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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시각

김석태 (경기노회,필리핀 선교사,목사) 2011-01-23 (일) 18:29 13년전 4527  

제목: 종말의 시각 

본문: 마태복음 3:1-13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멀리는 에덴 동산의 아담에게서 부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선악과를 도적질하므로 부터 이미 종말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 값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선악과를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범죄의 결과 아담은 930 년을 향수하였으나,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노아의 때에 이르러서는 전 인류가 죄악이 중다하여 홍수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시는 물로 모든 생물을 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 창세기9:11 절에 약속하시고, 무지개를 하늘에 띄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불로 심판 하실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다니엘 7:9-10 [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

이는 B.C 550 년 경에 하나님께서 종말에 대한 환상을 다니엘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말라기 4:1-2 절에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

이 말씀은 B.C 450 년 경에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보며, 우리가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로는 모든 생물과 세상을 심판하시지는 않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그 징조로 무지개를 펼쳐 보여 주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불로 심판하신다는 경고를 하시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독생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시고, 종말의 확실성에 대하여 여러 징조를 열거 하시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일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에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 져 가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 할수 없는 현실에 서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말에 불로 심판 하시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에게 구원이 보장 됨을 상기 시켜 주셨습니다. 종말은 홍수의 심판이 아니라, 불의 심판입니다.

정말 우리는 종말에 대하여 눈을 감고 살아가야 하는 가 ? 종말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방치해도 좋은 일인가 ?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처럼 일찍이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예수님도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종말의 징조에 대하여 엄격하게 말씀을 하셨을 가 ? 하는 점입니다.

물론 종말론이란 이 진리를 사람들은 악용을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시가를 불태우고 그 범죄를 기독인들에게 책임을 증가시켜 기독교인을 맹혹하게 핍박하였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종말론으로 인하여 사회적인 큰 물의가 여러 차례 일어났던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어디에 오신다고 하며, 폭풍이 일어 났습니다. 그래서 종말론에 대한 말만 비쳐져도 몸서리 쳐질 뿐만 아니라, 이단, 사이비로 간주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제 현대 교회는 종말론을 접어 두고, 이 보다 개인적인 종말이 있으니 하며, 회피의 구실로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나 역시 종말론에 휩싸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을 원치는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며, 여기에 대한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예가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예는 마태복음 24: 16-19절의 말씀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마 24: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 24: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마 24: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순간은 종말의 실체가 이루어지는 시점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최고의 희망의 시간이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불신자에게는 최악의 순간입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요한 계시록 6:12~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계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택하실 떼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계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가 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계 6:14 하늘은 종이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계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계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 우라
계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이러한 순간이 눈 앞에 나타날 때 얼마나 다급할가요 ? 그렇지만 주님은 자기 선자리에서 믿음과, 위치와 사명을 올바로 지키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삶의 자세를 흩트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일 종말이 와도 결코 우리의 삶이 우왕 좌왕해서는 않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을 자는 두려움이 존재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하늘나라의 입성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종말에 대하여 소경된 자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종말의 확실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종말의 대비책도 필요하고, 그 무엇보다 사명감 때문입니다. 정말 종말이 다가 오고 있는 데, 나만 구원 받으면 아무 일 없다하며, 태평과 평안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이는 분명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을 일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분명 이 악하고 개으른 종이란 규탄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말 종말이 지금 온다면, 이처럼 태연하게 대처 하겠는지요 ? 그럴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 갑자기 밀어 닥치는 종말에 동분 서주하다가 종마를 맞을 지니, 대책 없이 맞게 될 것입니다. 성인이 말했듯이 [ 내일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 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는 종말에 대한 무심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종말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있는 믿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면입니다.

1. 이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유황불 심판입니다.

주님도 소돔과 고모라 성에 유황 불 심판을 상기시키시면서, 종말을 경고 하셨습니다. 요즘 종말론으로 인해 세상이 어수선해 지고,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켜 온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종말론으로 사람들을 현혹 시키고 있습니다.

2. 종말론으로 인해 미혹을 당하여 사람들이 적지 않게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말론을 말하면, 사기꾼으로 몰릴 수도 있고, 이단으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 곧 종말론을 말해야 할 때이라고 여겨 집니다. 종말론에 너무 치우쳐서도 않되겠지만, 너무 무심해서도 않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말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 하여 태초의 시작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종말은 점점 더 가까이 우리 인류에게다가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또 하나는 종말론을 바로 알아야, 이단이나 사탄에게 현혹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말론은 결코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의 소유물이 되도록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참된 교회라면 정확하고 건실한 종말론을 정립 해 주어야 합니다. 종말론에 대하여 눈을 아무리 눈을 감으려 해도, 종말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외면 할 수는 없지 않을가요 ? 이는 오히려 무지의 소치라고 여겨 집니다.

종말론에 소경이 되고서야, 어찌 이단에게 유혹을 당하지 않을까요? 종말론의 무지하면, 이단과 사이비 종교와, 사탄에게 농락을 당함은 물론, 인생 최후의 비참한 일을 모면 할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종말론을 옳게 알아야, 바르게 대처해서, 현명하게 인생을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종말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 입니다.

4. 종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그 때부터 종말이 시작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심겨 졌습니다. 이 열매를 추수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시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휴거의 사건도 일어나고, 불의 심판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세상의 종말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본문 말씀은,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이 외치신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태복음 4:17 절 의미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 장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를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35 절에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마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

마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승천하신 후에도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종말의 징후를 말씀하셨으니, 요한계시록입니다. 또한 다른 제자들에게도 역시 말씀하셔서, 종말의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부터 시작되었다면, 지금은 종말기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임 산부가 해산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은 잉태되었을 때부터입니다. 오늘 잉태 되었다고 내일 해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한이 차야 하는데, 10 개월이 지나야 합니다. 10 개월이 다가 오게 되면서 만삭 되었다고 하며, 해산 월을 말 하는 것 처럼, 종말도 이와 같습니다. 종말이 선포 됨으로 바로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차야 합니다. 그리고 징조가 나타나야 합니다.

잉태되었을 때는 아무런 표시가 없지만, 해산 할 날이 가까 오면서 표시가 납니다. 그러나 고통은 없고 편안합니다. 그런데 해산 할 날이 다가오면 진통이 찾아 옵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사람들이 종말의 진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종말론자들을 철저하게 비난하고 조소하면서도, 무심코 내어 밷는 말은 [세상 종말이야!] 합니다. 심지어는 시대를 분별치 못하는 불신자들까지도 세상은 말세야, 세상 끝장이야 ! 한 것은 오래 전 일입니다. 지금은 종말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시대를 구분하여 말한다면, 농부가 씨를 뿌리는 때가 아니라, 낫을 들고 추수를 서두를 때가 된 것과 갔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여!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은, 삼척 동자라도 다 아는 일입니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세상이 창조된지는, 80 억년 이상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 역사를 6,000 여 년경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모든 고고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이 지구가 언젠가는 시작된 날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과학과 성경의 견해가 왜 이렇게 큰 편차를 가지고 있을까? 입니다. 세상과 만물은,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연월일시와 계절이 생기기 이전에 창조되었으니, 그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 장 8 절의 말씀을 보면, [살아난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피조자로써 창조 시간의 비밀을 알 길이 없습니다.

시간의 개념은 누구나 다 다릅니다. 똑같은 5 분이지만 전기 고문을 당하고 있는 사람과,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있는 사람과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기 고문을 당하는 자는 1 분이 천년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락을 즐기고 있는 자는 1 분 만이 아니라 하루가 눈 깜짝일 순간처럼 느껴 질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보아도, 소년 시절과 노년 시절의 시간 개념이 엄청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년 시절에는 세월이 길게 느껴 집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을 수록, 노인이 될수록 세월은 빠르게 느껴 지는 데, 총알같이 빠르다 합니다. 1년의 계절도 마찬 가지입니다. 봄은 낮 시간이 길습니다. 그러나 여름이가고 가을 겨울이 오면 낮 시간이 짧아져서 하루가 금시에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만, 내일 일과 오늘밤의 일을 알 수 없으며,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은 더더욱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의 일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시작이 있으니, 반드시 끝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끝은 종말입니다. 이 끝 날에는 세상이 불 태워 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불 태워 진다는 것은, 그 누구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바위며, 산들과 지구 덩이가 불 타 버린다는 말일까 ? 믿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왕 네로는 로마 시에 불을 놓아 집과 시민들을 몰래 태우고, 그 죄를 기독교인들에게 뒤 집어 씌워 기독교인들을 무수히 처참하게 죽였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세상 종말을 말하며, 종말의 날에는 이 세상이 불에 탄다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불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가지면 이 지구상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984.8.23. 22시 KBS 1 - TV에서, 핵 폭탄이 터지면, 이 지구가 핵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5개국 과학자 100 명의 연구 자료서 작성 된 것이었습니다. [제목: 핵 폭발 후의 지구] 핵이 폭발하게 되면, 풍속은 시속 100 KM 로 되며, 이 때에 자가용들은 대풍에 날려 가게 됩니다. 온도는 섭씨 영하 40 -100 도로, 100 년 간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바닷물은 평면에서 바다 밑까지 얼음 덩이가 된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과 소련이 2억 메가톤의 핵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의 160 억 배라고 합니다. [ 1 메가톤이 1945 년 8월 6일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 폭탄의 80 배 ]라고 합니다. 이때 20 만명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재가 되었고, 철로는 엿 가래 처럼 되었으며, 가옥 60,000 동이 파괴 되었다고 합니다.

1 메가톤은 1 천 키로 톤으로, 이 위력은 TNT 100 만 톤입니다. TNT 100 만 톤을 추럭에 싫는다면, 추럭 25 만대가 필요 하다고 합니다. 이 트럭을 길에 늘어 세운다면, 300 마일의 행렬을 이룬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의 휴전선의 길이가 155 마일입니다. 이리 역이 폭파 되었을 때, TNT 30 톤이었읍니다. 이때 이리 역이 날아가고, 이리역 부근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이리 시의 모든 유리창이 다 깨졌다. 전주까지 굉음 소리가 들여 오고, 지반이 흔들렸다. ]

그렇다면 160 억 배의 핵 폭탄이 터질 때, 이 지구는 어찌 될까요? 상상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땅 속에 저장되어 있는 화력은 어떠할까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직부터 지상과 지하의 폭탄만이 아니라, 하늘의 유황불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늘에서 내린 유황불로서 심판을 당하였으니, 그의 유적이 사해 바다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상세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계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계 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계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계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계 18: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사드락 아벳느고=풀무불 속에서 보호하심.

이스라엘 백성=장자 죽는 재앙에서 보호하심.

롯의 가정=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서 건져 주심.

노아의 가정=홍수 심판에서 건져 주심.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

1. 거룩한 행실을 가지라.

2. 경건함으로 살아가라

3.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

4. 의에 거하는 사람이 되 라.

5.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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