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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생의 주인 되기 위하여

김승환 (강원노회,생명,목사) 2011-02-14 (월) 23:01 13년전 4096  

자기 인생의 주인 되기 위하여

(창 2:1-3, 막 2:23-28)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아마도 회당에 예배드리러 가시는 길이었을 겁니다. 일주일을 열심히 살다가, 안식일이 되어 온 지체들이 하나 되어 함께 교회에 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각자 열심히 살았겠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복되고 좋은 날이었겠으나, 그 모든 걸 마치고 여럿이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면서 정다운 눈빛과 소망을 나누는 것은 더욱 복되고 좋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멋진 선물을 베풀어주시고 잔치를 베풀어주시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뵙는 날,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들을 만나는 날,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아름다운 하모니, 생동하는 몸짓들....“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그렇게 아름다운 안식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날 아침에 좋지 않은 심사로 예수님의 일행을 흘겨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공연히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트집 잡으며 마음이 뒤틀렸습니다. 쓸데없이 눈이 밝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갈 길도 바쁠텐데 어느 결에 예수의 제자들이 이삭 자르는 것을 보았답니까? 그들은 시비를 걸었습니다.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걸을 때든지 운전할 때든지 자기 갈 길을 성실하게 가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하릴없는 사람, 마음이 깊지 못한 사람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간섭합니다. 여러분, 길 갈 때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칫 넘어질 수 있습니다. 왜 쳐다보느냐고 시비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마음을 정한 곳을 향하여 똑바로 갈 길을 갈 것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하루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주인이 되어야 일주일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즐겁고, 충만하고, 알찬 인생의 주인....요즘 흔히 하는 말로,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 있잖아요. 함부로 다른 사람 간섭할 이유가 없고, 주제넘게 충고할 이유도 없어요. 내 할 일부터 우선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얼마 전에 원주시청에서 단관택지쪽으로 운전을 하고 가는데, 갑자기 길 한 복판으로 들어오는 차가 있었습니다. 길 옆에 서있다가 깜빡이를 켜고 서서히 2차선으로 진입하지 않고, 무리한 각도로 단박에 1차선으로 들어오는 거 있지요. 그때 제가 시속 60km 정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어어~ 여차하면 충돌할 것 같았어요. 다행히 안전거리가 웬만큼 확보되어 있었고 정면을 주시하면서 주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방어운전을 하여 가까스로 충돌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휙 하고 지나가는데 옆쪽에 살짝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안 부딪혔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냥 가는데, 옆 사람이 오히려 걱정되는 듯 말했습니다. “어머, 그냥 가세요? 차 안 보셔도 되겠어요?” 그제서야 길가에 차를 세우고 보았는데, 날이 어두워져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이미 흠집이 난 뒷범퍼 외에 어디 찌그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기왕 선 김에 그 황당한 운전자에게 호통이라도 한 마디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도로 안 쪽으로 들어서서 그 차를 향해 손짓을 했더니 그 차 주인은 당황했는지 겁을 먹었는지 그냥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밉거나 분한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생각하니 그렇게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그 만큼이라도 가서 서길 참 잘 했다 싶었습니다. 그럴 경우 사고가 나면 100% 쌍방과실이거든요. 어떤 상황에서건, 운전자는 전방주시를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건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든, 출발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고 여유롭고 평정된 마음으로 안전운행을 해야 할 책임이 운전자에게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준비 없이 허둥댈 때에 납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겠습니다. 역시 안식일에 관한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어떻게 쉬셨습니까? 1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절에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절에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했는데, 계속 반복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 이루니라”, “마치시고”입니다. 이 말은 창조하는 전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셨는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충분히 숨고르기를 하시고, 깊은 마음으로, 매 순간 정성을 다 기울이셔서 작업을 하셨습니다.

결국 같은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순서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첫날에 빛을 창조하사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둘째 날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시고 궁창을 하늘이라 불렀습니다. 맨 마지막에 뭐를 만드셨지요? 예,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랬을 때에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충만했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 모든 일을 마치시고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한 당신 자신에게 휴가라고 하는 선물을 주셨다고나 할까요? 얼마나 멋진 얘기예요?

그러나 만약에 순서를 착각하여 사람을 먼저 만드셨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순서가 잘못되면 이렇게 됩니다. 충분한 준비, 충분한 기도, 충분한 설계가 없이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중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여기서 뻥 저기서 뻥, 좌충우돌 허겁지겁 이렇게 되는 때가 많고, 전혀 예기치 않았던 사고로 발전하는 경우도 왕왕 있잖아요. 자기가 무슨 일을 벌여놓고 수습이 안 돼요. 자기가 그 일, 그 상황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상황이 자기를 이리저리 끌고 가버립니다.

자, 오늘 본문의 바리새파 사람들, 왜 복된 안식일, 남들은 부지런히 예배당으로 가고 있는데 심사가 뒤틀려 시비를 걸고 있습니까? 그 마음이 깊지 못해서입니다. 마음이 깊지 못하면 작은 바람에도 풍랑이 일어납니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주변상황에 휘말려들어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일을 크게 그르치게 됩니다. 자기에게 허락된 하루를 규모있게 살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생각, 엉뚱한 일로 소진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십시오. 시비하는 사람이 있건 말건, 여유롭게 대처하고, 의연하게 갈 길을 가시지 않습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삶의 고삐를 자신이 쥐고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시지 않습니까?

요컨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깊은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충분한 준비를 하고 해야 합니다. 순서대로 질서있게 해야 합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어느 것도 건너뛰지 말고, 오늘 할 일을 오늘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루하루가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야만 그 모든 일을 마친 뒤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안식일이 안식일이 되는 인생, 자기가 자기 인생의 참 주인이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일로 바뀌었습니다만, 주일의 의미를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일이 무슨 날입니까?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안식일의 참뜻, 즉 모든 인생이 일체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기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졌다고 우리는 믿고,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우리는 우리의 안식일로 지킵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좋은 부활도 그것을 누리려면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또 뭡니까?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대충 건너뛰거나 남에게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요행수에 기대지 않고,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날그날의 숙제를 성실하게 하지 않는 학생에게 좋은 날, 보기에 참 좋은 날, 궁극적으로 안식의 기쁨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날그날 내가 마땅히 져야 할 십자가를 회피하고서는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는커녕 시간의 노예, 상황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흐지부지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얽어매는 고질적인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의 안식일에 회당에서 병고침 받은 손 마른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그 병에서 자유케 되었어요? “한 가운데 일어서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다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믿음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고,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 십자가는 내가 져야 합니다. 그럴 때 족쇄가 풀립니다. 그럴 때 운명의 사슬이 끊어집니다. 그럴 때 바다가 갈라집니다. 그럴 때 병이 낫습니다. 그럴 때 일어나 걷게 됩니다. 그럴 때 주 예수의 부활이 바로 자기 자신의 부활이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됩니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하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니, 결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갈 수 있으니 따라오라고 하신 것이요, 우리가 할 수 있으니 하라고 하신 것인 줄 믿습니다. 보십시오. 차츰 봄이 오지 않습니까? 차츰 꽃이 피지 않습니까? 당연히 우리 인생도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착실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나가노라면 반드시, 때가 되면 우리 또한 한 송이 꽃으로 아름답게 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지으셨어요.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하루하루, 작은 것부터 성실하게 실천하는 우리의 겸허한 순종입니다. 그렇게 믿고 행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으십시오. 지난날은 어찌됐든지, 이제부터라도 하루에 한 날씩, 열심히 살면 됩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꾸준히, 정성껏.... 그 날의 십자가는 그 날에......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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