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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요?" (대림절셋째주일)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3-12-15 (일) 14:49 8년전 2795  
 
"당신은 누구요?"
 
 
■ 성서 본문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그 때에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그는 고백하였다. 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 예언자요?” 하고 그들이 물으니,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시오?”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요한복음서 1:19-23>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기다림의 촛불이 세 개가 켜졌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또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무쪼록 여러분의 기다림이 복된 일이기를 바라고, 그 기다림의 나날들이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렸던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당신은 누구요?”

혼수상태에 빠진 어떤 부인이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불현듯 하늘로 들려 올라가 재판장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시장의 부인입니다.” “나는 네가 누구의 부인이냐고 묻지 않고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저는 네 자녀의 어머니입니다.” “나는 네가 누구의 어머니냐고 묻지 않고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교사입니다.” “나는 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고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렇게 문답은 계속됐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네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고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저는 매일 교회에 나갔고 항상 가엾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 준 사람입니다.” “나는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고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다가 부인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부인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정체성을 찾아내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모든 면에서 부인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무개의 남편, 아무개의 아내, 아무개의 아버지, 아무개의 어머니, 아무개의 자식…, 이런 것이 ‘나’인 줄 압니다. 또한 나의 직업, 나의 종교, 나의 성격이 ‘나’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나’의 일부일 뿐, 나의 전체를 규정하는 ‘정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누구냐?” 이렇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 세례요한의 대답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메시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당시 양반계층인 바리새파 사람들이 사람을 보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당신이 도대체 누군데, 이런 데서 사람을 모아 놓고, 되지도 않는 소리로 선동해서 우리 양반들을 욕보이는 거요?” 그런 말입니다. “당신이 메시야요?” “아니오!” “그러면 당신이 엘리야요?” “아니오!” “그렇다면 당신이 정 도령이오?” “아니오!” “이도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이 때 세례요한은 명답 중의 명답을 말합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누가복음서 3:5에 보면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다. 높은 것은 깎아내리고, 낮은 것은 메우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것은 평탄하게 하는 것, 요한은 이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토목공사를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평등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은 ‘평등세상’을 외칩니다. 그러나 악마가 보낸 사람은 ‘일등세상’을 외칩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내가 일등 하는 게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려고 예수님께 청탁을 넣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고 낮아지라고 하셨고, 남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 주인공과 들러리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1등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현상이 특히 우리나라에서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은반 위에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을 보셨지요. 며칠 전에 트위터에서 본 내용인데요, 김연아의 경기에 대해서 우리나라 방송과 외국 방송의 해설이 이렇게 다르답니다. 김연아가 멋진 기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이렇게 말하지요. “저 기술은 가산점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외국 방송에서는 이렇게 말한답니다. “나비죠? 그렇군요. 마치 꽃잎에 사뿐히 내려앉는 나비의 날갯짓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김연아가 착지할 때 잠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 방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안타깝군요. 코너에서 착지자세가 불안정하면 감점 요인이 됩니다.” 외국 방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은반 위를 쓰다듬으면서 코너로 날아오릅니다. 실크가 하늘거리며 잔물결을 경기장에 흩뿌리네요.” 이번에는 멋지게 점프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런 점프는 난이도가 높죠. 경쟁에서 유리합니다.” 외국방송은 “제가 잘못 봤나요? 저 점프! 투명한 날개로 날아오릅니다. 아, 천사입니까? 오늘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와 이 경기장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드디어 경기가 끝났습니다. 아나운서가 외칩니다.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금메달이에요. 금메달! 금메달!” 외국 방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울어도 되나요? 정말 눈물이 납니다. 저는 오늘 밤을 언제고 기억할 겁니다. 이 경기장에서 김연아의 아름다운 몸짓을 바라본 저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 맺는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1등이 아니면 눈길도 안 줍니다. 1등을 빼면 나머지는 들러리입니다. 요즘 대학 입시철이라 아무개가 어느 학교에 합격했다는 현수막이 종종 눈에 띕니다. 그러나 나머지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걸 보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1등은 한 사람밖에 하지 못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패배감을 느끼며 한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의 말은, 이건 안 된다, 이겁니다. 높은 곳은 깎고, 낮은 곳은 메워서, 모든 사람들이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공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요한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하는 질문을 여러분이 받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예, 저는 1등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사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가 세세무궁토록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2013.12.15 한울교회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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