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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건져주소서!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4-03-09 (일) 14:58 9년전 2429  
 
나를 건져주소서!
 
 
■ 성서 본문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로마서 7:24-25>


■ 들어가는 이야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행복하셨습니까? 부모들의 소원이,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 일인 것처럼, 하나님의 소원도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여기저기서 자살소식, 사고소식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도 여러분은 모두 여러분의 가정에, 나아가 세상에 행복을 만들어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바울의 고뇌

나이 드신 분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하지요. 내가 고생하며 살아온 것을 말로 하자면 몇 날 밤을 새워도 다 못하고, 책으로 써도 몇 권을 쓸 수 있을 거다, 합니다. 사실이 그럴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울인데, 로마서 7:24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왜 자신을 ‘비참한 사람’이라고 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서 바울은 죽을 고생을 했던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바울이 고생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충 짚어 봐도 이렇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고,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고,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었습니다. 강도를 만나기도 했고, 동족의 모함을 받기도 했고, 이방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추위에 떨기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이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정말 괴로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오늘 로마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자기 안에 또 다른 자기가 들어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또 다른 ‘자아’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자기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놈이 자꾸 나쁜 짓을 하자고 충동질을 합니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19세기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지킬 박사겠지요. 대단히 유복한데다가 실력까지 갖춘 과학자였습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겨서 남부러울 것이 도무지 없는 남자였습니다. 또 하나의 주인공은 하이드인데, 이 사람은 키가 작은데다가 외모부터 기분 나쁘게 생겼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습니다. 사람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나쁜 인간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킬 박사의 유언장입니다. 이 양반이 자기 친구인 어터슨 변호사에게 유언장을 써서 맡겨두었는데, 어터슨 변호사가 볼 때 그 내용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죽거나 실종되거든 자기 재산을 모두 하이드에게 물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이드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고, 왜 그런 사람에게 재산을 물려주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답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동일 인물이었습니다. 지킬 박사는 매우 점잖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자꾸 나쁜 짓을 하자고 부추깁니다. 내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도 못된 짓을 하는 쾌감을 맛볼 수는 없을까, 이게 지킬 박사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박사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합니다. 드디어 신비의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약을 먹으면 변신을 하는 겁니다. 인자하게 생긴 지킬의 모습에서, 흉악하게 생긴 하이드로 바뀝니다. 지킬은 하이드의 모습을 하고 밖으로 나가서 마음껏 쾌락을 즐깁니다. 그러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서 또 다른 약을 먹습니다. 그러면 원래 지킬의 모습으로 되돌아옵니다. 유언장은, 만에 하나 본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렇게 써둔 것이지요. 그런데 진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킬에서 하이드로 바뀌는 건 괜찮은데, 하이드에서 본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날이 갈수록 더 독한 약을 써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약을 안 먹었는데도 자고 일어나면 하이드로 바뀌는 일도 생겼습니다. 큰일이 난 것이지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박사는, 자기 재산을 하이드가 아니라 변호사인 어터슨에게 물려준다고 유언장을 고치고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맙니다. 이게 결말입니다.

■ 나를 건져주소서!

물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공상과학소설이지요. 바울이 그랬고, 지킬 박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인격에도 이중성이 있습니다. 착한 나와 못된 내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완전히 착한 사람도 없고, 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머릿속에, 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온갖 더러운 생각들을 글로 표현해낸다면 아마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그 양이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흉악하기도 비할 데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들에게, 썩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더라도, 그냥 그저 그런 사람으로라도 비칠 수 있는 것은 그 더러운 생각들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이중성은 다 있을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습니다. “얘야, 내 마음속에는 늑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단다.” “어떤 늑대인가요?” “한 마리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짓, 자만, 이기심, 화 등을 가지고 있는 악한 녀석이고, 다른 한 마리는 기쁨, 평화, 사랑, 인내심, 겸손, 친절, 소망 등을 가진 착한 늑대지,” 아이가 묻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언제나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이 늑대들은 여러분 안에도 있고 제 안에도 있습니다. 한 마리는 생명의 늑대요, 또 한 마리는 파멸의 늑대입니다.

■ 맺는 이야기

여러분과 저는 생명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 오늘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의 사랑을 통하여, 우리 속에 있는 생명의 늑대는 점점 자라납니다. 교회 문을 나서서 밖으로 나가시더라도 이것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지금 가고자 하는 곳, 또는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생명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곳인가, 아니면 파멸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곳인가,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사가 우리 의지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안 되지요. 그래서 바울처럼 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건져 주소서!”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두 인격 가운데서 생명의 인격이 언제나 승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 2014.3.9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김상배(경북노회,안동제일교회,장로) 2014-03-09 (일) 18:37 9년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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