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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는 건가!

오청환 (서울동노회,강동교회,장로) 2008-06-25 (수) 15:12 15년전 5069  

어디로 가는 건가!

                                                     (출애굽에서 아모스로)


                                                                                                                오 청 환 장로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심을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보아왔고 또한 우리의 입술을 통한 고백으로 시인하여 왔다. 하나님이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이 땅에 허락하시고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통하여 이루어 왔고 이루시고자 하시는 바에 대하여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볼 때이며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된 강동교회의 30년을 뒤돌아보면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리하여 본다.


기장의 의미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로고의 “기“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기장의 약자를 상징하고 있으며 화살(촉)로서 희망의 전진과 출애굽, 본 교단의 전진성(진보성)과 새 질서를 향한 탈출과 해방을 상징한다고 총회홈페이지에 설명되어있다.

화살은 그 운동력이 있어야 한다. 전통(箭筒)에 담아있는 화살은 존재가치의의미를 설명하기 힘들다. 화살은 활의 시위를 떠나서 목표를 향하여 날아갈 때 진정한 화살의 존재가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날아가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강력한  동력이 있을 때 목표를 타격하며 목적의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살은 그 촉이 양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쉽게 알고 있듯이 균형성이라고 말하는데 그 균형이란 전통과 새로움의 균형, 좌와 우의 균형 노와 소의 균형 등등이 있는데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명분아래 화살을 가볍게 한다고 한쪽 날개를 버리는 우를 범하여 화살이 목표를 향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꽂혀서 오히려 애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았나 뒤돌아볼 필요성을 느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출애굽의 사명

1953년에 기장이 출발하면서 출애굽의 심정으로 이 땅의 신음하는 민중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오는 사명을 감당하였는데 그 과정 속에 정말 감내하기 힘든 역경을 이기며 우리를 이끌어온 모세와 여호수아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세가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 이스라엘백성으로 하여금 야훼를 알게 하고 애굽의 정치적, 육체적 핍박으로부터 해방을 하여 주면서 이스라엘의 거듭된 과거로 회귀 속에 노출된 죄 성에 대하여 징벌을 통하여 회개의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값없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하여 그들을 살려 오시지 않았던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40년은 고통 속에 부르짖는 신음에 대한 응답이셨고 죄에 빠지는 인간적 속성에 대한 경계를 통하여 회심을 유도하여 용서를 베푸심을 알게 하였으며, 값없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하여 생명을 살려주시면서 생명의 기본에너지인 음식의 축적을 철저히 금지하시며 오로지 은혜는 하나님만 베풀 수 있고, 받은 그 은혜를 축적하여 부의 축적으로 하나님의 평등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셨다.


1953년 이후 반독재 항거와 그 이후 통일 운동을 통하여 기장은 활발한 사회적 참여를 통하여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해왔음을 자부하지만 몇 가지 뒤돌아봐야 할 점들이 있다.

기장이 타 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대하여 너무 소홀하게 생각했고. 교단의 상층부는 예언자의 길을 가고, 평신도는 이단이라는 눈총 속에 교회를 지켜오면서 뚜렷하게 기장의 의식을 갖지 못했으며 타 교단처럼 뜨거움도 없는 그저 엉거주춤한 모습 이였던 것 같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타교단의 확장기간에 기장은 정체되었으며 개 교회들은 소형교회에 머무는 현상이 고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화살이 교단의 지도부이며 목회자라면 활은 교단소속원인 기장의 성도일 것이다. 또한 화살촉의 양 날개처럼 서로 반대되는 사고에 대하여 극한 대립이 아니라 촉 끝으로 차차 일치점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일치성을 향하여 나가야 멀리 날수 있고 목표물을 강하게 타격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포용성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뒤돌아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선배들이 출애굽의 역경 속에서 이 나라와 이 교단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정의와 평등과 사랑이 넘치는 가나안을 꿈꾸어 왔을 텐데 지금 우리는 과연 가나안에 도착이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과정 속에 아직도 광야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부 정부관련 기관과 정치집단의 주변 그리고 시민연대의 주변에 있는 분들이 이시대의 화살촉의 역할을 맡은 것 인지, 아니면 그분들은 우리와 별개이고 우리 기장에서는 어딜 향해 날아가는 화살인지 평신도가 쉽게 이해할 내공이 없기에 혼란스러워 한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받은 은사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하나님의 청지기 역할을 하는 우리 믿는 지체들은 서로 존중하며 교회에서 사회에 맡은 직분에 대하여 충실하며 협력하여 선을 이룰 줄 알아야 교단의 일체성을 통하여 정체성의 접근이 가능하리라 본다. 출애굽의 광야생활은 인간적 본성에서 신적본성의 복구와 종의 본성에서 인격의 복구와 분열에서 이스라엘에 역사하시는 야훼하나님을 조상의 하나님에서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신앙의 공동체로의 일체성확립하여 가는 과정이 아니었던가.


아모스의 목소리

이제는 출애굽을 지나 아모스 선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려야 하지 않을까. 못된 무리에 의한 정치적 육체적 억압의 과정 속에서의 신음 소리를 하나님이 들어 주셨다면 가나안에 들어가 민족이 분열되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값없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나누어먹으며 쌓아둘 수 없었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평등을 잊고 백성에게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가난한자들을 겁탈하다가 결국은 자신들이 약탈당하고 물질의 바알신 앞에 무릎을 꿇고 사치하는 삶을 살던 북 왕국이 멸망의 심판예고에 귀기우리지 않다가 멸망의 심판을 받지 않았던가.


지금 이 땅에는 단군 이래 최고의 풍요를 구가하는 사회가 되었으나 그것은 어떻게 보면 수치적인 풍요요 진정한 풍요라고 말하기에는 신음하는 노동자가 너무 많다. 신자유주의의 기치아래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하여 자유시장(FTA)의 체계속에 저개발국가와 초강대국가가 동등한 게임을 해야 하는 약자보호의 원칙은 고사하고 약자강탈의 모습으로 국가간의 힘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이윤창출을 위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유도되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생소한 용어의 고용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의 “절반”이 “절반”의 임금으로 살아가고 있고 IMF이후 비정규직이 꾸준히 늘어 2007년 현재 880만(56.5%)에 달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의 비율이 70%라고 한다. 그리고 OECD 30개 회원국중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2002년 이후에 이루어진 신규고용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차후에 이 땅에는 갈등만 증폭되어가는 불평등의 만연으로 정치적 억압보다도 더 무서운 경제적 억압이 대다수의 국민을 압박할 것이다.


아모스가 지금 이 땅에 다시 왔다면, 아니 아모스서를 읽고 묵상하면서 기원전 750년 전에 하나님이 뽕나무를 키우는 농부인 아모스에게 임하여 세미한 음성으로 예시한 말씀을 우리는 느낄 수가 없을까. 독재에서 출애굽을 시도한 기장의 화살은 방향성을 잃고 정치의 언저리를 맴도는 정치미아가 되지 않고 이제는 국민의 기초욕구인 생존성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기장의 갈길

교회는 하나님을 향하는 해바라기가 되어 말씀보기와 기도하기와 찬양에 열심이면서 영성이 풍부하고 성령의 임재를 갈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시대의 요청에 따르는 하나님의 지체되는 모습을 교회는 보여야 하는데 지금은 이웃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구제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경제적 구조에 의한 약자의 삶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믿으며 고백하고 창조된 세상을 이 시간에도 역사하심에 아멘으로 동참하며 도구되는 삶을 살아가는 주의 지체들이 되어야한다. 여러 가지 모습의 각 지체들인 우리는 서로 존중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구원의 방주를 각 제단이 있는 위치에서 충실히 수행해야한다.

그때,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 기장의 사회적 집단화로 보는 착시를 고칠 수 있고 구성원들의 영성에 의하여 지역에서 전도의 여건이 조성되면서 교단이 활성화되고 활성화된 교단의 메시지에 기장의 성도가 믿음의 방향을 같이할 때 살아있는 운동력이 있어 기장의 화살은 힘을 가지고 정확히 목표를 향하여 날아갈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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