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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겉보리 서말도 없는가?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3-07-19 (금) 15:11 10년전 28845  

 
[전대환 칼럼] 겉보리 서말도 없는가?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박정희 독재가 절정일 즈음, 우리나라에 주재하던 한 미국인이 대화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미국]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있는데, 너희 나라에는 민주공화당이 있구나. 참 재미있는 나라야." 자기네들은 '민주'(民主)를 강조하는 당과 '공화'(共和)를 강조하는 양대 정당이 경쟁하고 있는데, 한국은 집권당이 그 둘을 묶어 이름은 그럴듯하게 지어놓고 참 야무지게도 독재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평소 그의 인품으로 보아 한국인 친구를 앞에 두고 조롱 섞인 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얼굴이 화끈거렸었다.

그 당은 민주나 공화와 거리가 멀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뭉뚱그려 말하면 '민주'는 독재의 반대 개념이고 '공화'는 '왕정'의 반대개념이다. 왕이나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뜻대로 운영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어 직접 또는 간접으로 합의하여 나라를 운영하는 나라다. '자본주의'(資本主義)가 자본 곧 돈이 주인이고 돈이 정의인 제도임을 생각할 때 국민 곧 사람이 주인이고 사람이 정의인 '민주주의'는 그것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 1조 1항과 2항이다. 멋진 선언이다. 여기서의 '국민'은 미국 국민도 일본 국민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부정선거 논란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지만, 박근혜 후보는 이 헌법에 의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음을 알고 대한민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예정대로 미국으로부터 환수하겠다고 공약했다.

당분간 미국에 더 기대고 살겠다니

그러나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하던 취임선서가 아직 귀에 쟁쟁한데, 박근혜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일정을 연기하고 싶다고 미국 측에 제안했단다. 귀를 의심했다. 반만년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민국이 남의 나라에 군사주권을 넘긴 게 어언 60년, 이제야 독립국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나보다 했지만 당분간 미국에 더 기대고 살겠다니, 이게 웬 말인가.

참여연대가 어제 성명을 내어 "전시작전 통제권은 군사주권에 관한 문제이며 이는 국가주권의 핵심요소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외국군에게 있다는 것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헌법상의 군통수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열번 읽어도 옳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이라고 하는 것이 입으로만 외치는 허황된 자랑이 아니라면, 그런 나라가 제 나라 안에서의 전쟁을 외국군에게 맡기겠다는 것은 치욕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은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명에서도 조선 조정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구원병을 보내주기는 했다. 그러나 이순신의 일기를 보면, 명나라 수군은 조선의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우방이라고 하지만 자기네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유년(1597)에 천린(陳璘)이 이끄는 명나라 함대 500여 척은 강화도에 와서 몇달 동안 전쟁은 하지 않고 조선에서 빼앗은 곡식과 물고기로 배를 채웠으며, 백성의 딸들을 엮어서 숙영지로 끌고 들어갔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전쟁원병이 신사이기를 바라는 것은 고양이가 생선 앞에서 신사이기를 바라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거룩하게 망하기, 더럽게 빌붙어 살기

백범일지에 보면 김구 선생이 고 선생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예로부터 천하에 나라가 크게 흥하였더라도 망하지 아니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더라도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경우가 있다."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싸우다가 힘이 다해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지만, 국민이 여러 패로 갈려서 한 편은 이 나라에, 한 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강대국을 의지해서 제 동포끼리 싸워서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처가살이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옛날 남정네들은 굶어죽어도 주권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지금 겉보리 서말도 없는 형편은 아니지 않은가. '거룩하게' 망할지언정 '더럽게' 빌붙으려 하는 것은 주권국가이기를 포기하는 작태다.

(※ 2013.7.19 석간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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