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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빠져 나오너라!" (인권주일)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3-12-08 (일) 16:24 10년전 2401  
 
"어서 빠져 나오너라!"
 
 
■ 성서 본문

바빌론 도성에서 살고 있는 시온 백성아,
어서 빠져 나오너라!’”

<스가랴서 2:6-7>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인권주일입니다. 1948년 12월 10일에 유엔총회에서 ‘세계 인권선언’을 채택한 이후 교회에서도 매년 12월 둘째 주일을 인권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권은 잘 보장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쨌든 인권의 날 또는 인권주일을 계기로 인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권을 지켜주셔서,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언제나 귀히 여김을 받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 연세가 95세이니 장수하기는 했습니다만, 이분은 평생 27년 동안을 감방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니 실제 햇빛을 보면서 산 햇수는 68년밖에 안 됩니다. 그는 56세 되던 1964년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있는 섬에서 교도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환갑도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1982년까지 거기서 지냈고, 그 뒤에도 두어 차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됐다가 1990년 2월에야 석방됐습니다. 제 또래 나이 때부터 시작해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냈지요. 이분이 살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 남단에 있는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지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흑인의 인권이 철저히 짓밟히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만델라는 흑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한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흑인만을 위한 정치인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우리 함께 같이 잘 살자!’ 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1964년 종신징역 형을 받을 때 그는 법정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뿐만 아니라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와도 맞서 지금껏 투쟁해 왔습니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이상입니다. 나는 그런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면 죽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결국 그는 승리했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도 뜻을 이루었습니다. 1993년에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4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 인권을 방해하는 것들

1994년이면 불과 20년 전입니다. 그 이전까지 그 나라에서는, 흑인에게는 선거권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그해 선거에서 처음으로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된 결과였는데, 이 일을 위해서 헌신했던 것 때문에 그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흑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얼마나 나쁜 짓입니까? 인종차별은 죄악입니다. 차별주의나 정치적인 탄압만이 인권의 적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창조하셨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모두 인권의 적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사람의 평등권 곧 인권을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돈’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민주당 은수미 의원의 트위터 글을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한해 43,199명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갔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벼운 교통사고를 내고는 벌금 낼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고, 칠십 노인이 10만원 때문에 구속되는 등, 서민들은 에누리 없이 법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나랏일’ 한다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에게는 웬만한 범법도 훈장처럼 여겨집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경제범죄가 오히려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처럼 되었습니다. 이게 평등입니까? 이게 인권입니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 함께 더불어 살기

지난달에 동양증권에 다니던 30대 직원 하나가 또 목숨을 스스로 끊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이번에는 너무 큰 사고를 쳐서 감당할 수 없어요. 못난 아들이 더는 속 썩이기 싫어 못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제 점심을 하며 얼굴을 뵈어 다행입니다. 어머니, 부디 건강하세요!” 이 사람이 구체적으로 무슨 사고를 쳤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근본적인 사고를 쳐서 회사를 흔들리게 한 사람들은 멀쩡하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말단직원이 목숨을 끊어야 합니까? 이 사람이 자기 아내에게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년에 결혼 10주년인데 너만 사랑했다. 혹시 채무 독촉이 오더라도 모르는 척해라. 내가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하니 나 없더라도 아이들을 잘 키워줘!” 돈이 원수입니다. 돈 때문에 사람이 한둘 죽어나가는 게 아닙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개인이 노력하면 해결되겠습니까?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개인이 돈 문제의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너무 힘듭니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경쟁’을 외치지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인생의 출발점부터 다른데 어떻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합니까? 독일 얘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예전에 독일에서는 대학까지 학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쯤부터인지 대학에서 돈을 좀 받았습니다. 한 학기에 100마르크씩 받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5~6만 원 정도 됩니다.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모두 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인데 왜 돈을 받느냐는 것이지요. 그 돈 못 내겠다고 데모하고 농성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해 위헌판결이 났답니다. 학생들로부터 받은 돈 모두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돈 있는 사람만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입니다. 불공정하다는 것이지요. ‘경쟁’을 외치더라도 적어도 이 정도는 해놓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독일은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합니까?

■ 맺는 이야기

요지는 ‘돈 있는 사람만 편하고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자!’ 이것이 인권의 기본입니다. 그러려면 강한 사람이, 가진 사람이, 배운 사람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는데요, 한 초등학교 남학생이 뇌종양에 걸렸습니다. 7주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세가 호전됐습니다. 다시 학교에 나갔습니다. 그걸 본 같은 반 남학생 친구들 열다섯 명이 모두 삭발을 했답니다. 이게 더불어 사는 삶 아니겠습니까? 스가랴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시온 백성아, 어서 빠져 나오너라!”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니 거기서 빠져나오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돈 귀신에게 포로로 잡혀 있습니다. 얼른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함께 사는 것, 더불어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먼저 깨닫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깨어 있으면 그것이 작은 불씨가 되어 온 세상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그런 소중한 불씨로 써주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2013.12.8 구미 한울교회 인권주일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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