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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님 은 왜 재활용에 자주 오시 나요 ?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1-08-25 (목) 17:48 12년전 4073  

           목사님은 왜 재활용에 자주 오세요?
 
이곳 대림동으로 이사 온지도 어언 5년이 다되어간다. 이곳은 재활용 사업장이 몇 군데 있는데 마침 교회를 오고가는 길목 이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에 한번은 들르게 된다.

쓸 만한 물건이나 헌책을 구하기 위해서 이지만 거기에 가면 폐품을 수집하는 분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재미도 한 몫 더해준다.

어제는 주인 되시는 분이 목사님 재활용에 자주 오시면 중독이 되어 계속 재활용만  찾게 된다는데 왜 이곳에 자주 오세요?  목사 체면에 자기 사 업장에 자주 찾아오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보기에 민망해 건네는 말이리라. 
그거야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해서 이지하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계속해서 그 말이 귀가에 아른 거린다.

 물론  어려서부터 절약 정신이 몸에 배이기도 한 것이겠지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12절에 보면 ...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작은 것이라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짜 복은 어떤 것일까? 
받는 복도 중요 하지만 받은 것을 잘 누리는 것이리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잘 관리하고 누릴 줄 알아야 하겠거든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다 썩혀서 버리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고도 남은 복을 주셨는데 그것을 귀하게 관리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농부의 아들이기 때문에 쌀 한 톨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땀의 결실인지도  잘 알고 있다. 쌀 한 톨 콩알하나만 땅에 떨어져있어도 쓸고 또 쓸어서 돌 맹이와 먼지를 다 골라  내고 그걸 다시 바구니에 담아둔다.

 그런데 현대의 도시인은 식은 밥이며 배불러서 못다 먹은 밥을 얼마나 가치 없이 버리는 일이 비일 비재 하다.  과수원 농부들은 사과 하나 배 하나라도 더 수확 하려고 묶어 주고 또 감싸주고 하는데 우리는 상한 사과하나를 얼마나 쉽게 버리고 있지나 않은가?

명절 때 고향에 가면 부모님 들이 제일 좋은 것으로 아끼고 골라서 감이며, 채소며, 바리바리 싸주시는데 우리는 무심코 난간 같은데 놔두었다가 썩혀서 버려 버리지 않았는가? 주님 은 말씀 하셨다 그렇게 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고,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이 허락 하신 것을 잘 관리하고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허비하지 않으리라 하고 시작한 것이 재활용을 찾게 된 동기라고나 할 까?
이러한 모습을 가까이서 눈여겨 보아왔던 사장 아줌마는 날  보기에 구질구질 하게만 보였을 것이리라.     

지금 우리는 삶의 가장 주된 생산물인 쓰레기 문명인이며 재생산하기보다는 고갈시켜 버리는 유일한 생물종이다.

오늘아침 버리는 신문지에 비닐 봉투를 넣으니 그건 안돼요? 그렇게 같이 넣으면 썩지도 않는다고 아내가 귀 띰 해 준다.  석유 화학 산업은 단순하고 값싸 보이지만 사실은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신세대 들은 그들의 재능과 자질을 낭비하고 있다.

구세대의 가난의 미학과는 달리풍요의 미학을 그들은  구가 하고 있다.
매일 t.v 광고는 우리를 소비하도록 충동한다.

희망이 사라지면 낭비와 소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가 땅과 물,  숲과 나무 이런 것들이  우리의 자녀 혹은  후대와의 관계가 되는가를 이 해 한다면 자연의 보존과 살림의 살리는 문화를 가꾸는 일이 얼마나 긴급하고 소중한  일인가를 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재생은 위대한 영적 행위이며, 낭비에 대한 해독제이다.
재생이라는 영적 행동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폐기라는 등식을 부수어 버리고
필요한 만큼 주문하는 소량 다품종 생산과 무기명 상품에서 생산자 명시 상품의시대로 나아가도록 산업사회의 기본구조를 바꾸어 버릴 때이다. 

그래서 나는 그럴 여유도 없지만 대형 백화점보다는 규모 있는 구매를 상표 위주의 소비 보다는 생산자 이름을 밝힌 상품을 얼굴 없는 거래보다는 앞면이 있는 거래를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유기적 거래를 함으로써 낭비를 막고 상호 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생, 공영의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하고 자문자답을 해 본다. 

 나는 오늘도 재활용 사업장을  찾는다.
거기에 아직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물건들을 건 질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칠 수 있는 것은 수리해서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 주고 쓸모 있는 옷가지들이나 물건들을 구해서 어려운 교포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오늘도 그 현장을 찾을 것이다.
거기에 삶의 찌든 현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단 한 삶을 영위해 가 면 서 희 망 을 잃지 않는 웃음 과 희 망 을 볼 수 있기에 말이다.

  주님의 남은 것을 버리지 말고 거두어 라고 하시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사치의 해는 천재(天災) 보다 심하다”고 한 율곡의 말대로 우리는 거품 속에서 흥청 거 리 다가 아예 다 잃어버리고 후회하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다.

 주제에 걸맞지 않게 일찍이 삼 페인을 터뜨리고 있다는 비웃음이 다시 들려오지 않기를 소원한다. 
재활의 공터에는 오늘도 많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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