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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것을 붙잡고 시작합시다 !

김석태 (경기노회,필리핀 선교사,목사) 2011-12-28 (수) 07:35 12년전 3052  

2011. 12. 28. 07 : 15                                       필리핀 선교사 김석태 목사

제목 : 옳은 것을 붙잡고 시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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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누구나 태어 날 때, 동일한 한가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는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나는 모습입니다. 그 주먹을 펴려 하여도 얼마나 힘이 쎄게 검어 쥐었는지 펴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또한 제아무리 펴 놓아도 즉시 손을 검어 쥐는 모습입니다.

만일 아이가 태어나먄서 손 가락을 쭉 펴고 태어나게 되면, 이 아이는 정상적인 아이로 보지 않습니다. 사생아 아니면, 건강하지 못한 아이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이를 받는 산 부인과 의사나, 출생하는 아이를 품에 안게될 산모, 그리고 가족들은 기쁨이 아니라, 긴장이요, 근심 것정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 아이들은 한결 같이 그렇게 강한 힘으로 손을 검어 쥐고 태어 날가요 ? 분명 그 아이 손 안은 빈손이련만 아이의 정신과 의식의 상태는 놓쳐서는 않될 그 무엇이 손에 쥐어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아이는 분명 그 무엇인가 를 손에 쥐고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 만큼은 절대로 놓쳐서도 않되고, 빼앗겨서도 않된다는 강한 의지를 읽어 볼수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목욕을 시킬때 손을 씻어 주려 하여도 결코 펴지 않습니다. 강제 펴서 씻기고 나면 곧 바로 강하게 손 가락을 움켜 쥡니다. 갖난 아이는 그 손을 얽지로 펴려 할때는 발버둥을 치고, 울어 댑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하여 볼 점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 아이들은 한결 같이 빈손이련만 목숨걸고 그것을 지키려 할가 ?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 인생은 사명이 없이 태어나는 자가 없고, 사명이 없이 사는 자도 없으며, 사명이 끝났을 때 인생의 운명은 장을 내리게 된다. ]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하게 들어 온 말이며 앞으로도 계속 되세기며 살아 갈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아이가 태어나게 될 때는 한결같이 자신이 가지고 살아 갈 사명감이 아닌 가 ?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눈여겨 보면, 이 아이가 하루 이틀을 지나가고, 일년 이년을 지나 가게 될 때, 검어 쥔 손은 점점 풀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손은 입 속으로 들어가고 엄지 손가락으로부터 손가락을 빨기 시작 합니다. 다음에는 장난감을 쥐어 주는 것을 손에 잡으려고 손을 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유혹에 손에 검어 쥔것을 놓아 버리는 모습을 연상해 봅니다.

이것이 인생의 출발이요, 인생 사는 모습의 연속이 아니가 ? 여겨 집니다. 키와 몸은 자라고, 인생 경험은 늘어 가게 되는 데, 사명감은 사라져 감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는 지 알길을 모르게 됩니다. 공부를 하기는 하는 데 자기 인생의 사명감이 백지 같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던 아이들이 방황을 하고, 심지어는 삶을 포기 하는 경우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중요한 인물을 발견합니다. 이는 모세라는 인물입니다. 모세는 똑 같은 어린이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그가 출생한 환격과 시대는 참으로 암울하였습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됨으로, 그것도 노예의 신분인 민족과 부모 아래 태어나게 되어, 출생한지 3 개월이 길다하여 나일 강변에 버려져야 하는 기막힌 운명자로 태어 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손에는 무엇이 쥐어 졌는 지 두 손이 불끈 쥐어져 있습니다. 나일 강변에 버려져 갈대 상자에 담긴체로 띄어 흘러가도 모세는 아랑곳 없이 그 두 손을 펼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친 부모이지만, 유모로 가장하여 모세를 길러 냅니다.

이때 요게벳은 어떠하였습니다. 모세의 가슴 심장 부위에 뜨거운 눈물 방울을 떨어 뜨려가며 기도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사명을 가슴에 새기어 주었습니다. 10 년이 지나 아므람고 요게벳의 교육은 막을 내리고 애급 궁정의 교육을 30 년간 받게 되었으나, 모세는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차 이스라엘을 애급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요, 이스라엘의 건국자요, 출애급의 성취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야 할 교훈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한다하는 이유로 손에 검어 쥔 사명을 놓게 하고 값어치 없는 것들을 대신 손에 쥐어 주는 데 열을 가는 어리석은 부모가 아니었는 지요 ? 그래서 대학 진로의 문턱에 이르러서도 하나님 앞에서와 민족과 역사 앞에서 어떻게 무슨일을 하며 살아 가야 할 인생인지를 깨닫지 모하여 방랑자의 자녀로 만든 주범이 아닌지요 ? 참으로 눈여겨 볼 일입니다.

우리는 2011 년을 보내고 2012 년을 맞이하며, 내 손에 붙잡혀 있는 것이 무엇인지요 ? 무엇을 붙잡고 2012 년의 발 걸음을 내 딛고, 무엇을 위하여 출발을 할른지요 ? 이 일이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손 안에 붙잡혀 있는 것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내년의 결과는 뻔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손아에 붙잡고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 자가 무엇을 기대 할 수가 있을 가요 ?

비록 태어나 몇일이 지나지 않아 잃어버렸던 그 사명을 되찾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였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인생의 본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내 욕구와 장난감 같은 것에 현옥되어 잃어린 그 사명 이제 다시 찾아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류와 역사 앞에서 사명감을 찾아 정당한 인생의 발걸음을 내 딛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1. 잃은 것보다 있는 것을 붙잡으라

인생은 누구나 너, 나할것 없이 있는 것에 대하여는 눈을 감아 버리고, 잃은 것만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잃은 시간, 잃은 세월, 잃은 기회, 잃어버린 인생만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시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그리움만 노래를 합니다. 그것을 생각으로, 정신적으로 붙잡고 늘어 집니다.

그리고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는 장님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을 붙잡도록 곁에서 힘을 써 주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에 애착을 두고 목숨을 걸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요, 실패의 원흉이며, 불행의 원인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 잃은 것에 집착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이 갖고 있는 고귀한 것을 손에 붙잡고 있습니까 ? 당신에게 있는 고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 붙잡으려 하는 데 보이지 않고, 잡을 것이 없다 하십니까 ? 그렇다면 당신은 눈먼 소경입니다. 만일 소경이 아니라면 스스로가 당신 자신에 대하여 눈을 감아 버린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우리에게 비록 실낫 같이 보여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가장 최선이라 여겨 지는 것을 손에 잡읍시다. 그러기 위애서는 내 속에 들어 있는 좋은 것들을 살펴 봅시다. 가랑잎 같은 소망이라면, 그래도 소망을 붙들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겨자씨 한 알처럼 보이는 무희미한 믿음 일지라도 내 안에 있다면, 그것을 내 의지의 손으로 붙잡고 일어 서 봅시다. 기적의 인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알고 보면, 우리 안에는 사랑도 있고, 양심도 있고, 지혜와 지식도 있으며, 좋은 보화가 가득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찾아 내어 손에 붙잡아 내야 합니다. 우리는 손에 잡을 좋은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없는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부정적인 시각의 눈을 지긋이 감고 내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 환격 역시 붙잡아야 할 좋은 요소와 조건이 너무 많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희생하며, 헌신하여도 부족함이 없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어떤 가난과 시련앞에서도 무릎을 꿇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넓습니다. 넓은 세상에는 우리가 붙잡고 누리며 살아가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명이란 랜즈로 찾아 볼때만이 보여지는 것들입니다. 사명의 랜즈가 없이는 허영과 절망과 어둠은 인식할지언정 결코 좋은 것들이 보여지지 않는 법입니다.

잃은 것을 보려하는 자는 사명이 없는 자입니다. 잃은 것을 바라보는 자는 사명에 눈을 감고 불행의 인생을 살아 가기로 작심한 자라 말 할수 있습니다. 사명감이 없습니까 ? 어둠이 내 인생의 전부라 여겨 집니까 ? 그렇다면 당신에게 있는 것으로 누을 돌려 보십시오.

비록 굶주리고 헐벗은 아들 딸이 있다 할지라도 그에게 눈을 돌려 보십시오. [ 그 아이는 말을 못하나, 희망의 꽃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호소 할 것입니다. 나를 기대하고 열심히 살아 주세요. 내가 필히 행복을 안겨 주겠습니다. ] 그의 초롱 초롱한 눈길을 맞추어 말해 줄 것입니다.

당신은 절망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희망을 인생의 현 주소로 삼고 살아가야 할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안에는 참으로 기막힌 운명을 갖고서도 행복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있습니다. 잃은 것보다 있는 것을 붙잡읍시다.

2. 뒤엣것 보다 앞에 것을 붙잡으라

사도 바울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 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쫒아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실패하고 불행하게 되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붙잡지 않고 뒤엣것을 붙잡고 살아 가는 데 있습니다.

실패와 불행의 늪에 빠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과거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임을 쉽게 파악 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 날에는 참으로 좋았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이 좋았고, 청소년 시절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란 환상에 젖어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과거의 삶이 정말 평생을 두고 환상에 젖을 만큼 행복한 삶이요 생활이었을가요 ?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과 같이 지겹게 여기는 나날이었고, 불만을 토해 놓는 세월이었습니다. 괴롬과 탄식이 있고, 불행이란 먹구름에 얼굴을 붉히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과거는 환상적인 행복의 날로 착하고, 그때를 동경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과거에 행복을 누린 사람이라면 오늘도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불행을 노래하는 사람이 된 것은 지난 과거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과거를 후회함이 없이 산 사람은 오늘 그 열매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 한숨짓고 괴로움에 메여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정체를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뒤엣 것을 놓아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주목하여 올바른 선택으로 꼭 잡아야 할 것을 손에 잡아야 할 것입니다. 제아무리 과거가 좋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거에 사로잡혀 앞에 것을 보지도 못하고 손에 잡지 않는 다면, 불행과 실패는 연속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 뒤엣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에있는 것을 잡으려고 쫒아 가노라 ] 사도 바울은 뒤엣것을 말하려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최고의 학문과 뚜이어난 지식과, 모든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총애와, 그의 손에 들려진 권세등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하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말 할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과거는 분토처럼 여기고 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지난 과거의 삶은 부끄러움이요, 수치며,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새 표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쫒아가 잡으려고 목숨을 걸었으니, 십자가의 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의 성공과 출세와 명예의 길을 져 버리고, 앞에 놓인 십자가의 도를 쫒아 간다 하였으니 고난과 핍박과 십자가의 죽음이란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안일과 평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내 놓는 사람이었으니, 이를 위하여 감옥도 들어가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헐벗고 굶주림을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목이 도끼에 잘려지는 최후를 맞이하였는 데, 이 와중에서도 그는 기쁨을 노래 하였습니다. 사랑을 노래하고 감사를 노래하며 행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누가 바울이 잘못 살았다 할가요 ? 그 누가 바울을 어리석다 할가요 ? 그 누가 바울을 미련하며 불행의 주인공이라 말 할수 있을가요 ? 오늘도 세계 방방 곳곳에는 바울의 상이 세워져 있고, 바울처럼 살기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모래수처럼 이 지구상에 퍼져있습니다.

성도여 ! 새해를 기대하십니까 ? 그렇다면 뒤엣 것은 외면 합시다. 과거란 뒤안길에 묻어 버립시다. 그리고 우리가 붙잡아야 할 앞에 있는 것을 주목합시다. 그리고 앞엣것을 바라만 보지 말고 손에 붙잡읍시다. 여러분의 인생 기적의 출발은 여기에서부터입니다.

3. 돈보다 예수님을 붙잡으라 !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태어난 목적이 돈은 아니라 하지만, 돈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T.V 화면을 늘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습니다. 자녀를 교육시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 결국에는 돈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사기를 치고, 돈 때문에 악을 행하며, 돈 때문에 사람을 살해까지 하며, 심지어는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까지 살해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돈이 인간위에 군림하는 것 만이 아니라, 돈을 하나님의 자리로 바꿔치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돈을 위해서는 양심도 쉽게 버립니다. 돈을 위해서는 믿음도 헌신짝 처럼 보입니다. 돈을 위해서는 윤리 도덕도 걸래 쪽지가 되어 집니다. 돈 앞에서는 진리가 비 진리처럼 변하는 것 같습니다. 돈 앞에서는 사명도 무색하게 되고 맙니다. 돈은 인간에게 만사 형통을 안겨주는 것 처럼 보여 집니다.

그런데 역사가 보여 주는것이 무엇입니까 ? 돈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한결같이 소망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요 ] 이 돈에 대하여는 설명 하지 않아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돈의 우력은 참으로 크지만, 인간 자체를 집어 삼키는 원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돈과 재물에 대하여 정립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돈과 재물은 일만 악의 뿌리일가요 ? 사실 맞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악한 일들은 다 돈에 근거하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인간 타락의 문화는 모두 돈으로부터 오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편은 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열매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돈에 대하여 이렇게 정리를 해 봅니다.

돈은 칼과 같다. 칼이 어디에 쓰여지느냐 ? 어떤 사람의 손에 들려 지느냐 ? 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칼이 요리사에게 들려 질때 품위있고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져 나옵니다. 칼이 예술가의 손에 들려 짐으로 값비싼 예술품이 나옵니다. 그러나 강도의 손에 들려지거나 복수자의 손에 들려 질때는 사람의 생명을 살해하는 흉기가 되어 집니다.

돈도 이와 같습니다. 돈으로 음식을 사서 대접하게 될 때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줄 뿐만 아니라 건강을 돕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에게는 돈이 치료의 도구가 되어 집니다. 학비가 없어 교육을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교육의 희망이 될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돈은 쓰여지는 곳과 사용되어지는 용도에 따라 달라 질수 있습니다.

나는 선교사로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매우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돈을 사랑도 합니다. 돈을 소중히 여기기도 합니다. 왜입니까 ? 선교를 함에 있어 돈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선교를 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도 해야하고, 선교사로서 사역함에 교회당도 짓고,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하며, 병든자를 고쳐 주기도 하고, 가난자의 학비도 도울수도 있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좋은 역할을 할수 있는 돈이 악한 사람과 악한 일에 쓰여 질때는 엄청난 흉기가 될 수있습니다. 돈으로 핵 무기를 만듭니다. 돈으로 조직 폭력단을 만듭니다. 돈으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데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에 성전으로 나아 가는 길이었습니다. 성전 미문에 오래 된 앉은 뱅이가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앉은 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돈을 구한것이 아닙니다. 동전 한잎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이것마져 없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앉은 뱅이의 손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하였습니다. 이때 앉은 뱅이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 걷고 뛰었으니, 예수님을 붙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당신은 앉은뱅의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지는 않습니까 ? 육신은 건강하나 내 영혼이 말입니다. 나의 정신 상태가 말입니다. 그래서 앉은 뱅이같은 장애자로 앉아 있는 인생이 아닌가 ? 말입니다.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을 붙잡는 순간에 발과 발목에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앉은 뱅이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렇게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베드로 요한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돈은 없어 불쌍한 이웃에게 줄수 없다 할지라도 돈보다 더 귀한 것을 줄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돈에 비교할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구원이 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이런 인생이 되기를 기대하십니까 ?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며 소원하십니까 ? 지체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 남에게 돈은 줄수 없을지라도 돈보다 더 소중한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변화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 예수님의 이름을 갖게 될 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 ]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마 11:5, 눅 7:22)

성경에 보면 12 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살 희망을 잃은 여인이었습니다. 지치고 온몸이 상하여 썩어가는 냄새가 풍겼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내 병이 낳는 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가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이때 12 년간 고치지 못하던 혈루병이 완치 되었습니다.주님을 진정코 붙잡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기적의 인생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열 다섯 살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15세에 축구공에 눈을 맞아 두 눈을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에 놀란 어머니는 쓰러져 뇌졸중에 걸리게 되었고, 얼마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누나는 봉제 공장에 다니며 이 소년을 돌보아 주었는데, 누나마져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력도, 부모도, 누나마져 잃은 이 소년은 삶을 포기 하려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 앞도 볼수없는 나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어 !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 ] 이 소년은 죽음만을 생각하며 길 거리를 배회하며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구하곤 하였습니다.

이때 이 소년은 기구한 처지에서 예수님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희망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나는 절망할수 없다. 주님은 내 길을 인도하여 주시리다.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감사의 조건을 찾으며, 점자를 배우고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후에 이 소년은 성장하여 미국에서 시각 장애인으로 최초의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백악관 장애 위원회 정책 차관보에 올랐는 데, 그의 이름이 강영우 장로입니다. 현재는 UN 세계 장애 위원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삶의 지쳐있습니까 ? 절망이란 먹 구름에 감싸여 있습니까 ? 죽음의 그림자가 눈 앞에 왔다 갔다 하십니까 ?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 돈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알고보면 이 세상 천지에 돈은 가득 차 있습니다. 한번 눈을 뜨고 둘러 보십시오. 온 천지가 다 돈 덩어리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당신도 소유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에 현혹 된다면 불행 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십시오. 그때 당신은 큰 비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손에 쥔것 없어도 알고 보면 온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 해 있고, 모든 사람들은 나를 위해 봉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행 16:31 [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4. 악령보다 성령을 붙잡으라

우리 인생은 누구나 선하고 의로운 것을 동경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악한 일에 휩싸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괴로워 하고, 고달파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가요 ?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하겠지요 ?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고 있는 공통점은 악령을 의지하고 살아 간다는 사실입니다.

악령에 소속되어서 악령으리 지배를 받는 자가 어떻게 선의 열매를 맺고 의로운 길을 걸어 갈수 있을 가요 ?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행복이란 에덴 동산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아 가고 있었으나, 악령 즉, 사탄을 선택하는 순간 실낙원의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살기를 원하고 좋은 것을 사모하며, 행복이란 열매를 거두며 살기응 소망한다면, 성령을 붙잡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자는 성령에 온전히 결박 당하기를 소원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부활 하셔서 우리를 향해 하신 말씀이 [ 성령을 받으라 ]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 성령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게되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 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 피곤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 집니까 ?

한번 생각 해 봅시다. 만일 오늘 이명박 대통령이 당신을 불러 미국 대사로 파견한다면 어찌 생각하시겠습니까 ? 대단한 영광이 아닐가요 ? 예수님은 5년의 한국 대통령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조자로서 온 우주의 주인이 되시고 만 인간의 영원한 왕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되시는 분이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하십니다.

대사의 신분으로서 온 세상 그 어느 곳에든지 거할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된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까 ? 가슴이 설레이지 않습니까 ? 아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읽어 봅시다 !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결론 :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붙잡을 일도 많고, 붙잡을 것도 많이 있습니다. 인생의 운명은 무엇을 붙잡고 살아 갈것인가 ? 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 믿음의 줄, 구원의 줄, 기도의 줄, 사명의 줄, 사랑의 줄, 선행의 줄 등 헤아릴수 없이 우리가 붙잡고 살아 갈 좋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좋은 것을 마음의 손에 붙잡는 다면,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붙잡아서는 아니 될 것들도, 당신의 눈 앞에 헤변의 모래 수처럼 많이 있습니다. 후회의 줄, 절망의 줄, 탈선의 줄, 유혹의 줄, 범죄의 줄, 불신의 줄등 헤아릴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이런 것들을 마음의 손에 검어쥐고 새해를 시작하며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속는 자가 될 뿐일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붙잡고 살아 온 줄이 무엇입니까 ?

아니 지금 현재 붙잡고 있는 줄이 무엇입니까 ?

앞으로 붙잡고 살아가려는 줄은 어떤 줄입니까 ?

 

그 붙잡은 줄을 가지고 살아 갔을 때 그 결과는 무엇이라 여겨 집니까 ?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결단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1. 잃은 것 보다 있는 것을 붙잡으십시오.

2. 뒤엣것 보다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십시오.

3. 돈보다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4. 악령보다 성령을 붙잡으십시오.


 

2012. 12. 28. 07 : 25

김석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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