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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조폭 스타일 충성심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3-08-21 (수) 17:49 10년전 2532  
 
 
[전대환 칼럼] 조폭 스타일 충성심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토마스 모어는 영국의 정치인으로서 '유토피아'의 저자다. '유토피아'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지상천국' 쯤 되겠다. 그러나 원 뜻은 '지상에는 없는 곳'이라는 말이니 모어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국가를 그린 셈이다. 유토피아의 근간은 평등정신이다. 모어가 15세기말에 살던 사람이니까 당시에도 '평등세상'에 대한 꿈이 양반들에게는 '위험한' 생각이었다. 1535년 7월 6일, 토머스 모어는 단두대에 올라야 했다. 나라에 반역죄를 지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형집행관이 모어에게 마지막으로 술 한 잔을 권했다. 그러나 모어는 "예수는 죽던 날 식초와 쓸개즙을 마셨는데 내가 어찌 술을 마시겠는가?" 하며 거부했다. 모어는 "왕의 충직한 신하로서, 그러나 하느님을 먼저 섬기는 신하로서 나는 죽는다"라고 말하며 사형대 위에 목을 길게 늘어뜨렸다. 칼날이 떨어지면 저승으로 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집행관은 모어의 목 앞에서 떨고 있었다. 내키지 않는 사형집행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모어가 말을 건넸다. "내가 자네의 칼에 죽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충성이라면, 자네가 내 목을 베는 것은 나라에 대한 충성일세. 그러니 자네의 소임을 다하게." 그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내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일이 없으니, 수염을 한쪽으로 옮겨 놓을 수 있도록 잠깐만 기다려 주겠나?" 그는 수염이 잘리지 않게 목을 앞으로 쭉 뺐다. "됐네.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마침내 칼날이 떨어졌고 모어는 세상을 떠났다.

'하느님 먼저 섬기는 신하로 죽는다'

모어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친구 에라스무스는, 모어의 죽음을 슬퍼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토머스 모어는 하얀 눈보다 더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국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모어와 같은 천재를 두 번 다시 얻지 못할 것이다." 사형집행관은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서 토마스 모어를 죽였지만, 토마스 모어는 하느님께 충성하느라고, 곧 자기가 생각하는 이념과 가치를 지키느라고 사형을 당했다.

충성! 멋진 표현이다. '충'(忠)은 마음에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고 '성'(誠)은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이룬다는 것이니, 붙여서 풀이해 보면 마음에 중심을 잃지 않고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영어의 할아버지 격인 고대 그리스어어로 '충성'은 피스토스(pistos)인데, 신실하다, 믿음직스럽다, 일관되다, 그런 뜻이다. 우리말의 '충성'과 딱 맞아떨어진다.

요즘은 군대에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충성!'이라고 크게 외치며 거수경례를 했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해오던 것으로, 말 자체는 좋지만 그 뜻은 왜곡되어 있었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것'이 충성인 줄 알았던 것인데, 그건 충성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복종일 뿐이다. 조폭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유를 묻지 않고 상급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니다. 충성이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삶의 자세다. 사람에 대한 맹종의 결과가 아니라 가치에 대한 확신의 결과가 충성이다.

나라에서 월급을 받고 정치 댓글 작업을 했던 국정원의 심리전 파트가 모두 12개였음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어제 나왔다. 지난 대선 때 야당이 폭로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당시의 국정원 여직원 김 아무개는 바로 3팀 5파트 소속이었단다. 대형 포털사이트와 유명 중소 커뮤니티를 담당하는 팀들이 있었고, 트위터 등 SNS를 담당하는 팀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아주 조직적으로 대규모 온라인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국정원 댓글사건'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국정원의 불법 정치개입 사건이고 파렴치한 민심교란 사건이다.

상급자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충성 아니다

이렇게 사건의 내막이 속속 밝혀지는데도, 최근 열린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일부 증인들과 국회의원들은 보는 이의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어쩌면 저렇게 뻔뻔하고 방자할 수 있을까,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토머스 모어처럼 가치를 위해 목숨 걸고 버티지는 못할망정, 네모를 두고 동그랗다고 우기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이, 자기 자녀손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가치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조폭 스타일의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이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 두렵다.

(※ 2013.8.21 석간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신동욱(대구노회,해안제일교회,목사) 2013-08-25 (일) 21:30 10년전
전목사님, 힘이있는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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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3-08-28 (수) 14:14 10년전
신 목사님, 반갑습니다.
20년 전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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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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