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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가 난!

이선규 (서울남노회,금천교회,목사) 2011-09-30 (금) 08:56 8년전 1957  

     임금님의 가난!
 
성경을 읽는 중에 시86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의 시를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새로운 사 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이전에도 이 말씀을 여러번 읽었을 터 이지만 그냥 흘러 지나쳤던 같다.

다윗은 한나라의 왕으로 모든 것을 수하에 넣을 수 있는 힘 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말 할 까닭이 없으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넘어 갔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말씀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 오게 된 것은 최고의 권력과 부를 쥐었던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정말 그랬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기도 하였지만 성경의 기록 이니 믿을 수밖에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다윗은 이렇게 생각 한 것 일까? 꼬리를 물고 상념이 떠오른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 할 지 뻔 한일이면서도 다윗은 궁핍하고 가난 하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는 세인들이 생각 하는 부자의 기준에서 이런 말을 한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부자를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으로 생각 했다면 다윗은 이런 말을 했을 라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분명 한 것은  물질과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었던 것은 아닌듯하다.
 필 컬러 웨이라는 캐나다의 유명한 작가가 쓴 ‘돈한 푼 없이 부자로 사는 법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이 책에서 ’돈은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부자를 만들지 못했다는 말을 했다.

 돈의 많고 적음이 부자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리라 이해한다.
 저자는 진정한 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첫째: 많이 웃는 사람이 부자 이고 두 번째 잘 놀고 쉴 줄 아는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부자라고 역설 하고 있다

 셋째는  가장적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부자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고 아무리 적게 가져도 만족 하는 사람은 부자인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부자는 사람들과 더불어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아무리 똑똑하고 가진 것이 많아도 혼자 살아간다면 그는 가난뱅이임에 분명하다.
마침  신문에 서울역의 노숙인의 기사가 실려 있다. 
 노숙인 에게는 뭔가 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상이 중장기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라 순간, 순간을 위한 행위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숙인의 삶은 ‘현재 중심이다.

노숙 인에게 세상살이의 기본요소인 의식주가 크게 부족한 것이 역설적으로 ‘자유인 ’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셈이다. 자유인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 아닌가 싶다.
인천에서 50억 원대 자산에 은행이자만 매월 1400만원을 받는 50대 독신 남자가 1년 넘게 노숙 생활을 하다 실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잠잘 때 베게로 삼던 현금 500만원과 금장식 줄이든 가방을 읽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그 실 체가 드러났다고 하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다윗과 같은 부자 이면서도 가난한 노숙인의 삶을 살았던 것은 이 성경 구절을 읽기 나해서 일까? 아니면 자유인의 삶을 살고 싶어서였을까? 

새벽에 공원에서 운동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니  다윗의 심정을 이해 한 것은 아닌듯하다. 
또 하나의 상념: 이솝우화에서 북풍과 태양은 길을 가는 한 젊은이의 옷을 누가 벗길 수 있는지 내기를 하게 된다.  세상이 주는 지혜 싸움이겠지,  북풍은 세찬 바람을 일으켜 보지 만 바람이 세차면 세찰수록 옷 을 더 움켜잡으니 결국 옷을 벗기지 못하고 만다.

 태양은 뜨거운 열기를 내품는다 젊은이는 참고 참다가 너무 더운 나머지 옷을 훌훌 벗어 버린다.
결국 태양이 이긴다. 그런데  주인공은 태양도 아니고 북풍도 아니다 젊은이이다 이 젊은  이의모습 즉 외적인 환경에 의해 자극을 받아 줏대 없이 옷을 여미기도 하고 벗어 버리기도 하는 꼴이 꼭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 하여씁쓸해진다. 

 외적인 영향이나  자 극에 의해 생기가 돌기도 하고 풀이 죽기도하는 줏대 없는 자신을 보는 듯 부끄러워진다.  이 노숙인의 모습은  외적인 것에 매이지 않는 참 자유인의 모습이라 할까? 주님은 약하고 두려움가운데 살면서도 “처음부터 주님의 백성으로 만드신 사람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저희에게 하나님 나라를 미리 앞당겨 사는 당신의 백성에게 힘을 더할 수 있고 기쁨을 주시는 희망의 말씀을 계속해서 선물로 주신다. 

가난하지 않으면서도 가난 할 수 있는 것은,
정결하지 못하면서도 정결 할 수 있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자유 롤 수 있는 것은,
오주님 당신 때문입니다.
오늘 주안에서 참 자유인의 삶이 그리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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