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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역설

김승환 (강원노회,생명,목사) 2011-08-11 (목) 22:44 12년전 4083  

십자가의 역설

(시 118, 22, 고전 1:18-31)

최춘선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맨발로 길거리를 다니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 최고의 자비,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웬일인지 그 말씀이 제 마음에 깊숙이 박혔는데, 제 영혼이 주 예수의 자비를 절실히 필요로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주 예수의 자비를 나타내는 그 영원한 상징이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보십시오. 얼마나 투박합니까? 어떤 곳은 썩었고, 어떤 곳은 상처가 났습니다. 그 어디에도 보기에 흠모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나무토막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안목을 가진 목수의 손에 의해 이 나무토막이 다듬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귀한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나무 하니까 한 가지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법궤입니다. 이 법궤를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개역성경에는 조각목으로 되어 있는데 원어로는 싯딤나무로, 아카시아의 일종입니다. 아카시아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거기에 무슨 흠모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싯딤나무는 이스라엘 광야에 가면 흔하고 흔한 것입니다.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뿌리는 땅속에 깊이 박고, 내구성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양은 별로입니다. 그런데 이 싯딤나무로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인 법궤를 만들라고 하나님께서는 못박으셨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왕이면 고급목재인 백향목으로 할 것이지, 기왕이면 스페셜로 갈 것이지...

그런데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스페셜로 가봤자 얼마나 스페셜이겠습니까? 넓고 웅장하게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 하나님이 거기에 거하실까요? 고급 건축자재를 써서 화려하고 우아하게 단장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까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는 스페셜도 없고 잡것도 없습니다. 스페셜이라면 다 스페셜이고, 잡것이라면 다 잡것입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라, 정 하려면 있는 그대로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서 살면 거기가 바로 하늘나라요, 거기서 만나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가 언제 쓰임받았나요? 스스로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며 모두 내 말을 들으라고 어깨에 힘을 주던 40세때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쓰임받은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모든 특권의식, 모든 혈기가 다 빠지고 그의 삶이 광야의 떨기나무들처럼 밑바닥에서 내 모습 그대로 하루하루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의 손은 얼마나 투박했을까요? 얼굴빛은 어떠했을까요? 그의 학식은요? 언변은요?

이러한 인생의 역설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시가 “어느 패전병사의 기도”로 알려진 시입니다.

무어나 얻을 수 있는 강한 체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으나

나는 약한 몸으로 태어나

겸손히 복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큰 일을 하기 위하여

건강을 구했더니

도리어 몸에 병을 얻어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큰 부자가 되어

행복하기를 간구했으나

나는 가난한 자가 됨으로

오히려 지혜를 배웠습니다.

한번 세도를 부려

만인의 찬사를 받기 원했으나

나는 세력 없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바라고 원한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은연 중에 나는 모든 것을 얻었나니

내가 구하지 않은 기도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부족하되

만인 중에서

가장 풍족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탁월한 시의 저자가 작자 미상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그만큼 가난하고 겸손한 상태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만큼 세상에 끼치는 은혜는 큽니다. 사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고 계십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도 낙관 하나 남기지 않으십니다. 모든 좋은 것은 자녀인 우리들에게 주시고, 당신은 물러나 빈 자리로 가십니다. 언제나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까요? 우리가 언제나 조각목으로 당신의 거처를 삼으시고, 십자가에서 당신을 다 내어주신 그 크신 은혜를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요?

이 사랑, 이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조건이란 없습니다. 흠많고 티많은 인생일지라도 탓하지 않고 품어 안으사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그 크신 사랑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과연 나는 만인 중에서 가장 풍족한 은혜를 입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렇게라도 살아 그분을 알아가고 그분께 예배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루 세 끼 밥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걱정 없이 섬길 수 있는 제단이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불평하지 마십시오. 은혜에 감사하고, 다만 열심히 일하십시오. 나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더 많이 일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십시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실은 천사가 흠모하는 일입니다. 일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그렇게 툴툴거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참 많이 배웠습니다. 큰 일은 이삿짐센터에 부탁해서 했는데, 야, 정말 훌륭한 사람들 많더라구요. 그 힘든 일을 어쩜 그렇게 군말없이 하나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주 열심히, 친절하고 겸손합디다. 예수님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을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서 나는 놀 수 있나요? 아무리 다른 사람이 일을 해줘도, 주인이 해야 할 몫은 있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업체를 선정해야 하고, 짬짬이 분위기 맞춰줘야 하고, 어떤 것을 어디에 배치하고 어떤 것은 버려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나도 부지런히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잡념이 사라집니다. 힘은 들어도 뿌듯하고 밥맛이 좋습니다. 부부가 같이 하니 금슬은 곱빼기로 좋아지고.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건대, 열심히 일하다 보니 보물을 건집니다. 보물이 다른 데 있지 않더라구요. 땀흘려 열심히 일하는 곳에 보물이 있습니다. 거기에 하늘나라가 있고, 거기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예수님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애타게 찾는 게 있었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는 시입니다. 전에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목이셨던 김영호 목사님이 쓰신 시인데, 너무 좋아서 대충은 암송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복사해서 나누어주기도 했지만 나중에 그 시 원문을 찾으려 하니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으니 물어볼 수도 없구요. 그런데 그 시를 이번에 이삿짐 정리하다가 찾았습니다. 책장 정리하는데, 멋있는 파일 하나가 툭 바닥에 떨어지는 게 아닙니까? 이 안에 뭐가 들어있나 하고 보니까, 거기에 딱 이 시가 있는 거 있지요.

작은 것 하나

주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 당신에게 한 것이라 하셨지요.(마태 25:40)

그러니 많은 사람들에게 행해야 한다는

우리의 헛된 욕심을 버리게 해 주시고

작은 자 하나를 당신 사랑하듯 사랑하며 살게 해 주소서.

주님,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셨지요.(마태 10:42)

그러니 많은 것을 행해야 한다는

우리의 헛된 욕심을 버리게 해 주시고

작은 것 하나를 서로 함께 나누며 살게 해 주소서.

주님, 작은 일에 충성한 자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하시며

당신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리라 하셨지요.(마태 25:23)

그러니 큰 일을 행해야 한다는

우리의 헛된 욕심을 버리게 해 주시고

작은 일 하나를 당신의 기쁨으로 행하며 살게 해 주소서.

주님, 두 세 사람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당신이 그들 가운데 함께 있으리라 하셨지요.(마태 18:20)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는

우리의 헛된 욕심을 버리게 해 주시고

작은 모임 안에서 주님 당신을 만나며 살게 해 주소서.

(김영호)

참 좋지요? 만약에 제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다 맡기고 놀기만 했다면 이 보석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땀흘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몸 뒀다 뭐 할 겁니까? 손 뒀다 뭐 할 겁니까? 농부는 밭을 원망하지 않고,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왜 옛날 국민교육헌장에도 나오는 말이잖아요.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어떠한 처지, 어떠한 환경이든지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은 쪽으로 변하는 줄 믿습니다. 거기에 보물이 있고, 거기에 천국이 있고, 거기에 예수가 계세요.

베드로가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났지요? 바닷가에서 만났습니다. 밤새껏 열심히 일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그물을 씻다가 때마침 그곳에서 가르치시는 예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이 바뀌었지요.(눅 5:1-11)

이 한 주간도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 어쩌면 그때가 진짜 일해야 되는 때인지 모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그곳에 찾아오실지 모릅니다. 베드로 얘기 하니까 그 얘기가 생각나네요. 영화 <쿼바디스>의 한 토막입니다. 로마에 불이 나자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잡아죽이라고 광분합니다. 모두들 로마를 떠나고, 베드로마저 베드로를 떠납니다. 길을 가는데, 누군가 황급하게 자기가 도망쳐나온 로마로 들어갑니다. 아차 싶어 보는데, 주님이십니다. 그때 그 유명한 말을 하지요. “쿼 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때 주님은 뭐라고 하셨지요? “나는 네가 버리고 간 로마로 간다.” 그 얘기를 듣고 베드로는 발걸음을 돌이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지요.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희망이 되어주시는 분, 건축자들이 버린 돌일지라도 그 돌로써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아니 당신 자신이 그렇게 버림받고 그렇게 쓰임받아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신 분이십니다. 이 주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이 한 주간도 각자의 성소에서 열심을 다해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사랑 많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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