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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제2차 남북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김규환 (대전광역노회,대전중원교회,장로) 2013-08-12 (월) 22:10 10년전 6148  
만약 제2차 남북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0. 만약 제2차 남북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USA투데이지”는 예상피해가 세계1차
대전수준에 이를것으로 보도했다.“브르스클링더 헤리티
지”재단 전임연구원은 전쟁 시뮬레이션결과 결국에는 한
미 연합군이 승리한다고 밝혔다.
 
0.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사상자가 한반도에서
발생한다고 덧붙였다.(공식집계된 1차세계대전 사상자는
19개국 3,252만명으로 발표되었다 )
 
0. "클링너"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전쟁이 시작되면 방사포
등 13,000문의 포가 지난 연평도 포격처럼 무차별 포격
을 퍼붓는다.(북한은 현재 5천톤 화학탄도 동시보유)
 
0. 포격을 퍼부은뒤 북한은 100만명의 보,포,기갑부대를 진
격시킨다. 6천여대의 쏘제 구형탱크가 휴전선을 넘기에
는 충분한 수라는것이 "클리너"의 설명이다.
 
0. 물론 주공격은 인구밀도가 많은 수도권을 우회포위작전
으로 속전속결의 전투양상이 예상된다. 그러나 60만 한
국군과 2만의 미군전력도 만만치않다. 막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미 최첨단 전투기들이 먼저 제공권을 장악한
뒤 사전입수된 북한의 주요군사시설밎 거점들을 가노한
유도무기로 정확하게 정밀공습 적지휘통신계통을 조기 마
비시키고.
 
0. 이어서 침공한 북한군 보.전.포 지상부대를 정밀포격 조
기 무력화와 내륙 깊이 사전 침투한 북한 특공대도 남한
의 막대한 예비 병력무장에 의거 조기꽤멸된다.
이때 "오핸련"연구원은 북한이 최후의 수단으로 “핵공격” 시도을 우려한다.
 
0. 이때는 신속하게 대비하지않으면 남한에 큰피해가 예상
된다.물론 이러한 전쟁가능성을 적게보는 전문가도 있다
“제니피린드 다트머스대”교수는 북한군의 장비수 규모는 많
으나 대부분 구형이고 실전에 열악하며 지속적 전쟁수행
에 따른 무기및 보급품보충에 있어서 비용(돈)이 턱없이
모자라고 대병력.중화기 장비등의 이동에 따른 연료부족
과 총력전에 수반되는 빈약한 경제력(식량등)으로는 막상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운걸로 말하고 있으나!
 
0. 종합적 관점에서 우리피해을 최소화 할려면 “선제공격”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북한에게 공격 당하고 맛
대응 한다는것은 비좊은 전선과 영토에서의 우리 피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군은 이점을 미리 숙지해야 할
것이다.
 
0. 참고로 우리역사상 3대패첩은 1597년 7월1일 임진왜란
   시 원균의무능(육지장수로 바다길을 너무 몰랐음) 으로 칠
   천량(현거제도북단) 해전시 우리전선300척과 2만여병사를
   죽게한 패전이였으며
 
0.1637년 1월2일 병자호란시 경상좌.우병사 민영.허완(인조때)의
   무능으로 (제병지휘를 못함)쌍령(현재 경기도 광주) 육전시 적  
   기마병 400기에 5만장병을 죽음으로 몰았으며.
 
0.1951년 5월16일 6,25시 인제에 주둔한 3군단(3사단.9사단 주 
   력)  5만병력이 군단장 유재홍의 무능으로(1천여중공군이 군단  
   후방 오마치.현오미재 고개 선점 봉쇄로 홍천방면의 퇴로막힘)
   중공군과 제대로싸워보지도 못하고 적에게 포로2만.사망1만2
   천여명.차량.중포등 엄청난 군단장비를 모두빼앗긴 참담한
   패배 임.
 - 군단장 유재홍은 군용기로  탈출하고 과거 6,25초기에도 38선 
   인근 7 사단장으로 서울인근에서 패배한 경력이 있으며
 - 당시3군단
   부군단장겸 9사단장 최석은 장군계급장 띠고 도주하여 남아
   있는 수만명의 장병이 갑지기 오합지졸로 지리멸렬 모든장비를 
   버리고(심지어 개인총까지버리고) 대오를 이탈 방태산으로
   도주함.
 - 3군단장 보임직전에도 중서부전선에서 2군단장으로 중공군에게
    크게 대패한 경력의 소지자임 .
 - 일본군 육군대위출신으로 어쩐일인지 6,25후에 참모차장,군사 
    령관.5,16후 국방장관,각국대사등 요직역임하고 최근에 사망 
    (현국립묘지장군묘역안장)
 - 당시 오마치(오미재)계곡에는 5천여 아군장병시채로 시신묻을
    흙도 없었다고 했음(시신썩는냄새로 수키로까지진동)
-  다행히 미3사단 미177공수여단 긴급공수로 구멍을 때웠
   으며 한국군 1군단 1연대(연대장 한신대령) 가 대관령을 조기 봉
   쇄하여 적의 예봉을 꺾고 강능을 지켜내어후에 반격의 기회가  
   됨.
- 당시 밴프린트 사령관은 유재홍을 향하여 "당신의 사단과
  장비는 어디있는가"? 물음에 모르겠습니다로 답변 무능일관 
 
0. 반면에 우리 역사상 3대 승첩은
   -1592년 7월8일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에의한
   한산 대승은 55척의 군함으로 적선 115(적1만명수장) 척을
   완전격파한 해전상 큰승첩이고
   -1008년 고려 현종때 귀주대첩은 청청강에서 명장 감감찬장군 
    에 의하여 거란군 10만명을 사망케 했으며
   -612년 살수대첩은 역시 청청강에서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 이
    수나라 30만대병을 몰사시킨 대승첩이며.
 
0. 지난 6,25시 3대 대첩은
   -1950년 8월1일부터 9월20일까지
     50일간 북한군 30만을 상대로 피말리는 전투를한 낙동
     강전투 (사령관 워커장군 백선엽장군등) 결과 적의 건재
     을 송두리체 무녀뜨렸으며.
   -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사령관 맥아더 원수.10군장
     알몬드소장) 으로 적의 퇴로 차단과 서울을 수복했고.
   - 1950년 12월24일 장병10만 피남민 10만.차량 17,000대 탱크 
     등 각종중장비를 성공적으로 철수시킨 흥남철수작전(사령관
     알몬드소장.김백일장군) 등으로 볼수있으며.
 
0. 지난6,25시 3대패첩은
    - 1950년 10월25일부터11월3일까지
      전개한 운산전투(아군후방 적유령산맥에 중공군 30만 대
      규모공격)시 퇴로차단과 중공군포위로 미군12,000여명이
      사망했고
    - 1950년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전개한 장
      진호 전투에서도 혹한과 중공군 포위공격으로 미군8,000
      명사망과 4,000명부상(대부분 동상) 했으나 중공군 포위
      망속에서도 죽기아니면 살기로 전투이 임한 제1미해병사의
      감투로무사히 황초령을 넘어 안흥 함흥 흥남까지 철수함.
    - 다음에는 이미서술한 인제 현리 3군단패배를 들수있다.
 
0. 그렀다면 6,25시 3대 승첨은 없는가? 물론있다.
     -1950년6월25부터 6월28일까지 전개한 춘천전투는 우리사
       단(사단장 김종오 장군)에 의하여 북한2군단 정예병력1만
       명사살과(주로우리 포병에 보리밭 구릉지에서 적대량살상 적
       공격 3일지연으로 미군전선투입이 가능케하였으며.
     -1951년 5월17일부터 5월21일까지 전개한 용문산전투는
       철수하던 우리6사단(사단장 장도영장군)이 적사살 17,177
       명 포로2,283명 중장비 다수확보등 중공군을 80키로지점
       화천까지 몰아내어 전멸시킨 전황을 바꾼 큰승전이다.
      -사단의 주저항선보다 북쪽 용문산줄기에 2연대 3,000
       명배치(원래는 첨병대 1개중대 300명배치가 정석)
     - 최초 중공군과 전투시 사단후방에 빠져야할 2연대 오히려사 
       단 457전방고지에 틀어밖혀 전투 사상최초 산꼭대기 에서
       우주방어 돌입(장도영 사단장 무전기로 진지사수명령)
     - 이에 중공군은 아군 대부대로 착각 5만명 총공격(3개사단)
     - 이타이밍에 아군 주력 (7연대와19연대) 중공군후미포위
       공격. 중공군 혼미백산 춘천- 화천까지 오합지졸로 퇴각.
     - 화천저수지까지 추격완전격멸(화천저수지에서 적7천사
        살:후에 파로호(오랑케피로물든곳)로 이승만박사 명칭부여,
        * 인근주민들 10년간 고기 안잡음 이때에 ----
        * 무찌루자 오랑케 몇백만이냐! 노래 탄생 (아이들 고무
       줄놀이로 부름) 한국군 중공군 무시하기 시작, 사기앙양
     - 이시기에 3군단 현리전투 패배시점에서 겨우 원상회복
       하고 장도영장군은 5,16후 미국에서 큰환영받음.다음은
     -1951년 2월23일 지평리전투를 들수있다. 지평리
      전투는 미23연대와 프랑스 특수대대(미프리먼대령.프랑스
      잘프중령) 로 편선된 최전선부대로 치고 빠저야 하나 저구릉
      지 1,6키로 원형진지를 구축하여 미연대3천중2천사망
      프랑스대대1천중 600명 사망등 생사을 초월한 진지사수방어 
      로 4만여 중공군을 사살하고7만여중공군를 박멸한 승첩임. 이
      전투로 38이북의 전진이 가능했음.
     - 세계2차대전시 유럽 벌지대전투와 진지가유사하며 리치웨이
       8군사령관은 밀려오는 중공군을 더살상키위하여 진지사수
       를명함(보급은 공중에서하고 밤에도 낙하산 조명탄으로 엄
       청난 중공군 폭살:이전투로 모택동 대노및 탄식) 
 
☞  결론적으로 전쟁은 있어서는 안되나 그렀다고 전쟁을
     피할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 후세까지 안정을 도모할려
     면 지금부터 전쟁준비는 완벽히 해야한다.이것이 우리가 당면
     한 비극이고 현실이다.

김목원(경기노회,하이교회,목사) 2013-08-13 (화) 14:57 10년전
결론이 좀 거시기 합니다.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결론적으로 전쟁은 있어서는 안된다. 전쟁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후세까지 안정을 도모하려면 지금부터 평화준비를 완벽히 해야한다.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고 또 생명과 평화를 향한 미래이다.
주소
김규환(,대전중원교회,장로) 2013-08-14 (수) 06:46 10년전
전쟁을 피한다면 저도 공감합니다. 좋은의견주셔서 감사합니다.무더위에 건강조심하시고
주안에서 형통하시기를 기원드림니다!
주소
김목원(경기노회,하이교회,목사) 2013-08-14 (수) 15:17 10년전
감사합니다. 장로님께서도 더위에 강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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