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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포구의 가로등 이야기

김민수 (,,) 2007-07-30 (월) 08:43 16년전 5723  
   
ⓒ 김민수
나는 어느 바닷가 작은 포구에 있는 작은 가로등이랍니다. 등대의 불빛보다는 작은 빛이지만 밤이면 어김없이 작은 포구를 밝히는 작은 등불입니다. 밤하늘의 별이 쏟아질 것 같이 아름답고 평온한 밤도 있었고, 때론 사나운 파도가 내 몸까지 덮쳐오는 무서운 밤도 있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아름답고 평온한 밤만 사랑했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밤이든 다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답니다. 두 눈 부릅뜨고 밤을 지켜도 누구 하나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이가 없는 그런 날도 있었지만 그것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안 이후 나는 내가 그 작은 포구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다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어느 화창한 봄날, 나른한 몸을 봄 햇살에 맡기고 깜빡깜빡 졸고 있을 때 갈매기 한 쌍이 찾아왔습니다. 아마 그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어둠이 깔리기 전까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니?"
"저 바다, 저 하늘에서 왔어."

"바다, 하늘?"
"그래, 저 넓은 바다와 저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다 쉴 곳을 찾아온 것이지."

"나 같이 작은 가로등도 쉴 곳이 되니?"
"그럼, 날개를 접고 앉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쉴 곳이 되는 것이지. 더군다나 너는 그리 크지 않아서 많은 갈매기들이 앉을 수 없으니 조용히 사색하며 바다를 바라보기엔 정말 좋은 곳이지."

"그래, 바다와 하늘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니?"
"너도 매일 보는 것이 바다와 하늘이 아니니?"

"나는 늘 한 곳에서, 한 방향으로만 바라본단다. 가끔은 지겨울 때도 있지."
"변함없이 그곳에 있다는 것, 그것도 중요한 일이야. 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거든."


ⓒ 김민수
갈매기는 가로등에게 바다 위, 하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파도가 방파제에 부닥쳐 '철썩!'거리는 소리는 갈매기들의 이야기를 감미롭게 하는 음향이 되어 가로등의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바다는 무척이나 넓은 곳이었어. 어떤 날은 하루종일 날아도 밤을 새워 날갯짓을 했지만 바다의 끝까지 갈 수 없었어.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바다의 끝은 없다고 해야겠지. 끝난 곳은 언제나 시작이었으니까 어디가 끝이고 시작인지 알 수 없었지. 바다가 시작되는 곳부터 끝나는 곳까지 날아보는 것이 나와 함께 지금 이곳에 쉬는 갈매기의 꿈이었단다. 그러나 어느 날 그 꿈을 접었단다. 꿈을 포기한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어느 곳이나 시작이 될 수 있고, 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그때부터 우린 하늘을 생각했어.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보자고 했었던 거야. 그러나 그것도 얼마 안 되어 알게 되었어. 가장 높은 하늘과 가장 낮은 바다가 만나는 그곳에서 우리는 바다와 하늘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거야. 하늘의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이고 가장 높은 곳이 가장 낮은 곳일 수 있다는 것, 바다와 하늘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통한다는 것, 서로를 껴안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 후 우리는 가장 가까운 것, 내 곁에 있는 것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 껴안아주는 것이 바다와 하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고, 사랑하므로 서로 보듬어 안아주는 모든 것들은 바다와 하늘의 마음을 품고 있음도 알게 되었던 거야."

가로등은 그들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작은 포구의 가로등이 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걸음도 걸어본 적이 없었기에 갈매기들이 보았던 것들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와 하늘이 하나라는 것,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도 하나라는 것, 그것은 서로 보듬고 안아주는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것들,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보듬어 안고 살아가면 누구나 바다와 하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때론 원하지 않는 아픔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까지 말입니다.

갈매기는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것은 참 아픈 일이더군. 사랑하면 좋은 일들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더 깊은 상처를 보듬고 살아야 할 때가 많았어. 물론 지금은 그 상처까지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고백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렇게 고백할 수 있더군. 그 당시만 해도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 껴안지 않았을 거야. 갈매기가 바다의 마음, 하늘의 마음을 품으면 뭣하겠어. 그냥 난 갈매기에 불과한데' 했었지. 그러나 바다와 하늘만 그들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갈매기인 나도 저 갯바위의 들풀 하나도 하늘의 마음, 바다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 그리고 많은 것들이 이미 바다의 마음, 하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가로등은 갈매기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나도 바다의 마음, 하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거니?"
"물론, 네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까지도 넉넉하게 껴안고 사랑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야. 그리고 넌 이미 어둠을 밝히는 작은 빛이니 어느 누구보다도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온전히 그렇게 될까?"
"지금까지 네가 끝없이 배척하던 것을 사랑할 수만 있으면 된단다. 예를 들면 폭풍우 치는 밤 같은 것이겠지. 그리고 이렇게 불청객처럼 찾아온 날갯짓 하는 새들을 품는 것도. 그냥 너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때 바다의 마음, 하늘의 마음을 품는 거야."

그 이야기를 남기고 갈매기들은 "안녕!" 하고 저 넓은 바다와 맞닿은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가로등은 그날 이후 어떤 밤이라도 껴안아 주었고, 때론 술에 취해 자신에게 발길질하고 배설하는 이들까지도 진심으로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가로등은 바다의 마음, 하늘의 마음을 품었지만 그 자신도 자기가 그런 마음을 품었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 가로등은 작은 섬의 작은 포구에서 오늘밤에도 어김없이 깜빡깜빡 졸면서 밤을 지킬 것입니다. 혹시 작은 포구의 가로등이 아니더라도 새들이 날아와 쉬는 가로등을 보신다면 그가 바로 하늘의 마음, 바다의 마음을 품고 있는 가로등인 줄 아세요.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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