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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분배, 생산과 나눔

문동수 (경기노회,밀알교회,목사) 2011-08-14 (일) 01:42 12년전 3717  

성장과 분배, 생산과 나눔


열왕기상 17장 8-16절     사도행전 6장 1-7절     마가복음 6장 30-44절


식물들과 동물들은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필요한 것만큼 먹고, 먹은 만큼 자연에게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을 쓰레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환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미생물로부터 최고의 포식자까지 서로 필요한 것만큼 먹고, 먹은 만큼 서로에게 돌려줍니다. 그래서 이 지구라는 생명체가 아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합니다. 식물과 동물들이 환원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전체 지구에 불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유기체적인 지구라는 생명체 안에서 모두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뿐입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동물이 바로 “인간”입니다. 쓰레기라는 말은 쓸데없는 것을 뜻합니다. 식물과 동물이 배설하는 것은 전체 지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 반면에 인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전체 지구에 불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생명체인 지구에 치명타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인간은 왜 쓰레기를 양산하는 동물이 되었을까? 이 말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쓰레기라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조금 전에 쓰레기란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도 사실은 그렇게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필요 이상의 배설물” 또는 “지구라는 생명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배설물”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인간이 필요 이상으로 배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둘이 배설하면 그것은 환원입니다. 그런데 둘이 배설할 것을 하나가 하면, 쓰레기가 됩니다. 한명은 먹은 것이 없으니 돌려주지 못해 자연에 역행하고, 다른 한명은 너무 많이 먹으니 쓰레기가 되어 자연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하게 하나, 둘의 문제라면 그래도 봐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백만, 천만이 먹을 것을 한명이 다 먹는 시대이니 참으로 문제입니다.

올 여름에 우리나라에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왔습니다. 인재니, 천재니, 말들이 많지만, 제가 보기에는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너무나 많은 쓰레기 배출로 인해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리해서 몸살을 앓게 되면 좀 쉬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는 어떻게 쉬게 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답은 명확합니다.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도 버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말하기를 “너부터 버리면 나도 버릴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내가 욕심을 버리면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득을 보려면 내가 나중에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맙니다.

오늘 열왕기의 말씀은 과부 한 사람과 엘리야의 대화입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마실 물을 떠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먹을 것도 좀 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엘리야에게 먹을 것이 얼마 없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나누어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음식을 죽기 전에 아들과 함께 먹으려고 땔감을 줍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과부에게 엘리야는 음식을 해 와서 “먼저 나누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당신들 먹을 것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뒤주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엘리야를 시켜서 하라는 대로 했더니 과연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합니다. 뒤주의 밀가루를 퍼 가면 귀신같이 또 찼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몰래 뒤주에 밀가루를 넣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과부가 양식을 숨겨 놓고 없다고 한 것일까? 이 중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요? 정답은 모두 ‘틀렸다’입니다.

지금 성서 기자는 분배와 나눔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질문은 생산과 성장에 관한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누면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늘 우리의 질문은 생산과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열왕기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늘 생산과 성장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GNP가 어떠니, GDP가 어떠니, 수출을 얼마를 했니, 수입은 얼마를 했니, 반도체의 가격이 떨어 졌니, 높아 졌니, 이런 말들만 무성합니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 먹고 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경제지표가 늘어난다고 해서 굶주리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생산과 성장은 먹고 사는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전 지구에는 70억의 인구가 먹고 살만한 충분한 양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과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한 결과입니다. 지구는 70억이 아니라 140억까지도 감당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산을 많이 한다고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야 삶이 윤택해진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선거 때에만 잠시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선거만 마치면 온통 성장에 관한 이야기 뿐입니다. 지금 서울시에서 무상급식에 대해 논란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문제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분배를 말하고 있는데, 오세훈 서울 시장은 성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합치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기득권자들이 말하는 “선 성장, 후 분배”라는 말은 분배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장이라는 단어에는 분배가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장은 더 많은 성장을 추구할 뿐이지 분배에는 조그만 관심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역이 맞습니다. 분배를 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가복음의 말씀도 분배에 관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의 신임을 얻기 위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수도를 갈릴리로 옮겼을 때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개발하고 그곳에서 많은 물고기를 잡아내면 나라의 경제에 보탬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아냈습니다. 수출도 했습니다. 그리고 잡아낸 물고기에 엄청난 세금을 물렸습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시작한 개발이 이상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국민들은 오히려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성장은 계속되는데, 먹고 살기는 훨씬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성장의 혜택은 극소수의 사람들, 로마의 권력층과 헤롯안티파스라는 사람만이 누렸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성장을 하면 할수록 더 배를 곯았습니다. 이 문제는 비단 과거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과거 6. 25를 지냈던 사람들은 성장해서 먹고 살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항변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분들의 경험은 존중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먹고 살기 어려웠던 것은 성장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전쟁만 아니라면, 이 한반도의 역사에 전쟁만 없었더라도 우리 민족이 그렇게 비참하게 살았던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전쟁이 왜 일어납니까? 전쟁도 성장하고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고 싶어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미국이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일으킨 이유도 자국의 경제 때문입니다. 미국이 무기를 팔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쉬쉬하지만,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닙니까? 미국이 정말 그렇게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을 합니까? 로마도 그랬습니다. 폭력을 통해 정의와 평화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전쟁이라는 단어하고 평화라는 단어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다 입에 발린 소리입니다.

헤롯안티파스 밑에서 신음하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습니다. 34절에 “가르치셨다”고 전합니다. 무엇을 가르치셨겠습니까? 먹고 사는 문제는 성장과 관련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나눔과 분배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후반부의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사실 가르침과 실천의 문제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말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수많은 무리들은 이제 헤롯 안티파스의 정책, 많이 벌어서 먹고 사는 방법에서 벗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분배와 나눔으로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근 이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 반이나 남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성장은 언제나 모자람과 관계가 있는 말이지만, 분배는 언제나 차고 넘쳐남과 관련 있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참으로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말을 하는 사람과 히브리말을 하는 사람들 간에 분배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배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사람을 더 세웁니다. 순수하게 분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좀 다툼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배에 관한 것이면 얼마든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피해갈 것이 아니라 좀 더 솔직하고 정직하게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은혜를 끼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지금 세상에는 온통 성장하기 위해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복지에 관련된 예산은 줄이고, 성장과 관련된 예산은 늘리려고 안달이 나 있습니다. 지금 4대강 사업도 그런 계획의 일부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성장이 도대체 국민의 삶의 질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랑해야만 하는, 그리고 사랑하고 싶은 한맘교회 식구 여러분!

지금까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잘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넓게 예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지금 경주 땅에서 살고 있는 신앙인이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삶의 방식을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나눌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다 주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충분히 먹고 살고도 남을 양식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벌 것을 생각하지 말고 나눌 것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르밧의 과부가 가지고 있는 것, 한번 먹을 양식, 그곳이 출발점입니다. 이만명이 모였으면서도 지닌 것이라고는 달랑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입니다. 그곳이 출발점입니다.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생각과 의지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한다는 말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사탄의 속삭임은 항상 “이것이 네 것이다”라는 속삭임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을 모두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은 우리에게 속해 있는 모든 것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대로 먹고 쓰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교회의 목표는 초대교회가 이루었던 거룩한 삶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에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초대교회, 초대교회 하면서 방언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본질에 한참 벗어나 있는 이야기입니다. 초대교회는 나눔과 분배의 공동체였습니다.

이 초대교회의 삶을 “현대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살아낼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우리교회가 당면한 문제이고, 또 살아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방법들은 앞으로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신 것, 이 세상의 방법 즉 성장의 방법이 아니라, 하늘의 방법, 분배의 방법으로 살 것인가 하는 의지입니다.

결론입니다. 생각은 넓게 해야 합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가족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넓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한민국 경주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실천은 이곳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그 가장 작은 기초단위는 한맘교회입니다. 우리교회 안에서 공동의 분배와 나눔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기를 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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