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와 30분정도 버스를 기다린 후 구치노츠(Kuchinotsu)행 버스에 올랐다. 구치노츠는 시마바라반도 최남단에 있는 포구로 그 곳에서 페리를 타고 아마쿠사로 건너가야 한다. 이제 남은 일정은 구치노츠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페리를 타고 아마쿠사해를 건너 아마쿠사로 건너간 다음에 혼도시에 있다는 아마쿠사 시로 기념관을 찾아가는 것이다. 아마쿠사 시로 기념관이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 찾아가는 그리스도교유적지이다. 기념관 관람이 끝나면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일만 남은 셈이다. 하라성 유적지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쯤 달려 구치노츠에 내렸다. 아마쿠사로 가는 시마테츠 페리표를 끊은 다음 터미널 옆 식당에 들어가서 라멘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때웠다. 아마쿠사까지는 페리로 30분 걸린다고 한다.
아마쿠사
오후 2시 30분, 페리를 타고 아마쿠사해를 건너 맞은 편 아마쿠사에 3시에 내렸다. 구치노츠보다도 더 작은 그야말로 시골포구다. 배에서 내리자 터미널마당에 아마쿠사 동상이 서 있다. 터미널 마당 한 켠에 택시 몇 대가 서 있을 뿐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너무도 한적하다. 우리 일행 중 유일하게 일본어가 되는 정목사님이 가게에 들어가 아마쿠사 시로 기념관을 찾아가는 길을 물었는데 우리는 너무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아마쿠사 어디쯤엔가 있을 줄 알았던 기념관이 차로 한 시간 쯤 가야하는 곳에 있다는 것과 더욱 문제는 그리로 가는 버스가 무려 두 시간을 기다려야 온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순간 막막했다. 두 시간이나 기다려 버스를 타고 아마쿠사 시로 기념관을 찾아간들 그 때는 이미 문을 닫았을 시간이니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될 터이고,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가자니 차 한 대당 우리 돈 20만원을 내라 하니 밥 사먹을 돈도 모자랄까 걱정하고 있는 마당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정목사님이 택시기사와 흥정한 끝에 봉고 한 대를 우리 돈 15만원에 타기로 결정을 보았다. 아마쿠사 시로 기념관에 들러 기념관을 관람한 후 후쿠오카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는 미츠미(Misumi)역까지 데려다 주는 조건이었다. 비록 15만원이라는 예상외의 경비가 들기는 했지만 봉고택시를 이용하기로 결정한 우리의 선택은 분명 잘한 선택이었다. 비록 마감시간에 쫓겨 기념관을 차분하게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기념관을 본 후 미츠미에서 기차를 타고 구마모토를 거쳐 후쿠오카에 저녁 7시 늦지 않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봉고택시를 이용하기로 한 신속한 결정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택시 두 대에 40만원을 요구하던 일본택시기사와 가격흥정을 벌여 봉고 한 대 15만원을 이끌어낸 정목사님의 공로가 크다.
아마쿠사 시로 기념관
아침에 호텔을 체크 아웃할 때 프론트 직원에게 아마쿠사 시로 기념관의 위치를 물었더니 하나같이 정확한 위치를 모른 체 구치노츠에서 배를 타고 아마쿠사로 건너가면 된다고만 가르쳐 주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게 나의 실수였다. 나중 알고 보니 기념관은 우리가 기차를 탈 미츠미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가미아마쿠사시(上天草市)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미아마쿠사시의 아마쿠사 시로 기념관>
폐관 30분 전에 간신히 기념관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우선 1층 영상홀에서 입체안경을 쓰고 3D영화 “내 마음 속에 살아있는 아마쿠사 시로”라는 15분 정도 되는 영화를 보았다. 그 흔한 영어자막 하나 없어 대충 영상으로만 내용을 짐작하며 봐야했다. 한 젊은 무사의 눈을 통해 아마쿠사 시로의 시마바라 난이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를 소개하는 내용인 듯 했다. 1층 전시관엔 그리스도교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전국시대 실권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일본에 복음을 전한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형상이 실물크기로 제작되어 전시되어 있었고, 하라성 전투장면들이 미니어처로 제작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2층엔 조용한 음악과 편안한 빛의 조명아래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명상홀이 있었다.
기념관을 나와 미츠미역에 도착하자 기차가 출발하기 6분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다음 기차를 타기 위해 꼼짝없이 역에서 1시간을 기다려야 할 뻔 했다. 미츠미(三角)-구마모토(能本)간을 운행하는 간이열차를 타고 1시간 걸려 구마모토 역에 도착했다. 구마모토에서 후코오카(하카타)까지 급행열차로 바꿔타야 하는데 구마모토 역에 도착하니 하카타행 열차 아리아케가 출발하기 4분전이었다. 또다시 황급하게 기차를 옮겨 탔다. 기차가 출발했다. 후쿠오카 도착예정시간이 저녁 7시 8분이다. 중간에 돌발 상황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저녁 늦지 않게 후쿠오카로 돌아갈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미츠미나 구마모토에서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탈 수 없었다면 아마 밤늦게라야 후쿠오카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캐널시티에 위치한 호텔에 짐을 풀고 지하 식당가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시내구경에 나섰다. 어제 오늘 시골로만 돌다가 도시로 돌아오니 새삼 눈이 휘둥그레졌다. 확실히 도시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여행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하는데 아무 할 일도 없이 그저 도시의 밤거리를 이리 저리 걷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다.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10/9(목) 다시 부산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톈진으로 갔다. 환전을 하고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은행 문이 열기 전이라 톈진을 이리 저리 걸으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하고 아침시간 벼룩시장처럼 잠깐 영업하는 Breakfast Cafe에서 아침요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사진에 담았다.
<텐진거리의 Breakfast Cafe>
프론트에서 알려준 대로 미쓰비시 은행을 찾아 환전을 한 후 백화점과 플라자 몇 곳을 구경하며 선물을 구입하고 Tower Records에서 일본의 신세대 바이올린 연주자 에미리 미야모토(Emiri Miyamoto)의 앨범을 두 장 구입했다. Emiri Miyamoto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교향악단의 오보에 연주자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한 실력파 연주자로 14살 때 독일 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1위를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아직 앨범을 구할 수 없는 연주자인데 Tower Records에서 보니 그녀의 두 번째 앨범 Tears가 클래식앨범 판매 차트 1위에 올라있는 걸로 보면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라이센스음반이 곧 발매되리라 생각한다. 앨범재킷을 보면 미모 또한 대단하다. 탁월한 음악적 재능과 완벽한 미모! 하나님께서 이렇게 몰아주시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든다.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점심식사는 캐널시티 지하의 유명한 이치란(一蘭)라멘이었는데 별로 반응들이 좋지 않았다. 돼지뼈를 고아 만든 돈꼬츠라멘의 국물이 영 느끼한 모양들이다. 식사 후 택시 두 대를 나눠 타고 하카타항으로 출발했다. 3박 4일 일본에서의 짧은 여정이 모두 끝났다. 너무 일정이 빡빡해서 모처럼의 여행이 여유로운 쉼이 되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고된 점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유를 만끽하며 동역자들과 함께 유서 깊은 신앙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동역자들과 함께 이런 여행을 자주 하고 싶다. 정대성, 명기식, 최재웅, 김성철, 문경호, 박영도 목사님과 함께 한 이번 일본그리스도교유적지 순례는 오래도록 추억할 뜻깊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08. 10. 15 김성 목사(남해 당항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