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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냐?” (주현5)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4-02-09 (일) 17:16 7년전 6798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냐?”
 
 
■ 성서 본문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어 예수를 불렀다. 무리가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마가복음서 3:31-35>


■ 들어가는 이야기

입춘이 지나서 그런지,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이제 아침기온도 영상인 날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땅도 깨어나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깨어나고, 나무나 풀들도 깨어납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그동안에 죽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겨울 내내 잠자다가 때가 되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도 올 한 해의 풍성한 결실을 위해서, 새봄과 함께 깨어나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가족’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 “효자는 사양합니다!”

‘가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모입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없으면 자식이 생길 수 없고, 가족이 구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대할 때는 ‘효도’의 예를 다해야 합니다. 이것은 뿌리에 대한 존중이고, 결국 그것은 자식의 자존감을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배우자감을 구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자기 딸의 신랑감을 구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저런 조건들을 말한 다음에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효자는 사양합니다!” 옛날에는 효자들이 칭송을 받았지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다른 일에도 성실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이었는데, 요즘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딸 가진 부모 가운데서는 사윗감으로 효자는 좀 빠져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딸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일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사람들이 진짜 효자를 싫어한다기보다 ‘마마보이’를 싫어하는 것이겠지요. 사위가 자기 부모에게도 잘하고 아내에게도 잘하고 처가 부모들에게도 잘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마보이 형 효자는 사실 쉽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엄마 편만 들면 되지요. 옛날에는 그게 통했는지 모르지만, 요즘에는 그랬다가는 가정이 깨지고 맙니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머니도 불만 제로, 아내도 불만 제로, 장모도 불만 제로인 방법을 잘 찾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거 잘하려면 깊은 철학도 있어야 하고 고도의 기술도 있어야 합니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국영수만 죽자 사자 가르치는데, 사실은 이런 걸 가르쳐야 합니다. 국영수 잘못하면 ‘조금만’ 불편하면 되지만 인간관계를 제대로 안 배우면 한평생 ‘많이’ 불편하게 살아야 합니다. 교육이 천지개벽을 해야 합니다.

■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냐?”

그러면 예수님은 가족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살펴봅시다.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은 좀 특이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교훈을 말씀하실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랍니다. 때때로는 병자들을 벌떡벌떡 일으키시기도 합니다. 가시는 데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상당히 머리가 아픕니다. 저 예수라는 인간이 민중을 선동해서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악성루머를 퍼뜨렸습니다. ‘저거, 귀신 들렸다!’ 이겁니다. 사람들이 생각해보니까, ‘어, 그럴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된 것이지요. 그 소문이 예수님의 가족들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뭐야? 우리 아들이 귀신이 들러?’ 아들이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어머니가 어디 있습니까?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나섰지요. 워낙 유명한 사람이 됐으니까 한두 번만 물으면 금방 소재파악이 될 것 아닙니까? 사람을 들여보내서 예수를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 말을 전했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 우리는 한 가족

어떻게 들으면 참 매정합니다. 집 나온 지 몇 달이 됐는지, 몇 년이 됐는지 모르는데,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으면 맨발로 뛰어나가서 맞이해야 마땅할 텐데, 예수님은 꼼짝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실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지금처럼 설교를 하고 있는데, 저 문을 열고 제 가까운 친척이 찾아왔다고 합시다. 그때 제가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여기서 뛰어 내려가 그분들을 맞이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아니지요. 인사를 하더라도 마치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효자였습니다. 마마보이 형 효자가 아니라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효자였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를 나눈 가족, 한 집에 사는 식구만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도 가족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온 세상 사람이 모두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기를, 너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나머지는 다 뭡니까? 형제자매들이지요. 한 식구라는 말입니다. 가족의 개념을 확장시키신 것입니다.

■ 맺는 이야기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라, 하는 것이지요.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달라는 것, 그래서 주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함께 보자는 것,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마르고 닳도록 외는 게 그것 아닙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세상에 가족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오는 기쁨 가운데 하나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된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기도해주며, 우리가 형제자매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가족 사이에 조화가 유지되면, 인생은 성공”(우테 족 인디언의 격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지면 하나님 나라는 성공입니다. 우리 함께 그런 성공을 만들어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 2014.2.9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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