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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그리스도교유적지 순례 기행문(중)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08-10-15 (수) 23:32 15년전 5457  

일본26인 성인순교지

다음 행선지는 나가사키역 건너편 니시자카(Nishizaka)언덕위에 자리한 일본26성인순교지(聖人殉敎地)와 그 기념관이다. 임진왜란 막바지인 1596년 12월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스페인, 멕시코, 포루투갈 신부 등 외국인 6명과 일본인 신자 20명을 교토에서 체포해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으로 끌고 와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 그 중에는 어린이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교토에서 체포한 그리스도인을 굳이 나가사키까지 끌고 와서 죽인 이유는 당시 큐슈지역 그리스도교 세력의 확장에 위협을 느끼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큐슈지역에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언덕에 오르니 26명의 성인(聖人)을 부조한 기념비가 이곳이 그들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일본26성인기념비>

이들 26인의 순교이후 이 곳 니시자카언덕에서는 그 후로도 무려 600여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26명의 순교자는 1862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 성인(聖人)으로 시성(施聖)되었고, 시성 100주년을 기념해 1962년에 이곳 니시자카언덕에 일본26성인 기념관과 일본26성인 기념교회를 세웠다. 기념비를 둘러보는 가운데 진주에서 목회하시는 명목사님이 다가와 눈시울이 발갛게 충열된 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 목사, 저 아이들을 보니까 참으로 마음이 아프구먼, 아이들을 보니 정말 마음이 아파”

그랬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록에 보면 당시 20명의 일본인순교자 가운데 3명이 어린아이인데 당시 나이가 12, 13, 15살이었다고 한다. 기념관을 들어갈 때 받은 입장권에 26성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세 아이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기념비에 부조된 성인상 왼쪽 7번째에 아이 이름이 St. Thomas Kozaki, 기념비 오른쪽에서 아홉 번째와 열 번째 두 아이가 서있는데 오른쪽에서 아홉 번째가 St. Luis Ibaraki, 열 번째가 St. Antonio다. 이 중 Thomas Kozaki와 Luis Ibaraki는 아버지와 함께 순교 당하였는데 기념비 오른쪽 네 번째의 St. Miguel Kozaki, 오른쪽 여섯 번째의 St. Paulo Ibaraki가 그들의 아버지이다.

                                               <St. Antonio와 St. Luis Ibaraki>

26성인 가운데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인물은 기념비 왼쪽에서 아홉 번째인 St. Leon Karasumura라는 인물인데 이 사람은 바로 조선 사람이다. 그 뿐 아니라 26성인 가운데는 두 명의 조선인이 더 있다.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 St. Paulo Ibaraki가 바로 Karasumura의 친형이고 오른 쪽에서 아홉 번째 어린아이 St. Luis Ibaraki가 Paulo Ibaraki의 아들이다. 일본 최초의 순교자 26명의 성인(聖人) 가운데 세 명의 조선인이 포함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 복음을 접하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바로 그랬다.

기념비 뒤편에 자리한 기념관엔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편지 등 선교사들의 유품과 마리아관음상과 같은 당시의 신앙유물들, 그리고 당시의 박해상황을 그린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난 뒤 나는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26성인기념성당인 성필립보교회당에 들어가 잠시 교회당 안을 둘러 본 후 잠깐 자리에 앉아 기도드리고 일어섰다.

오우라텐슈도

이제 우리 일행이 가야 할 곳은 오우라텐슈도(오우라천주당)이다. 오우라텐슈도의 정식명칭은 26성인순교자 성당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로 지어진 성당이다. 1953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오우라텐슈도>

오우라텐슈도가 일본 그리스도교역사에서 중요한 까닭은 이 성당에서 이른바 “신자 재발견”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637년 시마바라의 난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교회조직이 자취를 감춘 이래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감춘 체 250년 가까운 세월을 가쿠레 기리시단(Hidden Christian)으로 신앙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1865년 그리스도교금지령이 풀리고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오우라성당이 건축되자 우라카미지역에 사는 신자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이른바 “신자 재발견”이 이루어졌다. 1868년 당시 나가사키에 사역하던 신부의 보고에 따르면, 나가사키 부근에 대략 2만 명에 달하는 가쿠레 기리시단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금지령이 해제되자 이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게 된 것인데 일본 기독교회사는 이를 두고 “신자 재발견” “기독교의 부활”이라고 한다. 오우라텐슈도는 바로 일본 기독교 부활의 현장이라는 교회사적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 시카이로(四海樓)

도중에 한 번 전차를 갈아탄 후 오우라텐슈도시타(大浦天主堂下)역에 내렸다. 교회당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기 전 우리 일행은 언덕길 아래에 위치한 시카이로(四海樓)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해루는 明治32년(1900년)에 창업한 1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식당이다. 우리 일행이 이 식당을 찾은 이유는 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집에서 즐겨 먹는 짬뽕은 원래 중국 본토음식이 아니라 메이지시대 일본에 유학 온 배고픈 중국유학생들을 위해 시카이로의 주인이었던 진평순(陳平順: 1873∼1939)이 개발한 지나우동(중국우동)이 시초라고 한다. 이 지나우동이 훗날 이름을 “찬퐁”으로 바꾸고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 되었다. 빨간색의 얼큰한 국물 맛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짬뽕과는 달리 나가사키짬뽕은 뽀얀 국물에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5층 건물 전체가 식당인데 5층에 오르니 통유리로 나가사키 항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 우선 시원하다. 식당은 만원이었다.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올린 후 20여분 정도 기다린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진짜 원조 짬뽕의 맛은 어떨까? 잔뜩 기대에 부풀어 짬뽕이 나오길 기다렸다.

                                                         <사해루의 나가사키 짬뽕>

드디어 짬뽕이 나왔다. 과연 듣던 대로 우선 양이 많아서 보기에도 흐뭇하고 국물이 약간 느끼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 입맛에는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좋았고 무엇보다 해산물이 듬뿍 들어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2002년에 오우라텐슈도를 찾아왔다가 이 사해루에 짬뽕을 먹으러 왔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짬뽕을 먹지 못하고 입맛만 쩝쩝 다시고 돌아서야 했었다. 식당을 찾은 시간이 점심영업시간이 끝나고 저녁영업을 준비하느라 영업을 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2002년엔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인 신치중화가(新地中華街)의 어느 식당에서 짬뽕을 시켜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는 별스럽게 맛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었는데 오늘 사해루에서 먹는 짬뽕은 확실히 그 맛이 다르다. 일개 식당에서 개발한 메뉴가 그 지역의 대표음식이 되어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오게 된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흡족한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와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 오우라텐슈도로 올라갔다. 오우라텐슈도로 오르는 언덕길 좌우로는 나가사키의 명물 카스테라를 파는 상점과 예쁜 공예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데 시간을 두고 둘러보면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오우라텐슈도 내부를 둘러보고 교회당 바로 옆의 옛신학교 건물을 개조한 자료관을 둘러보았다. 자료관을 나와 좁은 길을 따라 구라바엔에 도착했다.

 

구라바엔(Glover Garden)

구라바엔(Glover Garden)은 개항 초기 나가사키에 와서 큰 사업으로 성공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업가 토마스 브레이크 글로버의 저택을 공원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나가사키 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미나미야마테언덕에 지은 19세기 서양식 주택과 아름다운 정원이 볼만하다.

                                                   <구라바엔의 글로버저택>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가 바로 이곳 구라바엔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비부인 역할을 30년이나 했다고 하는 소프라노 타마키 미우라(Tamaki Miura)가 어린아이와 함께 다정히 서 있는 동상이 정원 한쪽에 있었다. 구라바엔을 둘러보고 언덕길을 내려와 우리 일행은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나가사키의 일정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서둘러 시마바라로 가야 한다.

시마바라는 나가사키에서 두 시간 정도 기차로 가야한다. 이사하야(Isahaya) 역에서 내려 시마바라 간선철도로 갈아타고 저녁 7시쯤 미나미시마바라역에 내렸다. 완전 시골분위기가 역력했다. 겨우 저녁 7시인데도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자동차만 간간히 지나간다. 이렇게 시골일 줄은 몰랐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서둘러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일본여행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히메마츠야(Himematsuya)라는 시마바라 향토전문음식점엘 찾아갈 요량이었다. 호텔 프론트에서 전화로 예약을 해주었다. 택시로 5분정도 가니 시마바라성 정문 근처에 식당이 있었는데 영업종료시간이 8시라 그런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 1층엔 우리 외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시마바라의 전통음식이라는 “구조니”라는 음식을 시켰는데 책자에 의하면 야채와 어묵, 연근과 고기, 그리고 떡살 등을 넣고 끓인 음식이라고 한다. 20분 정도 기다리자 뜨거운 뚝배기 같은 그릇에 내용물이 가득 담긴 “구조니”가 나왔다.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하고 깔끔한 국물 맛에 여러 가지 야채와 어묵, 고기를 건져먹는 맛이 괜찮았다. 모두 입맛에 잘 맞는다며 밥까지 시켜서 한 그릇씩 다 비웠다. 식당을 나와 시마바라성 야경을 찍고 걸어서 천천히 호텔까지 돌아왔다. 호텔로 오는 도중 길가에 조용하고 예쁜 찻집이 있어 일본식 다다미방에 앉아 커피와 차를 한잔씩 시켜놓고 일본 시골 소도시에서의 고즈넉한 밤을 만끽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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