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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 개역개정 병행 성경을 출간해야 할 듯,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3-08-22 (목) 08:33 10년전 4561  
신중, 배려 - 개역 개정판 그리고.
글쓴이 :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날짜 : 2013-07-03 (수) 09:23 조회 : 502
 
개역 개정판을 읽어보면서 마음의 심정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비슷한 표현을 하자면 착잡한 심정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왜 잘되고 좋은 개역번역을 수정하여 오히려 오해할 수 있게 한 부분들을 보기 때문이다. 수정할 부분들을 가장 신중히 검토하며 수정할 것이었다. 또한 불과 몇 단어라면 꼭 수정하려면 하단에 작은 글씨로 고쳐도 될 뻔하였다.
 
1. 개역 개정판 성경을 읽다가.
(눅7:26) 훌륭한
'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글쎄 ‘ 훌륭한’ - 이러한 단어를 이 부분에서 본적도 들을 적도 없는 듯 한데,,
그리고 ‘선지자 보다도 더 훌륭한' (?) 무엇이 선지자보다 더 훌륭하지?
인품이, 신앙인격이, 무슨 업적이? - 무엇이 훌륭하단 말인가.
 
원어를 모르더라도 성경을 읽고 아는 사람은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예언한 점에서 좀 특이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 선지자와 다른 특별한 역할로서 더 나음을 이해 할 수 있다.그리고 그 의미를 크게 공감한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그 고유하고 특별한 역할을 훌륭한 이라는 그럴듯한 미사여구의 덕담으로 누구에게나 자주 할 수 있는 단어로 바꾸어 버렸다. 아다시피 성경은 사실성이 중요하지 구태여 화려한 미사여구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어린아이들이 읽을 때 위인전의 훌륭한 인물을 연상하며 어떻게 훌륭한 분으로 생각하고 질문하면 교사는 그것을 위인전 설명하듯 무엇이 더 훌륭한가를 설명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훌륭한이라는 뜻은 인격 업적 실적등을 두고 평가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업적을 쌓은 결과로 말이다
 
세례요한은 전기에 나오는 그러한 종류의 훌륭한 인물이상의 특별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훌륭한 인물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두루뭉실한 위인전의 단어로 표현하여 버렸다.
혹 개역성경에 익숙한 이유이기 때문인점도 있는지 모르나 참 대단히 잘못 번역하였다고 생각되었다.
왜 쓸데 없이 좋은 번역을 그럴듯 하지만 적절치 않은 번역으로 바꾸어버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보니까.
1. 같은 본문을 마태복음에서 보면 (마11:9)
다행히 그대로 였다.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한편 그렇다면 성경 전체를 일관성있게 해석하지 못하고 아마 여러 사람이 부분적 나누어서 해석의 단점과 문제점이 노출 되는 것이기도 하다.
 
영어성경은 마11:9와 눅7:26절이 동일하다.
(마11:9) Then what did you go out to see? A prophet? Yes, I tell you, and more than a prophet.
(눅7:26) But what did you go out to see? A prophet? Yes, I tell you, and more than a prophet.
개역 개정 성경에서 불과 몇 군데는 단어를 보완한 것에 잘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더 많은 경우에 왜 바꾸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바꾸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원어의 원뜻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안바꾸었으면 좋은데 그랬다.어려운 단어를 쉬운 단어로 고쳐 읽기 쉽게 하는 것은 좋으나 원뜻을 살리며 쉽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알며 또한 고어 구어도 같이 쓰는 것이 어휘력의 풍부함을 생각할 때 좋은 점도 있는데 그렇다. ( 그리고 이미 거의 모든 개역 성경의 하단에 어려운 단어 설명이 잘 되어있어 어려움 없이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지적이 나의 생각이 짧아서 이면 천만 다행이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교계 번역위윈회는 큰 반성을 하며 더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1. 요15장 (15:2)
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의 분문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함을 명심하여야 함을 알 수 있는데
개역 개정에는 붙어 있어도 '열매 맺지 아니하는 가지' 로 시작한다.
이건 또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가. 붙어 있어도 열매맺지 아니하는 가지 그러면 어찌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개역)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개역 개정)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 맺지 아니하는
 
요15:4절을 참고하면 개역 번역이 맞는 듯하다.
개역, 개역 개정 둘 다 요15:4절에서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말씀하고있다.
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의 분문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함을 명심하여야 함을 알 수 있는데
개역 개정 번역판은 붙어 있어도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어느 것이 더 정확하고 더 적절한 번역인지 검토하여 보아야 할 것이나좀 심각한 차이가 아닌가 한다.
 
1. 왕상19:11,14 - 엘리야의 심정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19:10) 개역
'내가 만군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19:10) 개역개정
 
위의 내용과 본문을 잘 아는 바 개역 개정 역을 읽으면서 순간 느낀 점의 언급은 사양하며,,
그런데 유별하다의 사전적 정확한 다른 의미가 있는지 모르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별나다'라는 단어를 어떤 때 사용하는가. 그 사람 참 유별나다. 일반적으로 유별나다라는 뜻은 꼭 좋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서 엘리야의 심정을 전후 배경을 통하여 알아본다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것이 엘리야의 그 상황에서 그의 심정을 최선으로 표현한 것이겠는가,
여기에서 엘리야의 호렙산 로뎀나무 아래서의 자기의 심정을 아뢰었을 때 그 심정을 상상해 보신다면,,.
 
1. 또 읽다가,, 눅24:11-12 (추가)
" 그 된 일을 보고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개역.24:12)
"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개역 개정,24:12)
 
개역개정판의 '놀랍게' 여겼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부활을 놀랍게 여겼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다. 사도들이 부활을 전하는 여인들의 말을 듣고 허탄한듯 하여(like nonsense)
믿지 못하고 있었다. 베드로, 요한은 무덤을 향하야 달렸다. 달려가서 보았다.
부활은 사실이었지만 이성적으로는 그 상황을 보고도 아직도 믿을 수 없는 베드로의 마음의 상태를, 개역은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다. 그 장면을 보고 베드로의불가사의 하게 생각하며 돌아오는 마음의 상태를 우리는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개역개정의 ' 놀랍게 여기며'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부활을 놀라워했다는 것인가, 빈 무덤의 상태를 놀라워했다는 것인가, 개역개정은 그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며 번역을 하는 듯하다.
영어성경을 보면,
, wondering to himself what had happened. / , wondering what had happened.
, marveling to himself at what had happened. / , marveling at what had happened.
영어 성경에 wonderful 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심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개역개정팀에게 뭘 놀랐다고 생각하시는지, 여기서 놀랐다는 말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
참 잘 번역 된 단어를 분별력없이 더 적절치 못한 단어로 고쳤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1.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놀라는가, (요3:7 )
( 개 역)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개역개정)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이스라엘의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하셨을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질문하였을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니고데모가 이해를 못하였는데 놀랐다는 것인가, 너무 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그리고 성경이 어휘력의 풍부함에 공헌하는 것은 덤으로 주는 유익이다.
 
1. 이김과 승리, (고전15:57)
(개 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개역개정)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개역 성경의 '이김'을 주시는 이라는 번역이 더욱 광범위 하며 더 적절하다고 본다. 다양하고 수많은 도전 앞에서, 한 예를들면 역경 환난 질병에서 이김을 주시는이가 더 자연스럽다. (참고, 요16:33)
그리고 순수한 우리말을 두고 구태여 한자어를 써서 더 어색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 시107:30
(개역)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개역 개정)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성경 중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항구 못지않게 소원이라는 단어에 강조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내용에서의 결론으로 항구를 수식하는 ‘바라는’ 보다는 ‘소원’의 표현이 좀 더 분명하고 강력하며 이 장면의 내용에서의 결론부분으로 더 적절할 듯하다.
They were glad when it grew calm, and he guided them to their desired haven./
 Let them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is unfailing love and his wonderful deeds for men.(107:30-31)
 
1. 물론 개정판이 적절하게 수정된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요4:24)
신령과 진정을 -> 영과 진리로는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잘 번역한 것으로 본다.
 
1. 신중히 개정을 검토해야 할 부분 중의 하나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중에서, (마16:13-19)
 
네가 -> 너희가 (마16:19)
‘네가’를 ‘너희가’로 번역하였으면,, 한번 검토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네가 라고 하면 혹 베드로로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오해 할 수 도 있는데 이것은 베드로를 포함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복수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어 성경에는 천국 열쇠들(the keys)이라고 하였다. (마18:18-20참고)
 
(1. 사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개역>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개역개정>
이 부분을 개역 개정 성경은 왜 이렇게 바꾸었는지 적절치 않음에 대해서 본 란에서 언급한 바 있다.
 
1. 수1:1-9,
여호수아 1장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의 ‘마음’이라는 단어를 개역개정판에는 빼어 버림에 대하여 개역판의 번역이 더 적절하다는 필자의 견해를 역시 이미 본란에서도 지적 한바 있다.)
 
1. 개역 개정판 보완 방법은 그리고,
1) 가능하면 번역위원들 다시 검증하여 성경하단에 작을 글씨로 표시한다든가 할 수 있을 것이다.
2) 수정 부분에 대하여 설명 책자를 내어 보충하여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3) 의미가 같으나 바꾼 부분에 대하여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바라건데 쉬운성경은 그 책대로 의미가 있으나
적어도 가장 원본에 일치한 한 성경은 최상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번역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이 성경의 번역작업은 이 생명 다하여란 말이 조금도 지나치는 말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더 완벽한 모습으로 보완은 당연한 의무와 사명일 것이다.
 
5) 지금이라도 다시 어떻게 하기는 쉽지 않고 ,,
하단에 작은 글씨로 표시하여야 하고 수정한 부분을 번역 위원들이 다시 한번 검증하여야 한다.
예) 강하고 담대하라 -> 혹은,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예) 가라사대 -> 이르시되
이러한 것은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가라사대는 현재 잘 사용하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한편 가라사대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휘력의 풍부함을 위해서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지만,, 의미는 같다.
 
(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의 경전 토라 다음으로 탈무드를 귀하게 여기는데, 탈무드에 보면 세상의 그 무엇이 다 있는 도시라고 하여도 토라를 배우지 않는 도시에는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경전 다음으로 귀하게 여기는 탈무드에서 토라를 그렇게 귀하게 여김을 보며 그들의 그들 됨을 알 수 가 있다.
이렇게 귀한 경전이기에 번역은 참으로 가장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물론 좀 더 쉬운 성경이라는 이름하에 나오는 성경은 그 나름대로 좋은 점을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단에서 읽고 볼 수 있는 성경 그리고 모두가 가장 많이 보아야 하는 원본에 가장 충실한 성경은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1. 성경의 개역 개정판을 보면서 몇 군데는 고치는 것이 더 좋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더 많은 부분에서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을 고쳤구나 하는 것을 우선 몇 군데 발견하였다. 혹 수정을 위한 수정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정도 수정 정도이면 성경 하단에 얼마든지 해석을 써 놓을 수 있고 그리고 좀 더 긴 검토 후 고쳐야 되면 고쳐도 되는 것을 너무 성급하게 개정판을 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다. 경제적인 이유등도 있고 좀 더 성도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였다.
 
1. 새찬송가 출판도 좋은 일이나 따로 페이퍼북을 만들어 사용 후 좀 더 잘 검증 후 사용한 것이 좋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그리고 찬송가는 가능하면 지금 생존하여 계신 분의 것은 넣지 않은 것으로 안다. 혹시 불완전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생각하여서 일 것이다.
교인들의 입장에서 좀 더 배려하는, 개역을 두고 다 개역 개정을 구입하게 하는 경제적 부담, 물론 꼭 바꾸어야 하는 것이라면 경제적 부담은 문제가 아니지만, 모습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혹시라도 영리 상술적 그 무엇이 들어갔다면 우리는 크게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 이렇게 개역 성경보다 번역이 더 좋다고도 볼 수 없는 개역개정판의 수정 부분을 좀 더 많은 검증 없이 펴낸 것에 대하여 결과적으로 큰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 너무 그러하여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많은 교파가 있는데 무슨 일을 한 번 하는데 쉽지 않아 좀 더 추진력 있게 실시하는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나 저나 지금까지 사용하여 온 훌륭한 성경과 찬송가를 어떻게 잘 활용하는 방안도 찾아 잘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일단 게시판에 올려놓았으나 필자의 평가가 절대적으로 맞다고 판단할 수도 없고 귀중한 경전의 번역 문제이므로 모두를 위해서 공론화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여 적절한 곳에 다시 올려놓을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 문제에 전적으로 매어달릴 수 없어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쓰지 못한 점이 있다고 본다. 한편 이러한 번역 언급들이 필자의 좀 더 짧은 견해이었다면 천만다행이겠다. 무더운 여름에도 말씀과 함께 승리의 신앙생활을 바라며,,.)
 
 
<< 추가,
누가 개정을 좀 더 쉽게 번역하였다고 하였는가,
주다 -> 베풀다 (요1:31,33-34)
 
'주다'를 '베풀다'라는 단어를 바꿀 이유가 있는가. ' 주다' 얼마나 쉽고 쏙쏙 들어오는 단어인가, 그런데 베풀다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것인가, 구태여 바꿀 이유가 있는가. 유규무언이로소이다.
 
요1:33-34.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개역, 요1:33-34)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개정,요1:33-34)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이, 즉 성령을 주는이라고 알렸는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수 있는 얼마나 의미 깊고 감동적인 선언인가,
대속의 죽으심 이후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하며 이 말씀이 얼마나 깊이 와 닿았겠는가.
 
쉬운 단어 그러나  깊이 있고 감동적인 내용의 표현을 구태여 어려운 단어로 불필요하게 무슨 뜻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로 바꾸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쉬운 내용을 좀 더 어렵게 생각할 수 있도록 바꾼 것으로 본다. 단어의 뜻도 중요하지만 그 본문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 필자는 이미 개역 성경 번역자분들의 깊이 있고 최선의 번역 헌신적인 모습에 감사와 칭송을 보낸 바 있다.)
 
또한 성경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분적으로만 알고 쉽게 한곳을 고치는 것 신중해야 한다. 번역자는 성경 전체를 잘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성경 전체를 깊이 잘 알고 이해하여야 한 분들이어야 한다. 
 
* 고후5:5절을 보자.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이는 하나님,
이것은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한 부분과 연결하여 보면 깊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개역, 고후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개정, 고후5:5)
Now it is God who has made us for this very purpose and
has given us the Spirit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고후5:5)
 
(요1:31,33-34)
I myself did not know him, but the reason I came baptizing with water was that he might be revealed to Israel."/
Then John gave this testimony: "I saw the Spirit come down from heaven as a dove and remain on him./
I would not have known him, except that the one who sent me to baptize with water told me, 'The man on whom you see the Spirit come down and remain is he who will baptize with the Holy Spirit.'/
I have seen and I testify that this is the Son of God."    2013.9.13 >>
 
+ 할 말이 없군요.
( 신명기11:12) 세초부터 세말까지 (개역)  <- > 연초부터 연말까지(개정)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세초부터 세말까지는 시작부터 끝까지로 하루 일년 역사 자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항상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 성경은 ' 연초부터 연말까지'로 번역하였다. 물론 연말 끝나면 다시 연초부터 연말까지 계속이므로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개역 성경이 더 의미에 맞게 잘 번역한 것으로 본다.
개역 성경이 번역이 잘 된 이유 중 하나는 그 동안 계속해서 많은 노력을 하며  면밀하게 검토하여서 더욱 완벽을 위해서 부분적으로 수정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개정의 연초부터 연말까지를 세초부터 세말까지로 오히려 바꾸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혹 쉬운단어로 바꾼다는 의견인지 모르나 내용자체가 연초 연말 이상이라면 거기에 적절하게 번역하여야 할 것이며 성경은 어휘력 향상의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미 말하였다. 지금 외국어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배우고 있는가,, 누구나 읽기 쉬운 언어를 강조한다면, 따로 쉬운성경들은 그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It is a land the LORD your God cares for; the eyes of the LORD your God are continually on it from the beginning of the year to its end.(신11:12 )
"a land for which the LORD your God cares; the eyes of the LORD your God are always on it, from the beginning of the year to the very end of the year.(신11:12)
또는 영어성경을 참고하여 직역으로 연초 연말 하였는지 모르나 원문의 의미를 숙고하여 볼 것이며, 개역성경 번역팀이 의미에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잘 번역하였다고 본다. (2013.10.28)
 
+ < 돌아보셨다와 돌보셨다의 차이는 그리고,>
(눅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개역)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개정)
 
They were all filled with awe and praised God. "A great prophet has appeared among us,
" they said. "God has come to help his people." (눅7:16)
‘ has come to help' - has come으로 번역하였다는 점을 유의하여보자.
원문을 보면 ‘방문하다’ (visit)의 뜻이 있다. 찾다. <2013.11.8>
 
+ 유구무언이로소이다.
눅1:2절을 영어 성경과 함께 보다가 한국어 성경번역이 좀 완벽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뜻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개역을 보니 바로 그것이었다. 영어성경을 참고하여 보면 개역번역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개역)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개정)
just as they were handed down to us by those who from the first were eyewitnesses and servants of the word.(niv)
(2013.11.12)
여기에서 '말씀'은 로고스이다. 이 본문에서의 '호(the) 로고스'! 이 깊은 내용을 알 사람은 알리라.
이 내용을 개역판은 의미를 쉽게 알게 번역하였는데 개정판은 왜 바꾸었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 행 2:33 - 검토해 볼 일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개역)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개정)
Exalted to the right hand of God,
he has received from the Father the promised Holy Spirit and has poured out what you now see and hear.
영어 성경과 함께 보얐을 때 밑줄 부분을 오른 손으로 번역하여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오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하나님 우편(보좌)에 오르시매,.
이 부분 전문적으로 더 깊이 연구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Exalted to the right hand of God,.
개정판을 보다보니 더 검토해 보게 되었다. (2013.11.20)
 
1. 행3:10 /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가 그 상황을 전달에 잘 표현하였다.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개역)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개정)
they recognized him as the same man who used to sit begging at the temple gate called Beautiful,
and they were filled with wonder and amazement at what had happened to him.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라고 수정하였으면 더 내용 전달에 좋았을 것인데, 오히려,.
놀랍게, 놀라니라' 놀람으로 통일 하는 것은 어휘 제한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2013.11.23)
 
1. 시 119: 99-100  명철 , 명철
위의 두 구절에서 명철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영어성경에는 각각 insight, understanding로 표현되었다. 원문도 동일한 단어가 아니었다. 비슷한 뜻이지만 다른 단어 인데 개정, 개정 둘 다 명철이라는 단어만 사용하였다. 수정하려면 이러한 곳을 적절한 다른 단어로 수정하여야 하였을 것이다.
한편, 이미 말하였듯이 개정 판의 수정이 드믈지만 잘 된 곳도 있다. 살전1;6의 한자어 '도'를 '말씀'으로 수정한 것은 이해도 쉽고 뜻도 분명히 전달 될 수 있다고 본다. (2013.12.2)
I have more insight than all my teachers, for I meditate on your statutes./
I have more understanding than the elders, for I obey your precepts. (시119:99-100)
 
1. '오직' 을 '다만'으로, 빌4:6
오직을 다만으로 바꾸었다. 오직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여 그러한지는 모르나 '다만'이라는 단어는 왠지 어색하고 구식의 표현같은 느낌이 든다. 오직 이나 다만이나 뉘앙스는 다르나 같은 뜻으로 본다.왜 구태여 다만이라는 단어로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오직'이 좀더 시원하고 강렬한 단어이고 내용에 더 적절한 뜻으로 본다.다만을 오직으로 바꾸어야 내용이 더 잘 전달될 것으로 본다. 원어는 그러나,그렇지만,그래도, 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뜻이 있다. (2013.12.27)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빌4:6)
 
1. 국어교사에게 물어보라, / 능치 못할 일 - 능히 하지 못할 일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개정)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상황을 보라,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세 제자에게 그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신 후 산 아래 내려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하신 말씀이다. 한 두 단어만 들어도 그 상황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누구나 알 수 있다.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은 그 문장만을 본다면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쉽고 간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왜 이해를 집중하기 어려운 말로 바꾸었는지 알 수 없다. 국어교사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이다. (2013.12.30)
"'If you can'?" said Jesus. "Everything is possible for him who believes." (막9:23)
 
1. 행17:11 :  더 신사적어서 (개역)   --> 더 너그러워서 (개정)
Now the Bereans were of more noble character than the Thessalonians, for they received the message with great eagerness and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
 
 원문: 귀족, 좋은 가문에 태어난, 즉(문자적으로)계급이 높은, 또는 더욱 귀한, 
( noble ,nobleman , more noble ,, well-born, of noble race,  noble minded )
내용으로 보아서 지적 탐구열이 더 강한 모습이다. ( 2014.1)
 
1. 와 영광 -> 부귀와 영광  (왕상3:13)
Moreover, I will give you what you have not asked for --both riches and honor--
so that in your lifetime you will have no equal among kings.(3:13)
<원> 큰 재물, 부귀, riches , wealth
개역의 '부'를 개정에서는 '부귀'로 바꾸었다.
개정에서 똑 같은 단어를 3:11에서는 부 로 했다가 같은 단어를 3:13에서는 부귀로 바꾸었다. 똑 같은 원문의 단어를  왜 각각 다른 단어로 번역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원어로는 부나 부귀 다 맞다고 본다.뉘앙스는 다르다. (2014.1:10)
 
1. 오 어찌하오리까,
왕상3장을 읽는 중에 9절을 읽었다. 무슨 단어가 빠진 것 같았다. 뭔가 맥빠진 느낌이다. 지혜라는 단어가 빠진 것 같았다. 보고 또 보았다.한 참 보았다. 전후 내용을 보아서도 지혜라는 단어가 있어야 하였다.(3:11,12)
잠시 후 개역 성경을 찾아 보았다.'지혜로운 마음'이다.
 
지혜로운 마음 (개역)  -> 듣는 마음(개정)
그런데 '듣는 마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무슨 추상적 언어를 말하는 자리인가. 어렵게 말하도록 큰 결심의 결과인가, 여기서는 원문을 가지고 논 할 필요도 없다. 전후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개역 번역팀도 원문을 보고 번역하였음은 당연할 것이다. 왜 잘 된 번역을 알아 듣기도 추상적인 말로 바꾸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아 어찌하오리까. (2014.1.10)
So give your servant a discerning heart to govern your people and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For who is able to govern this great people of yours?" (왕상3:9)
 
=> <추가>
1. 필자는 개역을 개정성경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개정을 개역성경으로 바꾸어야 더 적절하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는가. 병행성경을 출판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분들에게도 개역과 개정성경을 병행하여 보는 것은 유익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좋다고 본다. 비교해 봄으로 이해를 더욱 돕게 될 것이다. 한 때 텔레비전에서 개정 성경을 광고하는 분들은 잘 비교하여 보고 광고하셨을까 궁금증이 있다.
 
1. 성경은 우리가 읽고 듣고 암송하고 새기고 적용하고 실천하여야 할 말씀이다. 생명의 말씀 권세 있는 능력의 말씀이다.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는 말씀이다.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성경을 원어에서 다른 나라 말로 완벽하게 번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더욱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우리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은 고귀하며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한편 개역과 개역개정의 병행 번역본 성경도 출판하여, 같이 읽으므로 더욱 유익케 할 수 있을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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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1. 사41:14 부분은 예전에 본란에 좀 더 자세하게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원문은 벌레 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내용에서 가장 약한 것을 표현한 대명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번역자 분들은 원문의 사전적 의미와 본문의 내용적 의미, 사전적 단어의 뜻과 정확한 의미전달 사이에서 깊은 숙고가 있었을 것이 보이는 듯합니다.
본문에서 가장 약한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지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 일 것입니다. 그런데 버러지, 일반적으로 인격 모독의 인격 비하의 단어를 이 본문에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며 의미 전달에 적절한가 하는 것입니다.
 
1. 수1:6-9 절의 ‘ 마음’이라는 단어가 원어의 사전적 뜻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번역 팀이든지 최고의 원어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사전을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은 사전을 찾아보면 원문의 뜻을 알기도 할 것입니다.
그 단어의 뉘앙스가 마음이 포함된 단어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 그 뜻을 전달하는 깊은 숙고 끝에 마음을 넣었다고 보며 원문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최상의 의미 전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상황에서 정확한 의미 전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봅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예전에 역시 본란에 이미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관심을 가져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목사님의 가정과 목회에
생명의 소망의 치료의 능력의 말씀이 생수의 강과 함께 흐르기를 기원합니다.  < 2013-07-03 (수) 17:50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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