자락입니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오름에 올라 들꽃들을 찍으려 엎드렸는데 따가운 가시가 저를 사정없이 찌릅니다. 가시를 성성하게 달고 땅에 쫙 붙어 있는 줄기들이었는데 가만히 보니 하얀 찔레꽃을 닮았습니다. 그저 찔레꽃인 줄 알았습니다. 오름에서 자라다보니 위로 넝쿨이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기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찔레가 아니라 들줄장미(용가시나무)였습니다.

그렇게 그 이름을 알고 꽃술이며 이파리를 보니 닮은 구석은 많지만 달랐습니다. ‘아, 이런 차이들로 그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구나!’생각하며 아주 작은 차이점들을 다 구분해 내고, 꽃들마다 이름을 붙여준 이들의 수고에 감사하게 됩니다.

  
▲ 들줄장미 꽃을 찾아온 손님
ⓒ 김민수
 

용가시나무와 들줄장미라는 이름 중에서 저는 ‘들줄장미’가 더 마음에 듭니다. 어차피 장미과의 꽃들에는 성성한 가시가 있으니 꼭 가시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들에 놓여진 줄처럼 뻗어가며 자기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니 들줄장미라고 하면 기억하기도 편리할 것 같아서입니다.

찔레에 대한 전설은 마음 아픕니다.
고려시대 몽골족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예쁜 처녀를 바쳐야만 했는데 그 중에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답니다.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찾아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이미 동생과 부모는 생사를 알 수 없었고, 찔레는 너무 슬퍼 목숨을 끊었답니다.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며 다녔던 곳마다 피어난 꽃이 찔레꽃이라고 전해집니다.

찔레꽃의 꽃말은 ‘고독’입니다.
뭔가 애잔함이 묻어나는 꽃, 그래서 봄날 새벽 찔레꽃의 향기가 뜰에까지 들어오면 ‘찔레가 엄마 찾아 여기까지 왔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찔레꽃이 진 후에 바통을 이어서 피어나는 찔레를 닮은 꽃, 어머니 대지를 붙잡고 피어나는 꽃이니 들줄장미는 찔레꽃의 마음을 담아 피어난 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 들줄장미 내년에도 같은 꽃이 피겠지요.
ⓒ 김민수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절기가 다가왔습니다.
거리는 성탄장식과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만 그 곳에 과연 우리에게 새 생명과 희망을 주시는 아기 예수는 없고 상술만 남아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 그것이 성탄입니다. 하늘 높은 보좌 위에서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시어 인간이 되신 사건, 그를 통해서 어둠의 세상에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신 사건, 그것이 성탄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임과 동시에 가장 극명하게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려는 당신의 고뇌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찔레꽃의 꽃말 ‘고독’과 성탄의 의미는 연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들줄장미나 찔레에 성성한 가시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때의 가시면류관을 연상시키는데다가 그들의 향기까지 그윽하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듯하여 더 정겹고, 신앙인들이 묵상하며 바라봐야할 꽃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꽃은 저마다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찔레꽃이나 오늘 소개한 들줄장미의 향기는 은은하고, 새벽녘에는 그 은은한 향기가 온 마을을 감싸고 돌 때가 있습니다. 화사하지 않은 꽃임에도 불구하고 향기로 인하여 그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인 우리들, 요즘은 너무 자신을 드러내는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삶으로 신앙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신앙을 살아가려 하고, 그렇게 삶과 분리된 신앙이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조차 자각하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아닌지요?

 

  
▲ 들줄장미 그 꽃의 향기는 찔레향기와 닮았습니다.
ⓒ 김민수
 

성탄, 그것은 하나님의 고뇌의 결과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거저주신 은총이요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나누는 것, 나눔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를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겨울입니다.
추위로 인해 고난당하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나눌 것, 그래서 그들에게 아직도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세상은 살만하다고 하는 희망을 보게 할 선물을 대림절기에 준비해 아기 예수께 선물로 드리는 이번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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