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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에 관하여,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0-12-14 (화) 11:20 13년전 5940  
 
1. 결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한 한분이시다.(요10:30)
이것이 성경에서 삼위일체에 관해서 말하는 결론이다. 또한 나의 결론이고 삼위일체론의 내용이다.
( 이것을 받아드리고 승리의 삶을 사시는 분은 마지막 부분만 읽으시면 됩니다. 자칫 불필요한 혼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삼위일체 내용을 잘 이해한다면 더욱 부요하고 가장 파워풀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좀 복잡하고 어려운 듯하여 오히려 혼돈을 줄 수 있기에 이 말씀을 드린 것이다. 보시려면 좀 어려울지도 모르는 글이므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으셔 이론적으로 잘 정리되어 영적 부요와 파워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 신앙고백은 부요함과 새 힘을  얻어야 한다.
세상의 수학적인 시각에서 셋이 하나가 되는 것은 수학적으로는 아마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기에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태양, 꽃, 한 손가락의 세 마디, 물의 액체 기체 고체 등의 예를 들어서 이해시키려 한다.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영적 다이나마잍이 터지는 듯한 감동과 파워를 느끼지 못하고 단지 초 고등 수학 이론으로 받아드리고 이해한다. 즉 수학은 수학이로되 세상 수학은 아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수학적 지식이다. 영적 부요와 파워를 느껴야 하는데 대부분이 머릿속으로 어떤 공식을 받아드리는 것을 깨닫고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수학 공식적으로 이해하면 나름대로 이해는 되지만 그리고 굳건한 의지적 신앙을 갖게도 하지만 파워를 느끼기 위해서는 신앙적으로 그 풍부함을 이해하고 고백하여야 한다. 그 귀한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새 힘을 얻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그 내용에 힘이 없는 것인가? 즉 그 내용때문인가 아니면 내용을 이해를 못하는 것인가?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인가? 사실은 모두가 믿고 고백하고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3. 배경
읽은 바에 의하면,
“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가 공인된 이후 기독교의 통일된 이론을 모으기 위하여 니케아라는 도시에서 종교회의를 열었다. 많은 방청객이 모인 가운데 325년 니케아 공개홀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모시고 열었다. 신실한 기독교인이 된 황제가 세계에 기독교를 전하려는데 여러 다양한 주장들이 있음을 알고 통일된 기독교 이론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계시의 책 성경은 한권이지만 사실은 또한 66권이다. 이 66권의 계시의 책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무엇을 전해야 하겠는가. 전도한다고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66권을 다 읽어 줄 수는 없지 않는가? 또 전 이해 없이 읽다 보면 여러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지만 그 많은 내용을 짧은 말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지만 또한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주장 할 수 있음을 오늘날도 본다. 아마 지금도 마태복음 1장을 읽다가 중단한 사람은 성경이 무슨 족보 책인 것으로 알 것이다. 그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믿게 된 황제는 기독교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생각을 가졌으나 성경의 일치된 간략한 내용을 원하였다. 요약된 간단한 신조를 원했을 것이다.
그 결과 종교회의를 열게 해,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에 의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그 결론은,
“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내려오신
  하나님 아버지로서 바로 그 분이시며,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영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에서 합쳐지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트리니티(TRINITE, 삼위일체)'이다.

나는 이 결정이 성령이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 올바른 결론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나의 결론과 같기 때문이어서 뿐 아니라 정확한 성경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즉 성경의 올바른 결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성경 연구 후 정확히 이 결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약간 신기하게 생각하며, 시원하였다. 한편 이 결론이 나의 결론과 달랐으면 참 고민이 되었을 뻔 하였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성경을 읽고 성령의 감동의 결과는 동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이 결론에 성령께서 역사하셨다고 확신한다.

(기록에 의하면,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그곳에서 교육을 받으며 젊었을 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가까이하여 그리스적 교양을 쌓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오늘까지도 거의 모든 기독교에서 신약성서로 쓰이는 27권 신약성서 체제의 목록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개신교에서 위대한 신학자 지도자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로마 카토릭, 동방정교회, 성공회에서 성인으로 추앙 받다.)


< 잠시 휴식 : 더 이상 진도를 나갈 필요성이 있는 분만 계속한다.
필자가 연말을 맞이하여 서점을 시찰하던 중 삼위일체에 관하여 쓴 한 권의 책을 보았다. 그 목차만 보았다. 삼위일체에 대한 많은 이론과 학설들 또 그 학설에 대한 학설들, 이것은 비 생산적이다. 그 책의 긴 분량에 비하면 이것을 읽고 성경 찾아보고 정리가 되고 새 힘과 부요함을 얻는다면 적은 노력으로 큰 유익을 얻는 것이다. 그 목적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마음은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왔으니 계속 가보자.>

4. 필자가 더 보충을 하면,
1).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과 동일하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분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마28:19) 그런데 초대교회사인 사도행전에 보면 세례를 줄 때 실제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행2:38,10:48,19:5)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이 결론을 갖고 있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다.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다양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 일곱은 완전 숫자이므로 전 교회에 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이 아니라 그의 영으로 말씀하셨기에 성령이라고 하였고, 또한 예수의 영이 성령이기 때문이다.

3).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말이다.(히13:8,마1:23) 이것은 모든 신약 성경의 일치된 고백이다. 또한 교회의 신앙 고백이므로 이 고백을 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마16:15-21,마16:18 )

4). “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사48:12)
     “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2:8)

하나님은 처음부터 한 분이시고 지금도 한 분이시고 영원히 한 분이시다. 하나님께는 쉬운데 사람들이 복잡하게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므로 잠시나마 세분으로 구분 또는 착각하게 한 후 다시 세분을 한 분으로 만드는 어려운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 차를 타고가면서 초 신자이면서 철학을 전공한 어떤 분과 이야기를 하였다. 삼위일체에 관해서 자신의 배운 것을 잘 설명 하였다. 들으면서 필자가 느낀 것은 많은 분들이 삼위일체에 관해서 성부 성자 성령을 구분해서 시작한 후 합치는 노력과 수고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출발 할 것이 아니다. 세분을 한 분으로 합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가 한분이시다. 처음부터 지금 그리고 영원까지 한 분이시다. 사람들이 구분 또는 나누었다가 다시 합치는 수고와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한번도 나누이신 적이 없다. 처음부터 나중까지 변함없이 원래가 한 분이시다. 계속 한 분이시다. 영원히 한분이시다. (사44:6, 계1:17, 2:8, 21:6, 22:13).
 철학을 가르치는 분이라고 해서,
성령은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을 부르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출발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성령의 ‘성’은 수식어라고 말해 주었다. 질문이 더 없어 그 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더 질문을 하였으면 이렇게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다.
성령의 ‘성’은 거룩한 (헬,하기오스 holy)이라는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이다. 사람의 영과 구분하기 위해서, 또한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므로 '거룩한' 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시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한 한분이시다.(요10:30)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풍부함을 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래 한분인데 굳이 셋으로 시작해서 특별한 수학 공식적으로 알고 믿는 이상의 부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생각하고 고백할 때 내 마음에 힘을 얻고 간혹 영적 다이나마잍이 터지는 파워와 감동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분과 그분의 영적 자원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러나 괜히 혼돈스럽게 만들 수도 있어서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분은 공식적으로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늘 고백하는, 기독교의 중요한 신앙고백의 풍부함에 근거하여, 
 큰 믿음의 고백은 새롭게 영적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믿음없는 신앙 고백은 죽도 밥도 아니다. 희미한 믿음 미지근한 믿음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믿음은 예수님께서도 이것 참 곤란하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 아니 그 이상의 말씀을 하셨다.(계3:15)  말씀에 근거한 확신에 찬 믿음의 신앙고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중요한 신앙고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그것은 믿음으로 고백할 때 영적 부요 파워 그리고 내 안에서 영적 다이나마잍이 자주 터질 수 있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5). 영적 부요함
신구약 성경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영, 여호와의 영, 주의 영이시라고 한다.(구약참고)
성령은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주의 영,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하고 있다.(신약참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10:30)(I and the Father are one.)(롬8:9참고)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찌어다”
   (고후13:13)
 
위에 인용한 두 구절에 삼위일체의 내용이 다 들어 있다고 본다.
1.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1. 성령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fellowship,communication)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흐른다.

 위 내용을 읽고 깊이 묵상을 하며,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풍부함이 내 안에 거함을  생각하고 고백할 때마다 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를 머리로 수학적으로 이해 할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을 늘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드리면 새 힘과 영적 부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는 이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신학적 용어라고 보면 된다. 즉 이 내용을 늘 의식하고 교통함으로 흘러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성령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흐르는데 마음이 막히거나 닫히면 흐를 수가 없다. 흐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 즉 적용과 실천이 중요하다. 그러면 이제 실천이다.

5.  빠른 세월, 어떻게 살 것인가? (엡5:15-20)
 
사도 바울은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합니다.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빠른 세월에,
모든 인생들이 자문하는 아주 진지한 인생론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Be very careful, then, how you live 엡5:15)
바울의 이 철학적인 질문에

유대교 정통파, 율법으로는 바리새인,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던
바울의 입을 통해 아주 감성적이고 신령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be filled with the Spirit.)
그리고 그  방법까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을 잘 사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명령입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며,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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