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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종교

문동수 (경기노회,밀알교회,목사) 2011-08-07 (일) 14:02 12년전 2996  

두 개의 종교

신명기 8:1-20, 로마서 13:1-7, 마태복음 22:15-20.

현실 기독교는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종교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 세상을 말하는데, 기독교인들은 끊임없이 죽고 난 이후를 말합니다. 이러니 신앙이 이상하게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데, 머리 속에는 이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은 관심이 없고 오직 죽음 저편으로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인간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고, 영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이 이상하게 됩니다. 인간들이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영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영혼 구원만을 외치는 형국입니다.

오늘 신명기의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명령을 지키면, 큰 복을 내려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복도 죽어서 받는 복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받는 복입니다.

이 복은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명예의 축복 등 세상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런 복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정말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복은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복이 아니라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복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 아니라 사탄이 내려주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어디에도 “내가” 받을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공동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기만 하면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복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땅이 주어지고, 먹을 것이 넘쳐 나고, 자손이 대대로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다 있습니다. 죽어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것도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반적인 두려움 때문에 종교가 생겨났다고 종교학자들은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종교라면 그리스도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죽음 저편의 문제 때문에 생겨난 종교가 아니고, 삶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야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려우면서도 참으로 쉬운 질문입니다. 등산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등산은 참으로 쉽습니다. 쉬운 것은 그냥 산에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르면 등산입니다.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등산이 어려운 것은 오르기도 전에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입니다. 어렵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니까, 산에 발을 딛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따져 보고, 저렇게 따져 보다가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것이고, 그렇게 되다보면, 순명에 순자도 시도해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만 해가지고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삶은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은 모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하면 우리들에게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복이 반드시 이 세상에서 주어질 것입니다. 순명하십시오.

그러면 말씀에 순명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말씀에 순명하라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제 칠일 안식교입니다. 이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비늘 없는 물고기와 되새김질 하지 않는 짐승은 먹지 않습니다. 나는 이들이 소 잡고 비둘기 잡아서 번제와 소제는 안 드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물어보니, 대답은 하긴 하지만 전혀 터무니없는 황당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사로 잡혀 말씀을 못 듣는 사람들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씀에 순명하라고 하니까, 교리에 목숨을 겁니다. 교리에 죽고, 교리에 사는 교리주의자들입니다. 물론 처음에 교리가 나올 때는 말씀을 지켜보려고 한 사람들의 노작이었습니다. 정말 신실하게 말씀에 순명하려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말씀은 어디로 가고 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술 먹으면 되니 안 되니, 주일날 뭐 사면 되니 안 되니, 삼위일체를 믿니 안 믿니, 교회 밖에는 구원이 있니 없니, 참으로 말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리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바리새적인 사람들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씀에 순명하라고 하니까, 성경은 읽지도 않고 자기의 체험에 근거해서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순명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본질적인 것에는 순명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에만 순명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령파입니다. 말이 좋아 성령파지, 제가 보기에는 거의 잡신파 수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주장하는 것은 주로 기도입니다. 기도에 순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기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가 아니라, 잡신을 불러들이는 주문 수준입니다. 이들 중에 간혹 황홀경에 빠져서 그곳에 매몰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황홀경에 빠진다고 다 하나님 체험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조사해 보면, 거의 정신병자 수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한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은 단순합니다.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면 도둑질 하지 않으면 됩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 간음하지 않으면 됩니다. 의외로 하나님의 마음은 아주 단순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왜 못 따르느냐? 먼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니 말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순한 것 뒤에 뭐 복잡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단순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해의 문제이지 복잡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따르기 싫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말씀이 맞기는 맞는데, 그렇게 하기 싫은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랑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낮아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중심에 “나”라는 못된 존재가 중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 안에 다 편안한데, 한 사람만 편안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온 집안이 편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구라는 가정에 나 하나만 많이 가지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 줄 아십니까? 지구라는 가정에 단 한사람만 굶어서 죽는 일이 벌어져도 지구 전체의 슬픔이라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자기가 손해 보지 않겠다는 생각은 결국에는 더 많은 손해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우리교회는 교회 연혁으로 보면 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제 출발하는 교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우리교회의 형편이 너무 좋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것은 수정하기가 어렵지만, 처음부터 바르게 출발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명하면 됩니다.

순명하되, 여러분이 약속하실 것이 있습니다. 먼저 성경을 열심히 읽겠다는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물론 전문적인 것은 제가 주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한 사람만 열심히 해서 그 결과물을 주면 될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우매한 짓입니다. 우리 모두가 의학을 공부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의학적인 지식이 있어야 돌팔이에게 걸려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어느 누군가 말씀을 이야기할 때, 그 말씀이 ‘옳으냐’, ‘그르냐’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 있는 것을 뜻하고, 식물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기도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를 행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몇 시간 기도 했니, 안 했니 말들이 많은데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삶에 필요한 자양분인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합되어 있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라 돌듯, 하나님을 향해서만 서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한다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한시라도 놓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이것을 약속하시면, 저는 오늘부터 우리교회가 순명해야 할 말씀을 여러분께 알려 드리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 위에 주신 주님의 말씀은 신명기 8장, 로마서 13장, 그리고 마태복음 22장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말씀에 순명하라, 그러면 “우리”에게 땅과 물질과 자손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땅과 물질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과 재물을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 자체가 우상숭배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주님은 우리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3장의 말씀은 땅의 권세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땅의 권세가 하나님과 연관성이 없다면, 그것에는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권력과 명예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권력과 명예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아십니까? 권력의 최 정점에 서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도 합니다. 로마서의 말씀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하면 그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황제의 것이 어디 있느냐, 세상천지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단 두 개의 종교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섬기는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넘어서 있는 것을 섬기는 종교입니다. 돈을 섬기는 종교와 돈을 넘어서 있는 종교, 권력을 섬기는 종교와 권력을 넘어서 있는 종교, 명예를 섬기는 종교와 명예를 넘어서 있는 종교, 가족과 혈육을 섬기는 종교와 혈육을 넘어서 있는 종교, 학벌을 섬기는 종교와 학벌을 넘어서 있는 종교, 민족을 섬기는 종교와 민족을 넘어서 있는 종교, 기독교를 섬기는 종교와 기독교를 넘어서 있는 종교, 자기 능력을 섬기는 종교와 자기 능력을 넘어서 있는 종교.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섬겨야 할까요? 이미 여러분이 다 판단하고 아실 것입니다. 그렇더라고 한 가지 정하기로 하겠습니다. 다함께 따라하겠습니다. 하나,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섬기지 않겠습니다. 둘,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셋, 우상을 섬기는 세상일지라도 그 세상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겠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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