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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살해음모와 다윗의 도피및 망명생활

김창환 (서울남노회,강서교회,목사) 2011-03-04 (금) 09:47 8년전 4570  
사울의 살해 음모와 다윗의 도피및 망명생활 

다윗(David B.C 1000-962년경):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써 그의 첫 등장은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이며 그는 기적적으로 골리앗을 무너트린 후
사울의 군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다윗을 위해 사울보다 더욱
크게 환영하므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로다) 사울은 왕위에
불안을 느끼고 그를 죽이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다윗은 위기를 모면했다.

1. 무리가 환영하던 그 이튿날 자기 앞에서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피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사울은 다윗으로 군대의 장에서 천부장으로
직위를 떨어트려 자기 곁을 떠나게 하였다(삼상 18:10-13).

2. 자기 딸을 아내로 맞는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 100명을 죽이고 목을 가져 오도록
하여 그를 죽게 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다윗은 200명을 죽이고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 맞이 했다. 이로인해 사울은 더욱 다윗을 두려워하였다.

3. 자기 아들 요나단과 신하에게 살인 명령을 하였으나 요나단의 보호와 아버지에
대한 설득으로 살아 날수 있었다.

4. 요나단의 설득으로 다시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탈때 처음과 같이 창을 던져 죽이려
했으나 죽이지 못하고 다윗은 미갈의 도움을 받아 창으로 도망하였다.
그후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가서 자기가 당한 일을 고하고 라마 근처 나욧(라마나욧)
에서 사무엘과 같이 거하였다.
* 그러나 사울이 라마나욧으로 다윗을 잡으러 오자 다윗은 그곳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왔고 요나단은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을 알려 주었다.
이때부터 다윗의 도피및 망명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다윗의 도피 및 망명생활 (삼상 21:1-30:30)

1. 놉으로 피함(21:1-9): 예루살렘 북쪽 4km 지점으로 실로가 망한 후 성막을 둔 곳.
월삭행사후 다윗은 놉으로 피하여 그곳에 있는 아히멜렉 제사장을 만나 좋은 대접을
받고 골리앗의 칼까지 얻었다. 그런데 후에 사울이 알고 대제사장과 함께 있던 자들을
모두 죽였다.

2. 가드로 피함(21:10-15): 아스돗 동남 19km 지점 혹은 아스글론 동남24km 지점.
가드와 아기스왕 앞에 선 다윗은 아기스의 신하들로 인해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난 것을
알고 그들 앞에서 대문을 긁으며 침을 흘려 미친 척 하여 화를 면했다.
이때를 생각해서 시편 34편을 지은 듯하다.

3. 4.아둘람에 도망왔을 때 그의 온 가족과 사울의 밑에서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 등 도합 400명 가량이 다윗에게 왔고 다윗은 그들의 장관이 되었다.
장관이 된 후 모압에 갔다가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는 갓 선지자의 말을 듣고 부모를
그곳 모압왕 앞에 맡기고 다시 아둘람으로 돌아왔다. 이 때 놉에 있는 대제사장을 사울이
죽였고 그때 제사장의 아들인 아비아달이 에봇을 가지고 도망하여 다윗을 따랐다.
후에 다윗은 아둘람의 도피생활을 생각하여 시편 52,57,142편을 쓴 듯하다.

5. 유다 산골로 피함(23:1-13)
이곳에서 블레셋이 그일라를 칠때 다윗이 가서 블레셋을 크게 도륙하고 가축을 탈취
하였는데 이 소식을 사울이 알고 잡으러 올라 올때 다윗이 알고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손에
붙이지 아니함을 깨닫고 자기와 함께한 600여 명과 같이 그일라를 떠나니 사울이 쫓기를
멈췄다.

6. 십(산골)으로 피함(23:14-23): 헤브론 동남쪽 6km지점.동쪽은 십황무지.
십황무지 수풀에서 요나단을 만났는데 그곳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의 거처를 알려주어
마온으로 피하였다.

7. 마온으로 피함(23:24-28): 갈멜 남쪽 2km지점. 십과 갈멜부근.
사울이 마온까지 추적하여 다윗을 에워싸고 잡으려 했으나 블레셋이 쳐들어 옴으로
다윗을 쫓지 못하고 블레셋을 치러 올라 갔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셀라 하마느곳
("분리하는 바위라는 뜻")이라 불렀다. 이때 시편 54편을 지은 듯하다.

8. 엔게디로 피함(23:29-24:22)
다윗이 엔게디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또다시 3,000명을 데리고 추적했으나
찾지 못하고 굴에서 자게 될 때에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조금 잘라 아침에 사울에게
보이자 사울은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24:17)
라고 말했다.

9. 바란 광야로 내려감(25:1): 시내 반도의 중앙부
사무엘이 죽었을 때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 갔다.

10. 갈멜로 피함(25:2-44): 헤브론 남동쪽 11km지점(갈멜산과는 다름) 
다윗이 갈렐에 있을 때 그곳에 있는 마온 사람 나발의 양떼를 지켜 주었는데(25:21)
하루는 다윗이 소년들을 보내 나발에 식물을 원했으나 거절 당했다.
이에 400명을 무장시키고 나발을 치러갈때 그 아내 아비가일이 음식을 준비하고 미리
나가 다윗을 맞고 사죄함으로(25:24) 남편의 죽음을 모면했다.
이때를 생각해서 시편 63편을 지은 듯하다.

11. 하길라 산으로 피함(26:1-25)
십동쪽 9km 지점십사람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 하길라 산에 있다는 다윗을 알려
주었고 사울은 3,000명과 함께 쫓아 다윗 있는 곳에 이르러 밤이 되자 진 가운데 누워
잠을 자게 되었는데 다윗은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책망할때 사울이 잠에서 깨어 자신의 잘못을 알고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아려 하지 아니하리라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 되었
도다."하고 뉘우쳤다.

12. 블레셋 지방의 기드로 피함(27:1-30:30)
사울의 뉘우침을 믿지 못한 다윗은 자기와 함께한 600명과 같이 블레셋 지역의 가드로
피하였고 이에 사울은 더 이상 쫓지 아니하였다. 다윗은 다시 블레셋 지역의 시글락에서
1년 4개월 동안 거하면서 술과 애굽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인 그술과 기르스와 아말렉
사람들을 쳐서 죽이고 재물을 노략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게 미움을 받게 된 줄
알고 의심받지 않았다. 그후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 사울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그의
세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와 함께 길보아산에서 전사하였다.
이로써 장구한 사울의 추적과 다윗의 도피생활은 막을 내렸다. 이때 시편 56 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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