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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

김석태 (경기노회,필리핀 선교사,목사) 2011-04-29 (금) 20:48 8년전 4372  

제목 :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

         당신의 메시야는 누구십니까 ?

www.missionhope.ne.kr

서론

첫째 : 올바른 종교라면, 양심과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 : 종교는 현실 문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후의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하여 주는 것입니다.

셋째 : 종교는 이생과 내세의 문제를 총괄하여 해답을 주는 진리이어야 한다.

1. 경전을 통하여

1) 성경의 역사입니다.

2. 성경의 내용 구성

1) 신론입니다.

2) 창조론입니다.

3) 인간론입니다.

첫째 종교의 윤회설로서 인간론을 주장하였습니다.

둘째 과학의 진화론입니다.

4) 윤리론입니다.

5) 죄론입니다 - (인간 타락론)

(1) 선악과는 인간의 양심입니다.

(2) 선악과는 하나님(창조자)과 인간(아담=피조자)이 넘을수 없는 경계선입니다.

(3)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하나님을 져버리고, 사탄을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4)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입니다.

(5)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사탄을 아버지로 삼는 행위였읍니다.

(6)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한 행위입니다.

6) 구속론 입니다.

7) 종말론입니다.

8) 구원론입니다.

9) 천국론입니다.

10) 영생론입니다.

제 1 세계는 어머님의 모태입니다.

제 2 세계는 이 세상입니다.

제 3 세계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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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이 있지만, 인간 누구나가 기본적으로 해답을 가져야 할 일은, 나의 메시야 즉, 구세주를 아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이 세상에 와서, 공통적으로 죽음의 날을 앞에 두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인간은 성공하든 실패를 하든지, 잘살든지 못살든지, 누구나 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죽음의 관문을 향한 발걸음일 뿐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습과 기준이 다 다를수 있습니다. 내가 과거 원시 시대에 태어 났다면, 원시인의 생활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아이티나 북한에 태어났다면, 우리가 화면에 보고 있는 대로, 나는 고난과, 굶주림과, 헐벗음의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다행히도 한국에 태어나 오늘을 살아 가고 있기에 세계 경제 12 위의 국가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일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 태어 났던지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과제가 있습니다. [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다가, 어데로 갈 것인가 ? ] 이는 최종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는 우리가 나에게 죽음이 찾아 오기 전에, 반드시 해결 해 놓고 살아 가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현실 문제만을 귀하게 여기고, 살아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죽음의 문이 내 인생 앞에 다가 왔을 때, 부귀 영화는 한바탕의 꿈과 같을 뿐, 결코 죽음의 문제를 대변하여 줄수는 없는 것입니다. 죽음이 찾아 오게 되면, 내가 모아 놓은 제물만이 아니라, 명예와 권세도,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육신의 몸도 버려 둔체 알수 없는 곳으로 가야 만 하는 것입니다. 인생 최고의 장수를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무두셀라입니다. 무두셀라는 969 세를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하루살이 같이 물거품의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생노 병사가 따릅니다. 재난도 환난도 따르고 있습니다.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언제 찾아 올지 모릅니다. 부유도 있지만 언제 가난이 나를 사로 잡을 지 모릅니다. 나의 원하는 바가 아니지만, 우리는 이런 불청객을 맞이하며, 살아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자기 인생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나의 운명을 그 누가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심을 갖게 되고, 그 누구나가 나의 생사화복을 손에 쥐고 계신 대상을 찾게 되는 데, 여기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신앙을 찾게 되었고, 무속 신앙이 생기게 되고, 무속 신앙을 추구하여 오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신을 만들고, 그 신을 철저하게 옹호해 주고,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달성 하는데, 악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종교를 거부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공산 주의입니다. 공산 주의는 [ 종교는 아편이다 ] 는 슬로건을 내세워 종교를 말살 시키려 하였습니다. 여기에 타켓이 기독교였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일은 공산주의 의 출범입니다. 공산주의가 누구에 의해서 출범 하였을가요 ? 신학자들입니다. 현대 공산주의는,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840년대 이후 서유럽에서 K.마르크스와 F.엥겔스에 의하여 창시된 마르크스주의를, 레닌이 20세기 초 러시아의 특수한 조건하에서 발전시킨 사상 및 이론의 체계와 실천운동입니다.

공산주의가 어데서 출범하였을가요 ? 사도행전 2 : 43 ~ 47 절의 말씀을 근거로 시작 된 것입니다. 아래의 말씀에서 [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 란 물질에 관한 말씀만 선택하여 공산주의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렇지만 공산주의는 종교는 아편이라 하며, 기독교를 규탄하고 박해하는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공산주의는 쏘련과 중국을 위시하여 전 세계를 삼키는 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가 출범한지 164년이 지난 오늘, 공산주의는 어떠합니까 ? 힘을 잃고 붕괴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핍박과 고난과 순교의 피를 흘려 왔지만, 세계 인구의 32. 54 %로서, 19억 7천 300만 명에 이르러 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총과 칼과 핵무기로 전쟁을 일삼으며 온 세상을 정복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우리 기독교는 가슴에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달함으로 세계를 점령해 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세계를 다 집어 삼키는 듯 하였으나, 그 나라들은 불과 164 년이 지나 가기도 전에 쏘련을 위시하여 무너져 가는 모습을 현대사가 입증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총과 칼을 손에 들지 않고, 사랑과 복음으로서 2,000 여년이란 긴 세월에,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땅 끝까지 이르러 왔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기독교는 여전히 핍박과 박해를 당하며,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도 저항하지 않지만, 땅 끝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 ? 에 따라, 그 나라의 국력과 형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제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움 속에 있는 나라라 할지라도, 기독교가 들어가게 되면, 나라가 새로워집니다. 국력이 달라집니다. 못 사는 나라가 잘 살게 되고, 문맹인의 나라가 교육의 나라가 되어서 밝아지는 문명 국가를 이루어 냅니다.

그래서 억압 속에 있던 나라가 평화로운 나라로 탈 바꿈하여, 다른 나라를 돕고 사는 나라로 변화를 가져 오게 됩니다. 이는 역사와 현실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도 그 일례의 국가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은 과학과 지식과, 정보와 문화의 시대입니다. 현대는 최 첨단의 지식과 과학과 정보로서, 온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자기 안방에서 보며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종교의 위치는 어떠한가요 ? 종교는 더 조직적이고, 실제적인 위치에 이르러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마찰로 전쟁도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세계 안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세계 인구의 32.54 %로 19억 7천 300 만명)의 다음으로, 이슬람교는 세계인구의 21.09 %로, 신자의 수가 12억 7천 900 만명이나 됩니다. 그렇다면 이슬람교의 생리와 형태를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칼과 총과 무력으로 사람을 무섭게 살상하는 일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 외에도 힌두교, 불교, 중국 종교, 씨크교, 유대교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일은 [ 종교란 무엇인가 ? ]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해답입니다. 종교는 현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후의 문제를 다루고, 그 해결점을 제시하여 주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유교는 현실 세계의 문제 즉, 도덕 윤리, 인간 삶의 지혜만을 다루고 있기에, 철학으로 인정 할 뿐 종교에 속할수 없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 한 바와 같이,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성격도 다양합니다. 대게는 종교가 민족주의를 넘지 못하고, 자기 나라와 민족에 국한하여 만들어 진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평화보다는 불화를 심고, 침략성을 띤 종교가 대부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곧 국력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타 종교에 대하여 반감을 갖기에, 종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는 데, 매우 심각한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종교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

첫째 : 올바른 종교라면, 양심과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종교는 사람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종교 가운데는 비 윤리적이며, 비 도덕적인 종교가 많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일부 다처주의를 비롯하여 여인을 인간 대접하지 않고 종과 시녀처럼 취급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을 목도 하게 됩니다.

같은 동족으로 양반과 천민으로 분리시켜, 선량한 동족을 학살하고 반목하며, 멸시 천대하는 사실을 봅니다. 예전에 우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사실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 : 종교는 현실 문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후의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하여 주는 것입니다.

종교는 사후의 문제를 다루어야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 자기 생명을 위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종교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맡겨야 하는 데, 아무데나 생각없이 맡긴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윤리적인 문제는, 종교마다 나름대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선하게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 ! 하는 등 윤리를 다 강조합니다. 사실은 그렇지도 못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세를 벗어나 사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줄 것인가 ? 가 종교의 중요한 사안입니다. 이는 논리나 형식이 아니고,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한 근거가 입증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이, 조상적으로 부터 물려 받은 것으로 종교를 상속으로 받듯, 물려받아 왔습니다. 참으로 매우 위험하고 불행스러우며,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맹종의 신앙이요, 형식에 불과한 모습인 것입니다. 지금은 과학과 지식의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 관심만 갖고 사실을 확인 한다면, 누구나 바로 알수 있는 일입니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후손의 값진 생명을 영원히 맡기는 일을 아무런 비교의식이나, 검증도 없이 조상의 이름을 미끼로 종속을 시킨다면, 불행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내 인생의 영원한 생명이, 살고 죽는 문제이기에, 확실성이 있어야 하고,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만 할 것입니다.

셋째 : 종교는 이생과 내세의 문제를 총괄하여 해답을 주는 진리이어야 한다.

모든 종교마다 경전이 있으나, 경전을 통하여 이생과 내세에 대하여, 명확하게 근거를 가지고 증거 해주는 종교가 어느 종교인지를 확인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입관과 편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견도 앞세워서는 않됩니다.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사실이 입증됨을 확인 하며,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원한 생사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서양은 태양을 중심으로 양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은 달을 중심으로 음력을 사용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해와 달과 별은 하늘에 떠 있기에, 섬기는 신앙의 대상으로 섬겨 왔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 신을 섬시고, 동양에서는 달을 중심으로 달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발광체는 오직 하나입니다. 이는 오직 태양입니다. 달과 별은 반사체로서 태양의 빛을 받아 밤에 세상을 비추이는 것입니다. 밤에는 달도 태양과 같습니다. 그러나 달은 발광체가 아니고 반사체로서, 태양의 빛을 받아 지구에 빛을 비추어 줄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별은 그 크기가 태양의 1 억배를 훨씬 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별이 우주 공간에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별들도 역시 모두 반사체 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주인이 달 나라 별 나라를 다녀 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태양은 다녀 오기는 커녕, 접근 할 수가 없습니다. 가까이 접근 하는 순간 태양의 열기에 녹아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이 존재하는 한,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살게 됩니다.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의 생명은 물론, 산천의 수목도, 바다 속의 해물들도, 생명 가진 모든 것이 다 죽고 말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은 태양이 있기에 생명이 존재 합니다.

이와같이 위성은 모두 하늘 높은 곳에 떠있기에 비슷하게 보이지만, 생명의 근원과 같은 위성은 오직 태양 하나 뿐입니다. 이와같이 종교는 모두가 위성과 같은 존재로 비유할수 있습니다. 모양도 비슷합니다. 모두가 빛도 비추어 줍니다. 그러기에 서로가 자기들이 섬기는 위성이 최고라 하며, 그 우위성을 주장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다 태양과 같은 존재가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발광체로서 태양은 오직 하나 일 뿐입니다. 하늘 아래 인간이 주장하고 섬긴다하여 태양이 되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이 사실을 발견해 내야 합니다. 과학은 이 사실을 밝혀 냈기에 논쟁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이 해답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는 종교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 종교의 우위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힘과 권위를 제일의 자리에 모셔 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종교적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 전쟁까지 일어났음을 부인 할수 없습니다.

나는 목사라하여 이 주장을 제언하고 싶은 마음은 촌음도 없습니다. 진실을 우리는 밝혀야 할 때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인간의 지식과 과학이나, 역사를 통하여 얼마든지 논 할수 있고, 사실을 밝힐수 있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자기 생명 만이 아니라, 자기 자손과, 모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실이 아닌 것에 운명을 맡기게 하였을 때, 돌이킬수 없는 사태가 그들에게 주어진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모면 할 수가 있을 가요 ? 영원한 생명의 문제가 달려 있기에 진실을 통해 사실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시비나 대립이 필요 없습니다. 서로가 인류를 참된 복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실을 가리게 하여 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런 오해를 많이 받아왔고, 지금도 그 공격의 요인이 되며,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라 여겨 집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대로, 기독교는 이 일로 인하여 오해를 받고, 극렬한 참수형을 받아왔으니, 그것이 순교자의 발걸음입니다.

그 대표적으로는 카타곰 성지를 방문하여 보면 쉽게 알수 있고, 나라마다 세워져 있는 순교지와 성지를 찾아보면 쉽게 이해 할수 있는 일입니다. [ 기독교는 독단 주의다 ] 라는 오해를 받을 만 합니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오해 할 수없는 부분입니다. 만일 이를 부정한다면, 거짓의 종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오해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어 봅시다.

마 22: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마 22: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마 22: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마 22: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마 22:46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 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왜 ? 기독교 만이 타 종교는 무시하고 자기들 만이 옳다고 고집하느냐 ? 는 맹 비난의 목소리들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핍박 속에서 존재하여 온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그 누가 이것을 뒤 엎어 놓아 타 종교와 동일하다 할수 있는 성격이 되지 못합니다. 이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사실을 밝혀 선택 할 자유만 있을 뿐입니다. 만일 싫다면 기독교를 선택하지 않는 길 밖에 없을 뿐입니다. 온 세계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호응하여 준다고 하여 성립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 하실 문제인데 이는 불가능한 얽지 일 뿐입니다.

예를 든다면, 대통령과 동장이 직책상 똑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 할 때, 그렇다고 동의 할 수 있을 가요 ?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직책과 직능을 벗어나서 인간론에서는 똑 같은 인간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과 동장과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더더욱 비교 할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 갖는 사람으로 살아 왔습니다. 목석도 자기의 섬기는 신으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철기로 동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게 하였습니다. 오늘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만들면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일은, 참 종교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질수 있는 그런 정도의 종교가 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종교라면 믿음을 가질 필요조차 없습니다.

예를 든다면, 금은 쇠붙이 중의 하나입니다. 금처럼 쇠붙이로서, 색깔이 같고, 광체가 난다하여 모두 금으로 여긴다면, 누구나 어리석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금보다 가짜의 금이 더 광체가 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전문가는 이에 속지 않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잘 분간 할수 없지만, 정식으로 허가가 나 있는 보석상에 가서 사게 되면 속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길 거리에서 싸다고 구입하게 되면 속는 일이 종종 있기 마련 일 것입니다. 값진 보석이나, 값진 명품 일수록 가짜가 더 많이 출품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물며,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을 취급하는 종교는 어떠할가요 ? 생명처럼 더 소중한 것이 없기에 가짜의 종교가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는 종교가 우죽순 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많은 종교들 가운데, 기독교는 더더욱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들이 설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 나라만 하여도 내가 [ 예수 ]라 한, 사람들이 100 여명에 이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포스타에 [ 재림 예수 ] 라 하며, 거리에 사진을 붙이고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심지어 가짜 목사도 많이 나타나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실망 시키는 일이 너무 생활 주변에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지에도 거짓 선교사의 이름을 갖고 등장함으로 선교 사역에 어려움을 주는 일이 허다 합니다.

그리고 이유야 어쨌든 목사나 선교사, 그리고 기독교 단체나, 교회에서 어떤 비행 사실이 발견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가요 ? 그래도 기독교 만큼은 절대로 신뢰 할 만한 종교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흠과 티가 없는 분이요, 진리가 되시는 분이기에 결코 기독교의 성직인이나, 교회는 결코 남달라야 한다는 기대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다이몬드 하나를 3,000 만원에 샀는데, 검증을 해 보니 가짜라고 합니다. 이때 실망감이 얼마나 더 할가요 ? 그러나 남대문 시장 길거리에서 5,000 원 짜리 반지를 샀습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화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속아서 샀다한들, 실망 할 사람이 누구 이겠습니까 ?

사람들은 신앙을 가졌던지, 갖지 않았든지, 상관 할것 없이, 기독교의 비행에 대하여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타 종교에 대하여는 그렇게 실망감을 표현하지 않음을 잘 알수 있습니다.

여하튼 종교에는 가짜가 많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종교가 자기를 지키고 보호막이 되어 주는 힘이 되기에, 자기 종교를 나름대로 고집하는 것이며, 타 종교가 접근 해 올때, 위협을 느끼며, 결사 반대하고 지키려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전쟁도 불사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사실을 과거를 통해 잘 알수 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 종교를 식별 할 수가 있을가요 ? 여기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으면 하여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글을 쓰게 됩니다. 참 종교를 식별 할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종교의 경전을 통해서입니다. 그러기에 경전을 검증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경전을 통하여

무속 신앙을 제외하고는 종교마다 경전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기독교는 성경이 있고, 불교에는 팔만대장경이 있으며, 이슬람교에는 코란경이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져 합니다. 이 성경을 깊이 생각하여 보고 다른 경전들과 비교하여 종교 선택에 주의를 기울여 주었으면 합니다.

이는 기독교라는 교세를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종교에 여러분의 생사의 갈림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참 종교는 둘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둘 이상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를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천하에 그 누구도 생부가 둘이 될수 없습니다. 생부는 오직 한분 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여럿 일수 있습니다. 양부나, 이붓 아버지 등은 여럿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진짜 아버지가 아닙니다. 진짜 아버지는 나의 생부 한 분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의 참 생부로서, 아버지 같은 하나님도 한분일 뿐입니다. 그 하나님이 누구일가요 ? 우리는 이 사실을 경전을 통해서 발견 하였으면 합니다. 경전은 이 사실을 진실되게 밝혀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오늘 우리가 감언이설로 만들어 내는 것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우리 인간이 조작하여 만들어 내는 거시라면, 종교를 가질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 우리에게 무거운 짐만 될 뿐입니다.

우리가 만들고, 그것을 섬기며, 또한 법도를 우리가 만들고 그것에 매여 살아야 한다면 이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절대자가 존재해서 만들어 진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그만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경전이라면, 긴 역사의 세월에 임상 실험을 거쳐 입증이 되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타 종교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종교로서의 열거한 핵심 요인에 비추어 타 종교의 경전을 살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는 기독교의 경전이 가지고 있는 내용만을 다루고져 합니다.

1) 성경의 역사입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주전 1,500 여년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 된 책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끝맺음 한 것은, 주후 100 년 경으로 약 1,600 년에 걸쳐 쓰여진 책입니다. 그렇다고 성경을 저자 마음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입은 자가 기록한 책이란 사실입니다.

이 거대한 책을 기록하기 위하여 저자들이 함께 모여 회의 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 쓴 책도 아닙니다. 30 여 명의 다른 시대 사람들이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쓰게 되었는 데, 왕으로부터 무식한 어부까지 각 색의 직업을 가진자가 썼습니다.

또한 성경책을 기록한 기간도 1,600 여 년이나 걸려 기록 된 책입니다. 10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160 번이나 강산이 변하게 되는 긴 세월에 걸쳐 기록된 책입니다. 신약과 구약의 기록된 시기 차이도 400 여 년이나 납니다. 구약 성경의 말라기를 기록하고 난후에 이스라엘은 약 400 여년의 역사가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내용과 주제에 어긋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대주제로 한 그 구원의 방법과 계획이 66권 신구약 성경에 동일하게 기록 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이 모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류가 없습니다. 오늘도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입증하여 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주전 1,500 여경 모세에 의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 되었으나, 우주와 만물과 인류의 시작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종말과 그 사후의 세계까지 기록하여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중심 핵심 내용이 무엇 일가요 ? 성경의 내용을 간단히 간추려 보기로 하겠습니다.

2. 성경의 내용

어느 책이나 그 속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경전으로서 더더욱 그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무엇을 다루고 있을가요 ? 창조사로부터 인간사의 모든 기원은 물론 이 세상의 종말과 내세의 모든 일까지 광범위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종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이 사실을 열거 해 보려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 한바와 같이 종교는 인생의 이생 문제만을 답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세 문제를 답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로서 반드시 경전에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소가 있어야 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문제를 명확하게 답변을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신론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교주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주 스스로가 사람이 신으로 만들어 섬길 뿐, 그 교주 자체가 자신이 전능한 신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한다 할지라도, 살아있는 신으로 경전에서 보여 주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신론이 정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여지지 않지만, 분명하게 계신 증거를 나타내 보여 주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삼위 일체 하나님이심을 마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한 시대에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경전이 아닙니다. 1,600 여년간의 긴 세월을 거쳐 쓰여진 경전입니다.

성경을 쓴 저자는 시대와, 직업과, 신분에 있어 천차 만별입니다. 무학자로부터, 목동, 세리, 왕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학벌이 좋은 사람으로부터 무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기에, 당시 최고로 유식한 사람들이 놀라며, 그의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로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2) 창조론입니다.

기독교의 경전의 시작은 창조론 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과 만물, 그리고 인간을 만드셨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기록을 보면, 우주와 만물이 없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 가 ?부터 다루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는 얼마나 질서 정연한 과정을 거쳐 창조하셨는 가 ?를 정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읽어 보십시오.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날, 현대 과학도 우주와 만물은 창조물임에 대하여 변명을 못합니다. 다만 그 창조자와 창조의 사실을 말할수 없는 것 뿐입니다. 그 기원은 알수 없지만, 분명코 세상은 언제 부터인지 만들어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영원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언젠가 창조자가 만든 시점이 있기에, 세상은 반드시 종점인 종말도 오게 될 것이란 예측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모든 경전은, 이 사실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만이 유일하게 창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시작이 창세기로서, 창조론이요,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의 책이 요한 계시록으로서, 우주의 종말적 사실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우주의 만물, 인간의 시작과 끝을 확실하게 증언 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을 보십시오. 성경처럼 이렇게 명확하게 신이 말씀하여 기록된 사실이 있는지요 ? 하나님은 분명하게 내가 이렇게 세상과 만물을 만들었음을 확실하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단지 모세를 통하여 글로 쓰게 해서 우리에게 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기록하되, 자기 스스로가 썼다 한다면, 모세의 기질과 그 위풍을 보아 자신이 하나님이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저자 모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명확하게 기록하여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음을 말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분의 지시에 따라 사역하다가 죽게 됨을 분명하게 소개 합니다.

3) 인간론입니다.

모든 종교와 과학은 인간론에 대하여 말하여 왔지만, 정론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성경보다 훨씬 뒤 늦게 나온 인간론들입니다. 종교에서는 윤회설이이요, 과학에서는 진화론입니다. 그렇지만, 이 주장이 진리처럼 세상을 휩쓰는 듯 하였지만, 다 사실이 아님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첫째 종교의 윤회설로서 인간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사람이 주게 되면, 행한 업적에 따라 동물이 되는데, 소가 되는 것은 성스러운 사람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소를 신으로 섬기듯합니다. 인도는 소의 천국이란 말도 있읍니다. 그래서 동물의 고기를 먹지않고 살생을 철저하게 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을 살상하고 먹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불을 집히다가 굼벙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즉시 불을 끄고 굼벙이를 살려 내는 훈련을 강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주장이 무너졌습니다. 금물이었던 소고기 돼지 고기를 자연 스럽게 먹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 윤회설은 사실이 아니란 것입니다.

둘째 과학의 진화론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진화론은 어떠합니까 ? 아메바의 진화론, 떠들썩하였던 원숭이가 우리 인간으로 진화하였다는 주장도 물 건너 갔습니다. 원숭이와 고릴라가 우리 인간의 조상이라고 교과서에 기록하여 가르친 때가 엊그제 일입니다.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세포는 물론 D,N,A (유전자 검사) 까지 발전하여, 유전자로서 인간의 비밀을 알려 내고 있습니다. 동물이 사람이 될수 없고, 사람이 동물이 될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되어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원숭이가 인간의 시조라고 주장했던 일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떠합니까 ? 창조자가 이 사실을 밝혀 주셨기에 오늘도 인간론이 정확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간과, 동물, 식물들을 종류별로 창조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지만,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고 말씀합니다.

고전 15: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천지는 없어 질지라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진리는 여원히 변치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성경의 인간론은 최고(最古)의 것이지만, 오늘까지 변치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게 될 것입니다. 왜입니까 ? 창조하신 분이 직접 말씀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원숭이가 될수 없고, 원숭이가 인간이 될수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유전 인자를 다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만일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오늘도 원숭이가 변하여 사람이 되는 일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집안에서 원숭이와 같이 살며, 사람 이상의 대우를 해 줍니다. 그리고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말을 가르치고, 행동을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사람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왜 ?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면, 왜 ? 오늘은 더 많은 세월이 흐르고, 사람으로 진화 될 호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진화되지 않고 있습니까 ? 하나님은 유전자를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원시시대에는 사람과 원숭이와 별 다른 모습이 없이 비슷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원숭이와 사람이 동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숭이와 고릴라가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고릴라는 우리 인간의 조상처럼 믿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릴라와 원숭이도 유전자가 다릅니다. 고릴라는 고릴라고, 원숭이는 원숭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원숭이나 고릴라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허무 맹랑한 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가장 핵심체가 우리 인간입니다. 인간은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체는 하나님에게서 직접 나온 것이었으니,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나 오늘이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인격이 있고, 양심이 있으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을 닮은 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간론은 정확합니다. 그 누구도 변경시킬수 없는 진리입니다.

4) 윤리론입니다.

종교는 모두가 윤리론이 있습니다. 유교는 삼강오륜이란 법도가 있습니다. 불교, 마호멧교, 이슬람교등 모두가 윤리론이 있습니다. 그 윤리론에 의해 사회 구성이 달라 집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의 윤리론은 태초부터 정확합니다. 태초에 에덴 동산에서 윤리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새겨 준 양심이란 것이었습니다.

양심 ! 이 하나가 윤리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양심을 져 버림으로 (먹지 말라 한 선악과 따 먹음) 범죄하게 되었고, 그결과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첫 열매들이 누구입니까 ?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형으로서 동생 아벨을 돌봐 주어야 할 터인데, 시기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아담 시대에 에덴에서 윤리의 모체가 양심이었다면, 다음 모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윤리의 문서가 두 돌판에 새겨 준 십계명이었습니다. 첫째의 돌판에 기록된 4 계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지켜 살아야 할 법이요, 둘째 돌판에 기록된 6 가지 계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 살아야 할 법령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범죄함으로 윤리란 법이 계속 만들어 졌는 데, 지금은 혜아릴수 없는 많은 법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들을 모체는 바로 십계명에서 나온 법이요, 인간의 양심을 통한 법들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법과 윤리는 모법으로서, 오늘까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법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법과 계명을 모법으로 하여 인간이 만들어 내고 있지만, 이 법은 얼마 안가서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양심이란 법과 십계명은 결코 변하지 않는 영원한 윤리의 모체가 되어 기본 법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법은 바로 양심과 십계명을 기본법으로서, 기준하여 만들어지고 있음을 부정할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타 종교들도 나름대로 윤리론을 갖고 있지만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가 국법처럼 여겨왔던 삼강 오륜을 이 시대에 적용한다면 1950 년대 이전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은 철절한 사회 윤리였습니다. 만일 이 법대로 한다면 버스를 남녀가 오늘처럼 함께 타고 다닐수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남녀가 같이 사무실에서 함께 사무를 볼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구조는 1950 년대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태초의 양심의 법, 구약의 십계명은 오늘도 그대로 적용되는 모체의 법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법, 사회 윤리의 법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수천년이 흘렀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5) 죄론입니다 - (인간 타락론)

성경은 인간의 죄가 언제, 어데서 부터, 어떻게 시작 되었으며, 죄의 본질이 무엇이고, 죄의 결과는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데, 이 원리가 태초부터 오늘 까지 변치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영원히 죽지 않아야 할 것인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되었는 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옳게 사는 비결이 어떤 것임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비결이 무엇일가요 ? 이는 죄가 무엇인지, 죄의 본질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죄의 댓가는 불행이요, 죽음이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증오하고 저주 할 만큼 죄를 많이 짓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며 살아 갑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자신의 죄가 다른 사람에게 들통이 나게 되면, 그것은 나의 죄가 아니라고 변명을 강렬하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짓는 것은 즐거움으로 하고, 죄의 결과는 두려워 합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두려운 죄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이 땅에 모든 종교가 경전을 다 가지고 있지만, 죄의 본질을 정확하게 다루고 있는 경전은 없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의 본질이 무엇일가요 ? 이는 창세기 3 장을 읽어 봄으로 알수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단순한 작은 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과 범죄의 큰 원흉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악과 하나를 따 먹었다고 그렇게 엄한 형벌을 내릴수가 있을가 ? [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신 데,... 입장을 바꾸어 나에게 아들 하나가 있는 데, 과일을 따먹지 말라 금하였는 데, 그것을 따먹었다고 그렇게 형벌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보다 나을 것이 없는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되실수 있겠습니까 ? ] 하며 자기보다 저속한 하나님으로 평가를 합니다. 이는 그 선악과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먹은 사실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가요 ? 그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이기에 그렇게 중한 형벌을 내리실수가 있을가요 ? 선악과 하나로 인하여 아담의 후손 대대로 현대에 이르기 까지 그렇게 혹독한 형벌을 내리시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

진실로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이 없으신 분일가요 ? 그렇다면 선악과에 대하여 한번 생각을 하여 봅시다.

(1) 선악과는 인간의 양심입니다.

선악과는 단순한 과원의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2:16~17 절의 말씀을 살펴 봅시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렇다고 먹을 열매가 없었던 가요 ? 아닙니다. 에덴 동산 안에는 많은 과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한번 먹게 되면 영원히 영생하게 하는 생명 나무의 과일도 있었습니다. 이 좋은 모든 과일을 네 임의로 마음껏 먹으라 하셨습니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께서 먹으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생명을 포기하고 죽음을 감수하며 양심을 져 버린 일입니다. 그리고 금하신 선악과,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으니, 양심을 따먹게 된 것입니다.

양심을 따 먹은 인생 ! 양심이 망가진 인생 ! 양심을 져 버린 인생 ! 양심을 마비 시킨 인생들의 모습을 상상 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들로만 이루어진 인류 사회를 상상 해 보십시오. 이는 짐승보다 더 악하고 쓸모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양심을 망가트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양심을 망가트리고 거짓의 아비인 사탄 즉, 마귀의 마음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 결과가 작은 일일가요 ?

하나님은 양심의 추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양심을 매우 중요시 하십니다.

롬 13: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관심은 망가진 인간의 양심을 원래대로 회복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 해 주신 선한 양심을 온 인류가 갖게 된다면, 천국은 자연적입니다. 양심은 이토록 소중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범죄와, 환란과 고통의 요인은 모두가 양심의 결핍에서 이루어지는 열매들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온통 난리가 난듯 여론이 야단 법석입니다. 한 연예인이 치아의 문제로 군대 입대를 회피하였다하여 법정을 드나들고, 중벌을 내려야 한다합니다. 이어서 두 유명 연예인 남녀가 사랑을 고백 하였는데, 감쪽 같이 속이고 여자 연예인이 수년전 결혼을 하고 속여 오다가 법정 싸움을 하게 되며, 다른 남성과 사랑을 고백하였다고 우리 한국민은 속임수에 분노하며, 굉장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일이 일본의 2011. 03. 10. 의 지진과 쓰나미 헤일 사건보다 더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온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는 어떠할가요 ? 이 세상 그 무슨 큰 일에도 비교할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신령한 양심과 사탄이 주는 거짓 양심과 바꾸는 행위가 적은 일입니까 ?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포기하고 자살하는 행위가 정당한 일입니까 ? 다 말할수 없습니다. 이 일을 깊이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2) 선악과는 하나님(창조자)과 인간(아담=피조자)이 넘을수 없는 경 계선입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거짓으로 속이며, 선악과를 먹게 한 것은, 창조자와 피조자의 경계선을 무너트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선악과로서 기준을 표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 이 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의 열매가 많이 있다. 이 모든 열매를 네 임의로 마음 껏 먹어라 ! 그러나 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으면 죽는 나무의 열매이다. 이 열매를 먹어서는 않된다. ]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선이었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어떠하였습니까 ? 생명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며 선악과 그 자리를 찾아가 금하신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한계의 표시는 바로 이 한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질서를 파괴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의 화근은 무엇입니까 ? 부모와 자녀의 한계선이 무너져 가는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영역이 파괴되어 가는 것입니다. 의와 불의의 한계선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한계선이 무너져 가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세상은 겉잡을 수 없는 세상으로 급변해 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며 한탄하고 있지만, 고삐 놓친 망아지 같은 혼잡한 세상을 한탄하며 살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 가를 살펴 봅시다.

우리가 천재 지변이나, 가믐이 올 때, 궁극적인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랍니다. 우리가 누구의 은혜와 축복으로 살아 갑니까 ?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태양의 빛과 열기며, 산소의 공기 공급과, 때를 따라 단비를 내려 주심, 그리고 뿌린 씨마다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는 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으로부터, 제일 무시를 당하며, 멸시 천대를 받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어린 꼬마들까지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새끼 손가락을 믿으라 ! 합니다. 젊은이 어른들의 행위는 더 말 할 수 없는 모습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들입니다. 무슨 자신의 실수와 범죄의 결과도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내가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십니까 ? ]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행동들입니다. 이렇게 오늘도 인간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해하고, 망가트리려 합니다.

이런 행위를 보여 주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라, 이민족, 저민족 모두이며, 한시대 두시대가 아니라, 창조시로부터 지금까지 수천대에 이르기까지입니다. 만일 이런 입장을 당신과 바꾼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내가 불쌍한 사람에게 회사도 차려주고, 집도 지어주며, 양식도 주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성공자가 되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더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 자신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습니다. 주먹을 드리 대며, 멸시합니다. 천대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 그래도 선대 하겠습니까 ?

인간은 누구나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온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손에 엽전 한푼을 손에 쥐고 온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먹여 주고, 입혀주고, 자라게 하여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담처럼 에덴의 동산에 거하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분의 도움이 아니면, 살아 갈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내 인생의 모습은 아닌지요 ? 하나님을 기억도 감사도 아니 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 하나님의 영역과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참으로 깊이 반성하고 되 돌아보아야 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사실 우리 인간의 모습과 행위는 아담 하와에 비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몇 천배, 몇 억배를 잘 못살고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가요 ?

(3)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하나님을 져버리고, 사탄을 선택하는 행위 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따 먹게 된 동기와 과정을 살펴보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절 ~ 6절의 말씀을 묵상 해 봅시다.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창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는 모르고 지은 죄가 아니었습니다. 다 알면서 지은 죄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범한 죄가 아니라, 고의적인 죄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유혹된 말에 그 과일을 먹었으니, 하나님을 져 버리고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을 영접하는 행위였습니다.

(4)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원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원수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기 보다, 사탄의 지시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몸의 형태 만이 아닙니다. 이 모든 사실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원수처럼 여깁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위하여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 참고 기다시며, 돌아 오도록 전력을 쏟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 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수보다 더 멸시하고 무시하는 행동을 감행하며 살아 가고 있을 뿐입니다. (로마서 5:8~12절 참조)

그런 하나님은 원수로 삼고 있는 인생을 위하여 끊임없이 사랑과 용서와 구원의 길을 열어 가시고 계십니다. 이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받아 들이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것조차 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 자는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형벌과 죽음뿐일 것입니다. 깊은 마음으로 묵상 해 보았으면 합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 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사탄을 아버지로 삼는 행위였읍니다.

예수님은 직접 우리 인간의 실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 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원수의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탄을 아버지로 선택한 것입니다. 사실인 즉, 사탄은 이붓 아버지입니다. 이붓 아버지인 사탄은 교활한자요, 간교한 본능을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파과자요,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이는 창세기 3장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고 검증된 사실입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원수의 담을 허시고, 아버지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허물과 실수에 대한 형벌과, 그 값을 다 지불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감수하셨습니다. 이것도 부족하여 당신의 영이, 성령으로 오셔서, 항상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우리의 불효 망칙함을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 자녀의 권세가 회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언제든지 회복 시킬수 있는 길을 온전하게 만들어 놓으셨고, 그 문을 항상 열어 놓고 계십니다. 그리고 돌아 오기만 기다리고 계실 뿐입니다. 문제는, 내가 돌아서는 일입니다. 돌아서는 일은 오직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여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5:11~32 절의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는 우리 인간이요, 아버지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십니다. 장자는 이스라엘 민족이요, 차자 탕자는 이방인인 열국의 백성들 우리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하는 예수님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누가복음 15 : 11 ~ 24절의 말씀을 한번 묵상하며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눅 15: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눅 15: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 더니

눅 15: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눅 15: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훙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눅 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눅 15: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눅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또 한 가지를 더 소개하여 드린다면 요한복음 15 : 1 ~ 11절의 말씀입니다.

요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 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 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져버리고 사탄을 아버지로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입니까 ? 지금 이 시간에, 나 자신에게 묻는다면, 내 양심이 허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합니까 ? 하나님과 원수가 된 상태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악한 사탄에게 메인바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마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합시다. 이를 회복하는 길은 간단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의 자리에서 완성할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6)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 하신 후에 모든 만물을 아담과 하와에게 위임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이름짓는 것이 그들의 이름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그리고 동산의 모든 과일을 다 먹으라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생명 나무의 열매도 있었습니다. 한번 먹게되면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 나무의 열매였습니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러나 에덴 동산 중앙에 한그루의 나무가 있었는 데, 그 나무는 선악과 였습니다. 이 열매는 아주 질이 좋지 않은 나무였습니다. 그것을 먹게 되면 영원히 죽게되는 나무 열매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나무 열매는 네가 손을 대서는 않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먹지 못할 나무 한 그루만 내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선악과의 한 그루는 하나님의 나무였습니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 나무 하나만이 내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사 가운데 하나님의 것은, 전무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에 하나님의 것이 없어 짐은 물론, 아담과 하와의 마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창조사와, 하나님의 존재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도적하는 행위였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죄입니까 ?

이 외에도, 지각의 눈을 뜨고 본다면, 선악과를 따먹은 죄가 얼마나 하나님께 큰 범죄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경은 죄가 무엇이고 죄의 본질이 어떤 것이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 주면서 윤리, 도덕, 등을 올바로 찾게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정확합니까 ? 성경보다 더 정확한 죄의 의미와 본질을 밝혀 줄수있나요 ?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외에는 없습니다. 부수적인 일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윤리와 법도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으로서 인생답게 살아 가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수가 있습니다.

6) 구속론 입니다.

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구원론 즉, 속죄론이라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 값으로 죽어 갔고, 앞으로도 죄로 인하여 죽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지구상에는 65 억이 넘는 인구가 존재 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갓 태어난 영아라 할지라도 120 년 안에 모두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다 할지라도 산 목숨은 아닐 것입니다.

왜 ? 인간은 그렇게 건강한 몸으로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원하는 데, 이는 소원일 뿐, 그렇게 단명한 촛불처럼 사라져 가야 할가요 ? 이는 오직 죄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종교가 필요하게 되고, 종교란 것이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 참된 종교라면,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망에서 구원하는 진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을 호리는 논리가 아니라, 전혀 거짓이 없는 진실이요, 진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바로 이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인이 말하는 6 가 원칙에 의해 대답을 정확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경전 중에서 성경처럼 오래된 경전은 없습니다. 그리고 경전 처럼 이렇게 확실하게 전하여 주고, 보여 주는 경전은 없습니다.

인간의 맨 처음 시작은, 아담과 하와로서 에덴 동산에서 출범 하였음을 부정을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3,600 여년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한 창세기 첫 부분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 *. 기록은 3,600 여년 전부터이지만, 사건의 내용은 천지와 만물의 창조와 시작 부터입니다. 이 시기는, 하나님 만이 아시고, 인간이 알수 없는 비밀입니다. )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제정하신 법도에 따라 당장 죽어야 하였지만, 하나님은 살길을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어린양을 잡아 속죄의 양으로서, 아담과 하와의 죄 값을 대신 치루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린 양이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대신 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가죽으로 그의 몸을 가리워 주는 옷이 되어 주었으니, 죄의 가리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어린 양은 바로 속죄자가 되어 주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자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롬 4: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참으로 복있는 사람은 누구일가요 ? 부귀 영화를 한 몸에 지닌자가 아니라, 죄의 용서를 받는 자입니다. 누구로부터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가요 ? 이는 하나님에게서 입니다. 죄를 짓는 일은 우리 인간 스스로가 합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는 일은, 자기가 자기 죄를 용서 할수 없습니다. 죄를 사할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이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에서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사법부의 판사 만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법부의 검사나 판사가 아무런 이유없이 죄를 용서 해 줄수 없습니다. 법에 근거해서 만 용서 할 권한을 부여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가 죄 아래 있습니다. 죄인을 다루는 법조계의 모든 사람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지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왜 그럴가요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한 창세기의 어린 양처럼 속죄자가 되시어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그 형벌을 당하심은 물론 그 죄의 값을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지불 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종교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전에서 이 확실한 속죄의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경전은 성경 외에 없습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지식이 더하고, 과학과 문명이 발달 할수록 명확하고 선명하게 그 해답을 밝혀 줍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광범위한 부분이기에 이정도로 약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여기에 대하여 성경을 정리하여 제공 해 드릴 수 있습니다. ( kimst7003@hanmail.net )

7) 종말론입니다.

세상은 시작이 있을 뿐만 아니라, 끝도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시작이 있기에 끝도 오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끝은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 징조들은 어떤 일들일지를 말씀하고 있는 데, 그 징조들을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의 징조들과 오늘 이 땅에 이루어져 가고 있는 현상들은 너무 광범위 하기에 종말론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우리는 종말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을 위시하여 각계 전문인들이 발표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 본 홈피에 올려진 종말론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

8) 구원론입니다.

구원론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 갖는다 하여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논리를 만들어 갖는다고 구원을 성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 달려 계실 때, 많은 군중들은 소리치며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너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수 없도다. .....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 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 하였습니다. 한번 확인 해 봅시다.

마 27: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마 27: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마 27: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마 27: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마 27: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의 죄와 형벌을 대신 해야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셨기에 남도 구원하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남을 구원 하신것만 아니라, 자신도 구원하셨습니다.

모든 종교는 무덤의 크기와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오늘도 빈무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하여 무덤에 인봉을 하고, 군병으로 지켰으나, 주님은 무덤 문을 여시고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 하며 유언비어를 퍼트렸으나, 예수님은 40 일을 이 땅에 계시며, 개인적으로, 또는 군중 가운데 수없이, 여러 차례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만이 유일하게 부활절과, 승천절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창조자로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에덴동산에서 예증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의 확실성을 아벨의 제사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의 확실성을 위해 모세로 하여금 속죄의 제사를 시행하도록 하셨으니, 구약의 제사 법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약속대로 오셔서, 천 수백년간 예언 해 오신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말씀을 다 이루시며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 1 : 12 절과 16 : 31 절의 말씀을 보면,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편견을 버리고 사실을 확인하였으면 합니다.

9) 천국론입니다.

성경의 결론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세상 종말에 일어날 징조와 현상을 말씀하여 주시고, 마지막 결론이 천국론입니다. 요한 계시록 21 장의 말씀을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 라

계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 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10) 영생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영생을 얻도록 하심이 지대한 관심이십니다. 그러기에 에덴 동산에서는 생명 과일을 먹기 원하셨고, 예수님은 오셔서 생수를 마시기 원하십니다.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러기에 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요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 인생은 3 세계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제 1 세계는 어머님의 모태입니다.

어머님의 모태에는 빛 한점이 없습니다. 어둠의 세계입니다. 어머님의 모태는 아주 작은 공간입니다. 우리의 다리와 팔을 쭉 펴기도 힘든 공간입니다. 이 안에서는 어머니의 탯줄에 의해 먹고 마시며 숨을 쉽니다. 옷도 필요없습니다. 어머니의 육체가 옷이 되어 주십니다. 여기에서 수명은 10 개월입니다. 만일 잘못되어 일찍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면, 잉큐베이터 속에 들어가 그 기간을 채워야 합니다.

제 2 세계는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 나오게 될 때는 생명 줄이었던 어머니의 태줄을 잘라야 합니다. 그리고 해산의 진통을 겪어야 합니다. 이는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러나 제 1 세계인 모태를 벗어나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내가 직접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을 내가 해야 합니다. 옷도 이제는 내 몸에 걸쳐야 합니다.

모태에서는 밤 같은 세상이었으나,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낮과 밤이 교차되는 세상을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어머니의 모태는 비좁은 공간이었으나 이 세상은 모태에 비교할수 없는 엄청나게 드넓은 세상입니다. 어머니의 모태에서는 담순한 모태 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산천도 볼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하늘은 이 땅에 비교할수 없는 광활한 세계입니다. 이런 하늘을 보게 됩니다. 과학자는 말하기를 하늘에 떠있는 태양은 지구의 33 만 배라 합니다. 그런데 별의 크기는 태양의 1억배도 넘는다 합니다. 이렇게 큰 태양이 1억개 이상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을 은하계라하는 데 이런 은하계가 1억계도 훨신 더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얼마나 광활한지를 짐작하겠지요 ? 그런데 천국은 영원 무궁한 세계로서 끝이 없는 세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자그마한 해와 달과 별들을 보게 되지만, 작은 위성일수록 지구와 비교할수 없이 어마 어마하게 큰 별임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모태에서는 수명이 10 개월인데, 이 세상에서는 수명이 120 년이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는 반평의 땅속이 아니라, 영원 무궁한 하늘 나라임을 말씀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제 3 세계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죽음이란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인가 ? 하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은 거의가 인생은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죽었다 할 그때, 모두가 [ 돌아 가셨다. 소천하셨다. ]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생각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끝장 났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러니칼 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수천년간 변함없이 말씀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세싱을 떠나게 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가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님의 모태에서 출생하는 순간 이 세상이 예비되어 있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가게 될 때는 영원한 세계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비 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영원 무궁한 세계란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허상처럼 여기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내 눈으로 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본다거나, 그 세계를 가보지 않고는 믿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땅과 나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나는 대한 민국의 자그마한 땅 덩어리도 다 다녀 보지 못하였습니다. 가 본 곳은 아주 극 소수의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믿습니다. 가보지 않았다하여 각 나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어리석은자가 될 뿐입니다. 울능도, 독도가 있습니다. 미국 영국도 가 본바가 없지만 있는 것을 믿습니다. 이와같이 영원 무궁한 천국을 알수 있도록 하늘을 보고 살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 인생은, 모두가 모태에서 10 개월을 살다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모태에서 생활 하였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10개월을 살고 나온 어머니 모태에 다시 들어 갔다가 나올수 있을가요 ?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저절로 태어났다하며, 모태에서 태어난 사실을 아니라고 부정 할 사람이 있습니까 ? 만일 이를 주장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모태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모태와 달라 세상도 보고, 하늘도 보며 살아 갑니다. 현대는 과학의 발달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오늘은 미국, 내일은 중국, 온세계를 마음대로 날아 다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주인이 달나라도, 별나라도 다녀 오고 있습니다.

어찌 이뿐입니까 ? 하늘나라도 다녀 온 사람들이, 이 온세계 구석 구석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확실하게 성경에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영생과 천국에 대하여는 의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는 이 좁은 지면을 통하여 다 설명 할 수가 없습니다. 가까운 교회에 목사님을 찾아 가시면 성경 말씀을 통해 확실하게 말씀을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천국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한번 읽어 보실가요 ?

계 21: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계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계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계 21: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 는 청옥이요 열 두째는 자정이라

계 21: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

계 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읽어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이지요 ? 말로 형언 할수 없는 영광스러운 세계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우리 인생의 영광이요, 축복이란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영원한 세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어리석게도 포기하며 인생을 살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비난을 받고 순교를 감수하면서도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자들은 들어 갈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록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천국은 죽은 자는 못들어 갑니다. 산자만이 들어 갈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제 아무리 왕자로서 10 대 손 독자라 할지라도, 그리고 나이가 어린 소년이라 할지라도 죽게 되면 산에 묻게 됩니다. 죽은 자는 내 집안에도 두지 않게 되는 데, 천국에 죽은 시체 같은 자를 둘수 있을가요 ? 어림 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농담으로 여겨서는 않될 말씀입니다. 둘째 사망이란 다시 죽을 일이 없고, 마지막 죽음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좋은 기회가 다시 오지 않는 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이, 마지막 선택의 기회로 주어지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둘째 사망으로 갈 것인가 ? 아니면 영생으로 갈것인가 ? 두 기로에 서서 살아가는 당신 자신에게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정답과 해결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

지금까지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거짓과 속임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진리란 사실입니다. 천지는 변하여도 성경은 결코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주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마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아래의 말씀은 성격을 마감하며 결론적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계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기독교의 경전의 확실성을 주님께서 직접 거듭 거듭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나는 위에서 종교로서 갖추어야 할 내용에 대하여 성경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위와 같이 확실한 내용을 가지고 검증된 경전을 가진 종교가 있습니까 ? 찾아 볼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핵심이 무엇일가요 ?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기록들이요,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며, 성경의 마지막 부분은 다시 심판주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신학자가 성경에 대하여 말하기를 [ 성경에서 한 방울의 진액을 뽑아 낸다면, 이는 예수님이란 한분 뿐입니다. ] 고 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온 세계 만인이 다 기억 할수 있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역사의 기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기원이 되어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천하 만인과 만국인이 모두 예수님의 기원에 의해 살아 갑니다. 세상의 모든 만사에 예수님의 기원이 기록 보존되어 갑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실상은 어떠하였을가요 ? 모든 종교에는 핵심 인물이 있습니다. 그 핵심 인물을 교주라고 부릅니다. 교주는 배후에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의 석가는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인도의 힌두교, 중동의 이슬람교, 유교의 공자등 가문과 신분이 뚜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 국가와 국민의 힘을 얻고 형성된 종교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입지가 전혀 다릅니다. 예를 한 가지만 들게 된다면, 이사야 53 장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 700 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으로 주신 말씀인데, 그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고, 허술합니다.

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 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주전 700 여년 전에 예언 함과 같이 [ 부모도 없고, 모양도 없고, 흠모하거나, 사모할 것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인간의 지식과 상식선에 비추어 볼 때, 한 종교 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성공자의 희망이 전혀 보여 질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눌 자리가 없었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해롯대왕의 칼날에 쫒겨 애급으로 피신 해야 하였습니다. 어려서는 고국에 돌아왔지만, 나사렛 시골에 묻혀 자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정 환경은 목수의 가정이었습니다.

나이 30 세가 되어서 공생애에 접하시었으나, 유대인의 통치자와 종교 및 백성의 지도급 사람들은 물론 평민들에 이르기 까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최후에는 십자가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하였습니까 ? 12 제자 모두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 당시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교를 하게 될 때, 철저하게 환난과 핍박과 죽임을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칼이나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감수 할 뿐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모국이라 하던 유태인 즉, 이스라엘은 어떠합니까 ?

오늘까지 철저하게 예수님께 대하여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겨우 0.2 % 정도만이 예수님을 믿고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온통 성지로서 가꾸어 있고, 성지인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이 세계 각처에서 몰려 와 이스라엘에 돈을 쏟아 놓고 갑니다. 그럼에도 여전 예수님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기원이 될 수가 있습니까 ?

이스라엘 백성 본토가, 기독교를 철저하게 핍박하고 봉쇄하며 저지하였습니다. 당시 세계를 장악하던 로마가 기독교를 학살하는 데, 선봉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뒤집어져 기독교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독일, 영국도 마찬 가지입니다. 얼마나 기독교를 핍박하고 잔해 하였는 지 역사는 증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교가 될 만큼 변하여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였습니다.

미국도 식인종이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들어간 153 명의 청교도들이 온갖 시련을 겪고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식인종에게 잡혀 먹히는 가운데 겨우 절반이 살아서 이루어진 나라가 미국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발자취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질게 배척당한 예수가 어떻게 인류 역사의 기원이 될 수 있을가요 ?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6 % 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면 ] 이루어 질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정말 사람들의 생각과 같이 별 볼일 없는 천민일가요 ?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땅에 속한자가 아니다. 하늘에 속한 자이다.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 예수님은 하늘의 권능과 능력을 모두 소유하신 분이요, 하늘 만이 아니라, 하늘 아래의 땅도 소유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태양이 없이 살수가 없습니다. 태양을 완강히 거부한다 할지라도 태양 아래서 살고 있을 뿐입니다. 만일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는 흔적없이 말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양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의의 태양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말씀을 볼가요 ?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인류 역사에 떠오를 의로운 해는 무엇일가요 ? 태양이 다시 생기는 일일가요 ? 아닙니다.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의의 태양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치욕스럽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선한일은 십자가로 표시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고, 축복하는 기관의 표시는 전 세계가 십자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는 치욕의 십자가로서 살인 강도같은 최악의 죄수들이 참수형을 당하는 형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치욕의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로 바뀐 것입니다. 오늘에 십자가는 ..

첫째 영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둘째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셋째 의의 상징입니다.

넷째 의료(치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다섯째 구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여섯째 승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일곱째 사랑의 상징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남녀 노소 가릴것 없이 금으로 만든 십자가가 목걸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각국인이 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차에도 걸며, 가슴에도 달고 다닙니다. 십자가는 자랑스러움이 되었습니다. 가장 치욕으로 알던 이 십자가를 누가 이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까 ?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시기 수천년 전, 에덴 동산에서 부터 예언이 되고, 그의 생애와 삶이 수천 수백년 전부터 계속 증거되어 오다가, 성경대로 탄생하시고, 성경대로 자라시며, 성경대로 사시다가, 성경대로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확실성 때문에 복음의 불길은 꺼질 줄 모르고 온 세상에 번져 왔습니다.

사도행전 시대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고 옥에 가두며, 때리고 핍박하던 때였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핍박하다 못해 지쳐 어찌하면 좋을가 ? 궁지에 몰렸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민족의 스승이요, 법의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진 가말리엘 교법사가 한 말이 있습니다. 이 가말리엘은 기독교의 핍박의 선봉자였던 사울 즉,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습니다.

행 5:33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행 5: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행 5: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행 5: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행 5: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행 5: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행 5: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행 5: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들은 죽음도 능욕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왜입니까 ? 예수님을 확실히 구원자로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 모두가 능지 처참을 당하며 순교하였습니다. 성도들도 모두 핍박과 환란을 당하다가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보려면 오늘도 지하 땅굴 속에 혜아릴수 없는 헤골들이 가득 메워져 있는 카타곰을 찾아 가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가말리엘 교법사의 말과 같이 되었습니다. (가말리엘도 핍박자와 한통속이었습니다.)

행 5:35 (율법사 가말리엘이)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행 5: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행 5: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행 5: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행 5: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기독교는 어떤 환나과 핍박과 죽음에서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왜 입니까 ? 하나님께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 오늘 우리는 그 열매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 순교의 현장에 뛰어들어 가는 것을 겁을 내지 않고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히 살길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우리 온 세계인이 누려야 할 축복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영원히 죽게 하는 것은 큰 죄악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맨 주먹으로 복음의 불모지인 나라들을 목숨을 받쳐가며, 죽을 각오로 뛰어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선교사의 핍박당하는 모습으로 국민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일이 발생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복음의 불모지에 불나비처럼 뛰어들며 갈 수밖에 없는 것은, [ 거져 받은 이 복음 거져 주어라 ! ]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 만이 구원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남도, 다른 나라 사람도 영원히 살게 되는 축복을 함께 받아 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체험 해 보지 않고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나에게는 한 아들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선교의 현장에서 28 세의 사랑하는 아내와, 2살, 5살의 두 아이를 두고, 필리핀 선교의 현장에서 33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의 자부는 28 세의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자만, 장례를 고국에서 마치고, 다시 70 여일 만에 그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필리핀에 다시 들어가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의 형님의 장남 깅영섭 목사도 약 20여년 전에 중동 요르단에 생명 걸고 들어가 선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핍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가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입니까 ? 우리 주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요,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눅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700 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런 멧세지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 말씀을 실현 시키셨습니다. 인간의 구속과 구원을 온전히 완성 해 주셨습니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 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 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 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 53: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사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제 더 이상 뒤로 미루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고 오시면 더 기쁜 일기엤지만, 불신에 찬 마음으로도 오십시오. 진정으로 참 종교를 알기 위한 마음만 있다면 말입니다. 가까이 계신 목사님들께서는 반드시 올바른 안내를 해 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 04. 29.

부활절을 보내고 첫 금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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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474-4768. 070-8249-0488.

김석태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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